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하며 추억하고, 아버지와 나

10주년 기일에

by 박 스테파노

10년 전 오늘, 아버지께서 소풍을 떠나셨다.

그날의 기억은 여전히 생생하다. 아픈 아들을 안쓰럽게 여기시며 다섯 달을 버티셨고, 마침내 긴 걸음을 달려온 내 얼굴을 확인한 뒤에야 마지막 숨을 내쉬셨다. 무겁기만 했던 삶, 이제는 조금 가벼운 발걸음으로 가셨기를 바라지만, 내 엉망인 삶이 아버지의 마음에 끝내 걱정으로 남아 있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에 죄송스러움이 앞선다.


아버지의 삶은 긴 고난의 연속이었다. 소천하시기 스물네 해 전, 큰 사고로 온몸에 화상을 입으셨고, 십오 년 전부터는 지병과 싸우셨다. 임종을 맞기 열여섯 달 전에는 갑작스레 기력을 잃으셨다. 그날 나는 아버지를 업어 병원으로 달려갔고, 체내 감염이라는 진단과 함께 임종을 준비하라는 말을 들었다. 그리고 끝내 집으로 돌아오시는 일은 없었다.


그보다 더 앞서, 아버지는 연대보증의 굴레로 사막 같은 타지에서 일군 전 재산을 한순간에 잃으셨다. 경제사범으로 낙인찍혀 옥살이까지 하셨다. 그 이후로는 신체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일어나지 못하셨고, 가장의 책임은 너무도 이른 나이에 내게로 넘어왔다. 그래서 아버지가 원망스러웠다. 그러나 오늘은, 단둘이 처음 나섰던 창경원 나들이와 그날 먹었던 통닭이 새록 떠오른다. 참 많이 닮아 미워했던 작은 체구의 그분이, 이제는 애타게 그리운 얼굴로 남아 있다.


열 번째 기일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기도뿐이다. 고통 없는, 가뿐한 소풍길 되시기를 바랄 뿐이다.


삶에는 언제나 마지막이 있다. 그것이 기쁘든 그렇지 않든, 마지막임을 자각하는 순간은 늘 먹먹하다. 시간이 지나면 그 기억은 아련하고 저릿한 조각으로 가슴 속에 남아, 오래도록 한쪽을 누를 것이다. 아마도 그 때문에 우리는 삶의 마지막을 두려워하는지 모른다. 먼 훗날 나의 마지막 순간이 다가올 때, 오늘의 이 먹먹함이 한 마디 매듭으로 남기를 조심스레 소망해 본다.


https://youtu.be/16bLe-aYsSE?si=Eq4x2kNL-rSKtMf8

넥스트 <아버지와 나 Part no.1>



"저기 걸어가는 사람을 보라
나의 아버지 혹은 당신의 아버지인가
가족에게 소외받고 돈 벌어 오는 자의 비애와
거대한 짐승의 시체처럼 껍질만 남은
권위의 이름을 짊어지고 비틀거린다
집안 어느 곳에서도 지금
그가 앉아 쉴 자리는 없다
이제 더 이상 그를 두려워하지 않는 아내와
다 커버린 자식들 앞에서
무너져 가는 모습을 보이지 않기 위한
남은 방법이란 침묵뿐이다"

― <아버지와 나 Part 1 / N.Ex.T>


이 곡을 처음 들었을 때, 나는 잠시 정신을 잃은 듯했다. 015B의 〈너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연애에 관한 가볍고도 세태 풍자적인 노래라면, 이 곡은 깊고 무거운 진혼곡 같았다.


나는 아버지를 참 많이 미워했다. 열아홉의 나이에 쓰러져 가장의 무게를 고스란히 내게 넘겨준 그분이 원망스러웠다. 그러나 이 노래를 듣는 순간, 심장이 내려앉았다. 나는 아버지를 오해하고 있었다. 모친의 푸념에 덧씌워진 필터를 통해 전해 들은 사랑은 이미 퇴색되어 있었고, 아버지의 진심은 내게 닿지 못한 채 왜곡된 모습으로만 남아 있었다.


건강 문제로 인해 유학을 일찍 접고 돌아오던 날, 아파트 입구에서 올려다본 2층 베란다에 울고 계시던 아버지의 모습은 아직도 눈에 선하다. 내 앞에서 처음으로 보이신 눈물이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결국 영어(囹圄)의 몸으로 남은 세월을 보내셨고, 요양병원에서 기다리고 기다리다, 마침내 내가 세상에 복귀해 다시 찾아뵌 바로 그 다음 날 소풍을 떠나셨다.


그리움은 언제나 늦게 찾아온다.

미움은 언제나 일찍 찾아온다.

오늘처럼 두 감정이 겹쳐오는 날에는,

한 사람의 이름을 불러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저릿해진다.


198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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