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 않는 버스를 기다리며

산다는 것, 기다리는 일

by 박 스테파노

1.

어느 볕 좋은 날 오전, 할머니 세 분이 벤치에 나란히 앉아 있다. 옆에는 버스정류장 표지판이 서 있고, 운행 시간표도 붙어 있다. 한 할머니가 조용히 말한다.


"집에 간다."


어디서나 볼 법한 정류장 풍경이다. 그러나 이곳에는 버스가 오지 않는다. 치매 노인을 위해 만든, 이른바 '가짜 정류장'이기 때문이다.


'오지 않는 버스를 기다리다.' 독일 공영방송 ZDF가 2019년 보도한 기사 제목이다. 이 정류장이 세워진 곳은 독일 서부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 두이스부르크 시의 발터 코르데스 요양원이다. 요양원의 자비네 프렌쉬-로테 치료사는 빠르게 진행되는 치매 환자들을 돌보기 위해 이 정류장을 만들었다고 설명한다.


치매 노인들은 종종 과거의 시간 속에서 살아간다. 대중교통을 타고 출퇴근하던 날들, 설레며 여행을 떠나던 기억들. 오래된 생활의 리듬이 몸속 깊이 새겨져 있다. 그래서 어떤 노인은 집에 가겠다며 길 모퉁이의 실제 정류장까지 달려가 버스를 타기도 했다. 많은 환자들이 마음속에서 어떤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고 느끼며, 불안에 쫓기듯 무언가를 서둘러 처리하려 한다는 것이다.


버스가 오지 않는 정류장. ZDF 제공


그때 가짜 정류장이 조용히 제 역할을 한다. 평생의 일상 속에 스며 있던 버스정류장은 그들에게 익숙한 쉼터가 된다. 버스를 기다리며 옆 사람과 몇 마디 말을 나누는 동안, 서두르던 마음이 서서히 가라앉는다. 자비네 프렌쉬-로테 치료사는 이렇게 말한다. "요양원 입주자들이 이곳에서 기분 전환을 하고, 새로운 자극을 받아서 돌아온다."


ZDF는 '가짜 버스 정류장'이 이미 여러 곳에서 검증된 개념이라고 전한다. 독일 알츠하이머 학회 역시 이 과정이 환자에게 평온을 되돌려 줄 가능성에 주목하며 연구를 이어가고 있다. 다만 정류장 하나로 모든 돌봄이 해결되지는 않는다. 다른 치료와 함께 이루어질 때 비로소 효과가 깊어진다. 프렌쉬-로테 치료사는 말한다. "버스 정류장은 수많은 돌봄 형태 중 하나이며, 전체 팀의 도움으로만 성공할 수 있다."


물론 비판도 있다. 환자들이 결국 이 정류장을 진짜라고 여기지 않을 것이며, 효과도 제한적이라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 발터 코르데스 요양원 측은 이 시설이 하나의 시도일 뿐이며, 무엇보다 환자들이 길을 잃지 않도록 돕는 장치라고 설명한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인다. 버스를 기다리는 그 잠깐의 시간이, 누군가에게는 세상과 이어지는 자리가 된다고. 사람에게 잠시 머물 자리를 내어 준다는 것, 그 의미를 가볍게 볼 수 없다고.



2.

서울 명일동 재래시장은 크지 않다. 장터의 소란도 오래 머물지 않는다. 아침의 분주함이 지나가면 골목은 금세 잠잠해진다. 그 시장 한쪽 골목길에 조금 묘한 집들이 있다. 네 개의 대문이 서로 맞닿은 집터. 사람들은 그곳을 "에덴동산"이라 부른다. 그 기묘한 집에서 사는 사람이 있다. 예순넷의 전경철 씨다.


그는 자폐성 장애를 지닌 아들을 홀로 키워 온 싱글 대디다. 아들이 일곱 살 무렵부터 혼자였다. 세월이 흘러 아들은 스물일곱의 청년이 됐다. 그러나 말을 전혀 하지 못하는 중증 자폐. 발달연령은 여전히 두 살 수준에 머물러 있다. 아버지의 도움 없이는 기본적인 일상조차 이어가기 어렵다. 몸만 자랐을 뿐, 삶의 시간은 어린아이의 자리에 머물러 있다.


'안녕, 피터팬'. 어제(26년 3월 12일) MBC 〈실화탐사대〉에서 공개된 사연의 제목이다. 자폐 스펙트럼 아들을 혼자 키우는 싱글 대디의 이야기다. 요즘은 가족사를 다루는 프로그램이 많다. 사연도 넘친다. 그래서 처음에는 익숙한 이야기처럼 들린다.


그러나 이 장면은 쉽게 지나가지 않는다. 지난 글들에서 밝혔듯이, 어린 시절부터 '느린 학습자'를 기억 속에 담고 살아왔기 때문이다. 비슷한 이야기라도 매번 다른 울림으로 다가온다.


전 씨는 스무 해 넘게 아들을 돌보며 그에게 '피터팬'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나이를 먹어도 어린아이에 머문 채 살아가는 아들을 바라보며, 마음의 무게를 조금 덜어 보려 붙인 별명이다.


아들의 하루는 반복행동으로 이어진다. 같은 움직임이 하루의 대부분을 채운다. 때로는 아버지를 향해 위험 행동을 보이기도 한다. 덩치 큰 성인의 몸으로 그런 행동이 나타날 때, 돌봄의 시간은 더 버거워진다. 그럼에도 전 씨는 지난 20년 동안 이 삶을 혼자 감당해 왔다.


https://youtu.be/klB8_VCX9Q8?si=bxxA4iMXj1CM-tA8



불행은 눈덩이처럼 굴러간다. 비탈길에서는 더 빨라진다. 지난해 4월, 전 씨는 청천벽력 같은 진단을 받았다. 간암 말기였다. 남은 시간은 단 6개월이라는 선고. 지금 그는 극심한 통증 속에서 마약성 진통제를 복용하며 하루하루를 견딘다. 그럼에도 시간을 넘어섰다. 시한부 6개월을 지나 어느덧 11개월째, 병과 싸우는 중이다.


그가 생의 끈을 놓지 않는 이유는 하나다. 자신이 떠난 뒤에도 아들을 돌봐 줄 장애인 장기거주 시설을 찾기 위해서다. 그러나 현실은 좁디 좁다. 성인 자폐인을 받아 주는 시설이 많지 않다. 전체 27만 명의 장애인 가운데 시설이 감당할 수 있는 인원은 모두 합쳐도 3만 명 남짓이다.


더 어려운 이유도 있다. 전 씨의 아들은 이전 시설 입소를 시도하는 과정에서 도전 행동을 보인 적이 있다. 그 기록은 또 하나의 벽이 된다. 받아 주겠다는 곳을 찾기가 쉽지 않다.


죽음을 눈앞에 둔 아버지는 오늘도 시간을 붙잡고 산다. 홀로 남겨질지 모를 아들을 위해 하루하루를 버틴다. 통증 속에서도 그의 마음은 한곳에 머문다. 아들이 머물 집을 찾는 일이다. 그러던 어느 날 전화 한 통이 걸려 왔다. 입소 면접을 보러 오라는 연락이었다. 이제 질문 하나만 남는다. 과연, 피터팬은 머물 곳을 찾을 수 있을까.


시한부 선고 이후 시작된 아버지의 목숨을 건 '시설 찾기'. 아들의 입소가 결정되지 않으면 아버지는 극단적인 결정을 할 수도 있는 처지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새삼 깨닫는다. 슬픔과 고통에는 진부함이 없다는 것을. 이 슬픔이 익숙하고 반복된다고 지겨울 수 있을까. 슬픔은 진부할 틈도 없이 빠르게 굴러온다.



3.

군 복무를 하는 동안 부모님은 잠실을 떠나 강남을 거쳐 일산으로 이사를 하셨다. 부친 사업의 연대보증 이후 찾아온 부도와 파산의 여파였다. 제대 뒤 학교로 돌아온 나는 일산에서 신촌까지 통학해야 했다. 그때 가장 현실적인 방법은 좌석버스였다. 편도 요금이 550원쯤 되었던 듯하다.


그 무렵 나는 나름의 고학생이었다. 방과 후에는 초·중·고 학생들을 가르쳤고, 틈이 나면 시급 아르바이트를 찾아다녔다. 그렇게 모은 돈으로 학비를 마련하고, 부친이 남긴 부채의 이자를 조금씩 갚아 나갔다. 아직 사회에 발을 딛지도 않은 나이였지만, 내 삶의 장부에는 이미 갚아야 할 숫자들이 적혀 있었다.


아르바이트비는 대개 월급처럼 한꺼번에 지급되었다. 그래서 매달 어김없이 보릿고개 같은 시간이 찾아왔다. 문제는 버스비가 완전히 바닥날 때였다. 그런 날에는 보통 두 가지 곤란한 상황이 생겼다. 학교까지는 왔지만 집으로 돌아갈 차비가 없는 날. 혹은 빈 껍데기에 소주 한 병을 나누며 마지막 동전을 탈탈 털어 쓰고 550원만 겨우 남겨 막차에 올랐다가, 종점 대화에서 기사님에게 흔들려 깨는 날이었다.


학교에서 빈털터리로 남겨진 날에는 차비를 한 푼 두 푼 얻어 모아야 했다. 그것도 여의치 않으면 친구라는 이름으로, 애인과 함께 사는 친구의 자취방 한쪽 구석에 몸을 웅크리고 하룻밤을 보내곤 했다. 반대로 막차를 타고 종점까지 가버린 날에는 선택지가 하나뿐이었다. 그냥 걸어서 일산 초입 장항동까지 가는 수밖에 없었다.


지금이야 그 일대가 아파트로 빽빽하지만, 그 시절 대화 버스 종점 주변은 인가도 상가도 거의 없는 변두리였다. 아주 운이 좋은 날이면 막차 기사님이 집 근처까지 태워 주기도 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밤은 그저 걸어야 했다.


이정표도 없고 방향도 희미한 취중의 시골길은 몹시 어둡고 음산했다. 길을 찾는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멀리 길게 이어진 가로등의 빛을 오른쪽에 두고 걷는 것. 그 불빛의 줄기는 분명 자유로였고, 그것을 오른쪽에 두고 걸으면 동쪽으로 향하게 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몇 시간을 걸어 새벽이 다 되어서야 집에 들어오던 밤들이 있었다. 이상하게도 그 몇 번의 밤이 아직도 또렷하게 기억 속에 남아 있다.


그래서 오래도록 나는 스무 살 무렵의 시간을 이렇게 떠올렸다. 죽어도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은 시절이었다고. 그런데 삼십 년이 흐른 지금, 그 시절을 돌아보면 딱 하나 간직하고 싶은 장면이 있다. 포기하지 않고, 걸어서라도 내 힘으로 집을 향해 가던 그 걸음이다.


1993년 550원의 밤. AI Sora


문득 생각한다. 지금 나는 어디를 걷고 있는 걸까.


아마도 바닥을 다시 딛고, 어느 능선쯤을 향해 천천히 올라가는 길의 초입 어딘가에 서 있는 것 아닐까. 그렇게 스스로 가늠해 본다.


사실 지난 몇 달 동안은 그 걸음을 멈추고 싶다는 생각이 여러 번 스쳤다. 550원도 없어 걸어야 했던 그 시절에도 떠올리지 않았던 '포기'를, 요즘 들어 문득문득 생각했던 것이다.


돌이켜 보면 지금의 사정은 분명 그때보다 낫다. 어제보다 오늘이 조금 낫고, 오늘보다 내일이 조금 더 나아지는 흐름 속에 있다. 그런데도 나는 그 상승의 길 위에서 꾸준한 걸음을 약속하기보다, 어느새 희미해진 신세 타령만 되풀이하고 있었다.


그래서 다시 생각해 본다. 그 밤들처럼, 가로등의 불빛 하나를 기준 삼아 묵묵히 걸어가면 되는 일 아닐까 하고.



4.

'버스(Bus)'라는 말의 뿌리는 라틴어 '옴니버스(Omnibus)'에 닿아 있다. 뜻은 단순하다. '모든 사람을 위한'. 이 이름에는 한때의 이상이 담겨 있었다. 버스는 태어날 때부터 계층과 경계를 넘나드는 이동의 약속이었다.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길을 품고 있었다.


그러나 현실의 풍경은 조금 다르다. 버스 노선은 줄어들고 배차 간격은 길어진다. '모두'라는 말은 서서히 빛을 잃는다.


복잡한 환승 체계 속에서 드러나는 적자 구조는 이 이상을 흔든다. 지하철에서 마을버스로 갈아탈 때, 마을버스 회사에 돌아오는 정산 금액이 고작 100원 수준이라는 보도는 그 단면을 보여 준다. 효율이라는 냉정한 계산 앞에서 '모든 사람을 위한' 가치가 얼마나 쉽게 밀려나는지 드러나는 대목이다.


그 여파는 도로 위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운전기사의 고단한 노동은 제대로 보상받지 못한다. 재정 지원은 줄어든다. 젊은 세대는 이 일을 외면한다. 결국 낡은 운전석을 지키는 이들은 대부분 60대 이상의 노년층이다. 도시의 이동을 떠받치는 노동은 그렇게 조용히 늙어 간다.


이 풍경 앞에서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개념이 있다. 프랑스 철학자 들뢰즈와 가타리가 말한 '리좀(Rhizome)'이다. 리좀은 위계질서가 아닌 수평적 연결망을 뜻한다. 하나의 중심에서 가지가 뻗어 나가는 나무와 달리, 땅속 줄기처럼 여러 방향으로 뻗으며 확장되는 구조다.


도시 역시 이와 닮아 있다. 수많은 버스 노선이 거미줄처럼 얽혀 서로를 이어 줄 때, 도시는 비로소 살아 움직인다. 한 노선이 다른 길과 만나고, 또 다른 길로 이어지며 사람들의 일상을 잇는다. 그때 공동체는 단순한 공간을 넘어 하나의 유기체가 된다.


하지만 이 연결망의 한 부분이 끊어지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리좀은 활력을 잃는다. 단절된 틈새로 고립의 바람이 스며든다. 이동의 길이 막히는 순간, 공동체의 결속 역시 느슨해진다. 버스는 그래서 단순한 교통수단이 아니다. 도시 곳곳을 잇는 수평적 연대를 눈에 보이게 드러내는 장치다.


버스는 지금도 길 위에서 살아 움직이는 하나의 리좀이다. 설령 오지 않는 버스일지라도, 마음속의 노선을 달리면서.



5.

오늘도 이른 아침 5시 50분에 740번 버스에 올랐다. 회차 지점을 유턴하여 들어오는 텅 빈 버스에 아내와 함께 올라, 지정석인 양 히터가 밑에 있는 자리에 앉았다. 키오스크만 맞이해 주는 이른 병원 로비에서 선수납을 하고, 채혈실에서 여러 통의 피를 뽑아냈다.


그리고 마주하는 짧은 평화의 시간. 병원 내 성당에 앉아 기도를 올렸다. 간구보다 감사가 앞서길 애써 노력했지만, 기도는 여전히 간절한 요청으로 끝났다. 그럼에도 앞세운 감사한 이름들을 다시 떠올리며, 7시에나 여는 1층 카페 앞에서 기다리며 이른 병원의 풍경을 두리번 살폈다. 커피 한 잔을 하며 스마트폰 앱에 뜨는 기본 혈액 수치를 확인했다. 환절기라 그런지 호산구가 올라 있고 염증 수치도 조금 상승했다. 백혈구와 적혈구는 다행스럽게 유지되고 있지만 혈소판은 여전히 절반 수준. 그럼에도 큰 이변이 없음에 감사한 마음을 보탰다.


수일이 지나야 유전자 검사 수치가 나오겠지만, 지금의 컨디션과 기본 검사 수치라면 괜찮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내게 완치라는 버스는 오지 않겠지만, 그래도 나는 희망이 찾아올 정류장에 앉아 삶을 기다린다.


다시 오르면 그만. AI Sora


'버스가 오지 않는 정류장' 보도는 7년 전 KBS가 전한 내용이다. 그런데 최근 어느 신문 칼럼에서 한 교수 신분의 기고자가 이 장면의 한국 적용 사례를 마치 새로운 이야기처럼 소개했다. 그 의도와 무성의를 떠나서, 다시금 이를 환기해 준 효과에 감사할 뿐이다. 비슷한 풍경은 2, 3년에 한 번씩 기사로 떠오른다. 잠시 사람들의 시선을 붙잡았다가, 다시 조용히 사라진다.


어쩌면 그 벤치에 앉은 노인들처럼, 우리도 가끔은 오지 않을 버스를 기다리며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는지 모른다.


그럼에도 시간이 지나도, 내가 550원도 없던 시절을 곁에서 알아봐 준 사람들이 있는 한, 나는 걸어갈 것이다. 오르막길을 또 만나겠지. 하지만 언젠가 저 위, 넓지는 않지만 더 이상 오를 곳 없는 그곳에서 우리 다시 만나지 않을까. 그때, 눈으로 웃고 마음으로 울면서 그대들에게 말하고 싶다.


"그대들 덕에
내 걸음 멈추지 않게 되어 참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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