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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신영 Feb 09. 2019

이만하면 충분해.

남편과 오랜만의 점심데이트

오랜만에 남편이랑 둘이 외식을 했다.

애들은 배가 안고프고, 우린 배가 고프고, 결정적으로 애들을 다 데리고 나가서 먹이면서 밥을 먹고싶지 않았다. 사람이 많아도 쓱쓱 걸어갈 수 있고,

두 사람 자리만 있어도 먹을 수 있고,

매워도 짜도 마음대로 메뉴를 고를 수 있고,

밥 먹는 동안 내 밥만 쳐다보고, 내가 원하는 만큼 먹고싶었다.

그래서 애들에게 주의사항을 주고 집 가까운 백화점에 밥을 먹으러 갔다. 생각보다 애들이 없다고 특별히 즐길 수 있는 메뉴는 없었다. 아이들에게 빵을 먹이지 않으려는 생각으로부터 자유롭다는 정도였다.

그런데, 결론적으로, 남편과 오랜만에 둘이 먹는 점심은 그저 그랬다. 망설이다 싱크대 위에 꺼내놓은 떡국 끓여서 먹어버릴 것을.....


이제는 둘만 있다고 해서, 그간 하고싶었는데 못했던 둘만의 이야기가 있는 것이 아니었다. 질문을 던져도 상대의 대답을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고, 나의 생각과 다른 대답을 하거나, 내 뜻에 반대한다고 해도 그렇게 화가 나거나 충격적이지 않다. 예상 가능한 많은 이야기다 보니, 난 남편의 이야기에 예전처럼 귀를 기울이지 않을 것이고, 남편 역시 나의 이야기에 그럴 것이다. 우린 서로를 존중하고 신경쓰는 부부이기는 하지만, 이야기를 자꾸 나누고싶은 사이가 아니기도 했다.

조금 더 함께 늙으면 서로에 대한 연민이  생기겠지. 지금 우리 나이에는 아직 약간 애매한가?


결국 특별한 이야기나 다툼은 없었지만, 우린 대단한 즐거움이나 여유를 느끼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마음 한 구석이 약간은 허전했다.


원래 부부가 그런거지. 이럴 때가 가장 평화로운거지, 서로가 다름을 인정하고, 서로에게 지나친 기대를 하지 않으며, 괜한 말로 상처주거나 부담을 주지 않아서 매우 안정적이지만 큰 재미는 없는 것.

이제 우리의 이야기는 아이들이 있어야 풍요롭다. 아이들은 자라기만 해도 기특하고, 아이들의 사소한 말과 행동은 우리에게는 큰 재미거리이다. 아이들에게 고민거리가 생긴 경우, 우린 마음을 모아 협력하며, 같이 기뻐하고, 같이 슬프하고, 함께 행복해한다. 우린 안정적이고 행복한 가족이다.

젊었을 때 같은 설레임이 그리울 때가 가끔 있다. 그래서 많은 아줌마들이 사랑 드라마를 보고 대신 설레여 하는 거겠지? 그런 설레임이 사라지는 것이 한 편으로는 섭섭한 거겠지?


그래도 나는 잘 살고 있다.

세상에는 맛있는 것이 아주 많은데,

먹고싶은 것을 먹을 수 있는 정도의 여유가 있고,

원하면 함께 나가서 먹을 수 있는 남편이 있고,

그런 우리의 시간을 이해해주는 아이들이 있다.

오늘 점심 시간에 조용했던 내가 신경쓰여 외출했다가 돌아오면서 내가 좋아하는 감자튀김을 사온 남편.

이만하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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