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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지를 팔고서

늦은 아침생각의 시창작 15

by 박 스테파노

술이 익어가려면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햇살이 드리우든 비가 몰아치든

시간은 제 걸음을 저버리지 않는다

때로는 기다림이 되고,

때로는 두려움이 되는 그 발걸음


연휴 전, 앞당겨진 진료

헤모글로빈 8, 혈소판은 잠시 6만,

다시 2만으로 떨어지고

호중구는 간신히 500 위를 붙든다

혈소판 한 팩, 촉진제 한 번,

그리고 열흘치 약봉지를 들고 돌아왔다


살아내는 일은 늘 돈과 얽혀 있었다

아내와 나누었던 반지,

한때 전당에 잠들었다가

끝내 내 손에서 흘러나갔다

불편한 부탁과 냉랭한 무응답,

그 사이 여전히 손을 내밀어 준 이들

나는 그 손에 붙들려 오늘을 버틴다


머나먼 곳에서 날아온 응원의 숨결,

그 따뜻함으로 얼마 뒤의 골수검사와

지난 유전자 검사의 결과를 기다린다

아직 축구 국가대표팀의 헛발질에

분노하는 내 마음을 보니

살고자 하는 의지는 여전한 모양


나는 시간의 힘을 믿는다

가을빛 아래 큰 달을 우러러, 감사의 기도를

여전히, 응원은 내 안의 불씨를 지켜 준다


수년 전 언젠가. AI Sora


이러쿵 저러쿵

작년 이즈음에 썼던 졸시를 이제야 올립니다.그때에 비하면 지금은 혈액 수치가 많이 안정되었습니다.아직 약물 부작용으로 두 팔에는 수포가 돋고, 밤마다 긁지 않으려 뒤척이지만, 박동성 이명과 현기증에 휘청이던 지난날보다는 훨씬 살 만합니다. 다 응원 덕분입니다. 마음의 체온이 식지 않게 지켜준 이들이 있었기에 또다시 살아 내려 합니다.


내년도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의 [컬쳐 코드] 필진으로 정식 위촉받았습니다. 매달 평론을 실고, 잡지에도 간혹, 그리고 상반기 평론집 공저 발간 예정입니다. 대형 출판사와의 협의는 여전히 진행 중이고, 다음 주에는 부티크나 임프린트 출판사에도 원고를 의뢰해 보려 합니다. 신춘문예 역시 준비 중입니다. 문학평론과 영화평론은 가능한 매체마다 투고할 생각이며, 중단편과 시, 수필은 각기 다른 지면을 향해 다듬고 있습니다.


정식 연재 외에는 다소 뜸해질지도 모른다는 작은 엄살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책상 앞에 앉아, 문장을 다잡는 엉덩이의 힘으로 계절을 견디려 합니다. 글을 쓴다는 일은 여전한 생의 훈련이자, 나를 다시 믿어보는 가장 고요한 기도이기도 하니까요.


위촉장. 르몽드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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