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5년의 밤, 그 끝나지 않은 계보

폴 토마스 앤더슨의 수상소감과 뉴 할리우드의 기억

by 박 스테파노

2026년 3월 15일(현지 시각), 제98회 아카데미 시상식. 폴 토마스 앤더슨(PTA)이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2025)로 작품상을 수상했다. 무대 위에서 그가 꺼낸 말은 수상소감이라기보다 일종의 선언에 가까웠다.


"오늘 이 자리가 마치 1975년의 그 밤처럼 느껴진다."


그는 그해 작품상 후보에 올랐던 다섯 편을 차례로 불렀다. 수상작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밀로스 포먼), 그리고 <배리 린든>(스탠리 큐브릭), <뜨거운 오후>(시드니 루멧), <죠스>(스티븐 스필버그), <내슈빌>(로버트 알트만). 영화사에서 종종 "가장 완벽한 작품상 후보 리스트"로 불리는 목록이다. 예술성과 대중성, 감독의 개성이 서로를 밀어 올리던 시절. 할리우드가 산업이면서 동시에 창작의 실험장이었던 순간. 그는 담담하게 말했다.


"이 영화들 중 누가 더 나은지(Best)를 가릴 수는 없다. 그저 그날의 분위기(The mood of that day)가 무엇이었느냐에 따라 결정될 뿐이다."


겉으로는 경쟁 후보들을 향한 겸손처럼 들린다. 그러나 그 문장의 안쪽에는 다른 울림이 있다. 자신의 영화가 어디에서 왔는지, 어떤 전통 위에 서 있는지를 조용히 밝히는 정체성 선언. 그것은 오마주이자 계보의 확인이었다.


제98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의 폴 토마스 앤더슨. 뉴욕 타임즈 제공


PTA의 영화 세계는 실제로 그 목록 위에서 자라났다. 로버트 알트만의 <내슈빌>에서 펼쳐진 다층적 인물 구조는 훗날 <매그놀리아>와 <부기 나이트>의 서사적 뼈대가 되었다. 스탠리 큐브릭이 <배리 린든>에서 보여준 탐미적 영상미는 <팬텀 스레드>의 고요한 긴장 속에 다시 살아났다. 시드니 루멧이 인간의 욕망과 제도를 들여다보던 시선 역시 그의 초기작 곳곳에 흔적을 남겼다. 헐리우드에서 성우로 활동했던 부친 덕분에 촬영장과 스튜디오 주변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그에게, 그 감독들은 거장이기 전에 공기 같은 존재였다.


그래서 그가 1975년의 이름들을 호명한 순간, 그것은 단순한 헌사가 아니었다. 거대한 프랜차이즈와 자본이 지배하는 오늘날의 산업 속에서도 작가주의 영화(Auteurism Movie)의 맥이 끊기지 않았음을 확인하는 행위였다. 감독의 시선이 영화의 중심이던 시절, 스튜디오의 계산보다 창작자의 감각이 앞섰던 시대가 아직 유효하다는 선언.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기술은 변했지만, 인간을 관찰하는 카메라의 시선은 1975년이나 지금이나 변함없어야 한다."


AI와 거대한 시각효과(VFX)가 제작의 중심으로 떠오른 시대를 향한 조심스러운 경고였다. 기술은 확장될 수 있다. 그러나 카메라가 끝내 바라보아야 할 것은 인간의 얼굴이고, 인간의 목소리다.


화려한 시상식의 불빛 아래, 그의 짧은 연설은 하나의 질문으로 남았다. 1975년의 감독들이 품었던 용기와 자유, 그 집요한 시선을 지금의 영화는 여전히 간직하고 있는가. 어쩌면 그 밤의 가장 오래 지속될 장면은, 트로피가 아니라 바로 그 물음이었을지 모른다.



비디오 가게의 아이들, 고전을 다시 쓰는


'뉴 할리우드 키즈(New Hollywood Kids)'란 196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 후반까지 미국 영화계를 뒤흔든 '뉴 아메리칸 시네마(New American Cinema)'의 토양 위에서 자라난 1990년대 이후 감독 세대를 가리킨다. 단순한 취향의 계보가 아니다. 옛 영화를 사랑하는 팬의 감상을 넘어, 영화를 바라보는 철학과 연출의 문법을 직접 이어받은 세대라는 의미가 그 안에 담겨 있다. 그들은 과거를 추억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그 시대의 정신을 현재의 언어로 다시 말하려는 창작자들이다.


뉴 아메리칸 시네마를 이끈 1세대는 이미 하나의 전설로 남아 있다. <대부>(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1972)의 코폴라와 <죠스>(스티븐 스필버그, 1975)의 스필버그가 대표적이다. 정규 영화 교육을 받은 최초의 감독 세대, 이들은 종종 '무비 브랫(Movie Brats)'이라 불린다. 이론과 기술을 학교에서 익히고, 고전 영화의 역사 속에서 자신들의 언어를 찾았던 세대였다.


뉴 아메리칸 시네마 감독들, 왼쪽 부터 스티븐 스필버그, 마틴 스코세이지, 조지 루카스,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backstage 제공


폴 토마스 앤더슨이나 쿠엔틴 타란티노 같은 후배들은 다른 길을 걸었다. 학교 대신 비디오 대여점에서 영화를 배웠다. 수천 편의 VHS 테이프 사이를 오가며 장면을 되감고, 멈추고, 다시 이어 붙이며 스스로 문법을 익혔다. 그래서 이들을 '비디오 스토어 키즈'라고도 부른다. 이들에게 뉴 아메리칸 시네마는 넘어야 할 과거가 아니었다. 이미 고전으로 자리 잡은 세계였다. 그들은 그것을 부정하기보다, 그 안으로 들어가 다시 읽고 다시 쓰려 했다.


뉴 아메리칸 시네마의 중심에는 분명한 원칙이 있었다. 스튜디오의 통제에서 벗어난 감독의 전권이다.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아서 펜, 1967)가 보여준 파격은 그 변화를 상징하는 장면으로 남아 있다. 뉴 할리우드 키즈들은 이 태도를 자연스럽게 이어받았다. 대형 제작사의 자본을 쓰면서도 최종 편집권을 고수하고, 자신만의 시각적 스타일을 끝까지 밀어붙인다. 영화가 산업임을 알면서도, 그 안에서 창작자의 목소리를 포기하지 않는다. 폴 토마스 앤더슨이 시상식에서 1975년 후보작들을 호명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자본에 종속되지 않았던 그 시대의 태도, 작가주의가 지녔던 자유와 책임을 오늘의 영화 속에서 이어가겠다는 의지였다.


이 세대의 또 다른 특징은 형식에 대한 실험이다. 뉴 아메리칸 시네마가 남긴 유산 중 하나는 반영웅적 주인공과 파편화된 이야기 구조였다. 영웅이 세계를 구하는 대신, 불완전한 인간이 현실 속에서 흔들리는 모습. 뉴 할리우드 키즈들은 이 유산을 포스트모던한 감각으로 다시 조율했다. 특히 <내슈빌>이 보여준 다층적 앙상블 구조는 <부기 나이트>와 <매그놀리아>에서 새로운 호흡으로 되살아난다. 수많은 인물들이 서로의 삶을 스쳐 지나가며, 이야기는 하나의 중심을 향해 달리지 않는다. 장르의 경계를 넘나들고, 오래된 장면을 새로운 맥락 속에 배치하며, 과거의 형식을 현재의 감각으로 변주한다.


그래서 그들의 영화에는 언제나 두 개의 시간이 흐른다. 하나는 1970년대의 기억이고, 다른 하나는 동시대의 감각이다. 그 사이에서 뉴 할리우드의 정신은 사라지지 않고, 다른 모습으로 살아남는다.



시네마는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


제98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폴 토마스 앤더슨이 1975년의 이름들을 하나씩 불러냈을 때, 그 장면은 단순한 영화사적 회상이 아니었다. 오래된 거장들의 그림자가 무대 위로 다시 소환되는 순간, 찬란했던 작가주의의 시대가 오늘의 영화계를 비추는 거울처럼 떠올랐다. 그 거울은 2026년의 한국 영화계 앞에서도 조용히 멈춰 선다.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로 들어 올린 트로피가 할리우드 뉴 웨이브 정신의 생존을 알리는 신호라면, 지금 한국의 영화 생태계는 다른 풍경을 보여 준다. 'K-콘텐츠'라는 화려한 이름 아래 산업은 눈부시게 확장되었지만, 정작 시네마의 중심에서 들려와야 할 목소리는 점점 희미해지고 있다. <케이 팝 데몬 헌터스>(매기 강·크리스 아펠한스, 2025) 같은 하이 콘셉트 장르물이 전 세계 관객의 열광을 받는 동안, 국내 관객들은 묘한 인지부조화를 경험한다. 해외에서 신선한 발견으로 환호받는 요소들이 안방에서는 익숙한 공식의 반복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뉴 아메리칸 시네마가 등장했던 시대와 비교하면 이 대비는 더욱 또렷해진다. 그 운동의 핵심은 스튜디오의 통제를 넘어 감독의 전권을 확보하려는 시도였다. 2000년대 초반 봉준호, 박찬욱, 이창동이 등장했을 때만 해도 상황은 달랐다. 그들의 영화에서는 감독의 인장이 곧 장르였다. 한 장면만 보아도 누가 만든 영화인지 알아볼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 산업의 중심에 놓인 것은 창작자의 고집스러운 시선이 아니라 데이터와 알고리즘이 계산하는 리스크 관리다. 감독은 현장을 지휘하는 마에스트로라기보다, 투자사의 가이드라인을 정밀하게 실행하는 고숙련 기술자로 이해되기 시작했다.


가장 깊은 균열은 중저예산 영화의 사라짐에서 드러난다. 뉴 아메리칸 시네마가 꽃필 수 있었던 이유는 실험과 실패가 허용되는 중간 지대가 존재했기 때문이다. 지금 한국 영화 산업은 제작비 200억 원 이상의 대작과 5억 원 미만의 독립영화 사이에서 빠르게 양극화되고 있다. 그 넓은 영역이 사라질수록 새로운 감독이 등장할 통로 역시 좁아진다. 많은 젊은 감독들이 극장 대신 OTT 시리즈로 향하는 것은 그 결과다. 극장은 점점 검증된 프랜차이즈와 익숙한 기획물의 공간이 되고, 관객들은 자연스럽게 묻기 시작한다. 왜 굳이 극장에 가서 이 영화를 봐야 하는가.


이 질문은 산업의 위기가 아니라 영화라는 예술의 근원을 묻는 질문이기도 하다. 답을 찾기 위해서는 기술이 아니라 시선으로 돌아가야 한다. 창작자의 편집권을 보호하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고, 홀드백(Hold-back) 제도의 정착과 스크린 독과점 규제를 통해 다양한 목소리가 공존할 공간을 확보해야 한다. 알고리즘이 계산할 수 없는 걸작은 언제나 감독의 완고한 비전에서 탄생한다. 관객 역시 숫자의 환상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천만'이라는 마케팅 언어가 영화의 가치 전체를 설명할 수는 없다.


<왕과 사는 남자>가 주말 전체 상영 횟수 56%를 차지했으며, 프라임 타임대에 몰아서 상영했다. 천만 영화의 현실이다. 뉴시스 제공 사진


폴 토마스 앤더슨이 1975년을 언급한 것은 단순한 향수가 아니었다. 그가 떠올린 것은 영화가 자본의 부속물이 아니라 하나의 독립된 예술로 존중받던 시기였다. 토마스 핀천의 소설 『빈랜드(Vineland)』를 각색한 이 작품으로 첫 트로피를 거머쥔 그는 자녀들을 향한 말로 소감을 마무리했다.


"내 아이들에게 이 영화를 바친다.
우리가 이 세상에 남겨둔 '엉망진창인 골칫거리들(housekeeping mess)'에 대해 아이들 세대에 사과하기 위해 이 영화를 썼다.
하지만 동시에 아이들의 세대가 '상식과 품위(common sense and decency)'를 다시 가져올 것이라는 격려를 보내고 싶다."


시네마는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 다만 그것을 다시 살아 움직이게 만드는 힘은 데이터가 아니라, 인간의 욕망과 고통을 끝까지 응시하려는 용기에서 나온다. <케이 팝 데몬 헌터스>의 글로벌 성공을 축하하기 전에 우리가 먼저 던져야 할 질문은 하나다. 이 산업 속에서 영화는 여전히 창작자의 시선을 품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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