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르망 Nov 07. 2021

어머니가 돌아가신 친구

2021년 11월 7일의 기록

2021.7.8 / 제주 새별오름 / sony a7r2 / sony 55mm f1.8


10월 30일 저녁, 여느 때와 다름없이 시은이와 함께 안방에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시은이는 침대에 누워 듣지도 않는 유튜브 채널을 틀어 놓고 있었고, 나는 컴퓨터 책상 앞에 앉아 읽지도 않는 기업 분석 보고서를 모니터에 띄워 놓고 있었다. 


주말이면 특히 사람들로부터 연락이 오지 않아 갑자기 휴대폰에서 울리는 진동 소리가 너무 오랜만인 것처럼 느껴졌다. 시은이와 농담을 하며 휴대폰을 켰고, 휴대폰 상단 창을 손가락으로 아래로 내려 문자 내용을 확인했다.


"쫑구리 울 엄마가 돌아가셨어."


대학시절 유치했던 내 별명과 너무 괴리되는 무거운 내용이 문자에 담겨 있었다. 너무 황당하고 무서워 말이 나오지 않았다. 시은이에게 '큰일 났어'라고 말을 한 뒤, 뒷말을 잇지 못해 입안에서 맴도는 말을 한참 웅얼거렸다. 겨우 입 밖으로 친구의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말을 꺼냈고, 내 입으로 그 말을 꺼내니 현실을 직시할 수 있었다. 


대학시절부터 친하게 지냈던 친구의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조금 마음을 추스르고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평소에 앓으셨던 암으로 돌아가셨다는 친구의 말에 친구 부모님의 병환을 전혀 알지 못했던 내가 원망스러웠다. '어떻게 모를 수가 있었지'라는 자책감을 뒤로하고 다시 대화에 집중했다. 전화기 너머로 감정 섞인 슬픈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의 어떤 말도 위로가 되지 않을 거란 걸 직감했다. 슬픔의 무게가 너무 커 나의 가벼운 말 따위가 그 친구의 감정을 위로하지 못할 거라는 확신. 


감정을 잘 추스르고 있으라는 별 도움이 되지도 않는 말을 하고는 다시 멍하게 시은이를 바라보았다. 너무 놀라 어머니에게도 전화를 걸었다. 누군가에게 나의 놀람을 쏟아 내어야 조금은 괜찮아질 것만 같았기 때문에.


다음 날 잠에서 깨자마자 시은이와 함께 친구 어머니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날씨는 지나치게 화창했다. 덥지도 춥지도 않은 날씨였고, 갈색 옷으로 갈아입고 있는 초록색 나무들이 선선한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창원 장례식장에 도착해 친구를 마주했을 때 나도 친구도 생각보다 담담했다. 다만, 평소에 항상 진실되게 말 을 하고 감정을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친구가 그날만은 자신의 감정을 숨긴 채 의미 없는 농담을 주고받았다. 친구는 평소의 자신을 잠시 버리면서 슬픔을 누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친구가 문상객들을 맞이하느라 나는 친구와 긴 이야기는 나누지 못했다. 친구가 자리를 잠시 떠난 사이 나와 시은이는 장례식장 한가운데 앉아 따뜻한 밥과 된장국, 수육을 먹었다. '장례식장에서 나오는 수육은 항상 참 맛있어'라는 당연한 이야기들로만 대화를 채워갔다.  


식사를 마치고 한참을 앉아 있다 문상객의 행렬이 잠시 끊겼을 때 나는 친구에게 다가가 이제 집으로 가 보아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친구는 내가 가기 전 아버지에게 나를 소개했다. 


'아빠, 대학시절 젤 친했던 쫑구리 왔어. 대구에서 왔어.' 


친구 아버지를 처음 만나 뵙고 아버지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아버지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인상이 너무 좋으셨던 아버지는 내 손을 꼭 잡으시고는 와주어서 고맙다는 말씀을 몇 번이고 반복했다. 가슴에서 갑자기 슬픔이 올라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그저 눈빛으로만 위로의 감정을 전달하고 장례식장을 나왔다. 


아직은 30대 중반의 나이에 친구 부모님의 상을 경험하는 것이 참 일상적이지는 않다. 내가 경험하지 않은 것을 경험하게 된 친구를 진정으로 위로해주고 싶지만, 진정성이라는 것은 일부 경험에서부터 나오는 것이라 그것마다 쉽지 않다. 


일주일 뒤 친구에게서 연락이 와 10분 정도 통화를 했다. 수목장에 어머니를 모셨다는 말 외에는 어머니 이야기를 하지는 않았다. 우리는 일상 대화들을 이어나갔고, 그것이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친구와 통화를 끝낸 뒤 30분 정도가 지났을까. 친구가 평소와는 조금 다르게 대화를 이어나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항상 질문을 먼저 하던 친구였는데, 이번에는 질문을 받고만 있었던 것 같다. 아직은 무언가를 능동적으로 할 기력이 없었던 것 같다. 


친구에게 해주고 싶었던 말은 참 많지만, 낯간지러워지는 것을 싫어해 전하지 못한 말들이 참 많다. 한 가지 꼭 해주고 싶은 말은 '슬픔에서 아주 천천히 빠져나와 일상생활을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싶다'라는 것. 

매거진의 이전글 팀장님이 없는 한주를 보내는 방법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