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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르망 Nov 28. 2021

아파야 성장한다

2021년 11월 26일의 기록 

2021.11.9 / 고성 바닷가 / sony a7r2 / sony 55mm f1.8

직장에서 일을 할 때, 내가 원하는 말만 들을 수는 없다. '이 정도로 일을 마무리 지었으면 칭찬을 들을 수 있겠어'라는 나의 생각은 해변가의 모래성처럼 한 번의 파도에 쉽게 무너져 내린다. 호기롭게 끝내 놓은 나의 일에는 '성의가 보이지 않는 결과물'이라는 낙인이 찍힐 수도 있고, '더 잘할 수 있었던 결과물'이라는 애매한 평가를 남겨놓을 수도 있다. 


직장이라는 곳에서는 나의 노력은 당연한 것이고 그 노력을 넘어 '잘함'과 '뛰어남'을 보여주어야 한다. 열심히 한다는 것만 보여주게 되면 '열심히는 하는데.. 결과물이 좋지 못한 직원'으로 낙인찍혀버린다. '열심히는 하는데'라는 수식 문장이 더욱 나를 비참하게 만든다. 차라리 열심히 하는 모습을 숨기기라도 할걸.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점이다. 부서 전체 실적에 대한 보고서를 제출하거나, 개인 실적을 취합하여 본점 부서에 보고 해야 하는 시즌이 찾아왔다. 나는 11월 말까지 제출해야 하는 하반기 개인 실적 보고서를 작성하는 중이었다. 보고서 주제인 'ESG경영'과 부합하는 업무를 부여받은 나에게 '잘만 쓰면 포상을 받을 수도 있겠다'라며 같은 부서에서 일하는 선배가 적극 권유해 작성하기 시작한 보고서였다. 


포상에 대한 큰 욕심이 없었고, 큰 기대도 없던 터라 보고서 작성에 동기부여가 되지 않았다. 그저 나를 추천해준 선배를 부끄럽게 하거나, 나 스스로가 부끄럽지 않은 보고서를 제출하면 그만이라는 마음이었다. '너무 콘텐츠가 없네'라는 생각을 하며 써 내려갔지만, 본점 부서에서 나름 몇 번의 보고서를 쓰고 문서를 시행해본 경험이 있어 '이 정도면 양식에 맞추어 잘 쓴 보고서가 나오겠어'라는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다. 아주 별 볼 일 없는 콘텐츠를 그럴듯하게 만드는 능력이 내게도 있다는 근거 없는 믿음.


보고서를 완벽히 완성하기 전, 선배의 요청으로 그 보고서를 선배에게 보여주었다. 완성하지 않은 보고서였지만 나름의 노력을 기울였다고 생각했기에 몇 가지 수정사항은 있을지언정 다음과 같은 반응이 나올 줄은 몰랐다. 


'이게 정말 최선으로 쓴 거야? 성의가 없어 보여'


나름의 노력으로 보고서를 썼다고 생각했기에 객관성을 꽉꽉 담은 선배의 말이 조금은 섭섭하게 느껴졌다. 물론 야근하면서까지 보고서를 작성하거나, 포상을 위해 누구보다 더 잘 써보아야지 하는 마음으로 작성을 한 것은 아니지만, '성의가 없어 보이는 보고서'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형편없는 보고서는 아니라고 생각했고, 선배의 평가가 한없이 냉정하게 느껴졌다.  


냉정한 말을 하시고는 '이것이 잘못되었고, 저것이 잘못되었고, 이 부분은 이렇게 고쳐보자' 하시며 하나하나 보고서의 잘못된 점을 짚어주셨다. 보고서 작성의 기초부터 가르쳐주시는 선배의 고마운 가르침이 그 당시에는 잘 들리지 않았다. 그저 나의 보고서가 지적받았다는 것에 감정적으로 상처를 받았고, 그 냉정한 평가 뒤 따라온 애정 어린 말들에 집중하기에는 나의 속이 너무 좁았다. 


그렇게 지적을 받은 뒤 조금의 상처를 가지고 퇴근을 했다. 저녁을 먹고, 하던 운동을 하고, 샤워를 하고, 조금은 개운해진 몸과 정신으로 직장에서 있었던 일들을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그 선배의 말 하나하나가 모두 옳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나름의 노력을 기울였다고 생각했지만 정말 '나름'까지였고, 모든 노력을 담지는 않았다. 선배가 말한 '성의 없다'라는 말에 상처 받은 것은 그것이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받아쓰기 문제 10개 중 5개를 맞춰놓고 '왜 100점 맞은 것처럼 칭찬해 주지 않는 거야'라고 불평하고 떼쓰는 초등학생과 별 다른 게 없었다. 


선배 덕분에 보고서 작성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포상을 받지 못하더라도, 선배에게 보고서 작성 방법을 배웠다는 것만으로도 나의 노력에 대한 보상을 받은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본인이 포상을 받는 것도 아닌데 나에게 하나하나 세세하게 '잘 읽히는 보고서 작성방법'에 대해 노하우를 전수해준 그 선배의 노고에 이 글로 감사를 표한다. 훗날 나도 선배처럼 나와 같이 건방진 생각을 하는 후배에게 조금은 따끔하지만 꼭 필요한 업무 노하우를 가르쳐줄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라본다.  


아픔은 순식간에 지나가지만, 그 아픔으로부터 배운 지식은 아픈 만큼 깊이 체득되어 훗날 내 직장생활의 훌륭한 자양분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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