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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와 싸워 이기는 방법 2

수능에 앞선 모두에게

by 박 스테파노

해가 지기 전, 단 한 걸음만 더 걸으면 된다

어느 날 문득 바람의 결을 타고 내가 기다리던 내가 온다

그 자리가 산의 정상일 필요는 없다

바위틈에 앉아 잠시 숨 고르는 중턱이어도 좋다

내가 바라던 만큼의 빛, 그만큼의 나면 충분하다


살다 보면 운명의 타이밍 따위와 상관없이 마주치게 된다

진짜 잘난 사람, 노력의 윤곽을 넘어선 재능의 형상

비껴서 바라보아도 그 사람은 빛을 잃지 않는다

그 앞에서 우리는 작아지고, 세상이 기울며

그 기울기에 마음이 미끄러진다

천재란 그런 존재다

그들의 속도는 바람을 초월하고

그들의 시선은 이미 시간의 건너편을 본다


성공한 둔재가 말한다

천재와 싸워 이기는 방법은 단 하나

그냥 보내주는 것이라고

그들의 속도로 그들의 길을 가게 두는 것

추월당하되 추락하지 않고

멀어지되 사라지지 않게 그들은 빛의 언어로 달리고

나는 흙의 문장으로 걸어간다

천재의 질주는 불꽃의 수명이고

나의 걸음은 재의 온도다

나는 불타 사라지지 않고

서서히 식어가며 모양을 가진다


천재들은 인간계의 마지막 언덕까지 치닫다

문득 멈출지 모른다

나는 오늘의 길을 밟는다 나의 속도로

나의 체온으로, 나의 낮은 호흡으로

한 걸음 한 걸음은 느리지만

그 느림 속에서만 들리는 소리가 있다

바람과 나뭇잎 그리고 문장들이 스스로를 쓰는 소리


가끔은 읽는다

번개처럼 내리꽂히는 문장

감히 흉내조차 낼 수 없는 창조의 한 줄기

그 문장 앞에서 내 글은 무너지고

오래 앉아 있던 의자가 무겁게 삐걱댄다

그러나 나는 다시 책을 편다

간서치, 세상의 요란함을 등지고

고요 속에서 문장을 길어 올리는 자


글은 엉덩이로 쓰는 것이라 했다

몸이 남긴 흔적이 문장이 되는 것이라 했다

나는 하루를 마무리하며 한 조각의 글을 쓴다

잠들기 전 마음의 주름을 펴듯이

사라지는 것들을 잠시 붙잡듯이

천재의 문장을 부러워하지 않고

그 문장을 읽을 수 있음에 감사한다

그들의 빛이 잠시 나의 어둠을 밝혀주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오늘, 언덕을 오르는 모든 이들에게 바란다

공부한 만큼 기억이 남고

기억한 만큼 길이 열리기를

언덕은 멀리서 보면 산 같지만

시간이 지나면 다만 작은 요철에 불과하다

그러나 요철에도 자전거는 넘어진다

넘어졌다고 부끄러워 말자 땅에 닿는 순간이

다시의 시작이다

실패의 다른 이름은 언제나

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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