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아침 생각의 시창작 02
평범한 날의 얼굴은 오래된 필름처럼 케이블 채널을 타고 흘러와 서양식 레스토랑 한가운데 앉은 두 사람의 손끝에 걸린다
남자가 호기롭게 메뉴판을 닫으며 말한다
스페셜로 둘 주세요
그 시절의 스페셜은 중식당의 탕수육처럼 패스트푸드의 세트메뉴처럼 흔했으나 이상하게 흔하지 않았다
그것은 우연히 주어진 푸른 빛깔의 조개껍질처럼 손에 닿으면 무게가 달라지는 것들이었다
노멀의 반대말이 비정상이 아니라 특별과 독특이라면 우리는 오래전부터 표준의 경계 밖에 선 꽃들에게 이상하다 혹은 빛난다라는 두 개의 이름을 번갈아 불러온 셈이다
나이 들어 표준분포의 곡선에서 벗어난 점이 된다는 건 더 이상 깃발이 아니라 천천히 스미는 그늘로 다가온다
오늘은 외래 전 유전자 채혈을 하고 세 번째 골수검사를 받는 날
혈액수치는 서리 내린 논처럼 쉬지 않고 가라앉고 적혈구 두 팩 혈소판 한 팩 백혈구 촉진제가 다시 처방되었다
주치의는 골수의 숲이 이미 많은 부분 마른 나뭇결로 바뀌었다고 했다 드문 병이 서로 어깨를 붙잡고 오는 경우가 있다고 덧붙였다 지난 자가면역질환이 골수의 흙을 척박하게 했을지도 모른다 지난 십 년 동안 흘려보낸 물을 떠올리듯 묵묵히 듣는다
암세포가 물러나면 흙은 다시 숨 쉬고 햇빛이 들 것이며 반대로 장악한다면 새로운 어디로 방향을 틀 것이다 다행히 그 길은 이미 열려 있고 실패 뒤에도 이식이라는 다리를 건널 수 있다
하느님은 언제나 걱정과 기대를 한 쌍으로 묶어 실패는 여전히 다시와 다음이라는 다른 얼굴을 내민다
대학 시절 신촌 골목 끝에 있던 그럴듯한 술집 썸씽 스페셜의 간판이 떠오른다
남다른 풍미의 원액이라는 문장이 이상하게 오래 머문다
나는 그저 남다른 평범을 원했을지도 모른다
평균의 강물에 실려 가는 병의 흐름
평균의 약이 보여주는 반응
그러나 나는 아마도
삶과 죽음 5퍼센트의 기슭에 서게 될지도 모른다
하느님은 나를 여전히 썸씽 스페셜로 부르시는구나
그 말 속에는 선하지 못한 지난 세월의 보속이라도 쓰임이 있다면 좋겠다는 얕은 기도가 숨어 있다
유별난 아이였고 조금 빠른 계단을 오르다 조금 빠른 낭떠러지를 맞았으며 남다른 병까지 얻게 되었지만 이제야 안다
평범한 날들의 연속이야말로 비범의 경지라는 것을
인생이라는 과대망상을 지탱해 주는 비루하지만 소중한 평범을 나는 오래도록 추앙하고 싶다
그리고 잘 이겨내겠다
응원은 여전히 내 곁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