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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르망 Oct 23. 2021

부모님을 만난 휴가날

2021년 9월 4일의 기록

2020.11.30 / 청도 부모님댁 / Sony a7r2 / Sony 55mm f1.8

한 달에 한 번 정도 휴가를 쓸 때면 휴가날마다 다르게 시간을 보낸다. 대부분 혼자 영화를 보거나, 평소보다 1시간 더 운동을 하거나, 앞산에 올라가거나, 이도 저도 하기 싫은 날이면 컴퓨터 게임을 조금 하다 낮잠을 청하곤 한다. 극도로 혼자 있는 시간을 즐기는 나는 직장을 다니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다 보니 휴가 때만이라도 온전히 나만의 시간을 보내려 노력하곤 한다. 평소의 나였다면 비 오는 오늘 같은 날 오전에 책을 조금 읽다가 이른 점심을 먹고 오후 5시까지 낮잠을 잤으리라. 


오늘은 홀로 휴가를 보내는 오랜 습관은 제쳐두고 부모님을 만나 시간을 보냈다. 휴가를 조금은 특별히 사용한 날이다.  


회사에 구일이를 데려다 준 뒤 신세계 백화점에 위치한 메가박스로 가서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을 보았다. 평소 마블 영화의 팬이기도 하였고 오전 시간을 나름 알차게 보내고 싶었기 때문에 '활동'이라고 할 만한 것이 뭐가 있을까 찾다 영화보기를 선택했다. 코로나가 발생한 이후 처음으로 영화관에 가니 영화관에서 끊임없이 울려퍼지는 커다란 소리에 적응하느라 시간이 조금 걸렸다. 소음이 대사가 되는 것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영화가 끝난 뒤 엄마에게 전화해 위치를 물었다. 평소 항상 미리미리 움직이시는 부모님이기에 벌써 8층에 와 계시면 어쩌나 걱정했지만, 다행히 지하주차장에서 주차하는 중이라고 했다. 바로 8층 식당가로 올라오라고 말을 한 뒤 점심식사를 할 밥집을 여러 군데 둘러보았다. '아버지 식성을 고려하면 한식을 먹어야 하고, 어머니 식성을 고려하면 파스타나 떡볶이를 먹어야 하는데 어디를 가면 좋을까'생각하며. 


내 고민을 비웃기라도 하듯 우리는 자연스럽고 뜬금없이 중국집으로 들어가 짜장면, 짬뽕을 먹었다. 아버지가 조금 밥을 급하게 먹는다 생각해 '조금 천천히 드세요 아버지'하고 한마디 건냈다. 아버지는 여느때와 다름 없이 너털웃음을 지으며 여전히 빨리드셨다. 어머니는 그 대화내용이 익숙하신지 약간의 미소를 보이시며 아무말 없이 드셨다. 

  

식사를 마치고 아버지는 중고서점이 있는 지하 1층으로 내려가시고, 나와 어머니는 5층 명품샵으로 향했다. 어머니의 때늦은 환갑선물을 살 예정이었다. 어머니가 미리 인테넛으로 보고 온 가방들을 몇 번 들어보고 가장 실용적이면서도 디자인이 예쁜 가방을 골랐다.


가장 마음에 들어하시는 가방이 가장 비싼 가방이라 어머니가 조금 주저하시는 것을 보고, '이왕 사는거 조금 비싸더라도 마음에 드는 걸 사야 오래 들고 후회도 안 할거야'라며 설득했다. 어머니는 내말에 설득이된건지, 누군가 그렇게 말해주기를 기다리시고 있으셨는지 모르겠지만 가장 비싼 그 가방을 사시고는 기분좋게 매장을 나오셨다. 


오늘 저녁 나에게 전화해 '집에서 가방을 보니 더 예쁘다' 농담을 건내시는 것을 보니 선물이 참 마음에 드셨던 것 같아 기분이 좋다. 가방을 사기 전 아버지 눈치를 조금 보시던 어머니는 아버지가 별 신경쓰시지 않으시는 걸 느끼시고는 더기분이 좋아지신 모양이다. 엄마를 보면 아직 소녀같으신 면이 있다. '사람은 나이가 들어 외모가 변하더라도 마음은 그대로다'라는 말이 항상 와 닿는 분이다.  


아버지는 본인의 역할을 대신해 내가 휴가날 어머니와 함께 선물을 골랐다는 사실이 미안하셨던지 구일이가 좋아하는 삼진어묵을 사 손에 들려주셨다. 참 미안한 것도 많으시지.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항상 감동받는 점은 자식인 나에게도 항상 사소한 것도 고마워하고, 나의 가끔씩의 효도를 당연하게 생각하시지 않는다는 점이다.   


부모님과 백화점 지하주차장에서 인사를 한 뒤 집으로 곧장 돌아와 옷을 갈아입고 신천에 조깅을 하러 나갔다. 보통 오전 7시에 5km 정도 조깅을 하지만 오늘은 오전에 비가내려 조깅을 하지 못했다. 오후 4시의 신천은 건강을 챙기시기 위해 걷고 있는 나이드신 분들로 가득차 있다. 나이드신 분들이 젊은 사람보다 '건강' 면에서는 항상 더 부지런하다.  


이렇게 휴가를 마무리하기 아쉬워 회사에서 제공해준 영어회화 수업을 들었다. 수업이 끝나고 집에 쌓여있는 음식물쓰레기, 분리수거한 쓰레기들을 들고 정리를 한 뒤 차에 시동을 걸었다. 구일이 퇴근시간에 맞춰 회사앞에 도착하기에 빠듯한 시간이었지만, 다행히 차가 막히지 않아 제시간에 도착할 수 있었다. 구일이와 함께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집에 도착해 퇴근길에 사온 빵을 간단히 먹었다. 그렇게 구일이와의 행복한 저녁으로 나의 짧은 휴가가 마무리되었다.  


신입사원 시절, 항상 여행이 휴가의 목적이었다. 나에게 휴가쓰는 날은 여행과는 날과 의미를 같이 했다. 시간이 지나 내 스케줄과 컨디션에 맞추어 휴가를 쓸 수 있을 정도의 연차가 되니 휴가를 쓰는 목적이 다양해지고 있다. 다양하다고는 하지만, 아직 '나 혼자만의 시간 가지기' '부모님 만나기' '구일이와 여행하기' 이 이상의 목적과 의미를 찾기는 힘들다. 


오늘은 부모님과 함께한 참 의미있는 휴가날이었다. 그 다음 휴가가 언제가 될 지 모르겠지만 나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기 위한 휴가를 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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