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같은 일의 반복, 직장동료와의 단조로운 사담, 예상되는 내일, 그리고 변하지 않을 것만 같은 1년 뒤의 직장에서의 내 모습. 섣불리 일반화할 수는 없겠지만 대부분의 직장인들은 연차가 쌓이다 보면 모든 것이 단조롭게 느껴지기 마련이다. 대학생활에 대한 환상이 짧게는 1년, 길게는 2,3년 뒤에 무참히 깨어지듯이 직장 생활도 마찬가지다. 직장 동료들과 으쌰 으쌰 하며 자기 능력을 마음껏 펼치고, 값진 노동의 대가로 받은 월급으로 워라밸을 즐기며 인생을 설계해나가는 재미는 직장에서 지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서서히 자취를 감추게 된다. 모든 직장인들은 소위 '매너리즘'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시기를 반드시 거친다. 직장생활 8년 차, 나는 그 시기를 겪고 있다.
매너리즘은 '항상 틀에 박힌 일정한 방식이나 태도를 취함으로써 신선미와 독창성을 잃는 일'이라 사전적으로 정의한다.직장인들 뿐만 아니라 일상의 단조로움에 지친 사람이라면 누구나 매너리즘을 겪을 수 있다. 새로움을 발견하지 못한 채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직장생활 8년 차에 매너리즘을 겪고 있다고 하면 주변의 반응은 '그래도 지금까지 잘 버티고 있었네'라는 반응이다. '내가 어떻게 나름대로 긴 시간 동안 매너리즘을 겪지 않고 의욕적으로 직장을 다녔나' 생각해 보면 그동안은 나에 대한 보상을 나 스스로 잘해주었던 것 같다. 그 보상은 대부분 해외여행이라는 것으로부터 받았다.
예전부터 해외여행이라는 걸 참 좋아했다. 돈 없던 대학시절 하루 세끼 식빵 한 줄과 소시지 한 줄을 먹으며 두 달간 유럽 배낭여행을 경험했을 때부터였던 것 같다. 중간중간 일을 하며 모자란 여행 경비를 충당해야 했지만 돈이 부족해도 마음만은 자유로웠다.
직장을 가진 뒤에도 그때의 기억이 너무 좋아 구일이와 매년 적어도 3번 정도는 꾸준히 해외여행을 갔었다. 낯선 도시의 거리를 거닐며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 새로운 사람들과 만나는 것. 일상을 잠시 놓아두고 아주 잠깐이지만 새로운 삶을 살아내는 것으로부터 매너리즘을 극복할 수 있었다. 이 해외여행을 가능하게 해준 직장에 대한 고마움이 너무 큰 나머지 매너리즘이란 부정적인 감정이 들어올 틈이 없었다. 6개월 전 비행기 티켓 하나를 끊어 놓고 그날만을 기다리며 의욕적으로 살아왔었다.
코로나19로 해외로 가는 하늘길이 모두 막혀 지난 2년간 해외여행을 가지 못했다. 2021년은 취업한 2014년 이후 해외여행을 가지 못했던 최초의 해이다. 최근 격리 방침이 바뀌어 해외여행을 가더라도 자가격리가 면제되었다. 큰 마음을 먹으면 해외여행을 갈 수 있지만 공공기관에서 근무하면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은 보수적으로 행동하게 된다. 지금의 시국에 해외여행을 벌써 다녀왔다는 특이한 직원이 되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만 한다. 원하는 것을 얻고 남들과 다른 사람이 되는 것보다는 스스로를 옥죄는 평범한 사람이 되는 것을 선택하게 된다.
내가 항상 매너리즘을 극복했던 방법인 해외여행을 하지 못한다면 어찌 이 매너리즘을 극복할 수 있을까, 생각을 해 보았다. 마냥 이렇게 물먹은 빨래처럼 축 쳐져 있을 수는 없다. 지난해에 그랬던 것처럼 글쓰기 클래스에 등록해 다양한 사람들과 생각을 나누어볼까, 사고 싶었던 카메라 렌즈를 스스로에게 선물해볼까, 등등 여러 가지를 생각해 보았지만 딱히 답이 나오질 않는다. 지금의 생활을 유지한 채 무언가를 새롭게 한다고 해도 어딘가에 에 갇힌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을 것만 같다.
매너리즘의 정의를 다시 한번 들여다보면, 단조로운 삶을 산다고 해서 필연적으로 느껴야만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능동적인 자세로 적극적으로 매너리즘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한다면 충분히 극복 가능한 것으로 느껴진다. "일정한 방식이나 태도를 취하는 건" 나 자신이다. 매번 같은 일을 반복하더라도 "일정한 방식이나 태도를 취하지" 않는다면 매너리즘을 극복할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현실적으로 그것이 쉽지 않다는 게 문제다. 문제집 뒷 페이지에 있는 정답을 보고 '1번 문제의 정답이 3번'이라는 것을 알고 있더라도 왜 3번이 정답인지 풀이과정이 이해되지 않으면 그 문제를 진정으로 푼 것은 아니다.
어머니에게 가끔 이런 매너리즘에 대해 슬쩍슬쩍 티를 낸 적이 있다. 나 힘들다고, 알아봐 달라는 식으로 풀이 죽은 목소리를 장착하고 '매일이 똑같지 뭐.'라며 세상 다 산 것 같은 태도를 보이면 항상 어머니는 '배부른 소리 하고 있네'라고 일갈한다. 맞다. 배부른 소리. 다만, 타인이 볼 때 배부르게 누워있는 게 세상 편해 보이더라도 나 자신이 배부르게 누워있는 게 싫다면 더 나아지기 위해 무언가를 해야만 하는 것에는 변함이 없다. 나는 배부르게 누워있으면 행복해하는 사람이 아니다. 밖에 나가서 몸을 움직이고 햇살을 느끼며 조깅을 해야 행복감을 느끼는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