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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가 만사라며

장차관 기관장 국민 추천제에 대한 짧은 생각

by 박 스테파노

장차관 및 기관장 인선에 국민 추천제를 도입하겠다는 대통령발 제안이 시끌시끌하다. 보여주기식 포퓰리즘이라는 비판과 더불어, 유튜버들을 추천한다느니 이준석을 여가부 장관으로 추천한다는 조롱 섞인 밈까지 한창이다. 그러나 그런 비판을 던지는 이들이 과연 인사나 인재 확보에 대한 실제 고충을 체감해 본 적이 있는지, 먼저 묻고 싶다. 반응 대부분이 비웃음과 조롱에 가까운 것은, 이 제안이 던지는 정치 행정 구조의 전환 가능성을 너무 성급히 간과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에게 추천을 받겠다는 발상은 단순한 정치 참여의 확대를 넘어, 공직 인사의 구조 자체를 바꾸려는 시도로 읽힌다. 지금까지 한국의 고위 공직 임명은 대개 정치적 이해관계, 정권 친화도, 지역 안배, 그리고 관료조직 내부의 순환 구조에 따라 정해져 왔다. 그 결과는 늘 예측 불가능하고, 전례에만 기대는 ‘비표준화된’ 임명의 연속이었다. 이는 기업의 인사 전략과 비교할 때, 실로 폐쇄적이며, 퇴행적인 프로세스였다.


기업에서 인사라는 이름의 선택과 책임을 실제로 경험한 사람들은 안다. 이 발상이 그저 즉흥적 쇼잉이나 이미지 정치로 치부할 수 없는 배경과 맥락을 가지고 있음을.


기업은 오랜 시간 동안 인재 발굴과 선발, 육성 시스템을 체계적이고 과학적으로 진화시켜 왔다. ‘공개 모집 → 서류 및 면접 전형 → 적성 및 역량 평가 → 조직 적합도 판단’이라는 구조화된 프로세스는 최소한의 객관성과 예측 가능성을 담보한다. 특히 고위직 인사를 다룰 때 기업은 외부 인재 추천 시스템(헤드헌팅, RPO 등)과 내부 추천 제도를 적극 활용한다. 이 제도들은 단지 사람을 뽑는 수단이 아니라, 조직의 전략적 필요와 문화적 정체성 사이의 균형을 탐색하는 도구다. 이 과정에서 전문성과 윤리성, 조직 적합성은 입체적으로 평가된다. 기업 인사의 핵심은 결국, “전문성에 기반한 책임 있는 선택”에 있다. 어떤 가치보다 ‘능력’이 먼저다.


반면 공직 인사는 여전히 ‘관행적 인사’ 혹은 ‘정무적 안배’라는 이름 아래, 구체적 기준과 공개된 절차가 부족하다. 고위공무원단 제도나 인사청문회 같은 견제 장치가 존재하지만, 이조차 종종 정쟁의 도구로 전락하거나, 평가보다는 폭로에 가까운 형식으로 소모된다. 특히 대통령이나 지자체장 같은 선출 권력에 의해 임명되는 자리의 경우, 임명자의 정치적 부담을 최소화하는 것이 사실상의 기준이 되어버린다. 이런 구조 속에서 공직의 전문성과 정책의 일관성, 그리고 시민의 신뢰는 반복적으로 침식된다.


2025년 국민 추천제


이 지점에서 ‘열린 채용의 인재풀 확보’는 단순한 정치적 이벤트가 아닌, 구조 전환의 전략적 신호로 해석할 수 있다. 국민 추천은 단지 인기를 묻는 여론조사가 아니라, 기존의 폐쇄적 인사 시스템을 넘어서 다양한 배경과 전문성을 가진 인재들이 공직에 접근할 수 있는 제도화된 구조 개편이다. 이는 마치 기업이 특정 학벌이나 출신 집단에 의존하지 않고, 다양한 경로를 통해 인재를 유입하려는 노력과 닮아 있다. 공직 역시 이제는 민주성과 역량 중심의 선발 구조를 갖추어야 한다.


예를 들어, 공모 직위에 필요한 정책 경험, 윤리 기준, 리더십 역량을 사전에 명시하고 이를 국민 추천자나 자천자에게 명확히 안내하는 문화가 가능해질 수 있다. 그런 측면에서 볼 때, 국민 추천은 하나의 ‘후보군 형성 장치’로 기능한다. 추천된 인물은 전문 위원단의 정량·정성 평가를 거쳐야 하며, 이 평가를 바탕으로 다면적 심사가 이루어져야 한다. 즉, 추천은 단지 출발점일 뿐, 최종 임명은 전문성과 공공성을 기반으로 정당화되어야 한다.


또한 다양한 경로의 인재 접근이 제도화되어야 한다. 사실, 공공 영역의 맨파워는 시장 영역에 비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공직은 매력적인 커리어가 되기 어렵고, 따라서 고위직의 경우 오직 고시라는 단편적인 평가 체계나 정치권력의 의지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현실이다. 기업처럼 직능 단체, 학계, 시민사회, 산업계 등 외부 채널의 추천이 제도화된다면, 공직은 특정 정당이나 조직 중심의 폐쇄 구조에서 벗어나, 진정한 다원성과 전문성을 회복할 수 있다.


이처럼 ‘열린 채용을 통한 인재풀의 제도화’는 단순히 국민의 눈치를 보기 위한 정치적 장치가 아니다. 이는 공직 인사의 전략적 전환이자, 정치 행정의 신뢰 회복을 위한 실질적 실험이 될 수 있다. 기업 인사가 효율성과 책임성을 동시에 고려하듯, 공직 인사 역시 이제는 정치적 충성 대신 사회적 신뢰와 정책 전문성을 기준으로 그 정당성을 확보해야 할 시점이다. 국민 추천제만이 아니라, 추천 이후의 정교한 심사 프로토콜과 평가 시스템이 함께 따라붙어야 하며, 그것이야말로 공직 인사의 ‘지속 가능성’을 뒷받침하는 길이다.


대통령 선거가 끝나자마자, 대통령의 인선에 ‘촉’을 세우는 이들이 넘쳐난다. 일종의 ‘혹시 난가’의 연속이다. 공직의 문턱을 잠시라도 경험한 이들은 안다. 정치권과 공직의 인재풀은 놀라울 만큼 협소하고 한정적이라는 사실을. 국민 추천제는, 선거 국면에만 기대어 ‘한자리’ 노리는 이들에게는 분명히 불편한 뉴스일 것이다. 언론이 특히 시끄러운 이유도 그와 무관하지 않다. 언론인 출신의 고위 인선이 홍보수석 단 한 명뿐이라는 현실은, 그 자체로 말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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