개똥참외의 생명력으로

by 빡작가

개똥참외의 생명력으로


나는 요즘도 무언가를 보면 마음의 잔물결이 일렁인다. 누가 시킨 일도, 곳간을 채울 수 있는 일도 아니다. 오히려 내 주머니를 털어 배움을 청한다. 하나의 취미가 생기면 이내 사람들의 모임으로 이어지고, 그 끝엔 어김없이 누군가를 돕고 싶다는 봉사의 마음이 넝쿨처럼 따라온다.

나는 자타공인 '취미 부자'다. 무언가에 호기심이 생기면 일단 몸을 던지고 본다. 일단 시작하면 끝을 봐야 직성이 풀리는 성미 덕에 서랍 속에는 자격증만 마흔 개가 넘게 쌓였다. 유아교육, 사회복지사, 한국어 교원, 음악, 컴퓨터, 스마트폰, 심리상담, 복지에 이르기까지 그 종류도 다양하다. 물론 그 자격증들을 다 써먹으며 사는 것은 아니다. 어떤 것은 장롱 깊숙이 잠들어 있고, 어떤 것은 그저 '해봤다'는 증명서로만 남았다. 이런 나를 보며 남편은 짐짓 혀를 차며 농담을 던진다.

“당신은 개똥참외만 맡으면 되는 거야? 한 가지나 제대로 잘하지, 왜 자꾸 일을 벌여.”

남편의 말대로 나는 한 분야의 깊은 정점에 도달한 장인은 아니다. 이것저것 손은 많이 대지만, 남들에게 내세울 만큼 독보적인 '한 칼'은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 '개똥참외'라는 말이 싫지 않다. 주인이 정성껏 일군 밭이 아니라, 길가나 들판에 제멋대로 뿌리내려 노랗게 익어가는 개똥참외. 비록 크기는 작고 모양은 볼품없을지 몰라도, 그 안에는 척박한 땅을 뚫고 올라온 질긴 생명력이 담겨 있지 않은가.

주변에서는 이제 좀 짐을 내려놓고 숨을 고르라고 권한다. 그 말도 맞다. 가끔은 가빠오는 숨에 발걸음이 무거워질 때도 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정지된 화면 같은 하루를 마주하면 마음 한구석이 눅눅해진다. 아무 일도 하지 않는 평온함이 내게는 오히려 견디기 힘든 허전함으로 다가온다.

스스로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너는 아직도 무엇이 그토록 탐이 나서 멈추지 못하니.’

가만히 내면을 들여다보니, 내가 갈구하는 것은 소유의 영토가 아니었다. 남보다 높은 곳에 서려는 욕심도 아니었다. 그저 배우면 나누고 싶고, 알게 되면 쓰고 싶을 뿐이다. 내 안에 고인 것이 썩지 않도록 자꾸만 통로를 열어 밖으로 나가는 것이다. 신기하게도 세상엔 나와 닮은 ‘물살’들이 있다. 우리는 끊임없이 무언가를 궁리하고, 작은 일이라도 벌이며 생의 불꽃을 지핀다.

이미 내 마음의 집은 가정도 있고, 지나온 세월의 무게도 충분히 얹혀 있어 비어 있지 않다. 그런데도 왜 사람들은 내가 자꾸만 무언가를 더 채우려 한다고 생각할까. 아마도 나는 채우는 것이 아니라, 넘쳐나는 것을 기꺼이 흘려보내는 중인지도 모른다. 머물러 있으면 고여서 답답해지는 성정. 쌓아두기만 하면 숨이 막혀버리는 마음. 조금이라도 밖으로 길을 내어 흘려보내지 않으면, 내 안의 생동감이 그대로 굳어버릴 것만 같은 느낌이 나를 움직이게 한다.

나에게 진정한 평범함이란 누군가와 가느다란 선으로라도 연결되고, 작은 역할이라도 수행하며, 오늘이라는 하루가 허무의 바다로 가라앉지 않게 건져 올리는 일이다. 이제는 이런 나 자신을 타박하거나 문제 삼지 않기로 했다. 가만히 있으면 시들어버리는 사람, 넘치는 것을 어찌할 줄 몰라 조심스럽게 세상에 흘려보내는 사람. 그것이 나의 본모습임을 인정한다.

다만 너무 빨리 닳지 않도록, 조금 천천히 가면 되겠지. 오늘도 삶은 나에게 묻는다. 너는 이 넘치는 마음을 어떻게 살고 싶으냐고. 나는 아직 그 질문 속에 서서, 다음 길을 찾기 위해 기쁘게 신발 끈을 묶는다.


빡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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