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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 스테파노 Sep 15. 2024

글을 쓴다는 것은 굉장한 일

글쓰기는 그냥 재미있는 일

이 노래, 다 아실 겁니다.

“텔레비전에 내가 나왔으면 정말 좋겠네,
정말 좋겠네.”

텔레비전에 나오면 뭐가 좋을까요?
유명해지겠죠. 그러나 그것만은 아닙니다.
텔레비전에는 우리가 하고 싶었으나 하지 못했던 것들을 하는 이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연기를 하고,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춥니다.
(중략)
슬슬 화가 납니다.
연기가 저게 뭐냐, 발연기다, 노래도 못하는 게 무슨 가수냐, 댄스가 아니라 에어로빅이다. 이런 말을 하면서 채널을 돌립니다.

우리 마음속의 시기심은
우리가 사악해서가 아니라
우리 내면의 어린 예술가가
마음 저 깊은 곳에 갇혀 있기 때문에
생겨난 것입니다.

(김영하 산문집 <말하다> 74쪽)


보다-말하다-읽다’ 삼부작 중 두번째로 선보이는 산문집 『말하다』


글을 쓴다는 것은 굉장히 강력한 의미를 삶에 준다. 좀처럼 글쓰기 힘든 삶의 이랑들 틈에서 일상을 보내면서 '글쓰기'를 다시 깊게 생각하게 되었다. 그 공간에서 작은 트러블도 이유가 되었지만, 보상이 뒤따르는 글쓰기의 공간에서 '어떤 글'을 써야 하는지에 대한, 답이 쉽게 나오지 않는 고민이 있었다. 그러던 중 김영하 작가의 말이 눈에 띄었다. 우리들 마음에는 '어리숙한 비평가'보다 '어린 예술가'를 품고 사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특히 글을 공개적으로 써내리는 플랫폼에서는 특히.

글쓰기 플랫폼에서 보상이 적립되고, 현금화가 되는 장치가 마련되면서 많은 분들의 생각이 눈에 들어왔었다. 멋대로 줄여 정리하기는 건방스럽지만, 많은 생각들이 글의 '방향'에 대한 고민들 같았다. 자신의 이야기, 삶의 고찰 같은 개인적이고 말랑하고 공감되는 글쓰기가 제대로 된 보상을 받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경계와 그런 생각으로 글을 써내기가 주저스럽다는 이야기들이었다. 타당한 고민이고 주저함이라 공감한다.


균형이 어려워요

​​

"보상이 달린 글쓰기"는 글의 깊이, 무게, 길이, 재미보다 '방향'에 신경을 쓰곤 했었다. 글쓰기 플랫폼을 제공하는 운영 주체들은 공공사업자도 사회 사업자도 연구 실험자도 아닌, '기업인'들이기 때문이다. 공모나 공지에 들어 있는 수많은 '지향하는 비전'과 '평가 범위'에 대한 힌트는 잘 숨어 있었다. 시험의 출제 경향과 시험 범위, 사실 문제까지 알려 준다. 바로 'alignment-정렬', 즉 플랫폼의 비즈니스의 지향점에 방향을 맞추는 일이었다. 뉴스를 큐레이팅하며, 오리지널 포스트에 답글을 큐레이션으로 달고, '새로운 공론장', '대안 언론의 구축'이라는 지향에 충실했었다. 솔직히 쉽지는 않은 작업이었다. 내적 보상과 외적 보상의 갈등도 일렁거렸다.


글값에 대한 글을 쓰고 나서, 생각이 많았다. 주제넘은 자의적 해석으로 선을 넘은 것은 아닌지, 각종 글쓰기 플랫폼의 설립ㆍ운영자의 의도를 곡해해서 날 선 비판을 한 것은 아닌지, 아니면, 보상심리 때문에 유치한 칭얼거림이 탄로 난 것은 아닌지. 특히, 글쓰기와 자발적 공론 형성의 동기부여를 저해한 것은 아닌지 걱정이 찾아들곤 했다.


플랫폼에서 거리를 두자 대신 다른 고민이 시작되었다. '나의 이야기'들을 올려 보기 시작했다. '사회적 글쓰기'보다 '개인적 글쓰기'를 해 보았더니, 사용자들의 반응이 많았다. 그래서 양가적인 마음이 들었다. 내가 원하는 '사회적 글쓰기'인가, 아니면 참여자들이 더 수월하게 공감하는 '나의 이야기'인가에 대한 고민이다. 요일을 나누어 어느 날엔 딱딱하고 날 서 있는 박 스테파노 씨가 되었다가, 다른 날에는 푸근하고 듬성듬성 편한 스테파노 아저씨가 되어볼까? 하는 얕은 생각들 말이다.

어느 글쓰기 플랫폼의 카피


솔직히 아직 결심은 서지 않았다. 그런데, '사회적인 글감' '나의 이야기' 풀어내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공론과 이슈의 이해가 '아카데믹'하거나 '저널리스틱'하기만 하라는 법은 없으니까. 좋은 인사이트와 방법론으로 보고서, 학술지, 분석 기사 같은 글들은 쓰시는 분들이 차고도 넘치는 듯하다. 고민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나의 이야기' 시대의 고민과 조응해  수월하게 다가서고, 관심도 많이 받는 그런 욕심을 품어 본다.

많은 밑글들을 잠시 내려놓았다. 사회적으로 도발적인 글을 위해 자료도 많이 찾아 놓았었는데 말이다. 그저 잠시 멈추고 있다. 속마음 한편에는 '관심 많이 끄는 글을 써야지'라는 계산기가 요란을 떨지만, 돈을 벌기 위해 글을 쓰기보다는, 글을 쓰니 돈 걱정이 조금 덜어지는 일상의 글쟁이가 되기를 희망해 본다. '나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는데, 청자와 독자들이 글을 덮고 나서, '시대정신'과 '이슈와 공론'을 자연스럽게 떠 올리는 글. 그런 글을 쓰고 싶다.

글을 쓴다는 것은 '굉장한 일'이다. 아직 첫 문장이 힘들고, 글의 소재ㆍ주제의 발굴도 쉽지 않지만 말이다. 그럴 때마다 꺼내 보는 다른 작가의 이야기들은 이따금 효력을 발휘한다. 매주 복음 강론을 올려 주시는 글이웃 글방구리​님의 말처럼 '돈 안되고 어려운 길'을 선택하는 것이 후회의 방지책이라고 믿으며 오늘도 끄적여 본다.


좋아하는 작가이자, 샘나서 얄미운 작가의 말로 오늘의 생각을 마무리한다.

시작을 해야 그 글을 쓰는 거예요. 첫 문장이 바로 그 시작이죠. 상상 많이 하는 친구들 있잖아요. 구상은 죽여도 첫 문장을 쓰지 않는 한 그건 허망한 뜬구름이죠. 우리가 언어를 사용하는 한 누구나 글을 쓸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두 권, 세 권의 소설을 쓰는 건 완전히 다른 차원의 얘기지만 한 권의 소설 정도는 누구나 쓸 수 있다고 생각해요. 자기 안에 내장되어 있는 내러티브가 있잖아요. 옛날에 글쓰기를 전문적으로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글쓰기를 시켜본 경험이 있는데요. 누구나 한 번 정도는 토해낼 이야기가 있더라고요.

(어느 출판 기념회, 김영하 작가의 "말"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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