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체가 애매모호한 "가상"의 세계
연일 세상 속에는 새로운 기술과 그 개념들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블록체인, NFT, 메타버스 등 말이지요. 빅데이터도 이제 알까 말까 했는데, 쏙 들어가고 다시 외계어 같은 말들만 넘쳐 납니다. 그래도, 무언가 궁금하니 한번 들어다는 봐야 할 것 같은데, 엄두가 안나지요. 그럴 때는 단어의 사전적 의미부터 시작하면 좋습니다.
메타버스(Metaverse):
초월(beyond), 가상을 의미하는 meta와 세계를 의미하는 universe의 합성어로, 1992년 출간된 닐 스티븐슨의 SF소설 '스노 크래시' 속 가상 세계 명칭인 '메타버스'에서 유래. 요약하면 현실을 디지털 세상으로 확장시키는 것.
쉽게 말해서 가상세계 속에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활동을 할 수 있게 만드는 시스템. (하위 개념: 가상현실, 증강현실 등)
무언가 알 것은 같습니다. 몇 해 전 개봉한 영화 <레디 플레이 원(2018)>같은 영화나, 추억 속의 '싸이월드', '세컨드라이프'처럼 Y2K시대의 SNS의 조상들도 금세 떠 올리면 "대충" 감이 옵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이 들잖아요. "그래서, 뭔데? 돈이 어떻게 되는데?"
메타버스가 미래의 산업을 휘저을 '캐시 카우'가 될 것이라는 입장은 이러합니다. (나무 위키 참조)
컴퓨터와 콘솔게임으로 모니터를 보며 즐기던 2차원 게임 방식에서 3차원 체험형 가상현실, 증강현실, 혼합현실, 확장 현실로 형태가 급속도로 진화 중.
단순히 엔터테인먼트 분야에 국한되지 않고 일선 기업과 산업 현장에도 적용되어 메타버스를 이용해 설계와 공정 작업 등 현장에서 보다 입체적이고 정밀한 작업을 수행할 수 있게 되었음.
코로나19 상황이 장기화되면서 가상과 현실이 상호작용하면서 공진화하게 되는데 정치·사회·경제·문화 활동이 이루어지며 가치를 창출하는 세상으로 메타버스를 주목.
메타버스 관련 기업들은 교육, 헬스케어, 전자상거래 부문 등으로 기술을 확장하며 매우 공격적·도전적으로 임하고 있음.
은행들도 속속들이 메타버스 기술에 올라탔다. 메타버스 관련 검색도 급증하고 있어 대중의 관심을 반영.
말이 무성하고, 관심도 많으며, 세상 가득한 이슈가 된 것은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왠지 찝찝합니다. 손에 잡히는 것이 없어 보입니다. "Window OS"처럼 CD나 파일로 정리되어 한번에 설치하는 "상품"으로 받아들여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왜 그럴까요? 범접하기 어려운 신기술이기 때문일까요? 제 개인적인 대답은 "신기술이 아니라 신기루"이기 때문이라고 드리고 싶습니다.
메타버스라는 가상의 세계; 말장난
메타버스는 코로나19로 인해 사회적 거리두기에 대한 필요성이 높아지며 온 세상이 떠들썩하게 화두가 되고 있는 아이템이지만, 학계와 산업계의 통일된 정의는 아직 없습니다. 아니, 앞으로 없을지도 모릅니다.
메타버스라는 개념이 앞으로 일상을 어떻게 바꿀지는 모릅니다. 다만, 마치 당장이라도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올 완성된 '상품'으로서의 "기술"이라는 뉘앙스로 과대포장을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디지털 기술이 발전하면서 다양한 용어들이 등장했다가 사라져 왔습니다. 대부분이 과학기술적인 발명과 연구의 결과가 아닌, 마케팅 "수법"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은 얼마 지나지 않아 들통이 나 버립니다.
199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미래기술이라 소개하던 유비쿼터스는 이전 '퍼베이시브 컴퓨팅'이 개명하고 나온 것입니다. 현재 유비쿼터스는 아예 사장된 단어이고 후신이라 할 수 있는 사물인터넷(IoT)도 소리 소문 없이 실종 직전입니다. 2010년대에 들어서 실체도 없는 4차 산업혁명에 대해 떠들어대며 호들갑을 떨었지만, 지금 현재 우리의 생활은 10년 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4차 산업혁명의 실질적인 효과를 거두려면 최소 2~3세대를 내다봐야 하는데, 메타버스 역시 동일 선상에 있는 "마케팅 버즈"에 불과해 보입니다.
현실 세계가 디지털 세계로 확장되면서, 언젠가는 종속되어버릴 것이란 담론은 인터넷이 세상을 연결하면서 끊임없이 진행되고 있는 상상, 논쟁, 공론 거리입니다. 이미 인간의 일상 깊숙이 "디지털"은 침투되어 있지요. 디지털 공간에서 인간관계를 형성ㆍ관리하고, 경제 활동과 정치 담론이 형성되는 것은 이미 많은 이들의 일상이 되어 버렸습니다.
이미 그런 기능들은 게임, 인터넷 포털, 쇼핑 플랫폼, SNS 등이 충실히 수행 중이지요. 그리고 "가상"이라는 개념도 지금 막 등장한 개념도 아닙니다. 가상의 "나"인 아바타를 컨트롤하고, 가상 화폐(도토리)를 사용한다는 것은 싸이월드에서 이미 경험한 세대가 있습니다. 정적 아바타를 넘어 동 아바타를 사용하여 또 다른 인격처럼 행동하거나 다른 인생을 사는 것은 세컨드 라이프나 심즈 시리즈에서 이미 다 경험한 것이지요.
보다 기술적으로 고도화되고 경제ㆍ산업적 성과도 어느 정도 있었던 서비스도 게임으로만 한정해도 마비노기, 메이플스토리 2 등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그래서 온라인 RPG 게임도 큰 의미에서 메타버스라고 불러도 의미상 틀리지 않는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최근 후속작으로 다시 팬덤의 추억을 부활시킨 영화 <매트릭스> 시리즈의 첫 편은 1999년에 개봉되었습니다. 지금 다시 들추어 보아도, 어떤 전문서적보다 IT의 '가상과 연결'이라는 개념 정리가 잘된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어 늘 놀랍니다. 놀랍지도 않을 '매타 버스'라는 "말장난"에 일침을 주는 듯합니다.
코로나19 속에 피어난 상술의 궁여지책
메타버스라는 개념이 주목받게 된 대표적인 이유는 코로나19 유행이 장기화되었기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2년이 넘어가고 있는 코로나 대봉쇄 시대 속에서 '비대면'은 전가의 보도가 되었습니다. 이 '비대면'에 대한 플랫폼이 있으면 돈이 되겠다 생각이 들만도 해 집니다. 그래서, 이미 있던 기술ㆍ중속 받지 못했던 개념을 모아 새로운 패키징을 하고, 이름도 개명해 줍니다. '직접 만나지 않고도 소통할 수 있는 플랫폼'인 메타버스가 주목받게 된 것입니다. ("플랫폼"이라는 것은 실체가 있을까요?)
그런데 그저 트렌드에 편승하기 위해 최근 정부나 기업 장사치들은 오만 곳에 남용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메타버스 전시회ㆍ박물관ㆍ미술관이라면서 내부를 돌아다니면서 작품을 관람하는 아주 기초적인 기능만 넣고 메타버스라는 용어만 붙이기 일쑤입니다. 채용 설명회ㆍ인터뷰, 기업 내 회의나 콘퍼런스를 메타버스 기술로 한다면서 아바타가 조악한 동작으로 이리저리 헤매기만 하는 엉터리를 만들어 놓고, '메타버스'라는 용어에다가 'K-', '시공간 초월', '언택트' 등의 출처불명의 미사여구를 붙여서 홍보하는 것이지요. 한마디로 웹캠, 채팅 창을 추가한 싸이월드를 개명하고, 메타버스라 우기는 수준입니다. 점 하나 찍었는데, 다른 사람이 된 것이지요.
마치 몇 년 전 이세돌이 알파고에게 패배하자 정부와 기업에서 4차 산업혁명, 인공지능 등 그럴듯한 용어를 써가며 투자를 받던 상황이 똑같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모 대선 후보도 조악한 "딥 페이크" 영상 시스템을 "AI"라고 우기며, 선거운동 중이지요.
* 저질 콘텐츠 양산
'메타버스'라는 허상의 개념을 사용해서 콘텐츠를 찍어내는 사례들은 구글링만 해도 넘쳐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정부기관, 공공, 대기업, 중소기업, 스타트업, 방송, 미디어 할 것 없이 저질 콘텐츠를 메타버스 이름을 붙여서 쏟아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양산형 콘텐츠가 범람하는 현상의 원인은 그저 "돈"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코로나 시대의 경제 양상: 분별이 떨어진 투자심리-영끌, 가상자산, 부동산 등)
1. 실제 비용을 줄일 수 있음: 각종 이벤트에 메타버스를 활용하면 실제 행사를 준비하는 것보다 비용이 훨씬 적게 소모. 일반적인 행사에서 대관, 외주 지급, 물품 구매, 각종 수당, 식비 등으로 적으면 백 단위에서 많으면 억대 비용을 지출해야 하는 것과 비교하면 압도적인 고효율.
2. 정부 보조금과 연결: 2021년 정부 부처의 메타버스 예산은 1,200억 원 규모. 2022년에는 1,600억 원. 대부분 보조금 형식으로 많은 기업을 지원. 트렌드에 맞춰줘야 보조금을 얻을 수 있어서, 보조금을 얻기 위해서라도 오만 것에 메타버스를 억지 연결. 사업계획서만 정부 부처의 입맛에 맞게 그럴듯하게 작성되고, 아무도 사용하지 않는 폐급 메타버스 콘텐츠가 탄생. (이전 "창조 경제"만 계획서에 넣으면 지원금이 무조건 나오는 만능"키"워드와 같은 양상)
3. 의사 결정자들의 기술 문맹: 최신 기술에 아무래도 한 발짝 늦는 높으신 분들의 시각에서는 메타버스라는 단어만 들어가면 뭔가 트렌디해 보이고, 우리 기관(기업)이 혁신을 주도하는 것 같은 느낌을 주기도 하고, 화룡점정으로 추가 비용이 거의 들지 않는다는 일석 삼조 이상의 장점을 갖춘 플랫폼으로 보임. 이를 이용해 실무자들은 "결재"의 용이성을 위해 남용.
4. 홍보와 투자 유치: 언론 입장에서 취재가 쉬운 아이템이며, 무엇보다 기업에서 주는 홍보비를 받을 수 있으므로 기사화를 마다할 이유가 없음. 투자자들도 '이게 뉴스에 많이 나오니까 대세인가 보다.', '정부도 이걸 밀어주니까 돈이 되겠네.' 식으로 접근.
결국 기업, 언론 매체, 투자자들로 대표되는 각종 이익 집단에게 비용적 측면에서 매력적으로 다가오기 때문에 메타버스라는 그럴듯한 용어만 붙인 "가짜"를 내어 놓습니다. 실제 소비자는 이런 콘텐츠를 외면하거나 한 번 이용해 보고 만족하지 못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연출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일그러진 경제관념이 낳은 확증 편향, 혹은 사기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에게 메타버스의 유용성을 소개하고 투자를 장려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들 주장은 "메타버스는 대세이며, 흐름에 타지 못하면 도태되니 지금 안 타면 남들 돈 버는 거나 구경해야 할 것이다. 미래에도 우리 사회는 메타버스로 돌아갈 것이니까 무조건 받아들여라." 식입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의 논리에는 기술의 변별점이나 산업으로서의 특이점 따위는 발견할 수 없습니다. 별다른 노력 없이 큰돈을 벌 수 있기에 메타버스가 대세이다라는 것이지요. 어디서 많이 듣는 이야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채굴"하면 돈이 된다는, 블록체인 기술은 잘 모르겠지만 대세라는 가상 자산과 같은 괘를 나타냅니다. 메타버스 안에 나무나 집, 옷만 디자인해서 내놓으면 돈을 벌 수 있다거나, 게임이나 하고 놀면서 돈을 번다는 문구나, 이미 유명 기업이 메타버스 플랫폼을 만들었는데, 그 플랫폼 안에서 싸게 사놓은 땅이나 집 등이 몇 억 원대로 환전할 수 있는 암호화폐에 팔렸다는 등 자극적인 내용이 넘쳐납니다.
상식적으로 땡잡을 고급 정보들은 사람들이 독점하려 하고, 거래하려고 해도 비용이 만만치 않습니다. 오히려 남들에게 공개적으로 전파하고 있는 이유는 무얼까요? 사람들의 주목과 돈을 끌어들이기 위함입니다. 늘 "투기의 광풍"은 이성을 마비시키곤 합니다. 미리 탑승해 거품을 일으키는 사람들, 상투 잡은 줄 알면서도 내릴 기회를 놓친 사람들이 내 대신의 '희생양'이 되길 바라는 것, 그 이상 이하도 아닙니다.
가짜가 빼앗는 진짜들의 기회
가장 큰 문제는 "가짜"들에 가려진 "진짜"들의 발버둥을 아무도 관심 같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지난 "빅데이터" 관련한 이야기들을 할 때도 언급되었지만, 정보통신 기술시장은 장사치들의 세 치 혀로 망가지곤 합니다. 한 예로 빅데이터는 어떤가요? 자칭 빅데이터 전도사라는 말총머리 검색어 엔지니어의 얕은 행보로 "빅데이터=키워드 구름"이라는 거짓 공식이 만들어졌습니다. 이는 진짜 기술인 데이터 마이닝, 메타데이터 관리, 데이터 거버넌스, 수치 과학 통계에 쏟을 자원과 지원을 앗아가 버렸습니다. 속된 말로 종친 상황이 되었습니다.
이 뿐이 아니지요, 말장난에 놀아나는 AI, 딥 러닝은 기계학습과 슈퍼컴 병렬 처리라는 진짜 핵심은 팽계치고, 챗봇이나 추천 알고리듬이라는 가벼운 잔기술로 자리매김합니다. 블록체인은 온통 "코인"타령이라, 그 코인의 총액보다 훨씬 큰 암호화 기술, 스마트 컨트랙트, 그리고 총체적인 신로 담보 기술을 가려 버렸습니다. 마치 십 년 전 '유비쿼터스'와 'IoT'의 악령을 소환하는 듯합니다. 통신 인프라 강국이라는 최대 선점적 메리트를 갖고서도, 그저 "홈스마트 시스템"으로 전락한 그 모습 말이지요.
그래서, 다음 편에는 "메타버스"가 왜 "가짜"인지, 가려진 "진짜"기술은 무엇인지, 그리고 진짜로 "대세"인지에 대한 기술적ㆍ산업적 고찰을 해 볼까 합니다.
긴 글 끝에 한 가지만 기억해도 좋습니다.
"가상-이라는 것은 "가짜"라는 이야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