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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gnes Park Feb 03. 2018

나는 그림 그리는 엄마

앞서 이야기했듯이 나는 임신 사실을 알자마자 임신 12주 차에 휴직을 들어왔다.

휴직 2년을 꽉 채우고 복직을 할 것인지 말 것인지 결정하기로 했다.

복직을 하지 않더라도 휴직 2년을 채우려고 했던 이유는 단지 회사를 향한 소심한 복수였다.


아이들이 태어나고 시간이 점점 흐를수록 복직의 날은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때 당시 복직하지 말고 전업맘으로 아이들을 육아하며 지내라는 시부모님의 의견과 그래도 외벌이보다는 맞벌이가 더 좋다는 친정부모님의 의견이 팽팽하게 대립되고 있었다.

나는 사실 시부모님의 의견에 더 마음이 움직였었다.


내가 원해서 선택한 직장이 아닌 부모님의 희망으로 결정한 직장이었고 자유롭게 근무하던 예전 직장과는 다르게 너무나 빡빡하고 여직원들의 텃새에 너무 힘들기만 했었다.

영업도 했어야 해서 매월 실적 여부에 따라 혼도 나고 했었기도 했다.

정말 영업은 나랑 맞지 않는다 싶다.


아무튼 시부모님 의견에 조금 더 마음이 움직였을쯤 친정에 있던 아들을 데려올 계획도 있었기 때문에 어린이집을 알아봤을 때다.

그 당시 어린이집은 이미 정원이 다 차있던 상태라 당장 다닐 수 있던 곳은 없었다.

시부모님이 아이들을 돌볼 수 없는 상황이었고 그동안 아들을 친정에 맡겼기 때문에 더 이상 친정의 도움을 받기도 힘든 상황이었다.


어린이집 대기를 걸어두고 온 그날 회사에서 복직 여부 전화가 왔을 때 이때다 싶었다.

돌보아줄 어르신도 계시지 않고 어린이집도 입소가 불가능해 복직이 힘들겠다 말했다.

회사에서도 쌍둥이에 근무하면서 한 번의 사산과 한 번의 유산을 겪은 내가 쉽게 복직할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는지 바로 알겠다는 답변을 했다.


그렇게 나는 입사 10년 만에 퇴사를 했다.

둥이들 덕분에...


그러고 한 달 뒤 우리는 친정에 있던 아들을 데리고 드디어 네 가족이 모두 모여 이사를 했다.


이사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인천 어린이집 아동학대가 뉴스에 보도되기 시작하면서 원생들이 빠졌는지 원하던 어린이집에 자리가 쉽게 생겨 입학할 수 있게 되었다.


아이들이 어린이집을 다니기 시작하면서 전업맘이 된 나는 아이들이 집에 없는 그 황금 같은 시간을 어떤 식으로 보내야 할지 몰랐다.

집에서 지내자니 몸이 너무 근질 거리고 나가보자니 어디로 가서 무얼 해야 할지 몰랐다.

일은 죽어도 다시 시작하기 싫었고 남은 돈만 야금야금 깨 먹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러다가 집에 잠들어 있던 노트북이 눈에 띄었다.

전공이 애니메이션이었기 때문에 일러스트, 포토샵 프로그램은 전문가만큼은 아니지만 사용할 수 있었다.

또 은행원으로 입사 전까지 웹디자이너로도 일을 했었다.

은행원으로 일을 하면서도 아이들을 키우면서도 간간히 포토샵이나 일러스트로 그림도 그리기도 했었다.


무슨 자신감이었는지 그림이라도 그려보자는 생각을 하자마자 노트북을 들고 집에서 가까운 커피전문점으로 갔다.


남들이 보면 정말 허름한 노트북을 들고 카페에 나와할 일 없이 시간만 때우는 아줌마처럼 보였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날 이후 거의 매일 노트북을 들고나갔다.

어떤 날은 집에서 그림을 그리고 어떤 날은 카페에서 그리고 그렇게 한 장씩 그리다가 블로그에 그림을 소개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색감이 좋지도 그림이 훌륭하지도 않았지만 그냥 소소한 취미 생활처럼 그날 그날 그린 그림을 블로그에 소개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이곳저곳 내 그림을 소개할 수 있는 곳을 기웃기웃거리다 핸드폰 배경화면을 제공해주는 한 곳과 인연이 되어 그곳에 작가로 배경화면을 그려서 제공하기 시작했다.


물론 무보수로 그림만 그려서 내는 거였다.

처음 이 일을 시작했을 때 나는 내 그림을 다른 사람들에게 소개하는 것에 의미를 두었지만 친정엄마와 남편은 무보수로 하루 몇 시간을 컴퓨터에 앉아 그림을 그려내는 내가 이해가 되지 않는듯했다.


그러던 중 메일 한통을 받게 되는데..

삼성테마스토어팀에서 블로그의 그림을 봤다고 자기들과 함께 테마스토어 작가로 활동해 보지 않겠냐는 권유를 받았다.

너무 놀랍기도 하고 생전 해본 적 없던 일이라 이틀을 고민했던 것 같다.

제일 큰 고민은 과연 내가 이런 큰 회사에서 원하는 디자인을 만들어 낼 수 있을까?

또 하나는 육아와 병행하며 내가 다시 워킹맘으로 잘 해낼 수 있을까? 였다.

하지만 나는 두려움보다는 너무나 하고 싶을 만큼 욕심이 점점 커지고 있었고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것도 그 도전만으로 의미가 있는 것이라고 스스로 응원하며 테마스토어 작가로 활동하고자 한다는 회신을 했다.


메일 회신 후 이런저런 작가 등록 절차까지 마치고 첫 작품을 내고서 드디어 나는 전직 은행원에서 전업맘에서 지금은 프리랜서로 활동 중인 그림 그리는 엄마가 되었다.




여담이지만..


내가 초등학교 4학년..

그때는 국민학교로 불리던 그때 4학년 때..

방과 후 특활 수업으로 컴퓨터 수업을 들었었다.

MS-DOS로 프로그램을 짜던 수업이었는데, 그때 처음 손가락으로 자판기를 두드리며 나는 나중에 어른이 되면 컴퓨터로 일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생각했다.

그쯤 집에서 자택 근무하는 프리랜서인 디자이너가 컴퓨터로 일하는 장면을 드라마로 봤었는데 그 장면을 보며 나도 크면 저렇게 컴퓨터로 자유롭게 일을 하는 직업을 가져야겠다 생각했다.


그 바람처럼 나는 웹디자이너로 사회생활을 시작했고 은행에서 은행 시스템이 가득한 컴퓨터를 만지며 일을 했고 지금 정말 꿈꾸던 자유롭게 컴퓨터로 일하는 사람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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