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를 좋아하지 않았다. 대학입시와 언론고시 때문에 논술 연습은 했지만, 글을 쓰려면 엉덩이를 붙이고 앉기까지 엄청난 시간이 걸렸다. 미루고 미루고 미루다가 마지못해 쓰곤 했다. 각잡고 쓰면 아쉽지 않은 결과물을 냈지만, 그래도 글쓰기는 나에게 즐거운 일이 아니었다.
그런 내가 글쓰기의 진짜 힘을 깨우친 것은 엄마를 잃고 버텨내던 시간, 매일 엄마에게 편지를 쓰면서다.
엄마 없는 현실을 인정하기 싫었고 자꾸 회피만 했다. 하루에도 몇 번씩 통화하고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제일 먼저 찾던 엄마가 이 세상에 없었다. 어떤 결심이 있어서도 아니고 그냥 엄마와의 대화가 너무 간절해 두꺼운 노트를 산 뒤 매일 엄마에게 하고 싶은 말을 그곳에 적었다.
처음엔 ‘보고싶다’ ‘엄마가 없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 ‘엄마 없이 어떻게 살아가냐’ 등 그동안 맺힌 말들을 쏟아냈다. 그러다 점점 예전처럼 엄마와 대화하듯 내 얘기를 써내려갔다. 하루 동안 있었던 일, 엄마 생각이 난 순간, 가족들 소식 같은 것. 엄마가 그냥 좀 멀리, 다른 지역에 있는 것처럼.
그렇게 하루하루 편지를 쓰며 상실감을 극복하고 있었다. 이상하게 조금씩 살아졌다. 마음이 편해진 건 아니었지만, 그저 살아가졌다. 6개월 정도 썼나? 언젠가부턴 글로 쓰지 않아도 마음속으로 엄마와 대화하는 게 자연스러워졌다.
생각해보니 꿈에서 엄마가 제주도 어느 가정집에서 편안한 일상을 보내는 모습을 본 뒤부터였던 것 같다. 나와 떨어져있지만, 우리집이 아니지만, 엄마가 어디선가 행복하게 잘 지내는 걸 꿈에서 확인하곤 안심을 했나보다.
소중한 사람을 잃으면 내 힘듦보다 그 사람을 더 걱정하게 된다. 그의 인생에 연민이 생기고 안타까운 마음이 앞서 생전 그의 행복했던 시간들을 망각한다. 나 역시 엄마가 고생한 것만 생각나고, 엄마한테 더 잘해주지 못한 자책이 커졌다.
지나고 보니 엄마도 엄마 삶을 충실히 살아냈고, 우리로 인해 웃고 즐겼던 많은 시간들이 있었다. 이런 깨달음은 엄마에게 편지를 쓰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얻었던 것 같다. 글을 쓰면서 엄마의 삶을 온전히 바라볼 수 있게 됐고, 그제서야 엄마 인생을 더 값지게 만들어주고 싶어 열심히 살기로 했다.
글쓰기는 내게 치유였다. 말로는 토해낼 수 없던 감정들을 글로 풀어내면서 서서히 정리됐다. 엄마에게 쓴 그 편지들은 단순한 그리움의 표현이 아니었다. 상실의 아픔을 받아들이고, 엄마의 삶을 재조명하며, 나 자신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과정이었다.
그제서야 알았다. 글쓰기는 억지로 짜내는 기술이 아니라 마음을 정리하고 생각을 선명하게 만드는 도구라는 것을. 누군가에게 보이기 위한 글이 아니라 나 자신과 대화하는 글이야말로 진짜 글쓰기의 힘이라는 것을.
이후로 글쓰기에 대한 인식이 달라졌다. 미루고 피하는 일이 아닌, 혼란을 가라앉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 됐다. 글을 쓰면 흐릿한 생각은 또렷해지고 뒤엉킨 감정은 차분히 정리된다. 해결은 아니지만, 견딜 수 있는 상태로 만들어준다.
지금도 복잡한 일이 생기면 다시 노트를 편다. 엄마에게 편지를 쓰던 그때처럼 내 안의 말을 꺼내 적는다. 글은 늘 답을 주진 않지만 어디서부터 다시 시작할지는 알게 해준다. 그래서 지금도 쓴다. 내가 글쓰기의 힘을 느낀 그 시점을 인지하고 기록하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