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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 스테파노 Sep 22. 2024

'반드시 읽어야 하는 책'이라는 것이 있을까요?

독서는 자랑보다 흔적을 마음에 새기는 일

이 글은 수년 전 어느 플랫폼에서 한 고등학생이 독서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으며 상담 요청한 것에 대한 답글로 썼습니다. 쓰고 나니 글쓰기에 필수적인 책 읽기에 대한 일반적인 고민들이 있어 나누어 보려 합니다.


독서 논쟁이 있기도 하고, 주변에 전문 서평인부터 비평가, 그리고 소중한 독후감을 나누어 주는 분들이 있어서 이 글은 한참 묵혀 놓았답니다. 자칫 그분들의 고귀한 사유와 값진 생각들에 딴지를 거는 글처럼 보일까 걱정도 됩니다. 그래도 끝까지 읽어 주신다면 이해 주시리라 근거 미약히 믿으며, 이 연재의 문체와 달리 공손히 올려 봅니다.



책은 '완독'이 목표일까?


http://naver.me/5RRj1CEE

책은 반드시 읽어야 하지만,
반드시 읽어야 하는 책은 없습니다.

-이동진 평론가 <어쩌다 어른>-


살다 보니까, 어떤 사람의 본업보다 주변의 일이 관심에 드는 법이 꽤나 있습니다. 영화 평론가 이동진 씨도 그러한 의미로 다가오는데요. 조선일보 문화부의 영화 담당 기자였을 때의 그의 간결한 리뷰가 참 좋았지만, 요즘 그의 '영화'관련 글이나 유튜브, 방송의 멘트는 스킵하는 중입니다. 사실 저랑 좀 안 맞습니다. 그래도 그의 한 가지 '독서'에 대한 태도와 습관은 늘 참고하고 있답니다.


위의 영상은 2017년 tvN의 <어쩌다 어른>에서 책 읽기'에 대한 강연 중 한 장면입니다. 관련 영상들이 나누어져 있으니 참조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이 강연에서 재미있고 실질적인 질문과 반문이 진행됩니다. <총, 균, 쇠>같이 어려운 책을 읽고자 시작했지만 50페이지를 넘기지 못한다는 질문이 있었습니다. 이에 이동진 평론가가 반대 질문을 합니다. 지인이 '그 책 말고, <위대한 개츠비> 같은 것 읽어야 해. 읽어 봤어?'라고 말한대면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라는 반문이었습니다.

어떡하지?

고민이 되지요.

1) 읽던 것을 마무리하고 새 책을 본다
2) 포기할지 말지는 모르겠지만 새 책도 시작한다 3) 그냥 과감히 어려운 책을 접고 새 책을 든다.

이 중에 선택은 '각자의 몫'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저에게 물으신다면 강연 중 조언을 해 준 방법을 선택할 것 같습니다.

'진도가 나가지 않으면 과감히 접어라'


책은 꼭 읽기를 바라는 바이지만, '반드시 읽어야만 하는 책'은 없습니다.


책에 미안할 필요 없습니다. 그냥 연이 아닌 것이지요. 그리고 책과 출판사는 구입만으로 감사할지도 모릅니다. 책은 당신의 고민을   없으니 눈치 보지 마세요. 그다음이 주위의 눈치지요. 가족ㆍ친구들에게 눈에 뜨였거나 자랑 아닌 광고 정도 했는데, 숙제 검사하듯 물어 댑니다. ' 읽었어?', '언제 읽을래?' 그럴 때는 솔직한 선언 '솔밍아웃' 하면 됩니다. 어려워, 취향이 아니야, 문장이   읽혀, 생각했던 내용이 아니야, 글자가 작아, 폰트가 맘에  들어 , 그럴듯하지도 않은 이유라도 거들어 선언하면 됩니다.

운동과 같아요


자랑보다는 몰래하는 책 읽기가 성공한다


글을 읽는 것은 운동하는 것과 같다고 생각해요. 해야 한다는 것은 잘 알겠는데, 막상 하려니 어디부터 해야 하나 싶고, 시작은 했는데 지속하기엔 핑계가 백만 가지 기다리고 있고, 하는 척 하기엔 금방 탄로 나기 십상이니까요. 그래서 독서를 할 때 '몰래'하라고 추천드립니다. '자랑'의 반대 개념이지요.


남들이 물어도 '비밀'이라고 가르쳐 주지 마세요. 다 읽은 후에 밝히면 됩니다. 서평이나 책을 추천해 주며 말이죠. 이렇게 하면 자존감도 챙기고 자신만의 계획과 루틴에 집중하기 쉬어집니다. 개인적 경험으로 금연과 금주도 이런 식으로 성공했습니다. '나만의 비밀 프로젝트'로 말이죠. 스스로에게만 엄격하면 됩니다.


물론 서평을 업으로 하시는 분들께 드리는 딴지는 아닙니다. 최근 SNS에 다독, 속독과 정독, 심독의 논란이 서로의 인신공격성 비아냥으로 맺어지는 모습을 보고 씁쓸했답니다. 엘리트 코스 환경에서 터득한 독서의 논리를 정답인양 말하는 것도 무리가 있지만, 그 메신저가 주류적 직업군에 있다는 이유로 독서 밖의 이야기로 비아냥 받을 일도 아니라 생각됩니다. 이렇듯 내 착장과 서재를 타인에게 드러 내놓을 때는 불필요한 논쟁을 감수해야 될 때가 있습니다. 책 읽기도 힘든데, 피곤하지요.


본론으로 돌아가 독서의 다음 고민은 책의 장르예요. 독서의 진도가 안 나가는 경우는 두 가지일 것입니다. 내용이 이해가 안 되거나, 더럽게 재미없거나. 전자의 경우는 '방법'으로 해결되고, 후자의 경우는 타인들, 특히 지인들의 일반화된 평가를 정답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뻔뻔함'으로 가능해요. 다들 그렇다고 재미있다고 옳다고 하는 것들이 '대부분' 그럴 수 있지만, '모두' 그럴 수는 없으니까요. '방법'은 "재미있을 수밖에 없는 책"부터 시작하면 됩니다. 어떤? 혹시 만화책? 네 딩동댕.


만화책으로 한글을 독학했습니다. 대식구 막내가 살아 있는지만 확인하면 되는 시절, 한글 공부는 사치였으니까요. 마침 셋방 아래에 자리 잡은 만화가게 덕에 저는 한글을 배웠고, 지금도 만화 참 좋아합니다. 다음 단계로 글자가 많아 보이는 것으로 넘어가자면 '역사책'을 추천합니다. 그렇다고 토인비니 카니 채은식이니 어려운 것 말고, tvN의 연재를 엮은 <벌거벗은 세계사>, 그리고 최근 개정판이 나온 유시민 작가의 <거꾸로 읽는 세계사> 추천합니다. 재미도 있고 어렵지 않은 데다가 짧은 챕터 구성으로 나누어 읽기도 편합니다. 거꾸로 읽어도 되는 책들이지요.

재미난 '이야기'부터

그다음은 '이야기를 따라가는 연습'이 필요하니 '소설'이 좋겠네요. 다만, 짧다고 "단편"을 집어 들면 낭패를 볼 수도 있습니다. 특히 요즘 작가들은 이야기보다 튀는 맛에 치중하니 오히려 힘들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고전은 역사를 기본으로 알아야 하기에 일단 스킵합니다. '추리소설', '서스펜스 미스터리 장르'를 권합니다. 일단 재미있고 인간의 말초적 호기심을 자극하니 쉽게 집중이 됩니다.


일본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들을 추천합니다. 이 작가의 소설은 <용의자 X의 헌신>,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기도의 막이 내릴 때>등 영화화도 많이 된 작품이라 수월하고 속도감도 있습니다. 한국 작가는 정유정, 김영하 작가의 이야기들도 비슷한 줄기에 있습니다.

게이고, 김영하, 정우정

이 정도까지 읽으면 다음은 '관심사', '추천작', '트렌드'로 결정하면 됩니다. 다만, 장르에 따라 읽는 방법도 달리 해 보시길 추천드립니다. 앞선 쉬운 역사서는 '틈나는 대로, any time, any where로 하면 좋고, 소설은 '한 번에 주욱'이라는 계획이 유효합니다. 주말에 날을 잡고, 티브이와 인터넷을 잠시 밀치고, 책과 누가 이기나 씨름하는 것이지요. 그렇게 책의 종류마다 다르게 하는 것은 운동과 유사합니다. 키우고 싶은 운동 능력에 따라, 유산소, 근력, 원포인트, 스트레칭을 하듯, 독서ㆍ읽는 근육도 다양한 자극이 필요합니다.



독서를 다 한 다음에 '흔적'을 남기기


마지막으로 다 읽고 나면, '흔적'을 남겨 보세요. 읽은 책의 보관 장소를 달리하는 법부터 독서 완료 리스트를 업데이트하거나, 간단한 기록과 서평을 남기는 것까지 '읽은 티'를 자신에게 내는 것이지요. 서평도 잘 쓰려고 하지 마시고, 처음에는 마음에 드는 구절과 페이지, 그다음은 줄거리나 내용 요약, 그러고 나서 감상평 식으로 넓혀 가면 됩니다. 어렵지 않아요. 단숨에 하려니 급해지는 것뿐이지요. 5년의 계획으로 차근히 해 보세요. 지금 서른이라면 마흔이 되면 '책 박사'가 되어 있을지도 모릅니다. '마흔'이면 책 읽기를 시작하기에도 참 좋은 나이이니까요.

독서 카드

솔직히 '활자 중독'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지만, 있다면 그 범주에 들지 않을까 싶습니다. 성장 배경 반, 사회생활환경 반의 영향으로 무언가 읽어 댔습니다. 어떤 분처럼 1년에 800권을 읽어낼 능력은 없지만, 활자의 종류 상관없이 읽어 대었습니다. 하다못해 모든 제품들의 매뉴얼을 꼼꼼히 읽습니다. 패션 잡지에 숨어 있는 활자들을 발굴하듯 읽습니다. 그 부작용으로 화장실에 읽을거리가 없으면 배변 활동이 불가한 강박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러시아문학을 전공하며 <전쟁과 평화>를 사흘 만에 읽어 내고 인물 관계도를 그리는 리포트도 내어 보았지요. 검색도, 타이핑도 없었던 그 시절의 독서는 막무가내였을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제법 빠르고 많이 읽었고, 쓰는 속도도 남다르게 키워갔습니다. 덕분에 IT와 비즈니스가 접목된 컨설팅과 사업계획을 하면서 많은 레퍼런스를 읽어 낼 힘을 얻었고, 그 힘으로 밥 먹고 살아갔습니다.


넘치면 좋지 않다는 것을 반 백 살이 되어서야 알게 되었어요. '반드시' 읽어 내야 하는 책 따위는 없습니다. 그리고 '다 읽어낼 필요'에 얽매이지 않아도 됩니다. 교과서도 '다 읽으면 좋다'이지, 다 읽어 낼 필요는 없지요. 물론 점수는 각자의 용기에 맡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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