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룩소에 나눈 드라마들
한 해를 정리하면서 리스트를 적어 대던 시절이 제게도 있었습니다. 사회 초년 시절 한해의 마지막 날 가장 친한 친구와 포장마차에서 서로의 "참참참 베스트 3"을 읊어 대는 의식을 수년 반복하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그 포장마차는 유명한 멸치국수 맛집이 되었고, 절친은 친구의 리스트에서 사라진 지 제법 되었습니다.
올해는 얼룩소의 무언가로 매듭짓고 싶어 졌습니다. 그래서 얼룩소에서 이야기한 드라마를 꼽아 봅니다. 순서는 아무 의미 없는 의식의 흐름입니다. 그때의 생각들이 제법 나는 작업이었습니다. 링크 글은 제 글이 그러하듯 제법 기니, 시간이 되시면 눌러보시길.
2022년 드라마의 총평은 '정중동(靜中動)'이 아닐까 싶습니다. <오징어 게임>의 여파로 깊은 인상을 남기기가 힘들었던 한해였을 것입니다. 그 속에서 조용하고 잔잔한 울림의 여진이 제법 남는 작품들이 기억에 남습니다. 아마 많이들 보신 작품들 열거해 봅니다.
https://alook.so/posts/8WtadWd
'우리'가 성립되는 조건은 단지 '성원', '머릿수'가 아닐 것입니다. 가장 중요한 조건은 쌍방의 인지와 소통, 그리고 교감이겠지요. 이처럼 블루스 음악의 call & response는 그 필요하고 충분한 '우리'로 만들어 주는 형식이라 생각이 됩니다. 급전을 융통할 잔머리로 다시는 돌아오기 싫었던 가난한 시절의 고향을 찾은 한수(차승원)의 의뭉스러운 부름에도 진정한 친구란 이런 것이라며 은희(이정은)는 응대합니다. 길고 긴 시간 서로를 미워하던 둘만 남은 모자 지간 옥동(김혜자)과 동석(이병헌)도 마지막 여행 아닌 여행길에 부르고 대답하며 '우리'를 노래하듯 이야기합니다. 현대 대중음악의 근간이 되는 블루스는 음악의 장르를 넘어 사람들의 이야기가 되는 것이지요. -본문 중-
* 얼춘기 시절 얼룩소와 이별을 구했던 유치 찬란한 굿바이. 그리고 컴백.
https://alook.so/posts/Zkt65DG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는 이런저런 면에서 이상한 드라마입니다. 성공보다는 실패가, 행복보다는 불행이, 번쩍이는 순간보다는 무채색 나른함이 더 용납되곤 합니다. 왜 그럴까 생각해 보니, 제가 입에 늘 달고 살았던 인생관과 닮아 있습니다. 비루하고 참담하며 고단한 한 사람의 보잘것없는 평범한 일상이 겨우 겨우 버티고 있는 것은, 하루에 5분도 되지 않을 반짝 거리는 설렘과 행복감의 거대한 과대망상, 바로 인생이라는 놈을 지탱하는 것일 테니까요. 미정이 구 씨에게 건넨 이야기처럼 하루의 5분의 행복으로 살아지는 것이 삶이 아닐까요? 편의점 문을 대신 잡아 주는 학생에게 7초 설레고, 일요일인 줄 알았는데 토요일 아침이라 5초 설레고, 잘못 걸린 잔화에 기다린 소식인가 싶어 3초 설레고, 펼쳐 든 오늘의 운세에 10초 정도 설레는 행복. 그것이 모여 하루에 5분 행복해하는 삶. -본문 중-
* 구 씨는 떴는데 염미정은 왜 소식이 없을까?
https://alook.so/posts/a0t1Ga
상실에 대해서 여러 정의와 의견이 있겠지만, 상태의 설명으로 이야기하자면 불가항력 하고 복구 불가의 단절, 망실, 손해를 말할 것입니다. 친구와 가족, 이웃이 좀비가 되어 사실상 "사망 상태"가 되어 버리고, 집과 학교는 도시 통제를 위한 소개로 불타 없어집니다. 대학 진학을 위한 수능도 없어지고, 국가대표가 될 수 있는 대회도 열리지 않을 것입니다. 무엇보다, "의심"과 "불신"이라는 사회적인 전염병이 바이러스처럼 창궐되어, 더 이상 '믿을 곳'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게 됩니다. "상실의 시대"가 온 것입니다. 공포스러움을 넘어 무기력과 자포자기가 이어지는 무서운 "상실"이 퍼져 버린 것이지요. -본문 중-
* 좀비물의 창궐은 보수의 집권을 알린다지?
https://alook.so/posts/WLt79kD
다크 히어로들의 엄중함도 없다. 내려 먹는 커피는 무의미한 인생을 보내는 자기 혐오자들의 전유울이라 정색 빈정댄다. 평범의 일상을 조롱하기 일쑤이다. 알록달록 염색을 한 룸메와 작별하며 무지개를 볼 때마다 역하게 구토가 올라오면 기억하겠노라 뭉클(?)한 고백을 한다. 이들의 삶을 위협하는 것은 평범함의 강요이고 누군가 선 그어 놓은 범주화에 순응하라는 일반론뿐이다. 비범하다고 할 수 있는 이들의 괴팍함은 스스로 '자신'임을 증명하는 유일한 방패가 된다. 그들에게 평범은 뱀파이어에게 주는 마늘과 같은 것이다. -본문 중-
* 심혜진과 캐서린 제타 존스가 눈에 들면 최소 X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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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시리즈 <베터 콜 사울>은 본류 작인 <브레이킹 배드>의 등장인물 중 가장 매력 있는 캐릭터인 변호사 '사울 굿맨'의 이야기입니다. 스핀오프라고 생각 들지 않을 만큼 <브레이킹 배드>를 보지 않은 사람도 쉽게 이야기에 진입할 수 있고, 인물의 입체적인 캐릭터 설정과 사울 역의 밥 오든커크의 능청스럽고 치밀한 연기에 쉽게 놓지 못하는 작품이 되었습니다. 작품의 매력 포인트 한가운데에 "이야기"가 있습니다. '사울'이라는 인물의 개인사를 중심으로 제법 다채롭고 충분히 깊은 울림이 있습니다. -본문 중-
* 홍길동이 생각나는 슬픈 코미디.
https://alook.so/posts/E7taVea
드라마는 그런 주인공을 '완벽한 약자'로 묘사하지 않습니다. 그저 법정 드라마에 등장하는 미션 클리어, 퀘스트 달성의 주역 중 하나로 그려냅니다. 그녀가 가진 남다른 재능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난제에 빠진 송사를 풀어 갑니다. 그녀의 장애는 그저 남들과 다른 "특별한" 것이 되고, 그로 인해 타인들에게는 역차별이 아니냐는 묘한 물음을 던져 주기도 합니다. '장애'가 아닌 장애를 가진 '사람'이 주인공인 드라마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이지요. "이상함"이 "특별함"으로 변모되는 순간에 호응한다고 할까요. -본문 중-
* 앞 뒤가 똑같은 전화번호가 생각나면 아저씨.
https://alook.so/posts/dztXbrW
슈퍼 히어로는 분명 ‘비범’한 존재입니다. 그들의 등장에 ‘평범’한 우리들은 환호하고 열광합니다. 그들은 존경받고 사랑받으며 대우받습니다. 그러나 그 존경과 사랑과 대우가 그들만의 것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세상은 답답해집니다. 세상은 오해가 생기고 분열합니다. 그리고 비범한 그들은 우월한 능력이라는 것으로 권력을 잡고 지배하고 군림합니다. 특히 그 ‘비범’함이 절대적인 기준이 아니라 대중의 평가에 의해서 결정된 히어로는 그렇게 될 위험성이 더 커집니다. -본문 중-
* 소싯적 생각나다 이불킥 할 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