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보면 이런 저런 생각이 다 든다
연재를 무리하다 싶을 만큼 집중해 이어가는 까닭은 조급함 때문이었다. 내 처지에 대한 조급, 내 몸의 상태에 대한 조급, 그리고 손바닥이 손가락으로 빼곡히 메워진 나이라는 조급. 나는 그것을 이도 저도 다 그 탓이라 여기며 시간을 쪼개 썼다. 발간 프로젝트에 맞추려 발버둥치지만 큰 기대는 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조급함은 자꾸만 손을 들어 신호를 보냈다. 마음의 넓이라는 것이 어느 독방 창살 틈으로 흘러든 햇볕보다도 좁았다.
그 좁은 틈 속에서 쌓아 올린 글들을 다시 주욱 들여다본다. 이제야 글을 쓴다는 일이 부끄럽지 않을 작은 흔적들이 보인다. 그 정도면 족할 텐데, 또 욕심이라는 게 스멀스멀 기어오른다. 쉰셋의 글을 출판 기획자가 반길 리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여전히 플랫폼 탓, 세대 탓, 나이 탓을 입에 올린다.
마뜩잖은 구독 글들에 괜히 ‘좋아요, 좋아요’ 하며 고개를 숙이는 나를 발견하고 피식 웃음이 났다. 세상의 그래프에 키 높이를 맞추려 여전히 껑충발을 들고 있는 꼴이라니. 나이를 먹고서야 겨우 알 듯한 것들을 이제야 짐작하는데, 아직도 세상의 눈에 눈맞춤하려 애쓰는 버릇이 남아 욕지거리가 절로 나왔다.
사는 일은 결국 죽음을 어떻게 맞이하느냐에 모여드는 법. 아날로그처럼 길게 이어진 인생의 면도 언젠가는 디지털의 점점으로 기록되고 평가받는다. 회광반조라든가 파노라마라든가, 내가 직접 겪어보지 못한 임종 체험의 언어에도 진실은 숨어 있었다. 그것은 죽음을 제대로 맞이해야 한다는 뜻. 그제야 나는 세상의 모든 탓들을 제자리로 돌려보낼 수 있었다.
어둠을 탓하지 마라
모든 빛나는 것들은
어둠의 어깨를 짚고
비로소 일어선다
― <별> 임보 ―
내가 기억하는 가을은 아침과 밤만이 가을인 척했다. 그 가을을 믿고 길을 나섰다가 움츠려 돌아왔다. 믿었던 가을의 품속에는 벌써 겨울이 숨어 있었다. 가을이면 무언가, 누군가 나타날 것만 같아 마음은 앞질러 달렸다. 깨어 기다리지 않으면 놓쳐버릴, 마치 산타 할아버지의 굴뚝 강하라도 기다리는 듯한 마음이었다.
그 서두른 가을은 금세 흘러가고, 어느새 겨울이 성큼 다가설지도 모른다. 두 눈 크게 뜨고, 두 귀 크게 열어 그렇게 가을을 맞이해야겠다. 새벽부터 채혈을 하고 진료를 기다렸다. 엉터리로 진료를 본 류머티즘 내과 의사에게 따지려다 발길을 돌려 고객상담실을 찾았다. 상담 선생님이 공감하며 대신 사과를 건네자 마음이 풀렸다. 예약들이 뒤엉켜 일정을 다시 잡아야 했지만, 번거로움이야 내게 낯선 일이 아니지 않은가.
검사 결과가 좋아야 할 텐데, 암 유전자 수치가 의미 있는 하강을 시작했다. 척추의 압박 골절과 암 수치를 맞바꾼 듯한 느낌, 그리 나쁘지 않았다. 나빠지지만 않았으면 했는데, 이만큼이라도 내려가 주니 감사할 따름이다.
가을에, 이 가을에 나는 소박한 기도를 바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