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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르망 Nov 01. 2021

팀장님이 없는 한주를 보내는 방법

2021년 10월 22일의 기록

2020.9.13 / 퇴근길 / Sony a7r2 / Sony 55mm f1.8

이번 주, 팀장님이 업무 교육 참석차 부산으로 연수를 가셨고 나는 온전히 나만의 한주를 보냈다. '아무리 좋은 직장 상사라도 부재하는 직장 상사보다 좋을 수 없다'는 말을 실감하기도 했지만, 아니기도 했던 귀중한 일주일. 회사생활 7년 동안 처음 겪어보는 불편한 자유감을 느끼며 멍하니 한 주를 보냈다. 


팀장님이 없다고 해서 하던 일을 멈추고 월급만 축낼 순 없다. 팀장님이 없어도 나의 판단으로 진행할 수 있는 일이 분명히 있고 그런 일들을 차근차근해나갔다. 은행과의 간단한 업무협의나 업체 분석들은 본래 실무자가 수행하는 일이니 팀장님이 복귀하시는 다음 주 월요일, 최종 결재를 올리기 위해 열심히 업체 분석을 마치고 심사서를 작성했다. 바쁜 업무로 벼랑 끝까지 밀렸던,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던, 하지만 언젠가 해야만 했던 일들 또한 하나하나 처리했다. 평소 청소하지 않던 침대 밑, 냉장고 밑을 깨끗하게 청소할 때 느끼는 개운함을 느꼈다. 상쾌했다.



팀장님의 부재가 나에게 시간적 여유를 주는 것은 분명했다. 중요한 결정이 뒤로 밀리게 되면 내가 맡게 되는 업무의 양도 줄어들게 된다. 분명 팀장님이 복귀하시는 다음 주 월요일 밀린 업무들의 결재를 받느라 정신이 없겠지만, 다가올 폭풍이 두려워 날이 좋은 지금 이 순간, 빨래한 옷들을 말리는 것을 포기할 수는 없지 않을까. 


평소에 즐기지 못했던 잠깐의 휴식시간에 인터넷 PC로 몰래 기사를 읽기도 하고, 열심히 일하는 뒷자리 직원의 눈치를 보며 이미 완성해 놓은 업무 보고서를 모니터에 띄워놓고 심각하게 수정하는 척, 손을 턱에 괴며 이리저리 스크롤바를 내렸다 올렸다를 반복하기도 한다. 연락이 뜸했던 동기들과 메신저를 주고받기도 하고, 업무가 다른 동기의 푸념을 듣기도, 나의 푸념을 조금 과장해서 말해보기도 한다. 


급한 성격 탓에 평소에 업무를 미루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조금이라도 업무가 남아 있는 주말이 싫어 근무시간에는 업무를 수행하는데 온 정신을 집중하곤 한다. 팀장님이 없는 일주일을 지내고, 밀린 결재판들을 보면서 월요일, 화요일은 조금 답답함을 느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모두 했지만, 팀장님의 사인이 들어가지 않은 결재란이 너무 찜찜하게 느껴졌다. '저 공란에 팀장님의 사인이 얼른 들어갔으면 좋겠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었던지, 일주일이 꺾이는 수요일 오후 즈음 7년의 직장생활 동안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기분 좋은 게으름을 느끼게 되었다. 중요 결재서류가 내 책상 왼쪽에 모니터 받침대 높이만큼 쌓여 있지만, 이런 여유를 즐기는 한 주도 나쁘지만은 않은 것 같다는 느낌.  


팀장님은 업무를 빨리 처리하려는 나의 모습을 보고 '박 과장, 왜 이렇게 빨리 업무처리를 하려고 하나. 조금 쉬엄쉬엄해. 오늘은 결재 올릴 생각 하지 마'하고 말씀하시곤 한다. 보통의 팀장님에게는 들을 수 없는 복에 겨운 말들이다. 칭찬과 우려 섞인 말들을 듣고도 나는 팀장님의 배려를 무시한 채 나의 만족을 위해 일했고, 거북목은 심해져만 갔다.


팀장님의 조언은 무시한 채 본인 만족을 위해 일했던 나에게 '조금 여유를 가져도 좋다'라는 메시지를 보내기 위해 현명하신 팀장님은 일주일 동안의 부재를 선택하셨나,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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