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설프지만 아름다웠던 시간 - 015B에 대하여

가장 가벼운 진실, 가장 무거운 시대의 목소리

by 박 스테파노
“전혀 심오하지 않아요. 015B가 이야기하는 기본은 진실이에요. 우리는 진실을 이야기할 뿐이고 그것을 인정하자는 것입니다.”

― 정석원, 「대중음악과 우리들의 시대 대담」 중에서


30여 년 전, ‘대중음악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 앞에서 정석원이 내놓은 대답은 놀랄 만큼 단정하고 담담하다. 그는 긴 설명을 피한 채, 문성근·정선경 주연의 문제작 <너에게 나를 보낸다>에서 문성근이 ‘문학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잠시 머뭇거리다 “진실인데”라고 답하는 장면을 떠올린다. 말하자면, ‘015B’의 음악은 그 한마디로 수렴된다. 진실이라는 것.


시스템과 가사, 형식 전반에서 늘 시대의 경계를 밀어붙여 왔던 ‘015B’의 음악은 결국 이 고백으로 귀결된다. 정석원이 말한 ‘진실’은 1990년대 한국 대중음악사가 마주한 가장 당혹스럽고도 선명한 응답이었다. 그것은 대중음악이 스스로를 과장하거나 포장하지 않겠다는 태도, 그 자체에 가까웠다.


거대 담론이 서서히 퇴조한 이후, 대중음악은 개인의 내밀한 욕망과 일상의 파편을 노래하기 시작했다. ‘015B’는 그 최전선에서 관조적인 냉소와 투명한 정직함을 동시에 발산했다. 이들이 말한 진실은 고결한 도덕률이 아니었다. 그것은 <너에게 나를 보낸다>(장선우, 1994)가 보여 준 파격처럼, 세련된 외피를 벗겨낸 뒤 드러나는 현대인의 속물근성, 권태, 그리고 유통기한이 지나버린 사랑에 대한 고백이었다. “진실인데”라는 짧은 문장은 예술적 심오함이라는 가식에 기대지 않겠다는 선언이자, 대중의 삶을 있는 그대로 비추겠다는 창작자의 자존심에 가깝다. 이 태도는 90년대 ‘X세대’라 불리던 새로운 감각의 정체성과도 정확히 맞닿아 있다.


장호일과 정석원 형제의 프로듀서 그룹 015B. 더공일오비 제공

이들에게 음악은 더 이상 계몽의 도구도, 숭고한 정신의 산물도 아니었다. ‘015B’는 객원 가수 시스템이라는 실험을 통해 ‘밴드’라는 고정된 실체를 느슨하게 해체하고, 오직 곡이 담고 있는 메시지의 선명함에 집중했다. 이는 대중음악이 ‘예술’이라는 권위를 잠시 내려놓고, 동시대의 일상을 해부하는 기록 장치로 기능하기 시작했음을 의미한다. 그들의 가사 속에서 연인은 질질 끄는 이별을 선택하지 않고, 신인류는 자신의 욕망을 숨기지 않는다. 그렇게 포착된 진실은 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낡지 않은 생명력을 유지하며, 대중음악이 시대를 기록하는 가장 솔직한 방식이 무엇인지를 조용히 증명한다.


‘015B’는 분명 ‘장수 밴드’다. 1990년 이후 현재까지 활동을 이어오며 어느덧 만 36살에 이르렀다. 최근의 활동이 활발하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20세기 말 그들이 남긴 영향력은 단순한 팬덤의 차원을 넘어선다. 누구보다 앞서간 실험 정신 자체가 곧 그들의 이미지였다. 그래서 이들에게는 ‘프로듀서 밴드’라는 수식어가 자연스럽게 따라붙는다. 오늘날에는 낯설지 않은 객원 보컬 중심의 프로젝트형 구성 역시, 그 실질적 효시는 ‘015B’라 불러도 무리가 없다. 물론 객원 가수의 시초가 이들만은 아니다. 이를테면 ‘사랑과 평화’ 같은 선례도 존재한다. 그럼에도 ‘015B’가 남긴 결정적 흔적은 분명하다. 대중음악은 심오하지 않아도 되며, 다만 진실이면 충분하다는 사실.



이름에 남겨진 여백, 음악이 태어나기 전의 침묵


‘015B’를 말할 때 건너뛸 수 없는 지점은 단연 ‘밴드 이름’이다. 이 이름을 풀어내려는 순간, 우리는 필연적으로 대학가요제 대상 밴드 ‘무한궤도’를 호출하게 된다. 1988년 대학가요제에서 대상을 수상한 ‘무한궤도’의 보컬 신해철은 긴 고민 끝에 솔로의 길을 택했다. 다른 멤버들 역시 이를 애초부터 ‘추억 쌓기’에 가까운 동아리 활동으로 받아들이고 있었기에, 학업과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가기로 결정한다. 효성·쌍용가의 재벌 2세, 의대생 등으로 구성된 이력은 당시의 분위기를 충분히 설명한다.


흔히 “015B 그 자체”로 호명되는 정석원은 사실 대학가요제 무대의 멤버가 아니다. 전업에 대한 부담을 느낀 멤버들이 하나둘 팀을 떠나자, 신해철은 이전에 강변가요제에 ‘실험실’이라는 팀으로 출전했던 정석원을 영입한다. 그러나 결과는 아이러니했다. 신해철이 팀을 떠나고, 정석원이 중심에 서게 된 것이다. 신해철은 대학 자퇴를 결심하며 전업 뮤지션으로서의 의지를 분명히 했지만, 정석원을 비롯한 남은 멤버들은 아직 그 확신에 이르지 못한 상태였다.


결국 키보디스트이자 작곡가 정석원, 베이시스트 조형곤, 드러머 조현찬은 정석원의 형 장호일과 함께 1990년 ‘015B’를 결성한다. ‘무한궤도’의 소속사였던 대영기획은 남은 멤버들로 앨범 한 장만 더 내자고 제안했고, 이를 수락하면서 팀은 동명 앨범 《015B》로 정식 데뷔한다. 보컬 없이 세션만으로 구성된 이 팀은 기획사에 객원 보컬 사용을 요청했고, 그 선택은 한국 대중음악사에서 최초로 ‘프로듀서 밴드’라는 형식을 호출한다. 치밀한 기획이나 의기투합의 서약이 아니라, 그저 “한번 해 보자”는 마음에서 출발한 밴드였다.


‘015B’는 ‘공일오비’라고 읽는다. 앨범에서는 한자로 ‘空一烏飛’를 쓰기도 했다. 정석원의 대학 밴드 이름이 ‘실험실’이었던 탓인지, 이 이름을 둘러싼 해석은 유난히 분분했다. 가장 널리 퍼진 설명은 ‘무한궤도’의 레거시를 품고 있다는 설이다. “0=무, 1=한, 5B=Orbit(궤도)”라는 해석이 그것이다. 훗날 정석원은 U2나 UB40 같은 밴드 이름이 멋있어 지은 것이라 밝혔지만, ‘空一烏飛(하늘에 한 마리의 까마귀가 날다)’라는 한자를 표지에 새긴 앨범이 등장하며 이름에 깃든 중의성은 거의 정설처럼 굳어졌다.


《공일오비 2집》. 번개장터 제공


‘015B’의 1집 작업 당시, 소속 기획사의 기대와 지원은 미미했다. 인기 밴드의 프런트맨이었던 신해철이 빠져나간 뒤였으니, 계약 이행 정도로 여겼을 법하다. 밴드 이름조차 제대로 불리지 않아 녹음실에서는 “궤도이탈”로 통했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그러나 멤버들은 그 시절을 회상하며 섭섭함을 말하지 않는다. 전업 음악인이 될 것이라는 확신이 희미했던 시절, 졸업 기념 앨범 하나 남기자는 생각이 더 컸기 때문이다. <나 어떡해>로 기억되는 서울대 농생대 샌드페블즈 역시 같은 맥락에 놓인 사례였다.


정석원의 친형 장호일의 본명은 정기원이다. 서울대 언론정보학과를 졸업하고 광고기획사에 재직 중이던 그는, 대구 MBC 중역이었던 부친의 반대와 투잡 노출에 대한 부담으로 사촌의 이름 ‘장호일’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015B’는 음악계의 메이저 씬에서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는 강박과는 거리가 먼 밴드였다. 그 느슨함은 곧 이들 음악의 체질이 되었고, 하나의 레거시로 남았다.


좋게 말하면 ‘아마추어리즘의 실험정신’, 속되게 말하면 ‘어설픈 선무당’에 가까웠다. 그러나 첫 타이틀곡 <텅 빈 거리에서>가 입소문을 타며 조용한 역주행을 시작했고, 앨범은 30만 장의 판매고를 기록한다. 그 순간, 이름에 남아 있던 여백은 비로소 음악으로 채워졌고, 진짜 뮤지션 ‘015B’가 역사 속으로 소환된다.



보이지 않음의 선택, 오래 남은 음악의 형식


‘015B’의 활동은 늘 미디어의 전면에 서 있지 않았다. 전성기에도 그 이유는 단순했다. “보여줄 것이 없다”는 판단이었다. 콘서트를 제외하면 TV 예능이나 음악방송 출연은 거의 없었다. <불타는 청춘>을 통해 대중에게 친숙해진 형 장호일과 달리, 정석원의 얼굴은 미디어에서 좀처럼 포착되지 않는다. 외모에 대한 거리감일 수도, 음악을 대하는 완고한 태도의 결과일 수도 있다. 기록으로 남은 것은 ‘1992 내일은 늦으리’라는 광고면, 몇 차례의 토크쇼와 음악방송, 그리고 빼빼로 CF 정도다(장호일이 다니던 회사가 광고 제작사였다는 후문도 전해진다).


‘015B’를 말할 때 객원 가수들의 계보를 빼놓을 수 없다. 지금은 ‘미스틱’이라는 중견 기획사의 수장으로 자리한 윤종신 역시 이 밴드에서 태어났다. 그는 객원 참여 이후에도 솔로 앨범에서 꾸준히 협업하며 음악적 동반자로 남았다. 대중적으로 가장 큰 성공을 거둔 <신인류의 사랑>, <슬픈 인연>의 김돈규 또한 ‘015B’의 산물이다. 나미의 원곡보다 김돈규의 <슬픈 인연>이 더 널리 기억된다는 사실만 보아도 그 영향력은 분명하다. 훗날 목사가 된 김태우 역시 <아주 오래된 연인들>로 이 역사에 이름을 남겼다. 윤종신의 부재 속에서 불렀던 데모가 대표곡으로 이어진 경우였다.


<훈련소 가는 길>의 이장우를 비롯해 이승환, 박정현, 요조, 다이내믹 듀오, 김형중, 버벌진트, 조규찬, 박선주, 아이유에 이르기까지, 세대를 가로지르는 보컬들이 이들의 곡을 거쳤다. 황치열의 초창기, ‘치열’이라는 이름의 목소리도 이 안에 있다. 1집 <때늦은 비는>, <슬픈 듯 흐르는 시간 속에>에서 들려오는 최기식의 아련한 음색 역시 빼놓을 수 없다. 그리고 ‘마왕 신해철’이 이들의 역사 한가운데를 가로지른다. 그는 1집 <난 그대만을>, <슬픈 이별>을 작사하고 직접 불렀지만, 여러 사정 끝에 정석원과 멀어지며 협업은 이어지지 않았다.


이처럼 ‘015B’는 끊임없이 실험하고 부딪힌 밴드였다. 중요한 점은 이 모든 시도가 치밀한 기획의 산물이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결핍과 제약이 만든 궁여지책이 결과적으로 ‘혁신’으로 귀결되었다. 부족함과 어설픔이 오히려 확장의 여지를 열어 주었다. 실제로 초기 음악은 서툴렀다. 특히 1992년 63빌딩 라이브를 여과 없이 담아낸 두 장의 앨범은 음악적 NG로 가득하다.


신해철과 윤종신의 보컬은 반음 아래로 흔들리기 일쑤이고, 박자는 자주 놓친다. 기타 사운드는 설익은 이펙터 배열 탓에 “깽깽, 좌우지 장지지”를 반복한다. 엔지니어링의 한계로 녹음 품질 역시 애처롭다. 그럼에도 이 앨범은 개인적으로 가장 아끼는 기록이다. 들을 때마다 울컥한다. 젊고 미숙했던 시절의 플레이 버튼이 자동으로 눌린다. 스튜디오는 꿈도 꾸지 못하고, 다락방 벽에 계란판을 붙여 데모 테이프를 녹음하던 시간들. 키보디스트로 끌어들인 성당 올겐 후배가 오빠들 발냄새에 울음을 터뜨리던 기억까지 되살아난다. 어설펐지만 싱그러운 청춘이 그 안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015B를 거쳐간 객원가수들. 네이트TV 제공


그러나 ‘015B’의 음악은 끝내 설익음에 머물지 않았다. 앨범이 거듭되며 스스로를 숙성시켰다. 설익은 대추가 상쾌한 맛을 내고, 충분히 익으면 주름진 단맛을 내듯이. 과하지 않은 단맛 덕분에 오래 손이 가는 음악이 되었다. 그 중심에는 정석원이라는 프로듀서가 있었다. 이로 인해 장호일이 ‘숟가락을 얹는다’는 비판도 따랐지만, 앨범의 구성과 방향, 마케팅에서 분명한 역할을 했다는 증언이 이어진다. 대중에게 닿을 수 있는 목소리—윤종신, 김돈규, 이장우—를 발굴한 감각 역시 그의 몫이었다. 이후 바이브, 솔리드, 황치열을 떠올리면 그 촉의 정확함은 더욱 분명해진다.


그럼에도 ‘015B’는 결국 정석원으로 수렴된다. 그는 거의 모든 곡의 작곡·작사·편곡을 홀로 감당했다. 서울대 컴퓨터공학과 출신의 공대생이었지만, 장르의 경계를 가볍게 넘나들며 완성도 높은 곡을 만들어 냈다. 그의 가사는 당시로서는 분명한 사건이었다. “야윈 두 손엔 동전 두 개뿐(<텅 빈 거리에서>)”이라 절규하다가, “저녁이 되면 의무감으로 전화를 하고, 관심도 없는 서로의 일과를 묻곤 하지(<아주 오래된 연인들>)”라며 냉소를 건넨다. 일상의 언어와 문학의 시어를 오가는 이 문장들은 읽을수록 사유를 요구한다.


정석원은 한국 대중음악사 최고의 키보디스트 가운데 하나로 자주 호명된다. “개떡 같이 불러도 찰떡 같이 반주로 채운다”는 신해철의 평처럼, 변조와 싱코페이션, 텐션의 변주를 자유롭게 다룬다. 이 천재성은 때로 외골수라는 평가로 되돌아왔지만, 음악을 전공한 유희열의 로망이었다는 사실이 많은 것을 대신 말해 준다. 그는 음악적 논란 앞에서도 늘 논리적이었다. 표절 논란이 일자 레니 크레비츠를 모방한 <시간>을 발표하며 표절과 레퍼런스의 차이를 직접 보여 주었고, 해외 트렌드 추종이라는 비판에는 대중음악은 본래 외래의 이식이라는 논지로 자신의 가치관을 분명히 밝혔다. 보여주지 않음으로 남긴 음악, 그 침묵의 선택이야말로 ‘015B’를 오래 살아 있게 만든 가장 단단한 형식일지도 모른다.



사이의 시간에 울린 노래, 낀 세대의 사운드트랙


1992년 서태지의 등장은 한국 대중음악의 지형을 단번에 뒤집었다고들 말한다. 엄밀히 말하자면 그 직접적인 수혜자는 당시의 10대였다. 그보다 조금 앞에 서 있던 20대들은 변화의 한복판에 있었음에도 온전히 호명되지 못했다. 소위 말하는 ‘낀 세대’, X세대의 코어. 나 역시 그 세대에 속해 있다.


유신정권 말기에 초등학교에 입학해 전두환·노태우의 쿠데타 정권 아래서 중·고등학교를 다녔다. 87년 민주화 항쟁을 지나 대학에 들어갔고, 민주주의의 태동과 함께 성년이 되었다. 86년 아시안게임과 88년 서울올림픽을 청소년기의 눈으로 지켜보았으며, ‘서른 즈음에’라는 노랫말을 곱씹을 새도 없이 2002년 월드컵의 열기 속에서 서른을 맞았다. 군 복무 시절 김일성 사망을 겪었고, 졸업 무렵에는 IMF 외환위기의 소용돌이 속에서 월 10만 원 교통비와 50만 원 정부 보조금 인턴으로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다.


교복을 한 번도 입어 보지 못한 세대였고(사립학교 재학생은 예외였지만), 살짝 한 펌이 허용되던 두발자율화의 마지막 풍경을 기억한다. 보습학원과 대학생 과외가 전면 금지된 사교육 금지세대였으며, 자율학습과 보충수업이 일상이던 교실에서 전교조 선생님들을 만나 버텨 보기도, 단체행동으로 처벌을 받기도 했다. 대학 입시 경쟁률은 살벌했고 재수·삼수의 경계는 흐릿했다. 일본식 학력고사와 미국식 수학능력시험을 모두 경험했고, 선 시험 후 지원과 선지원 후시험을 모두 치러 본 거의 유일한 세대이기도 하다.


X세대 광고. 예스24 제공


문화적으로는 개방과 물질, 기술의 급격한 팽창을 처음으로 체감한 주요 소비계층이었다. 성인 중심의 가요, 청년 중심의 포크와 록을 지나 본격적인 ‘대중가요의 시대’를 연 세대다. ‘별이 빛나는 밤에’ 같은 라디오 프로그램을 들었고, LP 유통을 주도하다 가격 폭등의 곤욕도 함께 치렀다.


팝과 가요가 공존하던 무게 중심을 가요 쪽으로 이동시킨 세대였고, 발라드와 댄스라는 두 축을 소비의 중심에 세웠다. ‘유재하’와 ‘어떤날’을 가슴에 묻은 채 ‘서태지’를 받아들였다. 프로 스포츠의 태동기를 어린이 팬으로 함께 시작했고, 올림픽과 월드컵을 가장 순수한 감각으로 맞이한 세대이기도 하다. 비디오 시장의 핵심 고객에서 출발해 한국영화의 르네상스를 떠받쳤고, 공연이 하나의 문화상품이 될 수 있음을 몸으로 증명했다.


중·고등학생 시절에는 워크맨의 최대 사용자였고, 성인이 되며 삐삐와 모바일폰의 얼리 어댑터가 되었다. 손글씨 리포트에서 워드프로세서 출력물로 넘어가는 과도기를 통과했고, PC통신에서 인터넷 태동기까지 정보통신 기술의 출발을 함께했다. 오늘날 한국 IT 산업 관리자층의 상당수를 차지하며 그 영욕을 고스란히 겪어 온 세대이기도 하다. 해외여행 자율화 이후 어학연수와 배낭여행의 선봉에 섰고, 주 5일 근무 시대에는 레저·여가의 주요 소비층으로 자리했다.


그러나 하룻밤 사이 세상이 바뀌던 시기에, 정작 우리는 경쟁에 치여 물질적 호황을 체감하기 어려웠다. 드센 선배 세대에 눌려 수는 많았으되 쉽게 대들지 못했다. X86세대에게는 속물이라 손가락질받았고, 단물은 그들이 가져가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다. 시간이 흐르자 정치권에서는 ‘잡은 고기’ 취급을 받았고, 더 빠르게 규정되는 다음 세대 담론에 밀려 ‘젊은 꼰대’라는 이름으로 호출된다. 어렵게 축적한 경험마저 “라떼-”라는 말 한마디로 일반화되어 폄하되는 수모도 감내하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여전히 이 사회의 들보처럼 버티고 있다. 시스템이 굴러가기 위해 필요한 리소스로서의 역할을 묵묵히 수행한다. 소득 대비 조세 부담이 가장 크면서도, 아이러니하게 조세 저항은 가장 적다. 그러나 목소리는 크지 않다. 언제 또 세상이 급변할지, 그 변화 속에서 ‘나’의 가치가 손쉽게 지워질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015B는 현재 진행형. 더공일오비 제공


어쩌면 그래서 이 사회 역시 우리 세대에게 기회와 배려를 잊어버린 듯하다. ‘87년 체제’의 주역으로 불리는 선배들은 우리를 효율 좋은 자원으로 활용하려 하고, 후배 세대는 설명하기 애매한 우리를 건너뛰어 윗세대와 직접 소통한다. 우리는 스스로의 소극성과 더불어, 위아래 모두에게서 비켜 서게 된 세대가 되었다.


그렇기에 우리는 변화의 물살 한가운데 놓여 있었다. 이 격변은 우리에게 탁월한 적응력을 남겼지만, 동시에 무한경쟁 속에서 강한 개인주의적 세계관을 새겨 넣었다. 그런 나에게 위로와 응원을 건네며 함께 늙어 간 음악, 바로 ‘015B’의 음악이었다.


포크록에서 헤비메탈까지 록의 스펙트럼을 품고, 일렉트로닉과 인더스트리얼, 테크노와 재즈를 오간다. 조용필과 나미에 대한 헌정으로 세미트롯과 컨템포러리 팝까지 끌어안는다. 시대를 타지 않는 데이비드 포스터식 발라드 편곡을 빼놓는다면 섭섭할 정도다. 모든 것을 한다는 말은 때로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는 뜻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저것 다 할 수밖에 없었던 그 태도는, 내가 살아온 시간과 닮아 있다. 그렇게 ‘015B’의 음악은 우리, X세대의 사운드트랙으로 조용히 남아 있다.



하루를 기록하는 소리, 매일을 적는 음악


다음에 소개할 ‘어떤날’이 인생의 주름을 비추는 자화상이라면, ‘015B’의 음악은 하루도 거르지 않고 이어진 일기장에 더 가깝다. 한 장면을 압축해 응시하기보다, 지나간 하루하루를 빠짐없이 적어 내려간 기록. 서툴고 갑작스러웠던 시작은 곧 일상의 고단함과 삶의 과대망상을 자각하게 하는 노동요로 스며들었고, 그 리듬은 어느새 삶의 보폭에 맞춰 호흡하기 시작했다.


‘015B’의 음악은 사랑과 희망, 젊음과 좌절, 고뇌와 비판, 때로는 분노에 이르기까지를 하나의 태도로 정리하지 않는다. 감정을 과장해 드러내지도, 불편한 진실을 덜어내지도 않는다. 그저 그날의 온도와 습도, 마음의 결을 있는 그대로 남긴다. 그래서 이 노래들은 메시지를 전달하기보다 시간을 축적한다. 누군가를 설득하려 들지 않고, 삶이 남긴 흔적을 조용히 펼쳐 보인다.


015B 원년 멤버. 오마이뉴스 제공


그 기록의 힘은 바로 거기에 있다. 꾸며낸 서사나 결연한 선언이 아니라, 살아낸 시간의 밀도. 하루를 넘기고 또 하루를 건너오며 생긴 주름과 망설임, 반복과 체념까지가 음악 속에 고스란히 눌어붙어 있다. 듣는 이는 그 안에서 자신의 과거를 발견하고, 이미 지나온 오늘을 다시 떠올리게 된다.


아직도 쓰이고 있는 이 음악을, 조금 더 성실히 찾아 듣겠다는 작은 다짐을 남겨 본다. 그리고 그 시절의 노래들을 조심스레 권한다. 특별한 날이 아니라, 아무 일도 없었던 평범한 하루에. 바로 그런 날에 가장 또렷하게 울리는 음악이기 때문이다.


텅 빈 거리에서 (feat. 윤종신)


유리창 사이로 비치는 초라한 모습은
오늘도 변함없지만 오늘은 꼭 듣고만 싶어


공중전화라는 사물이 있었다.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기 위해 우리는 줄을 섰고, 전자식 이전의 세계에서 통화는 정확히 3분, 값은 20원이었다. 시간과 감정이 동전의 무게로 환산되던 시절. 빈 수화기를 들고 “너를 사랑해”라고 외쳐 보아도, 응답은 오지 않았다. 초라한 야원처럼 울린 목소리 뒤에 남는 것은 통화 불능으로 반환된 동전 두 개, 손바닥에 차갑게 굴러다니는 실패의 촉감뿐.


그때의 사랑과 이별은 지금보다 덜 연결된 관계망 속에 있었다. 호출음이 닿지 못한 거리만큼 마음은 더 애처로웠고, 기다림은 곧 관계의 증명이었다. 연락이 되지 않는 시간은 곧바로 상실의 예감으로 번졌고, 그 예감은 밤마다 공중전화 부스의 유리벽에 서리처럼 맺혔다.


20대 윤종신의 미성은 그 장면을 통과한다. 미간을 지나 정수를 찌르는 얇고 투명한 음색이, 당시의 공기를 다시 흔든다. 연결되지 못한 말들, 끝내 전달되지 않은 고백들, 그리고 동전 두 개가 남긴 침묵. 우리는 그 침묵 속에서 사랑을 배웠고, 이별을 연습했다. 말이 닿지 못한 자리에 남은 것은 기억뿐이었고, 그 기억은 지금도 여전히 울린다.


https://youtu.be/KF1FDZPthYI



너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 (feat. 장호일)


넌 이게 사랑일까 의심하지만
사랑이란 건 네가 생각하듯이
그렇게 어렵고 대단한 게 아냐
동화 속의 왕자님은 현실엔 없는 거야


당시 이 곡은 “랩인가, 내레이션인가”라는 논란을 달고 있었다. 장호일의 숨기기 어려운 대구 억양이 문장 사이사이에서 고스란히 배어 나오지만, 그 모든 흔들림을 포함해 기념비적인 음악으로 남았다. 멜로디보다 “가사”가 주인공이던 시대를 대변하듯, 노랫말은 노래한다기보다 또박또박 읽어 내려가듯 쏟아진다. 그 문장들 속에는 유행이 아니라 태도에 가까운 당시의 가치관이 담겨 있었다.


쿨한 척 떠난 연인에게 건네는 말 역시 그렇다. 사랑에는 자존심이 없으니, 마음 한구석을 단정히 정리하고 지금의 그에게 충실하라고 말한다. 상대를 향한 조언처럼 들리지만, 실은 자기 자신에게 되돌아오는 반사의 문장일지도 모른다. 감정은 언제나 타인을 경유해 자신에게 도착했으니까.


그리고 인트로의 코러스가 오래 맴돈다. 설명보다 앞서 귀에 남는 그 짧은 울림이, 이 노래가 끝내 잊히지 않는 이유처럼 공기 속에 떠 있다. 가사가 믿음이었고, 문장이 음악이던 시절의 잔향처럼.


https://youtu.be/NZ2jDx5oSTA?si=k4z7MI2GNwfyACHR



아주 오래된 연인들 (feat. 김태우)


저녁이 되면 의무감으로 전화를 하고
관심도 없는 서로의 일과를 묻고는 하지


“015B 노래의 으뜸 매력은 참신한 서정성”이라고 한동윤 평론가는 말했다. 이 짧은 문장은 ‘015B’ 음악의 중심을 정확히 짚는다. 소재는 대개 사랑이지만, 가사의 전개는 좀처럼 평범하거나 뻔한 길을 택하지 않는다. 익숙한 감정을 낯선 문장으로 비껴 서술하고, 결론을 서두르지 않은 채 여백을 남긴다. 그래서 이 노래들은 가볍게 흘려보내기 어렵고, 듣고 난 뒤에도 자꾸 되씹히게 된다.


무겁지도, 그렇다고 가볍지도 않은 이야기의 온도. 그 중간 지대에서 문장은 서정으로 기울고, 서정은 다시 사유로 접힌다. 단순한 비트의 전개임에도 몸이 절로 들썩이는 이유는, 그 리듬의 표면 아래 촌철살인의 문장이 숨겨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말은 많지 않은데, 정확히 아픈 지점을 찌른다. 그래서 이 음악은 귀보다 먼저 마음에 닿는다.


특히 도입부가 유난히 유명한 노래다. 몇 초의 시작만으로도 곡의 공기가 단번에 형성된다. 뮤직비디오에 정석원이 등장한다는 사실조차 하나의 기억 장치처럼 덧붙여진다. 그러나 결국 오래 남는 것은 화면이 아니라, 첫 문장처럼 시작된 그 서정의 리듬이다. 노래는 그렇게 시작에서 이미 자신을 설명해 버린다.


https://youtu.be/S_S0jKvsP50?si=s1Vl-HWXej3-amn1



4210301


우리를 감싸던 별빛마저
안타까이 멀리 떠나 버리고
짙은 안개와 흐린 물속에
우린 모두 사라지지


<4210301>이라는 제목은 전화번호다. 한때 잠실에 있던 ‘환경부(1991년 당시 환경처)’의 실제 대표번호. 노래의 문턱에서부터 이 곡은 사적인 감정이 아니라 공적인 신호임을 분명히 한다. 겉으로는 사랑 이야기처럼 들리지만, 가사가 향하는 곳은 명확하다. 이것은 연인의 부재가 아니라 환경의 소실을 말하는 노래다.


푸르렀던 날들은 이미 멀리 떠나가고, 탁한 소음과 진한 회색비 속에서 모든 것이 사라져 간다. 그 풍경은 이별의 이미지처럼 다가오지만, 실은 너의 야원처럼 들리는 자연의 경고다. 귀를 기울이지 않는 사이, 익숙했던 색과 숨결은 조용히 지워진다. 노래는 애써 비명을 높이지 않는다. 대신 사라져 가는 장면을 차분히 나열하며, 뒤를 너무 생각하지 않는 인류의 태도를 정면으로 비판한다.


이 문제의식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3집의 ‘적(敵) 녹색인생’에서 다시 한번 환경을 노래한다. 그러나 방식은 여전히 같다. 딱딱한 구호도, 몰아붙이는 설교도 없다. 비유와 서정으로 우회하며, 듣는 이로 하여금 스스로 생각하게 만든다. 그래서 이 노래들은 더 오래 남는다. 사랑의 언어를 빌려 세계의 균열을 말하고, 전화번호 하나로 시대의 책임을 호출한다. 연결되지 않으면 사라진다는 사실을,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https://youtu.be/qxSl4vtOuOk?si=XQ59L8EJQe8MVaPN


잠시 길을 잃다 (feat. 신보경)


잠시 길을 잃었어 어디로 가야 하는지
정말 알 수가 없어 난 늘 너란 길만 걸었으니까


살다 보면 잠시 길을 잃는 순간이 있다. 목적이 사라지거나, 공들여 세운 목표가 좌절되거나, 어떤 이유든 방향감각을 앗아가 버린다. 발은 서 있는데 마음의 나침반만 흔들리는 시간. 그 공백은 생각보다 깊다.


떠난 연인을 노래하는 곡이지만, ‘015B’의 이 후회송은 ‘사랑’이라는 한 단어로만 묶이기를 거부한다. 중의적 해석이 가능한 이유다. 사람은 이성만을 사랑하며 살지 않는다. 한 시절의 신념, 몸을 기울여 믿었던 일, 자신이라고 여겼던 역할들까지—사랑했던 모든 것의 상실이 남기는 난감함은 간단히 정리되지 않는다. 그 상실은 애도의 언어를 요구한다.


이 노래는 비탄을 과장하지 않는다. 아주 ‘잠시’ 길을 잃었을 뿐이라며 등을 다독인다. 잃어버림을 실패로 고정하지 않고, 방향을 다시 찾기 위한 과정으로 열어 둔다. 그래서 이 곡은 위로이자 응원이다. 돌아오라고 재촉하지 않고, 서두르지 말라고 말한다. 지금의 나에게도 정확히 그 자리에 놓이는 주제가다.


한때 실용음악과에서 실기 금지곡이었던 이유는 단순하다. 하도 많이 불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많이 불렸다는 사실은, 많은 사람이 같은 자리에서 같은 흔들림을 겪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길을 잃는 경험은 개인의 사연처럼 보이지만, 실은 세대의 공통 감각에 가깝다. 그래서 이 노래는 오래 살아남는다. 잠시 길을 잃은 사람들의 귀에, 언제든 다시 말을 걸 수 있도록.


https://youtu.be/04ORVIEa1zw?si=Mfr-wfBvoj_wo24l


※ 참고
• 『공일오비 스토리』, 정석원
• 『처음 음악을 시작하던 시절』, 신해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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