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파노에게, 스테파노가

축제가 끝난 다음 날의 편지

by 박 스테파노

스테파노에게,

혹은 스테파노인 내가, 나에게


신앙이나 신념을 위해 목숨을 내어놓은 이를 우리는 순교자라 부른다. 그 말은 오랜 시간 동안 너무 많은 입술을 거치며 닳아 왔고, 지금은 때때로 가볍게 소모되는 수사처럼 들리기도 한다. 그러나 그리스도교 초대교회의 기록들, 그리고 한국 초기 천주교 순교자들의 생애를 다시 펼쳐 읽다 보면, 그 단어는 여전히 숨을 고르게 만들 만큼의 중량을 지닌다. 생명과 신념이 맞부딪히는 자리에서, 망설임 없이 신념을 선택한다는 것. 그것은 이해의 영역을 넘어, 인간의 도량이 감히 가늠할 수 없는 차원의 선택처럼 느껴진다. 나의 삶을 돌아보면, 나는 아직 그 문턱 앞에서 오래 서성이는 사람에 가깝다.


순교에도 가짜와 짝퉁이 따라붙는 세상이다. 광신은 종종 믿음의 얼굴을 빌려 자신을 합리화하고, 폭력은 신념이라는 언어로 포장되어 등장한다. 자기 확신이 타인의 생명을 지워도 된다는 착각으로 변질되는 순간, 믿음은 더 이상 믿음이 아니다. 그래서 우리는 묻게 된다. 무엇이 순교를 순교이게 하는가. 단지 목숨을 내놓았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한가. 아니면 그 죽음이 남긴 여백과 침묵, 그리고 타인의 마음에 남긴 흔적까지 포함해야 하는가.


“순교자는 노력 없이 유명해질 수 있는 방법이다.”

— 버나드 쇼 —


이 냉소적인 문장은 아이러니하게도 순교의 본질을 정확히 겨눈다. 신념을 위해 죽었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죽음이 순교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 죽음이 타인의 마음 앞에서 최소한의 공명을 일으킬 때, 비로소 순교라는 이름에 다가선다. 이해될 수 없는 신념, 공감의 문을 닫아버린 죽음은 믿음이 아니라 광기에 가깝다. 광기와 믿음 사이의 거리는 생각보다 멀지 않다. 그래서 순교는 언제나 사후의 시간, 타인의 양심과 역사 앞에 자신을 맡겨야 하는 이름이다.


성 스테파노의 순교: 안니발레 카라치, 1603-04, 40×53cm, 파리, 루브르


이런 생각들을 적어 내려가는 이유는 오늘이 초대교회의 첫 순교자, 성 스테파노의 축일이기 때문이다. 일곱 부제 가운데 첫 사람, 그는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증언하다 돌에 맞아 죽었다. 스테파노라는 이름은 그리스어 스테파노스에서 왔다고 한다. 관, 화환, 승리자의 월계관. 머리에 잠시 얹혔다 사라지는 장식이 아니라, 한 인간의 삶 전체를 에워싸는 의미. 승리자, 영광을 입은 자. 그러나 그 영광은 박수보다 침묵에 가깝고, 환호보다 오래 견디는 침착함에 닮아 있다.


12월 26일, 박싱데이. 성탄의 환호가 한 박자 늦게 식어 가는 날. 거리의 장식은 여전히 반짝이지만, 사람들의 마음은 이미 다음 해를 향해 등을 돌린다. 교회력으로는 성 스테파노의 축일이지만, 세상의 체온은 이 날을 거의 기억하지 않는다. 그래서일까. 이 날의 축하는 늘 스테파노들끼리만 조용히 주고받는 인사처럼 느껴진다. 큰 잔치가 끝난 뒤 남은 접시를 함께 정리하며,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들처럼.


그래서였을 것이다. 예전 성당에서는 ‘스테파노’라는 이름을 묵묵한 일꾼, 성실한 원칙주의자의 범주에 넣어 부르곤 했다. 축일이 12월 26일이라는 사실도 한몫했을 터이다. 모두가 성탄의 여운을 정리하고 송구영신을 준비하는 썰렁한 날. 이 날을 챙겨 기억하는 사람은 대개 또 다른 스테파노들뿐이다. 농담처럼 말하곤 했다. 인기가 없는 성격이라서 그렇다고. 아마 절반쯤은 사실일 것이다.


이 편지를 쓰는 나는, 병으로 인해 미사 참례조차 쉽지 않은 비자발적 냉담자가 되었다. 그럼에도 내 세례명은 여전히 스테파노다. 부모님이 이 이름을 골랐던 이유는 단순했다. “김수환 스테파노 같은 사람이 되어라.” 그 염원을 안고 한동안 사제의 길을 고민했지만, 끝내 그것이 내 길이 아님을 받아들였다. 지금도 그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 사제만이 스테파노가 되는 것은 아니고, 제단 밖에서 신념을 견디는 방식도 분명 존재하니까.


어릴 적, 바보 김수환 추기경을 네 번쯤 뵈었다. 제대 위에서, 복사로서, 향을 들고. 그리고 아홉 살 어느 날, 사생대회 입상자로 그의 무릎에 앉아 사진을 찍었다. 그분의 성탄미사는 늘 낮은 곳에 있었다. 판자촌, 소록도, 이름보다 사연이 먼저인 사람들 곁에서. 그래서일까. 자정미사 중계 화면 속 명동대성당의 맨 앞줄이 낯설게 느껴질 때가 있다. 신자도 아닌 정치인이 가장 좋은 자리를 차지한 풍경 앞에서, 그분의 조용한 웃음과 낮은 목소리가 문득 그리워진다.


집에 전화가 오면 어머니는 늘 고상하게 나를 불렀다.

“스테파노~ 전화 받아~”

그때마다 부끄러움과 해명은 내 몫이었다. 평소의 나는 ‘야!’로 불리던 아이였으니까. 그 이름이 내 삶에 요구하는 무게를, 나는 아직 다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알면서도, 그 부끄러움을 웃음으로 넘기던 시절이었다. 부끄럼 많고, 아직 세상이 무섭던 그 스테파노를 가끔은 다시 만나고 싶어진다.


김수환 추기경의 구룡마을 미사. 경향신문


올해를 돌아보면, 나는 잘 버텼다고 말하고 싶다. 그러나 함께 버텨준 아내에게 그 시간은 지옥에 가까웠을지도 모른다. 애써 외면하고, 모른 체하며 지나온 날들. 이제는 그 아픔까지 이해하고, 사랑하기로 한다. 병을 얻은 뒤 삶은 더 이상 나 혼자의 것이 아니게 되었다. 다시 시간을 얻었다는 감각 앞에서, 기도는 선택이 아니라 책임이 되었다. 나를 살린 시간에 대해, 나는 응답해야 하는 사람이 되었다.


백혈병 투병과 재정적 어려움 속에서도 글을 놓지 않았다. 가난은 나를 침묵시키지 못했고, 몸의 한계는 생각의 속도를 완전히 빼앗아 가지 못했다. 한 편의 글, 한 줄의 문장을 완성할 때마다 나는 조용히 나 자신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것으로 충분하다고. 이것 또한 작은 승리라고. 이름 없는 하루를 무사히 건너온 것, 그것 역시 월계관의 다른 이름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이 편지는 축하이자 다짐이다.

다시 스테파노로 돌아가겠다는.

거창한 순교가 아니라, 단 한 사람을 위해서라면 삶의 안락함쯤은 기꺼이 내려놓을 수 있는 마음의 방향을 잃지 않겠다는 다짐이다. 상식과 양심이라는 이름의 신념 앞에서 쉽게 무너지지 않는, 작고 미천한 스테파노로 남고 싶다는 고백이다.


축제가 끝난 다음 날,

서로를 알아보는 이름으로.


스테파노가 스테파노에게,

그리고 모든 스테파노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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