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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르망 Mar 11. 2022

공부하는 직장인

2022년 3월 9일의 기록

2022.3.9 / 우리 집 / sony a7r2 / 55mm f1.8


중학교, 고등학교를 다닐 때 공부는 하기 싫어도 억지로 해야 하는 것이었다. 공부를 하다 보니 그래도 공부하는 것이 그렇게 싫지는 않아 그런대로 공부를 즐기며 지내왔다. 중고등학교 시절 학생의 존재감은 성적 순위로 증명이 된다. 특히 공부 말고는 딱히 잘하는 것 없었던 나에게는 더욱 그러했다. 공부를 정말 특출 나게 잘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럭저럭 선생님과 반 친구들의 칭찬을 듣는 재미에 공부를 해 왔다. 공부 자체는 싫지 않았지만 무언가를 알아가는 재미를 깨달을 수는 없었다.


그렇게 6년의 시간이 흐르고 나름 원하는 대학에 합격하게 되었다. 입학과 동시에 공부는 나와는 상관없는 것이 되었다. 물론 학점관리는 열심히 해 학점은 잘 받았지만, 공부는 시험기간 3주, 딱 그때뿐이었다. 대학생, 특히 대학 저학년은 응당 그래야만 하는 줄만 알았다. 공부보다는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 게 좋았고 도서관에 앉아있는 것보다는 여행을 다니는 것이 좋았다. 공부는 시험기간에만 하는 것이고 나머지 시간에 책을 펼쳐보지도 않았다. 그렇게 시간을 흘려보내다 4학년이 되고 취준생이 되었다.


취준생의 신분으로 1년 반을 지내는 것이 쉽지는 않았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참 감사한 시기이기도 하다. 취준생 시절 매일매일 공부를 하다 보니 공부에서 약간의 재미를 찾는 지경에 이르렀고 내 인생의 공부 습관이 바뀌게 된 시기이다. 까마득히 보이지 않는 긴 시간의 터널을 빠져나오며 '취업이 되더라도 경제학 공부는 계속 이어나가야겠다.'라고 생각했다. 여러 번의 불합격 통지서를 받은 뒤, 결국 내가 원하는 곳에 취업이 되었고 나의 생각은 정말 쉽게 바뀌었다. 진부한 표현이지만, 화장실 들어올 때와 나올 때의 마음은 다른 법이다.


처음 직장을 가지고 적응기를 거치니 퇴근 후 오롯이 나만 가질 수 있는 그 시간이 너무 소중했다. 구일이와 데이트를 하고, 영화를 보고, 여행을 다니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나름 워라밸이 좋고 안정적인 직장에서 근무를 하다 보니 나만의 시간을 많이 가질 수 있었다. 처음 몇 년 간은 이런 여유가 좋았고 행복했지만 여유의 시간이 차곡차곡 쌓이다 보니 취준생 시절 생긴 공부 관성이 스멀스멀 기어 나오기 시작했다. 나만의 시간이 많아지고, 그 시간들을 낮잠과 카페 투어로 흘려보낼수록 아무것도 하지 않고 발전하지 않는다는 기분은 커져만 갔다. 여유 시간을 스스로 버리고 흘려보내고 있는 것만 같은 기분. 취준생 시절 1시간, 1분 단위로 쪼개어 시간을 쓰던 기억이 남아 있어서 그렇게 느끼는 것 같다. 치열했던 중고등 학창 시절, 취준생 시절의 시간과 안정되고 여유로운 지금의 시간이 같을 수 없음에도 몇 년이 지난 지금도 그 시절의 습관을 버리지 못한 것이다.


직장을 다니며 돈을 벌다 보니 자연스레 돈을 투자하는데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매너리즘에 빠지기 전에 무언가 공부를 시작해보자 해서 투자 공부를 시작했다. 처음 투자 공부를 할 때 취준생 시절 본격적으로 경제공부를 하던 것처럼 설렘으로 가득했다. 투자서를 한 권 한 권 읽어나갈 때마다 투자 현인들의 삶에 한 발짝 가까이 다가가고 있는 것 같은 느낌. 하지만 공부를 하다 보니 공부해야만 하는 범위가 점점 넓어지게 되고 벅참을 느끼게 되었다. 자본시장은 경제 정치 사회적 이슈와 밀접히 연결되어 있다 보니 진정한 투자를 공부하기 위해서는 투자서를 읽는 것뿐만 아니라 미시 거시경제 및 경제 정치 이슈 공부도 필수적임을 깨닫게 된 것이다.


생각했던 것보다 내가 하고 있는 공부의 양이 많아지게 되면 자연스레 흥미를 잃게 되고 동기에 불을 지피기 어려워진다. 설상가상으로 공부를 해도 누군가 나의 머릿속에서 공부 내용을 지우고 있는 것만 같은 느낌이 계속해서 들면 책과 펜을 던지듯 놓고 안락한 이불속으로 몸을 던지게 된다. 물론 아직 30대 중반의 나이라 기억력이 현저히 감퇴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음을 안다. 나의 부족한 공부량을 탓하는 것보다 따라주지 않는 머리를 탓하는 게 공부를 차일피일 미루는 근사한 핑계가 되는 것을 아는 것이다.


예전부터, 아주 어릴 적부터 나는 나에 대한 한 가지 편견을 가지고 있다. '두루두루 잘은 하는데, 어느 한 가지 특출 나게 잘하지 못하는 사람'으로 스스로를 생각하고 한계에 가두어 버리는 것이 습관화되어있다. 사진을 곧 잘 찍지만 전문가 수준은 되지 못하고, 공부를 나름 잘 하지만 1등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사람. 농구를 잘 하지만 주전 선수는 되지 못하고, 달리기를 잘하지만 마라톤 대회에 나갈 실력은 되지 않는 사람. 이런 편견이 나의 요즘 나에게 더욱 깊숙이 침투해 버린 것 같아 어느 무언가를 시작하려고 해도 으쌰 으쌰 하기가 쉽지 않다. 무언가를 시작하더라도 용두사미가 되어버릴 초라한 미래가 머릿속에서 그려지는 것 같다. 공부의 즐거움을 지속해 나가기 위해서는 이런 편견을 깨 부수어야 함을 알지만, 아는 것과 생각하고 실천하는 것은 왜 이리 다른 건지.  


'적당히 잘해도 괜찮아.'라는 말을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반복하지만 나를 설득시키는 게 생각처럼 쉽지 않다. 타인에 대해 가진 편견보다 나에 대해 가지고 있는 편견을 극복하는 것이 훨씬 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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