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돌아오는 노래들, 시간을 건너는 귀
지난 시간을 품은 음악을 불러오는 일은, 결국 ‘추억 여행’에 가깝다. 그 이상으로 의미를 부풀려 괜스레 오늘의 젊은 감각을 자극할 이유까지는 없겠다. 그저 그 음악은, 한때의 장소를 불러내고, 그 장소에 함께 머물렀던 누군가의 얼굴을 데려온다. 때로는 그 반대도 가능하다. 오래된 공간과 사람의 기억이 먼저 떠오르고, 그 기억이 마침내 하나의 음악을 귓가로 불러낸다. 우리는 흔히 ‘귓가에 맴돈다’고 말하지만, 실상은 머릿속 깊은 곳에 잠들어 있던 기억의 파편들이 조용히 깨어나는 순간에 더 가깝다. 음악은 그렇게 휴면 상태의 기억을 활성화하는 가장 정교한 스위치처럼 작동한다.
내 젊은 날의 음악들도 대개 그런 방식으로 찾아온다. 애써 불러낸 기억이 아니라, 어느 날 문득 스며든 멜로디와 가사에 발걸음을 멈추고 잠시 당황하다가, 이내 과거의 풍경 속으로 이끌려 들어가는 경험. 그 과정은 여전히 신비롭다. 의도하지 않았기에 더욱 선명하고, 준비하지 않았기에 더 깊다. 그렇게 소환된 음악들은 언제나 나를 그 시절의 공기 속으로 되돌려 보낸다.
지금까지 그 기억 속 음악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던 이유였다. <너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는, 아마도 그런 시간 속의 음악들 위에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얹은 작업이었을 것이다. 하나의 노래를 통해 시간과 공간, 그리고 그 안에 있었던 사람을 그려 보고, 그렇게 말로 전해진 음악이 다시 실제의 청취로 이어지는 상상. 이야기를 읽다 보면 결국 그 노래를 찾아 듣게 되는, 작고 기분 좋은 순환을 꿈꾸며 적어 내려갔다.
이제 한 단락을 매듭지으며, ‘내 인생의 뮤지션’을 소개하려 한다. 이 모든 기억의 출발점이자, 지금의 나를 여기까지 데려온 음악의 얼굴을.
고요가 기타를 가르치던 시절
8090 시대의 대중음악을 이야기하겠다고 마음먹는 순간, 챕터의 첫 문장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시작은 자연스럽게 '어떤날'이었다. 선택이라기보다 기억의 귀환에 가까웠다. 중학교 1학년에서 2학년으로 넘어가던 1985년과 1986년 사이의 겨울, 나는 기타를 처음 손에 쥐었다. 계기는 다소 뜬금없었다. 사춘기가 한창 깊어가던 어느 날, 모친이 중간고사 성적을 기말고사로 만회하면 원하는 것을 하나 사주겠다고 했다. 오래 고민하지도 않은 채 “기타!”라고 답했고, 그 한마디는 그대로 현실이 되었다.
당시 통기타라 불리던 어쿠스틱 기타는 철저히 ‘독학’의 영역에 속해 있었다. 기타를 배우기 위해 학원이나 교습에 돈을 쓰는 일은 거의 없던 시절이었다. 내게 기타 선생이라 부를 만한 존재는 기타를 사러 갈 때 동행해 주었던 앞집 사는 대학생 형의 두 시간 남짓한 설명, 그리고 대한민국 만인의 교본이라 불리던 『이정선의 기타 교실』이 전부였다. 마지막으로 남은 비기는 성당 지하 교리실이었다. 늘 그곳에 모여 있던, 노래 좀 한다는 한 학년 위 형들의 연주였다. 쉽게 가르쳐 줄 리 없었기에, 나는 그들의 손놀림을 눈으로 훔쳐 머릿속에 새긴 뒤 집으로 돌아왔다. 흐릿해지는 기억을 더듬어 채보하는 시간이 곧 레슨이자 자습이었다.
그 무렵, 기타 실력을 한 뼘쯤 끌어올려 준 음반을 만났다. 앨범 재킷에는 뮤지션의 얼굴 대신, 왼손으로 급히 써 내려간 듯한 크레파스 글씨만 남아 있었다. “어떤날 1, 1960. 1965”. 그것이 《어떤날 1집》이었다. 이 음반의 곡을 얼마나 정확히 채보하고 연주할 수 있는지가 은근한 ‘고수 인정’의 기준이 되곤 했다.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던 그 곡들은 연습실 없는 연습실에서 소년들의 밤을 길게 늘여 놓았다.
1986년, 스무 살 언저리의 청년 듀오 '어떤날'의 등장은 놀랄 만큼 조용했다. 방송 출연도, 라디오 소개도, 변변한 콘서트도 없었다. 그러나 그 고요함 자체가 하나의 사건이었다. 다섯 살 터울의 조동익과 이병우는 이전의 포크 듀오와는 전혀 다른 얼굴을 하고 있었다. 베이시스트이자 편곡자인 조동익, 언더그라운드에서 이미 이름난 기타의 천재 이병우. 그들은 가수인지, 세션인지, 작곡가인지 쉽게 구분되지 않는 존재로 등장해 잔잔하지만 분명한 충격을 남겼다.
<나뭇잎 사이로>, <제비꽃>으로 잘 알려진 포크 가객 조동진의 친동생 조동익은 기타리스트 이병우와 함께 프로젝트 그룹을 결성했고, 두 장의 정규 앨범을 남긴 뒤 조용히 사라졌다. 그러나 그들의 등장은 물론 퇴장마저도 대한민국 ‘대중음악의 르네상스’를 상징하는 장면으로 남았다. 장르 규정 자체를 무력화한 이 듀오의 음악은 이후 음악계 전반에 깊고 넓은 영향을 미쳤다. 김학선 평론가가 말했듯, 그들의 장르는 ‘고요한 울림’이자 ‘고요한 파장’이었다. 그 고요함은 시간이 흐르며 한국 대중음악의 작곡과 편곡, 사운드 미학의 큰 줄기를 이루었다. 그래서 ‘음악인들의 뮤지션’이라는 찬사가 그들에게 따라붙는 일은 자연스러웠다.
유희열은 무인도에 간다면 가져갈 음반으로 '어떤날'의 1집과 2집을 꼽았다고 말한 바 있다. 김현철 역시 음악을 하기로 마음먹은 계기가 '어떤날'의 앨범이었음을 여러 차례 밝혔다. 데뷔 직후 직접 부탁해 《어떤날 2집》에 키보디스트 세션으로 참여했다는 일화는 이제 음악계에서 잘 알려진 이야기다. 한국 대중음악의 질적·양적 분기점을 이야기할 때, 유재하와 함께 언제나 언급되는 이름이 바로 '어떤날'이다. 일상의 시어를 가사로 끌어오고, 편곡과 리코딩이라는 후반 작업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렸으며, 꽉 채우지 않아도 충분히 감동할 수 있다는 음악적 태도를 증명해 보였다. 그것은 후배 뮤지션들에게 명확한 이정표가 되었다.
1980년대는 가난과 결핍을 벗어나던 도약의 시기였고, 그만큼 청춘의 마음은 늘 불안했다. 길고 긴 겨울밤처럼 이어지던 그 불안의 시간 속에서 '어떤날'의 존재는 유난히 특별했다. 그들은 자신들이 듣고 자라온 퓨전 재즈, 포크, 록을 기묘할 만큼 고르게 섞어 담았다. 그래서 '어떤날'의 음악을 하나의 장르로 설명하는 일은 언제나 곤란하다. 영화에서 봉준호의 장르가 무엇이냐고 단답을 요구하는 것과 비슷하다. 모든 장르를 품고 있으면서도, 동시에 어떤 장르도 아닌 상태. 그것이 '어떤날'의 음악이었다.
“차라리 조금 억지스럽게 말한다면 그들의 장르는 ‘고요한 전율’이나 ‘고요한 파장’ 같은 것들이었다. 그들은 사춘기 소년 같은 감수성으로 ‘창밖에 빗소리에도 잠을 못 이루는 너, 그렇게 여린 가슴’이라 노래하기도 하고, ‘너무 아쉬워하지 마, 기억 속에 희미해진 많은 꿈’이라며 조용조용 위로해주기도 하지만, 그 조용한 소곤거림 속에는 말로는 쉽게 설명할 수 없는 어떤 힘 같은 것들이 담겨있었다.”
― 평론가 김학선 ―
이전의 음악이 ‘노래’ 자체에 중심을 두었다면, '어떤날'의 음악은 곡 전체가 의미로 가득 차 있었다. 상투적이지 않으면서도 일상의 언어와는 다른, 모더니즘적인 시어들이 모든 소절을 채웠다. 작고 낮게 믹싱된 보컬 속에서도 가사는 긴 밤을 건너던 젊은 영혼들의 가슴을 또렷이 두드렸다. 기타가 중심을 잡되, 다양한 음률이 곡의 결을 이끌며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조응을 만들어 냈다. 기승전결이 분명한 상승 구조 없이도, 마음속 어딘가를 쥐었다 놓는 그들의 음악은 어느새 대중의 입에서 입으로 조용히 퍼져 나갔다. 고요했기에 오래 남았고, 적게 말했기에 더 많은 이야기를 품은 음악이었다.
고요 이후에 남은 이름들
이 듀오가 전설이 된 이유를, 공연 한 번 없고 방송 출연 한 번 없었던 신비주의로만 설명할 수는 없다. 1989년 2집을 남기고 조용히 해체한 이후, 그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충분한 준비를 마친 뒤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침묵은 공백이 아니라 도약의 시간이었고, 해체는 끝이 아니라 분화였다.
미소년의 미성으로 햇살이 유난히 따갑던 날과, 빗줄기가 유독 슬프게 쏟아지던 날을 노래하던 조동익은 어느새 ‘편곡의 마스터’로 불리게 되었다. 1990년대 한국 대중음악을 돌아보면, 그의 손을 거친 음악과 그렇지 않은 음악으로 나눌 수 있다는 말이 과장이 아니게 느껴진다. 그는 형 조동진과 함께 ‘하나음악’이라는 기획 레이블을 만들고, 수많은 명반을 세상에 내놓았다. 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에는 그가 뮤지션으로 발표한 앨범 세 장, 곧 《어떤날 1집》, 《어떤날 2집》, 《조동익 1집》이 모두 이름을 올리고 있다. 더 나아가 그가 프로듀싱하거나 세션으로 참여한 《장필순 5집·6집》, 《안치환 4집》, 《김현철 1집》, 《우리 노래전시회 1집》, 《시인과 촌장 3집》, 《김광석 4집》과 《다시 부르기 2》 또한 같은 목록에 포함되어 있다.
형과 동생이 함께 다락방에 있던 낡은 턴테이블 전축을 틀어 놓고 놀며 자라던 시간, 그들은 어린 시절부터 ‘음악’이라는 세례를 받은 셈이었다. 그 축적의 결과는 생각보다 훨씬 단단했다. 오랜 시간이 흐른 뒤, 아내 정필순의 응원 속에서 제주에서 음악을 이어가던 그의 말년 또한, 과장 없이 담담했던 그의 목소리를 닮아 있다.
기타리스트 이병우는 개인적으로 늘 마음에 남는, 조금은 아픈 손가락 같은 뮤지션이다. 한때 그의 기타를 들으며 기타리스트를 꿈꾸기도 했고, 결국 꿈을 접고 사회인이 된 뒤에는 일부러 그의 기타 가게를 찾아가기도 했다. 그의 기타 소리는 묘하게도 그의 몽환적이고 낮은, 그러나 여린 음성과 닮아 있다. 1집 <너무 아쉬워하지 마>에서 들려준 퓨전 기타의 선율, <하늘>에 담긴 청아한 수줍음, 그리고 <그날>에서 터져 나오는 하드한 디스토션의 폭주까지. 그 안에는 기쁨과 망설임, 분노와 체념 같은 인간의 일상적인 감정들이 고스란히 들어 있다.
그룹 이름처럼, 이병우는 '어떤날' 활동을 멈춘 뒤 갑자기 오스트리아로 떠났다. 이후 전해진 소식은 많은 이들을 놀라게 했다. 빈 국립음악대학에 진학해 클래식 기타를 전공하고 수석으로 졸업한 것이다. 이어 미국 존스홉킨즈대학 피바디 음악원에서 전문 기타 연주자 과정을 마친 그는, 1998년 예일 콩쿠르에서 클래식 기타 연주자로는 처음 우승하는 기록을 세웠다. 그리고 연주곡만 담은 솔로 1집 《내가 그린 기린 그림은-항해》를 발표하며 다시 한 번 음악계에 충격을 던졌다. 그 앨범에 실린 <새>는 전설적인 어쿠스틱 독주곡이 되었고, ‘기타-신시사이저’를 활용한 곡들은 기타리스트의 입장에서 보면 괜스레 국적을 자랑하고 싶어질 만큼 인상적이었다.
이후 그는 영화음악가의 길로 들어섰다. 1996년 영화 <그들만의 세상>을 시작으로 <마리이야기>, <장화, 홍련>, <스캔들 - 조선남녀상열지사>, <왕의 남자>, <호로비츠를 위하여>, <괴물>, <그놈 목소리>, <놈놈놈>, <마더>, <해운대>, <국제시장>에 이르기까지, 대중에게 익숙한 수많은 영화의 음악을 총괄했다. 폭넓은 스펙트럼을 바탕으로 한 그의 크로스오버 음악은 그렇게 대중문화 곳곳에 스며들었다. 또한 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 80위로 선정된 양희은의 데뷔 20주년 기념 앨범 《양희은 1991》을 프로듀싱했는데, 타이틀곡은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였다. 훗날 아이유의 리메이크로 다시 주목받은 <가을 아침> 역시 그의 곡이다.
2013년, 그는 평창동계스페셜올림픽 개·폐막식의 예술감독을 맡았다. 그러나 이 선택은 뜻밖의 파장을 불러왔다. 성신여자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던 시기에 나경원 의원 딸 김 모 양의 부정입학 의혹과 관련된 논란이 불거진 것이다. 나경원 의원의 딸은 다운증후군 장애를 지닌 것으로 알려져 있고, 이와 맞물려 스페셜올림픽 위원회 운영을 둘러싼 여러 오해와 의혹이 제기되었다. 그 이후, 플레이리스트에서 그의 음악을 찾아 듣는 일이 한동안 망설여졌다. 음악이 무슨 죄가 있겠느냐고 스스로에게 되묻다가도, 한때 추앙하던 그 음악 위로 잡념이 겹겹이 덧씌워져 선뜻 귀를 기울이기 어려웠다. 고요하게 남아 있던 음악조차, 그렇게 쉽게 고요로 돌아가지 못하는 시간이 있었다.
길고 긴 겨울밤을 건너온 음악
인생의 음악을 이야기하라면, 나는 망설임 없이 '어떤날'을 떠올린다. 선택이라기보다 고백에 가깝다. 그들의 노래 <그런 날에는> 속 가사처럼, 내 삶에도 분명 “길고 긴 겨울밤” 같은 시절이 있었다. 마음도 몸도 제 뜻대로 움직이지 않던 시간, 억울하다는 말조차 스스로에게 허락하지 못하던 날들이었다. 그 시절을 견디게 해 준 거의 유일한 위안이, 다름 아닌 '어떤날'의 선율이었다.
음악은 언제나 현실을 바꾸지는 못한다. 그러나 현실을 견디는 방식을 바꾸어 놓을 수는 있다. 나는 종종 눈을 감고 머릿속에 기타 지판을 그렸다. 손가락이 닿을 프렛을 상상하고, 코드의 진행을 따라 음 하나하나를 마음속으로 연주했다. 실제로 기타를 치고 있지 않아도, 그 상상만으로 밤은 조금 짧아졌다. 그렇게 음악은 소리가 아니라 풍경이 되었고, 그 풍경은 다시 숨 쉴 틈을 만들어 주었다.
그 상상의 한가운데에서 나는 “초록색 웃음”을 발견하곤 했다. 완전히 사라진 줄 알았던 생기의 색, 아직 남아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위로가 되었던 감정. “내 마음속에도 따뜻한 바람”이 불고 있다는 것을, 그들의 음악은 조용히 일러주었다. 대단한 격려의 말도, 노골적인 희망의 선언도 없었다. 다만 지나치게 크지 않은 소리로, 그러나 끝내 사라지지 않는 온도로 곁에 머물러 주었을 뿐이다.
돌이켜보면, 그 시절의 나는 음악을 ‘듣고’ 있었다기보다 음악 ‘안에’ 머물러 있었다. 노래는 배경이 아니라 공간이었고, 그 공간은 현실에서 잠시 물러나 숨을 고를 수 있는 유일한 방이었다. 그렇게 '어떤날'의 음악은 나에게 추억이 되기 이전에 생존의 기술이었고, 감정의 피난처였다.
그로부터 40년이 흘렀다. 세월은 많은 것을 바꾸었지만, 그들의 음악이 내 가슴에 남긴 결은 좀처럼 닳지 않았다. 이제 그 긴 시간 속에서, 추리고 또 추린 다섯 곡을 조심스럽게 꺼내 보려 한다. 수많은 노래 중에서 단 다섯 곡만을 고른다는 일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그만큼 많은 순간들이 그 음악들과 얽혀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가장 대중적으로 사랑받은 2집의 <출발>이 이 목록에서 빠졌다는 사실은 나 스스로에게도 작은 놀라움으로 남는다. 그러나 이 선택은 인기나 대표성을 따지기보다는, 나의 시간과 가장 깊게 맞닿아 있던 노래들을 향한 것이었다. 다시 말해, 이 다섯 곡은 ‘어떤날의 명곡’이라기보다, 내 삶의 특정한 순간들을 조용히 붙들어 주었던 노래들이다.
이제부터 나누려는 음악들은 설명을 요구하지 않는다. 다만, 한때의 밤과 마음을 통과해 온 흔적으로서, 조용히 귀를 기울여 주기를 바랄 뿐이다. 음악은 그렇게, 오래 지난 뒤에도 여전히 현재형으로 남아 있다.
너무 아쉬워하지 마
너무 아쉬워 하지마
기억속에 희미해진 많은 꿈
우리의 지친 마음으론
그 전부를 잡을순 없잖아 없잖아
B면의 첫 곡 <너무 아쉬워하지 마>는 분명 위로의 노래다. 그러나 이 노래는 흔히 말하는 위로의 문법을 따르지 않는다. 애써 힘을 내라거나, 괜찮아질 거라고 다독이지도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깝다. 애쓰지 말라고, 억지로 붙잡지 말라고, 그냥 그대로 두라고 말한다. “길 모퉁이 조그만 화랑에 걸려 있던 그 그림처럼, 여행길에 차창 밖으로 스치던 풍경처럼”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것들은 애써 의미를 붙이지 않아도 이미 충분하다는 듯이.
이 노래가 건네는 위로는 행동을 요구하지 않는다. 무엇을 극복하라고도, 어디로 나아가라고도 말하지 않는다. 다만 지나간 것들을 억지로 끌어오지 말고, 그렇다고 서둘러 밀어내지도 말라고 조용히 일러준다. 삶이란 결국 그런 기억들의 집합이며, 그 기억을 있는 그대로 두는 일 또한 하나의 선택이라는 태도. 그 태도가 이 노래의 가장 큰 힘이다.
묘한 것은, 그렇게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 위로의 끝에서 오히려 힘을 얻게 된다는 점이다. 울컥하는 감정도, 갑작스러운 결심도 없다. 다만 마음 한구석이 정돈되는 느낌, 숨이 조금 깊어지는 감각이 남는다. 그 고요한 정리 덕분에 나는 기타를 다시 잡았다. 무엇을 이루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소리를 따라가 보기 위해서였다.
<너무 아쉬워하지 마>의 첫 서주를 채보하는 데에는 꼬박 한 달이 걸렸다. 단순해 보이지만 결코 단순하지 않은 전개, 음과 음 사이에 숨겨진 여백을 이해하는 데 시간이 필요했다. 급하게 따라 치면 곡은 무너졌고, 서두르지 않을 때에야 비로소 소리가 자리를 찾았다. 지금도 이 곡은 처음부터 끝까지 연주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노래 중 하나로 남아 있다. 기술적인 숙련 때문이라기보다, 이 곡이 요구하는 태도를 이미 몸으로 기억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 노래를 들을 때면 언제나 볼륨을 조금 높인다. 기타의 한 음, 한 음을 또렷하게 듣기 위해서다. 그 소리들은 앞서 나서지 않고, 서로를 밀치지 않는다.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 채, 제 몫의 자리에서 울린다. 그래서 이 음악은 위로를 ‘준다’기보다, 위로가 가능해지는 상태로 나를 데려다 놓는다.
<너무 아쉬워하지 마>는 말한다. 사라진 것들을 붙잡지 않아도 괜찮다고. 남아 있는 기억을 억지로 해석하지 않아도 된다고. 그리고 그 말을 끝까지 듣고 나면, 이상하게도 손은 다시 기타로 향한다. 무언가를 증명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살아 있다는 감각을 확인하기 위해서. 이 노래는 그렇게, 조용한 위로로 오래 남는다.
취중독백
제법 붙은 뱃살과 번쩍이는 망토로
누런 이를 쑤시는 나의 고향 서울
나는 여전히 '어떤날'의 1집을 2집보다 더 자주, 더 깊이 꺼내 듣는다. 2집이 나쁘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그 앨범은 조금 더 힘이 들어간 음악처럼 느껴진다. 사운드는 풍성해졌고, 구조는 단단해졌지만, 그 충만함이 오히려 거리감을 만들기도 했다. 감정이 곧장 닿기보다는, 한 겹의 장치를 통과해 도착하는 느낌. 어쩌면 그 풍성함 자체가 일종의 소격효과로 작용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집에서 단 하나를 꼽으라면 망설임 없이 <취중독백>이다. 이 곡에는 분명 1집의 여운이 남아 있다. 소리를 채우기보다 비워 두는 태도, 말하지 않는 방식으로 감정을 전하는 결. 무엇보다 이병우의 음성이 그렇다. 스산하고 몽환적인 그의 목소리는, 노래를 부른다기보다 혼잣말에 가깝다. 누군가를 설득하지도, 감정을 과시하지도 않는다. 그저 밤과 같은 톤으로, 자기 자신에게 말을 건다.
곡의 후반부로 접어들면 재즈 기타 솔로가 길게 이어진다. 8분이라는 러닝타임은 결코 짧지 않지만, 이상하게도 길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 시간 동안 기타는 서두르지 않고, 결론을 재촉하지도 않는다. 음과 음 사이에 머뭇거림이 있고, 그 머뭇거림 속에 감정의 결이 스며든다. 연주를 듣고 있노라면, 이 곡이 노래인지 연주곡인지, 혹은 그 중간 어딘지 쉽게 단정할 수 없게 된다.
가사는 서울을 고향으로 가진 한 사람의 노스탤지어를 담고 있다. 화려한 도시의 기억이 아니라, 밤의 골목과 흩어진 감정들, 쉽게 설명되지 않는 그리움의 결이 중심에 놓여 있다. 그 서정의 흐름 속에 삽입된 아리랑은 조금도 어색하지 않다. 오히려 너무 자연스러워서, 왜 이제야 이 선율이 등장했는지 고개를 갸웃하게 만든다. 개인의 기억과 집단의 기억이 겹쳐지는 순간, 이 곡은 단순한 독백을 넘어선다.
<취중독백>은 술에 대한 노래이지만, 동시에 술 없이도 취할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곡이기도 하다. 실제로 술을 마시지 않아도, 이 노래를 듣고 있으면 감각은 조금 느슨해지고, 생각은 한 박자 늦춰진다. 마음의 균형이 미세하게 흔들리는 그 상태. 아마도 우리가 흔히 말하는 ‘취기’란, 알코올이 아니라 이런 음악이 만들어 내는 감정의 결에 더 가까운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 곡은 2집 안에 있으면서도, 여전히 1집의 그림자 안에 서 있는 듯 보인다. 더 많이 말하려 하지 않고, 더 크게 울리려 하지 않으며, 다만 조용히 오래 남는 방식으로. <취중독백>은 '어떤날'의 음악이 어디에서 출발했고, 어디까지 갈 수 있었는지를 동시에 보여 주는, 묘한 중심점 같은 곡이다.
https://youtu.be/eYxMsJZ2pxs?si=VsOuHVt0l6oIIXDV
오래된 친구
내겐 아주 오래된 기타가 있지
내가 그를 찾으면
비틀 술 취한 목소리로 내게 다가와 나
한번 가보지 못한 뽀얀 세상 데리고 가지
자유가 쉽게 허락되지 않던 시절이 있었다. 청춘에 한 번, 그리고 중년에 다시 한 번. 몸보다 마음이 먼저 묶였고, 음악조차 마음대로 들을 수 없던 시간이었다. 그때 나는 입에 붙여 조용히 흥얼거리곤 했다. 큰 소리로 부를 수 없어도, 마음속에서는 끝까지 완주할 수 있었던 노래, <오래된 친구>였다.
이 노래는 마치 집에 두고 온 내 방 한구석을 떠올리게 하는 주문 같았다. 오래 비워 둔 책상, 창가에 걸린 빛의 각도, 아무도 없는 방 안에 남아 있던 체온 같은 것들. 노래를 따라 흥얼거리다 보면, 그 풍경들이 자연스럽게 되살아났다. 현실에서는 닿을 수 없었지만, 노래 안에서는 언제든 돌아갈 수 있었다.
<오래된 친구>의 보사노바 리듬은 흔히 기대하는 경쾌함과는 다르다. 몸을 들썩이게 하기보다는 마음을 낮게 가라앉힌다. 박자는 부드럽지만, 그 안에 깔린 정서는 애잔하다. 밝은 햇살보다 오후의 그늘에 가깝고, 웃음보다는 미처 다 말하지 못한 문장에 더 가까운 리듬이다. 그래서 이 곡은 듣는 이를 들뜨게 하지 않고, 조용히 앉혀 놓는다. 생각보다 깊은 감정의 자리에.
이 노래를 통해 처음 경험한 보사노바의 정서는 꽤 낯설었다. 리듬은 이국적인데, 감정은 유난히 한국적이었다. 신기하게도 그 이후 ‘빛과 소금’ 역시 동명의 보사노바 곡으로 기억되기 시작했다. 단순한 유행이나 우연이라기보다는, 이 리듬이 당시 우리의 정서와 묘하게 맞아떨어졌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경쾌함보다 절제, 해방보다 거리감이 필요했던 시절의 공기와.
<오래된 친구>를 들으면 지금은 멀어진 한 사람의 얼굴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한때는 절친이라 불리던 사이였고, 이 노래를 주거니 받거니 부르던 날들이 있었다. 특별한 약속도 없이, 그저 노래 한 곡으로 서로의 시간을 확인하던 순간들. 그때는 몰랐지만, 그 노래는 이미 ‘오래된’이라는 형용사를 예감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이 곡은 여전히 쉽지 않다. 듣고 나면 마음이 가벼워지기보다, 오히려 조금 무거워진다. 기억은 선명해지고, 거리는 더 또렷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니 그렇기 때문에 나는 이 노래를 놓지 못한다. <오래된 친구>는 자유를 잃었던 시절에 나를 붙들어 준 노래였고, 지금은 지나간 시간을 정직하게 마주하게 하는 노래다.
이 보사노바는 여전히 힘겹다. 그러나 그 힘겨움 속에서 나는 내가 어디에서 왔는지를, 누구와 함께 노래를 불렀는지를 잊지 않게 된다. 음악은 그렇게, 사라진 방과 멀어진 사람을 한꺼번에 불러오는 가장 조용한 방식으로 남아 있다.
그날
수 없이 다짐하고 또 허물어온
푸르른 꿈 위해
오늘도 조용히 일어나 혼자 걷는 너에게
나는 이렇게 부르지
저 파란 하늘 위에 나는 법을 배우는 작은 새
임재범의 <비상>은 대표적인 다짐의 노래다. 고백에 가까운 선언이고, 스스로에게 건네는 결의에 가깝다. 무너진 자리에서 다시 날아오를 수 있다고, 나는 아직 가능하다고 말하는 목소리. 그 다짐은 분명하고, 힘이 있다. 혼자서도 충분히 자신을 끌어올릴 수 있다는 믿음이 그 노래의 중심에 놓여 있다.
그러나 '어떤날'의 <그날>은 조금 다른 방향으로 손을 내민다. 이 노래 역시 다짐의 노래이지만, 혼잣말이 아니다. 곁에 누군가가 앉아 조용히 말을 건네는 방식이다. 괜찮다고, 서두르지 않아도 된다고, 함께 가보자고 말하는 동반의 다짐. 듣다 보면 어느 순간 깨닫게 된다. 그 동반자가 결국 내 곁의 타인이 아니라, 내 안에 오래 머물러 있던 또 하나의 ‘나’라는 사실을.
<그날>의 가사는 짧다. 할 말을 다 쏟아내지 않는다. 필요한 말만 남기고, 이내 멈춘다. 그 빈자리를 기타가 채운다. 노래가 끝났다고 생각하는 순간, 진짜 이야기가 시작되는 셈이다. 이병우의 기타는 이 곡에서 특히 인상적이다. 내가 그의 연주 중 가장 아끼는 대목이기도 하다. 처음에는 조심스럽다. 마치 상처를 건드리지 않으려는 손길처럼, 음 하나하나를 눌러 본다. 그러나 곡이 흐를수록 기타는 점점 숨을 고르고, 마침내 표효한다. 감정을 억누르던 시간이 끝났다는 신호처럼.
이 표효는 과장되지 않는다. 화려하지도 않다. 대신 깊고, 오래 남는다. 감기 걸린 듯 쥐어짜는 음색은 완벽하지 않아서 더 진실하게 들린다. 기술의 과시가 아니라, 버텨 온 시간의 흔적에 가깝다. 그래서 이 기타는 날개를 펼치기보다, 먼저 균형을 잡아 준다. 넘어지지 않도록,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그렇게 보면 <비상>과 <그날>은 서로 다른 위치에 서 있다. <비상>이 “날 수 있다”는 용기의 다짐이라면, <그날>은 “나는 법을 알려 줄게”라는 희망의 다짐이다. 하나는 결단의 순간에 울리고, 다른 하나는 긴 시간을 견뎌야 할 때 곁에 남는다. 높이 오르는 힘과, 오래 버티는 방법의 차이라고도 말할 수 있겠다.
그래서 나는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볼륨을 조금 더 높인다. 기타의 숨소리와 마찰음을 놓치고 싶지 않아서다. <그날>은 등을 떠미는 노래가 아니다. 대신 옆에 서서 속도를 맞춰 준다. 그리고 그 조용한 동행 끝에, 우리는 어느새 스스로 걷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이 노래가 가진 다짐은 그렇게, 크지 않지만 오래간다.
https://youtu.be/wRdg1nolUbA?si=t-A6rvIs5svzxuED
그런 날에는
길고 긴 겨울밤 그대의 한숨
오늘따라 창밖엔 아침이 더디오네
복잡한 이 마음을 텅비울수 있다면
좋은 시간들을 너와 많이 나눌텐데
한 편의 노래는 때로 한 편의 시가 된다. 노래가 멜로디를 내려놓고 언어의 밀도로만 남는 순간, 우리는 그것을 시라 부르지 않을 이유를 잃는다. 그런 생각 끝에 떠오르는 곡이 있다. ‘한국에 노벨문학상이 있다면’이라는 다소 싱거운 상상을 불러오는 노래, 어떤날의 <그런 날에는>이다.
이 곡은 정규 앨범이 아니라 《우리 노래 전시회》라는 옴니버스 프로젝트 앨범에 먼저 수록되었다가, 이후 어떤날의 2집에 다시 자리 잡았다. 소속과 형식의 경계를 한 번 건너온 노래라는 이력부터가 이 곡의 성격을 닮았다. 중심에 서기보다 옆으로 스며들고, 선언하기보다 조용히 곁에 머무는 방식.
“햇살이 아프도록 따가운 날”이라는 문장은 이 노래의 정조를 단번에 드러낸다. 특별한 사건도, 극적인 서사도 없다. 해가 가고, 비가 오고, 바람이 불고, 기차가 오가는 날. 누구의 기억에도 남지 않을 법한, 그래서 더욱 우리의 하루와 닮은 날들이다. 그러나 이 노래는 그 ‘그렇고 그런 날’을 가볍게 넘기지 않는다. 오히려 그 안에서 초록색 웃음을 찾으려 한다.
깨끗한 바람과 따뜻한 바람을 함께 안고 싶다는 소망은 거창하지 않다. 다만 오늘이 오늘로서 충분하기를 바라는 마음에 가깝다. 일상이 얼마나 위대한지, 살아 있다는 감각이 얼마나 많은 작은 장면들로 이루어져 있는지를 이 노래는 낮은 목소리로 일깨운다. 그래서 <그런 날에는>은 찬가라기보다 묵상에 가깝다. 환호 대신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노래다.
한때 아이디를 “초록색 웃음”으로 사용하던 일상주의자에게 이 곡은 주제곡이나 다름없었다. 특별해지기를 꿈꾸기보다, 평범함을 끝까지 살아내고 싶었던 마음. 그 마음을 대신 말해 주는 노래가 바로 <그런 날에는>이었다. 시간이 흘러도 이 노래가 여전히 마음 한편을 조용히 두드리는 이유도 아마 그 때문일 것이다. 아무 일도 없는 날이 사실은 가장 많은 것을 품고 있다는, 오래된 진실을 잊지 않게 해 주는 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