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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르망 Jan 23. 2022

직장인이 퇴근을 기다리는 이유

2022.1.12일의 기록

   

2021.12.31 / 경주 / sony a7r2 / sony 55mm f1.8

직장인에게 하루 중 가장 기다려지는 순간이 언제인가 물어본다면, 대부분의 직장인들은 ‘퇴근하는 순간’이라고 답할 것이다. 나를 포함한 직장인들은 퇴근하는 그 짜릿한 순간을 위해 몽롱한 정신을 부여잡고 업무에 몰두한다. 20분, 아니 10분 정도라도 도로 위 지나다니는 차들과 사람들의 종종 발걸음을 바라보며 커피 한잔 하는 여유를 부리고 싶지만 ‘빨리 퇴근하고 싶다’라는 마음이 앞서 그럴 수도 없다. ‘집에 가면 쉴 수 있다’라는 달콤한 자기 최면과도 같은 믿음 하나로 키보드 자판을 열심히 두드리고, 키보드의 울림에 따라 작성되는 글씨를 기계적으로 바라보곤 한다. 말 그대로, 평범한 직장인에게 일에 몰두할 수 있는 최고의 동기부여 요소는 ‘빠른 퇴근’이다.     


직장인들이 퇴근을 기다리는 이유는 다양하다. 사랑하는 가족들이 빨리 보고 싶거나 집에서만 느낄 수 있는 따스한 온기에 몸을 맡기고 싶어서 일수도 있다. 퇴근 후 각종 취미생활을 즐기는 직장인들에게는 진정한 자아실현이 시작되는 소중한 시간이다. 빈틈없이 업무 하느라 심신이 지친 직장인들에게 퇴근시간은 흐트러짐이 허용되는 공간으로의 도피가 가능해지는 시간이라 의미 있다.

      

오후 5시 정도가 되면 해가 뉘엿뉘엿 기우는 모습에 항상 마음이 몽글몽글해진다. 창밖을 내려다보면 조금 이른 퇴근을 하는 차량들로 도로가 붐비고, 나도 얼른 저들에게 섞이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높은 빌딩 숲 사이 어렴풋이 비치는 노을을 볼 때면 ‘퇴근할 때가 다가왔구나’하는 생각에 일에 완벽히 집중을 할 수 없다. 흡사 파블로프의 개 실험처럼, 노을이 지는 모습을 보자마자 퇴근 후 무엇을 할지 행복한 상상을 하게 된다.

      

내가 퇴근을 기다리는 이유는 굉장히 단순하다. 퇴근길 차 안에서 구일이와 함께 저녁 메뉴를 고민하는 것, 집에 들어와 보일러를 틀고 옷을 정리하며 오늘 하루 재밌었던 일을 공유하는 것, 잘 보지도 않는 유튜브를 틀어 놓고 ‘맛있다, 맛있다’를 연발하며 맛있는 저녁을 먹는 것, 하루의 스트레스를 날려버리기 위해 1시간 동안 땀 흘리며 운동하는 것,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며 하루의 피로를 날리는 것, 잘 정리된 침대로 돌아와 구일이와 함께 나란히 누워 어제 읽다 남은 책을 읽는 것, 이 모든 일들이 기다려지기 때문이다. 반복되는 퇴근 후 소소한 일상 하나하나가 너무 소중하고 기다려진다.     


가끔 업무가 몰릴 때면 퇴근 시간을 미룰 수밖에 없는 상황이 만들어지곤 한다. 어쩔 수 없이 미루어진 퇴근시간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꾸역꾸역 업무를 처리하다 보면, 오지 않을 것 같은 퇴근시간을 맞이하게 된다. 가끔은 이런 늦어진 퇴근시간을 맞이하는 것도 나쁘진 않다. 퇴근이 늦어진 만큼 업무를 말끔히 끝내게 되고, 업무를 완벽히 끝냈다는 안도감과 함께 퇴근시간을 기점으로 회사생활과 사생활을 완전히 분리할 수 있기 때문에. 

     

직장인에게 퇴근은 참 여러 의미를 지니지만, 평범한 직장인에게 퇴근 시간은 공통된 한 가지 의미를 지닌다. 진정한 나의 모습을 드러낼 수 있는 기점. 평범한 직장인인 나에게는 더욱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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