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 해 12월에 접어들면 '올 한 해는 무엇을 이루었나' 생각하며 짧은 과거를 스스로 곱씹어보곤 한다. 자기 계발 중독자(?)로서 무언가를 이루어야만 한 해를 잘 살았다, 스스로 생각하는 습관이 생겨버려서.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관심도 없지만, 오직 자기만족을 위한 어설프고 안쓰럽기까지 한 자체 결산.
올 한 해는 시완이의, 시완이를 위한, 시완이에 의한 한해였다. 올 한 해 모든 에너지를 한 곳에 모아 육아로 집중했다고 해서 직장생활을 허투루 한 것은 아니다. 물론, 주변 동료들의 생각도 들어봐야 하겠지만(?) 스스로는 참 힘닿는 데까지는 노력해 왔던 것 같다. 밸런스를 무너뜨리지 않게 애쓰면서도 마음은 항상 시완이가 있는 아늑한 집에 있었다,라고 할까. 다만 달라진 점이라면2023년 1월 27일, 시완이가 태어나고서부터는 직장과 일상생활에서의 행동 하나하나가 모두 시완이와 직간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느낌으로 살아간다는 것.
건강해져야 하는 이유도, 열심히 일하는 이유도, 매일 운동을 나가는 이유도, 재테크에 유독 관심을 쏟는 이유도 모두 시완이의 안녕을 위해서 인 것만 같이. 물론 쉬는 시간 책을 한 페이지 더 읽는다고 해서, 러닝을 평소보다 100m 더 뛴다고 해서 시완이가 더 나은 삶을 살아가는 것은 아닐 테지만 나의 힘듦과 괜한 노력이 시완이의 삶에 '긍정'이 될 것만 같은 막연한 기분.
2023년은 그렇게 붕 뜬 감정에 실려 하루하루를 살아왔다. 사실 주도적으로 살았다기보다는 살아졌다는 표현이 더 어울리겠다. 열심히, 아주 열심히 하루하루를 살았음에도, 그저 아주 행복하게 살아져 왔던 2023년이다.
올해는 연말에 대한특별한 감정이 들지 않는다. 연말마다 흔하게 느끼던 과거에 대한 아쉬움과 쓸쓸함마저 없는 아주아주 담백한 연말. 아마 후회와 회상을 할 만큼 여유 있는 삶을 살고 있지 않아 그래서 일수도 있고, 힘듦과 행복이 공존하는, 그런 양가의 삶을 살고 있어서 그럴 수도 있겠다. 삶을 돌아보는 게 취미인 나 조차도 왜 이리 담담한지, 잘은 모르겠다.
평범한 직장인은 말 그대로 참으로 평범하고 지루한 연말을 보내는 중이다. 그저 담담하게 무뎌져버린 연말. 그 흔한 연말 모임이나 연말 회식 없이 가족과 함께, 때로는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며. 추운 날씨와 형형색색의 크리스마스트리들을 보며 괜히 기분이 몽글해지던 연말이 지나가고 그저 살아내어 지는 연말이 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