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천국(3)]웨이브 드라마 <약한 영웅: Class 1>
웹툰 원작인 '약한 영웅'이 웨이브를 통해 공개되었습니다. 웹툰 시작의 프리퀄로 다룬 Claas1은 후속 시리즈의 기대감을 주기에 충분한 반응을 얻고 있습니다. 웹툰으로 큰 성공을 거두고 있는 현재 연재 중인 스토리라는 잠에 걱정도 있었습니다. 웹툰 원작이 모두 성공을 거두지 않는다는 점과 '학교폭력'을 자극적으로 묘사한다는 반감이 존재합니다. 이렇듯 드라마 제작은 기획 초기 단계에서 기대와 우려를 한 몸에 받았기에 결과는 기대 이상으로 받아들여집니다.
이야기는 복잡한 인간관계가 설정되어 있지만, 플롯이 그리 복잡하지 않아 따라 잡기 수월한 드라마로 보입니다.
겉보기에는 연약해 보이는 상위 1% 모범생 연시은이 타고난 두뇌와 분석력으로 학교 안팎의 폭력에 대항해 가는 약한 소년의 강한 액션 성장 드라마 -드라마 <약한 영웅> 시놉시스-
제법 모범생인 시은(박지훈)은 친구가 없습니다. 그냥 꾸역꾸역 공부만 합니다. 국가대표 운동 감독인 아빠는 집을 비우기 일쑤이고, 잘 나가는 수학 강사 엄마는 이혼 후 떨어져 산지 오래입니다. 조용히 졸업하고 대학 가고 어서 독립한 성년만 기다리는 듯 하지요. 하지만, 일상이라는 것이 늘 심심하게 지나지 않는 법이지요.
어느 시대에나 존재하는 학교 내 문제적 존재들은 시은이 못마땅합니다. 힘 있는 부모를 둔 무리의 리더는 시은이 성적 앞자리에 있는 것이 못마땅하고, 그 똘마니들은 그 리더의 생각이 곧 행동 지령처럼 받아들입니다. 여러 가지 괴롭힘과 시은의 의지를 꺾으려는 꼼수들이 시도되지만 강단 있는 성격에 머리까지 좋은 시은을 제압하려다 되려 된통 당하고 맙니다.
그 과정에서 늘 뒷자리에 잠만 자던 전직 종합 격투기 유망주 수호(최현욱)와 국회의원이 이미지 워싱을 위해 공개 입양된 전학생 범석(홍경)이 시은과 의기투합을 하게 됩니다. 이들 삼총사의 평화도 잠시, 어떤 사건으로 수호의 집에 앉혀 살게 된 영이(이연)의 등장으로 이들 사이에는 풍파가 닥치고, 서로의 시기ㆍ질투ㆍ오해가 뒤엉킨 채 수호는 병상에 누워 버리고, 범석은 배반자가 되어 필리핀으로 도피 유학을 가게 되고, 시은은 형사 고발 대신 강제 전학이 되어 문제적 학생들의 마지막 종착지인 은장 고교로 전학을 가게 됩니다.
이야기는 이렇듯 하이틴 성장 드라마물의 전형을 보입니다. 다만, 아름답고 희망찬 꿈같은 이야기보다 답답하고 처참한 현실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드라마의 스토리 전개의 중심인 사건 전개는 예상을 조금도 벗어나지 않습니다. 약한 자들을 사냥감, 노예로 삼는 강자들의 세상이 학교 담장 내에 존재하고 있으며, 이 안에서 살아남는 법은 전적으로 존재를 보통의 무리에 숨기던지, 그들과 동화되는 것 밖에 없어 보입니다. 강자들의 폭거에 피해당하는 약자들은 절규하고 애써 도망치지만, 도와줄 사람도 피해 갈 구석도 마땅치 않습니다. 그들에겐 영웅이 필요한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 누구도 영웅을 자처하기란 쉽지 않은 세상입니다.
세상은 결국 '나'로 인해 '나'를 위해 존재한다고 여긴 지난 몇 년이 있었습니다. 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던지 그저 나와 관련된 것들만 괜찮으면 되었습니다. 왜냐면 나는 이 세상을 구하거나 아니 조금의 방향에 영향이라도 끼칠 수 없는 그냥 자그마한 평범한 사람이기 때문이었습니다.
나는 슈퍼히어로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평범'이라는 것이 지극히 소망이 되어 버린 세상의 루져였을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세상을 등지고 자신 내면의 감성에만 쫓아다니다 다시 철퍼덕 엎어지게 되었습니다. 삶이라는 게 일어나 달리는 순간보다 넘어져 자빠져 있는 시간이 더 길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지난 10년 전의 일기 글을 꺼내어 보았답니다. 세상은 여전히 그대로 아니 조금 뒤로 물러난 채로 그렇게 있었습니다. 세상이 제대로 가지 않는데 내 일상의 평범함이 어찌 담보될까요. 이렇듯 평범함을 추구하는 것은 쏟아지는 슈퍼히어로들의 서바이벌만큼이나 가열 찰 뿐입니다. 일상은 소중하지만 버겁습니다.
미국 코믹스의 영향이 아니더라도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추억의 한편에는 ‘슈퍼맨’이나 ‘배트맨’ 같은 슈퍼히어로에 대한 동경이 자리 잡고 있을 터입니다. 쫄쫄이 바지에 원색적인 팬티를 덧입은 채 망토를 걸치고 포마드 기름 한가득 쳐 바르신 영웅의 등장이나, 저걸 입고 뛰어다니기나 하겠나 싶은 시커멓고 육중한 가면에 방탄 슈트를 입은 갑부의 출동에 우리는 한때 열광하고 환호하고 했었지요.
어찌 보면 유치 찬란한 공상에다가 마초적 욕구의 표상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래도 ‘만 나이’와 ‘미국 나이’ 들먹여도 쉰을 넘어가는 내 나이에 가끔은, 아니 이따금, 어쩌면 빈번히 그들과의 조우를 기대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처럼 때때로 마음 한편 깊숙한 곳에서부터 이 갑갑한 세상에서 나를 번쩍 들어 올려줄 초인적 영웅을 기대하고 사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하지만 꼭 신축성 만땅의 쫄쫄이와 망토를 휘날리며 하늘을 날거나, 도로교통법에서 허락하지 않을 엄청난 스펙의 비이클을 타고 질주해야만 영웅은 아닐지도 모릅니다. 생각보다 쉽게 주변에서 우리는 수많은 슈퍼히어로를 만들어 내고 그들을 평가하고 때로는 그들의 신비스러운 망토를 벗기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비범(非凡)함’에 대한 동경은 원초적인 것이지요. 야생적인 것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성이 개입되기 이전의 본능적인 것입니다. ‘비범’하다는 단어의 뜻은 사전적인 의미로 ‘보통 수준보다 훨씬 뛰어나다’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반대말로 ‘평범’이라는 말이 배치되기도 합니다. ‘비범’함과 가까운 말은, 그 문장의 의미적 해석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비상’함, ‘특이’함, ‘불범’, ‘이륜’이라는 보다 좁은 의미의 단어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비범’함이라는 것은 평균적인 기대 이상의 성과나 능력을 나타내는 말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비범함의 기준이 될 평균적인 기대라는 것은 절대적이고 합리적인 것인가 하는 원초적인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 ‘비범’이라는 단어에 대한 단편적 고찰은 자칫 이 사회와 인류에 대한 심각한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어 위험한 일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혹 이 ‘비범’함을 ‘우수’, ‘양질’, ‘절대적 선’, ‘정답’, ‘이상’과 혼동되어 사용하는 해석의 오류는 사고와 행동의 왜곡을 불러올 수 있을 만큼 위태로운 선택인 것이 됩니다.
슈퍼 히어로는 분명 ‘비범’한 존재입니다. 그들의 등장에 ‘평범’한 우리들은 환호하고 열광합니다. 그들은 존경받고 사랑받으며 대우받습니다. 그러나 그 존경과 사랑과 대우가 그들만의 것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세상은 답답해집니다. 세상은 오해가 생기고 분열합니다. 그리고 비범한 그들은 우월한 능력이라는 것으로 권력을 잡고 지배하고 군림합니다. 특히 그 ‘비범’함이 절대적인 기준이 아니라 대중의 평가에 의해서 결정된 히어로는 그렇게 될 위험성이 더 커집니다.
영화 속의 히어로들도 번민하고 방황하고 일탈합니다. 비범한 능력을 가진 그들이지만 그들도 욕구에 쏠리는 인간적 본능을 지닌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혼자서 지구를 지키는 일에 지쳐 미모의 여기자와 가정을 이루려고 망토를 벗어던진 슈퍼맨도 그러했을 것이고, 복수와 정의 사이에서 번민하다가 오렌지 재벌로 살아가는 배트맨의 방황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자신의 본능에만 충실해하고 싶은 것을 다 하고 산다면 슈퍼 히어로는 존경과 사랑을 받을 이유가 없었을 것입니다. 결국 영화 속의 슈퍼 히어로는 정신을 차리고 악을 물리치고 곤경에 처한 이들을 구함으로써 이 지구의 평화를 지키게 되는 것이 사명이 되는 것이니까요.
그러나 드라마 <약한 영웅>의 히어로는 사뭇 다른 모습입니다. 가장 존재감 없어 보이는 교실 맨 앞자리의 안경잡이 같은 친구가 어느 날 비범함을 드러냅니다. 약한 존재로만 여기어지던 존재가 갑자기 영웅적 행동을 합니다. 위리의 약한 영웅은 영화 속의 슈퍼히어로와 다른 점이 무척이나 많습니다. 그들에게는 거창한 세계관이나 엄청난 결심이 깃들어 있지 않습니다.
드라마의 주인공들은 공명심이나 정의의 구현 따위는 크게 관심 없어 보입니다. 그저 약하게 자리 잡힌 자신의 위치를 역전시키기 위한 기점이 필요했고, 약한 존재로 영원히 인식될까 하는 두려움 때문입니다. 학교와 제도가 자신을 지켜 주지 못하기에 스스로의 자기 방어가 주변에 이득이 되었을 뿐인 것입니다. 그 이유가 어찌 되었든, 비범한 히어로는 세상 밖으로 나온 것이지요. 단 이 히어로들은 오늘도 살아남기 위해 서바이벌을 펼칠 뿐입니다.
이 세상은 나보다 비범한 사람들을 인정하고 그들의 헌신과 기여로 인해 발전합니다. 그들의 비범함은 그들보다 우월하지 못한 사람들의 선택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비범한 능력이 각각 개인의 본연적인 인성보다 우월하지는 않은 것입니다. 그들이 할 수 있는 영역에서의 헌신적 우월함에 우리는 투표도 하고 지지도하고 인정도 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때로는 정치인의 모습으로, 때로는 검찰과 경찰의 모습으로, 때로는 재벌과 기업인의 모습으로, 때로는 한류(인정하기 싫지만)를 이끌어 가는 아이돌의 모습으로, 그리고 가끔은 나 스스로의 모습으로 이 세상에서의 역할을 부여받는 것이겠지요. 그들이 지켜야 하는 것은 ‘우리’가 사는 지구이지 그들의 쫄쫄이 빤스와 망토가 아니겠지요.
“사람들은 영웅이 필요 없다고들 하지만,
아직도 내 귀에는 매일 영웅을 찾는
수많은 절규가 들려요.”
-영화 <슈퍼맨 리턴즈> 중-
영화 <슈퍼맨 리턴즈>에서 슈퍼맨은 그의 여자 로이스를 안고 비행을 하며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아직도 세상에는 수많은 절규들이 떠 돌고 있습니다. 사상 최고의 현금 보유와 초과이익을 낸 대기업의 그늘에는 정권의 비호와 분식회계라는 엄청난 비밀이 숨어 있고, 그로 인해 눈물을 멈추기 어려운 노동자들이 있습니다. 강원도 두메산골 장맛비에 시름시름 않아 누운 배추밭의 할머니도 있습니다.
코로나19 방역 완화로 어학연수에 해외로 바캉스 떠난 철없는 ‘요즘 세대’의 먼발치에는 보다 나은 내일을 기대하다가 제빵기 반죽기 안에서 생을 달리 한 청년도 있습니다. 등록금 비싸다고 칭얼대며 술 퍼 마시는 학생들 똥 휴지 치우는 화장실에서 먹고 주무시는 어머니들도 있습니다. ‘저마다의~’라는 다양함이 인지되고 관심받을 때, 우리는 주변에서 무수히 많은 ‘비범인’의 존재를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에겐 아직도 진정한 슈퍼 히어로의 ‘서바이벌’이 필요한 요즘입니다.
첨언)
이 글은 얼룩소 초기 포스팅한 <슈퍼 히어로의 서바이벌>의 상당 부분을 자기 인용, 재 사용하옜음을 밝힙니다.
https://alook.so/posts/mbtEx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