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 이후의 여유로운 삶을 위해 어떤 일을 하면 좋을지 한참 이것저것 알아보고 공부를 시작하려던 시점, 다시 언론계로 돌아갔다.
실업급여를 받으려면 구직활동이 필수라, 증명을 위해 입사지원한 곳에 합격을 해버렸다. 다수 매체로부터 들어온 추천은 마다했는데, 막상 면접까지 거쳐 경력공채로 합격하니 갈등을 할 수밖에 없었다.
면접 때 만난 국장·부장들 모두 인상이 좋았고, 내 얘기를 흥미롭게 들어주며 많은 질문을 해 기분이 좋았다. 이후 대표와 1대 1 면접. 1시간 넘게 대화를 했다. 좋은 말만 한 건 아니지만, 내 장점을 잘 파악하셨다. 연차가 높아 애매하다고 하시면서도 나를 활용할 방안을 구상하고 계셨다.
합격을 직감하고 며칠 동안 고민을 했다. 다시 조직 안에 들어가면 내 사업을 준비할 기간이 짧아질 것이고, 어쩌면 일이 좋아 그렇게 60세까지 지낼지도 모르니 머릿속이 복잡했다. 결국 합격 연락이 왔다. 고민은 마지막 순간까지 이어졌다.
나는 어떤 예기치 않은 상황에 맞닥뜨려 선택의 기로에 섰을 때, 그것이 내게 온 기회일지도 모른다 싶어 기대를 한다. 기자로서 원 없이 일했다고 생각했는데 또 그 기회를 잡고 싶었다. 2~3년만 더 해보고 50세가 되기 전 2년 정도 준비기간을 거쳐 내 사업을 안정화하겠다는 명분으로 다시 기자가 됐다.
회사에 다녀도 재테크 공부와 글쓰기만은 꾸준히 하겠다고 다짐했는데, 역시나 나는 일을 하면 그것 외엔 신경을 못 쓴다. 바뀌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기자 일을 또 한건 아주 잘한 선택이었다.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의 얘기(회사·일·조직·생각 등)를 글로 정리하는 게 즐겁고 하루하루가 의미있게 채워졌다. 이전과 다른 영역, 새로운 출입처를 담당하면서 취재 범위가 넓어진 것도 좋았다. 다양한 인사이트를 얻어, 나이가 들어도 시들지 않는 느낌이었다.
정신없이 그렇게 3년 가까이 지나가버렸다. 스트레스 안 받고 안정적으로 일했기에 맘 같아선 정년까지 업을 유지하고 싶었다. 그러나 중년을 지나 노년이 됐을 때 홀로 꼿꼿하게 버텨내기엔 불안 요소가 있었다.
회사 월급으로 생활하는 덴 부족함이 없지만, 모을 수 있는 돈에 한계가 있어 재테크로 자산을 불리기 쉽지 않다. 게다가 노화로 건강은 점점 나빠질 테고, 노련함은 있을지언정 업무 생산성이 더뎌질 게 뻔한데 안주하면 안됐다.
회사에 붙어있기 위해 여느 부장·국장들처럼 자신의 목소리도 내지 못하고 그저 “네 네”, 부당하고 불합리한지 알면서도 아랫사람들에게 지시하고 강요하는 미래가 그려졌다. 지금 윗자리를 버티고 있는 그들도 필드를 뛸 땐 분명 똘똘하고 정의로운 기자였을 것이다.
언론계는 생각보다 소통이 안 되는 조직이다. 기자 출신인 장강명 작가가 홧김에 퇴사한 것도 결국 부장과 타협점을 잡지 못해서였다. 알고 보면 부장에게도 결정권은 크지 않다. 국장조차 대표의 뜻에 반하는 의견을 내지 못한다. 하물며 대표가 기자 출신이라면 어떻겠나. 직위가 높아질수록 애사심의 척도는 순응에 수렴한다.
혹여 무능해보일까봐 뭐라도 하는 척하려고 바쁜 기자들에게 비효율적인 업무를 지시하고 생색내는 데스크도 많다. 협찬·광고 성과를 위해 서로 이간질하고 정치질을 일삼는 부장·국장 역시 다수 겪었다.
리더의 마인드와 역량에 따라 조직의 모습은 천차만별이다. 귀를 열어 팀원들의 얘기를 충분히 듣고 일부라도 받아들이는 부장, 때론 방패막이가 돼 본인 선에서 정리해주는 부장도 만나봤다. 하지만 이는 아주 드문 케이스고, 결국 그런 분들은 미운털이 박혀 회사를 떠나곤 했다.
직장인들은 대부분 소통의 벽에 막혀 답답해도 참고, 동료·선후배들과 그 상황을 비판하며 넘기는 게 일상이다. 언제부턴가 그런 행위가 지겨워졌다. 조직원으로서 수명도 10여년 남짓한데, 허울 좋지만 힘없는 리더로 50대를 지낸 뒤 정년을 맞는 게 내게 이로울까? 현실을 자각했다.
연봉이 높지 않아도 일이 좋고 그로 인한 자부심이 컸기에 미련이 뚝뚝 흘렀지만, 아쉬움을 애써 거뒀다. 말도 안 되는 지시에 예스맨이 돼야 한다면 기자의 정체성이 퇴색돼 지켜야 할 이유가 없다.
특정 신문사의 특수성이 아니기 때문에 이직을 고려하지 않은 채 퇴사를 결정했다. 다시 ‘남 좋은 일 아닌 나 좋은 일’로 삶의 보람도 돈도 같이 좇겠다는 도전에 나섰다. 17년 넘게 이름보다 더 많이 불리던 ‘박기자’를 잠시 내려놓는다.
퇴사 후 3개월 정도 놀며 쉬며 여행도 다니고 맘 편히 지냈다. 그리고 부동산 공부와 투자 등으로 나름 바쁜 몇 개월을 보낸 후 사업을 구체화하는 단계에 있다. 기자를 버리는 것은 아니다. 조직 안에서의 기자가 아니라도 경험과 노하우를 살려 취재하고 글쓰고 나누는 일을 계속 할 계획이다.
쉰(오십)이 되기 전에 서서히 준비해서 탄탄한 사업구조를 만들어 놓아야만 모든 것이 가능해진다. 조바심내지 않고 공부하면서 인고의 시간을 버티고 부지런히 실행하다 보면 바뀔 것이다.
조직생활을 체질처럼 여겼던 40대 중반의 여자가 혼자 덩그러니 새로운 도전을 해나가는 여정이 누군가에겐 안쓰러워 보일 것이다. 안주하던 삶을 벗어나니 완전 새로운 세상이다. 모르는 것, 낯설고 어려운 것 투성이다. ‘더 나이들어서 자의가 아닌 타의로 이런 세상을 마주했다면 얼마나 당황했을까’ 아찔하기만 하다.
지난하겠지만 하나하나 습득하고 적응하는 일상을 기록하면서 ‘박기자가 바뀌는 과정’을 공유하려고 한다. 인생을 알 만한 나이임에도 또래보다 어설프고 부족함이 많다. 중년도 성장지향형 인간으로 거듭날 수 있다. 당장은 우당탕할지라도 나잇값, 경험값 하는 중년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