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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르망 Nov 21. 2021

직장인이 원하지 않는 휴가

2021년 11월 21일의 기록

2021.11.6 / 고성 글램핑장 / sony a7r2 / sony 55mm f1.8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유독 바쁜 한 주, 한 달을 보내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의도치 않게 일이 몰려서일 수도 있고, 상·하반기를 마무리하는 시기에 작성해야 할 보고서가 넘쳐나기 때문일 수도 있다. 이렇게 정신없이 바쁜 날들을 보내고 있을 때 개인적인 이유로 휴가를 꼭 써야만 하는 상황이 생기면 난감할 때가 많다. 누구 하나 휴가를 썼다고 나에게 눈치를 주는 것도 아닌데, 나 스스로 휴가가 반갑지 않은 아이러니한 상황. 


집안에 경조사가 있는 경우에는 굳이 휴가를 쓰지 않아도 된다. 경조사보다 일이 우선한다기보다, 주중에 있는 집안의 경조사는 주말로 미루거나 미루지 못하는 경조사라면 퇴근을 하고 챙기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다만, 부모님의 이사를 도와야 한다거나 어머니의 환갑맞이 여행을 가는 것, 출퇴근용 자동차가 고장이 나서 카센터에 들러야 하는 일이 생기면 아무리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하더라도 휴가를 쓸 수밖에 없다. 


특별히 바쁜 날들을 보내고 있지 않을 때 쓰는 휴가는 달콤하기만 하다. 특히 월요일에 쓰는 휴가는 끊을 수 없는 담배와도 같다. 휴가라고 특별히 늦잠을 잔다거나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여행을 가는 것도 아니지만, 출근할 때와 같이 아침 루틴을 끝낸 뒤 '출근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 이상한 우월감마저 스멀스멀 피어오른다. 아주 쉬운 문제로 받아쓰기 100점을 받고 세상 당당해하는 어린이가 된 것만 같다.  


이와는 반대로, 바쁜 와중에 휴가를 쓸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면 휴가 전날부터 마음이 무겁다. 휴가날 늦잠을 자서 몸은 개운한데, 머릿속으로는 회사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내일 출근을 해서 오전에 A 업무를 빨리 처리하고, B 업체에 전화를 한 뒤 C 업무를 끝내고, 야근을 하면서 D 업무를 처리하면 되겠지?'라며 올림픽 출전 선수들이나 할 법한 '머릿속 시뮬레이션 그려보기'를 감히 하고 있다. 


바쁠 때 쓰는 휴가는 진정한 휴가가 아니다. 일과 나의 삶을 완벽히 분리할 수 있는 조건이 갖추어졌을 때 휴가를 쓰고 싶지만, 직장을 다니다 보면 그것이 쉽게 허락되지 않음을 깨닫게 된다. 휴가날, 처리해야 할 일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의 집 앞까지 찾아와 문을 두드린다. 얼른 나를 처리해 달라고. 문을 열어주지 않고 일들을 문전박대하더라도 문 앞에 놓여 있는 일들이 신경 쓰일 수밖에 없다. 집에 들어오지는 못했지만,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일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바쁜 와중에 휴가를 써야만 할 때에는 스스로 다짐하고 또 다짐한다. 원치 않게 휴가를 쓰게 되었지만, 휴가를 쓰는 건 내 의지가 아니었을지언정 어떻게 보내는가는 나의 의지에 달려 있다고. 이왕 보내는 휴가, 일의 굴레에서 벗어나 휴가를 진정으로 즐기고 내일 출근했을 때 더 힘을 내 일을 하면 될 것이라고. 


무엇이든지 빨리빨리 처리해야 직성이 풀리는 나의 이 쓸데없이 한국적인 성격 때문에 이런 고민들이 생겨나는 것을 알고 있다. 직장생활을 7년 하면서 나는 나의 성격을 바꾸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성격을 바꿀 수 없다면, 하루쯤 '마음가짐' 정도는 바꿀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다만, 마음가짐을 바꾼다는 것 또한 수많은 연습이 필요함을 알고 있다. 직장인 7년 차, 아직까지 배울 것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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