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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 라는 대답의 끝에서

그럭저럭이라는 말의 무게

by 박 스테파노

10년 전의 인연은 내 안 아직 어딘가 살아 있다

폐부까지 마른 나뭇가지처럼 부서질 듯하면서도

계절의 끝자락을 붙잡고 스스로를 놓지 않는다

기억이라 하기엔 너무 선명하고

지금이라 하기엔 너무 멀다


그때 나는 쉽게 믿었다

이 사람들은 내 인생의 오래된 가구처럼 남을 거라고

시간이 흘러도 익숙한 자리에서 흔들릴 뿐

결코 사라지지 않을 거라고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그때의 ‘예’는 지나치게 단단했고

지금의 ‘글쎄’는 어딘가 너무 말랑하다

대답은 언제나 조금 늦고

늦은 대답은 흔히 진심을 비껴간


행복은 생각보다 질척하지 않다

금방 마르고 금방 지워진다

고만고만한 얼굴을 하고

누구에게나 같은 방식으로 웃는다

그에 비해 불행은 제각기 다른 손톱을 가졌고

긁히는 소리도 파고드는 깊이도 다 다르다


그래서 누군가와 함께 오르막을 오른다는 건

그 사람의 불행에 일정 정도 스며드는 일이다

다 들키지 않게 아픈 곳을 감추면서도

아무 말 없이 같은 방향으로 발을 옮기는 일

묵음의 체념이 아니라

끝내 입에 담기지 못한 단어를 품고 가는 걷기


친구라는 말은 익숙해서 자주 쓰였고

낯설어지면 자주 지워졌다

어제의 친구는 오늘의 타인일 수 있었고

오늘의 웃음은 내일의 공백이 되곤 했다

그러니까 인연이라는 건

이름을 붙인 순간부터

닳아 없어지기 시작하는 무언

붙잡을수록 빠져나가고

잊으려 할수록 어딘가 스미는 것


그런 식으로 사람들은 서로의 내부에서 퇴색되거나

어느 날 문득 날씨처럼 떠오르거나 한다

연락하지 않는 시간이 길어지면

침묵에도 무게가 붙는다

그 무게는 대체로 설명되지 않는다


하지만 마음이라는 건

불투명해질수록 오히려 더 진해진다

이해받을 수 없다는 확신 속에서

말해지지 못한 감정들이 고요하게 침전된다


그렇게 우린 서로를

조금씩 조용히 놓아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말이 아닌 결핍으로

존재가 아닌 잊힘으로


그리고 그건

아마 사랑이 끝나는 방식과도 닮아 있다


글쎄... 그럭저럭. So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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