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사랑이 말했다.
근데 쫌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혹시 다른 날은 안 되나요?”
시스템 작업은 한 달에 두 번, 둘째 주와 넷째 주 화요일에 있다. 반영은 20시 이후. 다운타임을 최소화하기 위해 사용자들이 퇴근하고 시작한다. 보통 단기 과제는 한 달이면 나 혼자서도 개발할 수 있고, 그보다 공수가 크면 리더에게 올려 태스크를 나눈다. 가장 어려운 건 모든 R&R과 프로세스를 무시하고 들어오는 고객의 긴급 요청이다. 여기에 올해 KPI까지 걸려 있다면 우리 리더가 와도, 리더의 리더가 와도 큰 소리 낼 수 없다.
달력 위에 작은 ♥bluu 하트♥를 꼼꼼하게 칠해둔, 절대 바뀌지 않을 이 아이의 생일을 손끝으로 만지작거리는 걸 그만두고 사심을 애사심으로 둔갑시켰다. 일단 내 몫의 개발을 먼저 끝냈다. 일정을 바꾸기 위해 여기저기 물어보느라 평소보다 목소리가 조금 커졌지만, 여전히 그쪽 부장님 목소리가 더 컸다. 카리나 생일 파티에 관심이 없는 다른 머글들은 다 그날이 좋댄다. 맞죠. 그날이 좋은 날은 맞죠. 맞는데.. 흑흑, 회사가 자꾸 내게서 지금 가장 예쁜 봄을 뺏어간다.
너는 지민이랑 천생연분인가 보다. 걔가 바쁘니까 너도 바쁜 거 봐. 작업 전날까지 미련을 버리지 못하다 친구에게 결국 한 소리 들었다. 그래도 이렇게 찍소리도 못 하고 올봄을 보내는 건 억울하다. 우리 지민이, 아니 에스파 카리나의 생일 한참 전에 열린 카리나 생일 파티처럼, 올해는 봄이 일찍 찾아왔으니 오늘부터 봄이 끝나기 전까지 테스트 데이터의 날짜 필드를 몽땅 2000-04-11로 밀어 넣고, 점심에 파스쿠찌 갔다가 퇴근길에 크러시나 마셔야겠다.
티켓팅도 실패하고 생일 파티도 못 가고 주말 출근에 야근까지. 이번 봄은 완전 결함투성이다. 작년보다 맘도 품도 공수를 더 들였는데도 왜 다 플랜대로 풀리지 않는 걸까. 투덜투덜 혼잣말로 쓴 덕질 로그가 점점 쌓여간다. 나 혼자 백그라운드에서 몰래 시작한 마음의 소리가 언제 이렇게 밖으로 새어 나올 만큼 커져버렸을까. 아무래도 맘이 급했더니 코딩을 잘못했나 보다. 덕후로도 개발자로도 실격이다.
사무실이나 방구석에선 아무리 크게 외쳐도 올해 스물여섯 살이 된, 해가 갈수록 더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어린 나의 최애에게 직접 생일 축하 인사를 건네는 건 어렵다. 언제나처럼 내 목소리는 무대까지 온전히 닿지 못한다. 내가 매일 듣는 목소리를 가진 이 아이는 아마 평생 내 목소리를 모를 테지. 치이- 나는 너 때문에 얼마나 바빴는데. 심술이 나니까 오늘은 여기서라도 내 사랑을 제일 큰 소리로 말해야겠다.
생일 축하해, 카리나!
아니, 지민아 생일 축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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