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신문사 기자로 17년을 일했다. 20대와 30대엔 직장이 곧 안정이라고 믿었다. 정규직이라는 지위, 성실히 일하면 오르는 연차, 그리고 회사가 제공하는 각종 복지 혜택이 안전망처럼 나를 감쌀 것이라고 생각했다.
40대가 되고 보니 그 기대는 허상이었다. 내가 속한 집단에는 늘 가족이 전제돼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 구조에 속하지 않는 40대 1인가구다.
회사의 복지는 겉으로 보기엔 다양했다. 자녀 학자금 지원, 배우자·부모의 의료비와 경조사 지원, 가족 건강검진 프로그램까지. 그 항목들을 가만히 뜯어보면 공통점이 있다. 모두가 ‘가족 단위’를 전제로 설계된 제도다.
나는 부모님을 모두 떠나보냈고, 동생은 이미 가정을 꾸렸다. 내게는 자녀도 배우자도 없다. 결국 조직이 자랑하는 대부분의 복지 제도는 나와 무관했다. 일은 남들만큼 했지만, 누릴 수 있는 혜택은 극히 제한적이었다. 회사에서 제공하는 각종 제도가 문 앞까지 차려진 잔칫상이라면 나는 초대받지 못한 손님인 것이다.
40대 1인가구에 회사 복지는 존재하지 않는 것과 다름없었다. 괜히 외롭다는 게 아니라 정말로 받을 게 없었다.
문제는 회사만이 아니다. 사회적 지원체계 속에서도 40대 1인가구는 애매한 위치에 놓였다. 청년 정책은 만 39세까지만 지원하고, 노인 복지는 아직 먼 얘기였다. 지방자치단체에서 운영하는 1인가구 정책도 주로 20~30대 청년을 대상으로 설계돼 있다.
생계, 주거, 건강, 노후 준비 모두 스스로 감당해야 하는 구조다. 하지만 정부나 지자체, 기업이 내놓는 정책 어디에도 40대 1인가구의 자리는 없다. 복지의 사각지대가 아니라 아예 ‘투명인간’에 가깝다.
소득으로 보면 중위권, 지출은 철저히 개인 중심, 책임은 가족 있는 사람 못지않게 짊어지고 산다. 그런데도 혜택은 찾아보기 어렵다. 결국 40대 1인가구는 복지 체계 안에서 ‘중간층의 그림자’처럼 살아가고 있다.
결국 나는 복지라는 이름 아래 놓인 구조 자체를 다시 보기 시작했다. 돌이켜보면 직장은 나에게 ‘보장’이 아니라 ‘조건의 묶음’이었다.
20대와 30대 젊은 시절, 나는 직장이 주는 안정에 기대어 살았다. 그러나 40대가 되자 계산이 냉정해졌다. 남들이 누리는 복지를 나는 실제로 누리고 있는가? 대답은 ‘아니오’였다.
커리어 20년. 더 쌓을 경력이 필요하진 않았다. 이제는 내가 가진 것을 어떻게 써야 할지, 어디에 투자해야 할지를 고민할 때였다. 40대는 경력을 ‘쌓는 시기’가 아닌 ‘쓰는 시기’라고 판단했다.
안정이라고 믿었던 직장은 결국 체감할 수 없는 복지와 형식적인 혜택만을 내세우고 있었다. 조직에 남아봤자 얻을 게 없다는 현실 인식이 오히려 퇴사를 더 명확히 정당화했다.
회사를 떠난 지 1년이 지나도 아쉬움은 없다. 내가 잃은 것은 형식적 지위뿐, 실질적으로 못 누리던 복지나 혜택은 애초에 내 것이 아니었으니. 반대로 얻은 것은 크다. 내 시간이 생겼고, 내 일에 대한 주도권이 분명해졌다.
물론 40대 1인가구에 사회적 안전망은 여전히 부족하다. 건강, 주거, 노후 등 불안 요소는 개인이 모두 해결해야 한다. 그 현실을 조직에 의존해봤자 해결되지 않는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안다. 나는 회사 복지에 기대지 않고 살아가는 훈련을 이미 해왔지 않나.
2025년 현재, 40대 1인가구는 한국 사회에서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전체 가구 중 1인가구 비중은 36%를 넘어섰고, 그 안에서 40대의 존재감도 커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 정책, 기업 복지, 사회적 인식은 여전히 가족 중심에 머물러 있다. 40대 1인가구가 조직을 떠난 사례는 개인의 선택이자 경험이지만, 동시에 한국 사회 구조가 던져준 결과이기도 하다.
나는 기자 시절 습관처럼 질문들을 기록해둔다. “왜 40대 1인가구는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다뤄지는가?” 그리고 “언제까지 가족단위 중심의 복지 체계를 유지할 것인가?”. 이는 한국 사회가 풀어야 할 중요한 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