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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르망 Dec 09. 2021

나는 젊은 꼰대다

2021년 12월 8일의 기록

2021.9.4 / 안동 / sony a7r2 / sony 55mm f1.8

직장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근무한다. 사람들이 가진 고유의 성향을 이분법적으로 나누는 것은 불가능하겠지만 큰 카테고리 안에서 특징 정도는 분류해 볼 수 있다.


내향적이거나 외형적이거나.

사생활을 공유하는 것을 좋아하거나 사생활을 극도로 드러내지 않거나.

회식을 좋아하거나 칼퇴를 좋아하거나.

야근을 싫어해 업무 시간에 최대한 집중해 업무를 처리하거나 야근을 즐기며 업무시간을 여유롭게 보내거나.

입으로 일하거나 페이퍼로 일하거나.

꼰대이거나 아니거나.


사실 꼰대라고 하는 것의 정의가 참 애매모호하다. 나무 위키는 '노인, 기성세대나 선생을 뜻하는 은어이자 비칭. 의미 그대로 나이를 떠나서 권위주의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조작범들을 비하하는 데 사용되는 단어이다'라고 정의한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기성세대의 규칙을 다른 사람에게 강요하는 사람이라고 얼추 정의해 볼 수 있다.


요즘 직장을 다니다 보면 꼰대의 정의가 조금 포괄적으로 확장된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이렇게 업무 처리하면 안 돼'라고 한 마디 한 직장 상사를 천하의 둘도 없는 꼰대로 치부하기도 하고, 회사 내에서 통용되는 보고서 작성 방법을 신입직원에게 가르쳐주면 '보고서 내용이 중요하지 글씨 폰트나 글자 간격을 왜 저렇게 따져대는 걸까'라는 미움 섞인 눈빛을 받기도 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꼰대로 낙인찍히기 싫은 선배 직장인들은 후배 직원들에게 질문을 하기가 두렵다. '주말에 뭐해?'는 사생활 침해이고, '여자 친구 있어?'는 심각한 사생활 침해다. 예전에는 관심이라고 잘 포장되었던 질문들이 그저 눈살 찌푸려지는 진상 호기심으로 변했다. 


직장인 8년 차인 나는 이제야 스스로가 젊은 꼰대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물론 후배들에게 무리한 것을 강요하거나, 사적인 질문을 하거나, 기존에 해왔던 방식이라는 단순한 이유로 부당한 업무처리를 강요하지는 않는다. 다만, 요즘 포괄적으로 확장된 '꼰대'라는 정의에 내가 분명 포함되겠다 라는 확신은 할 수 있다.




나의 꼰대력은 '나라면 저러지 않을 텐데'라는 생각으로부터 나온다. '나 때는 말이야'라는 생각을 속으로 참 자주 한다. '내가 A라는 업무를 맡았을 때는 a, b, c 업무를 모두 처리했었는데, 저 직원은 A 업무를 맡으면서 나에게 a, b 업무를 맡기고, c업무만 처리하려고 하는구나. 책임감이 없는 걸까?'라는 꼰대력 섞인 합리적인 추측.


이런 생각들이 몇 년치 쌓이고 쌓여 나는 젊은 꼰대가 되었다. 물론 나의 꼰대력이 직원들에게 드러나지는 않지만, 내적으로 나 스스로가 꼰대임을 분명하고 명확히 느낄 수 있다. 나도 회사생활에 모든 노력을 쏟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내가 하는 것만큼은 후배 직원들이 회사 업무에 집중을 했으면 좋겠다는 꼰대 마인드가 나의 근무시간과 비례해 점점 불어난다. 나 스스로 '내가 회사에서 쏟는 노력은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최소한의 노력'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런 마음이 커지는 것일 수도 있겠다. 

 

나도 신입직원 시절, 꼰대 때문에 참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었다. 술도 마시지 않는 나에게 술을 강요하는 꼰대부터 본인의 업무를 나에게 미루며 '업무는 많이 해봐야 는다'라며 사악한 미소를 짓던 꼰대까지. 신입직원들이 꼰대 철폐를 외쳐준 덕분에 그런 꼰대들의 영향력이 눈에 띄게 감소한 것은 참 좋은 현상이라 생각한다.


다만 안타까운 것은 회사 생활에서 꼭 필요한 규칙들을 '기성세대의 무쓸모 한 유물'이라 낙인찍어버리고, 규칙을 강요하는 것을 '꼰대'라고 치부해버리는 사례가 점점 많아진다는 것이다. '업무에 책임감을 가져'라는 말은 술에 절어서도 절대 입 밖에 꺼내서는 안 될 말이다. 책임감을 가진다는 것 자체가 고리타분하고 구시대적이라 여긴다.


새로운 직원들의 창의력이 조직에 활력이 되는 경우가 참 많다. 신입직원에게 경상적인 업무를 가르칠 때 '이렇게 하면 안 되나요?'라는 제안성 질문을 받는 경우가 종종 있다. 대부분은 업무 흐름을 잘 알지 못하는 신입직원들의 착각에서 비롯된 제안들이 많지만, 가끔씩 신입직원이 생각해낸 새로운 업무 처리 방법이 훨씬 효율적이라 놀란 적도 많다. 이런 경험이 쌓이다 보면 선배 직원들의 존재감이 작아지게 되고 후배 직원들의 '꼰대 철폐'의 외침이 더욱 커지게 된다.  


동료 직원들에게 책임감을 요구하고, 더 좋은 업무방법을 함께 찾아보자 권유하고, 일에 집중하지 않아 동료에게 피해를 주는 직원들에게 업무에 집중하라 한 마디 하는 것들이 꼰대로 여겨진다면, 나는 당당하게 젊은 꼰대가 될 것이다. 젊꼰으로 살아간다면 후배 직원들에게 사랑받기는 힘들겠지만 적어도 나 스스로에게 부끄럽지는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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