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이 수능이라면] 영어편-카니발과 사순절

금육 전에 대규모 치팅 데이

by 박 스테파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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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3월 2일은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을 묵상하는 기간인 사순절(四旬節)이 시작되는 날인 ‘재의 수요일(Ash Wednesday)’이다. 이날부터 부활절(復活節)인 4월 21일까지, 주일을 제외한 40일간을 기독교에서는 ‘사순절(Lent)’이라 부른다. 특히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전 세계가 규탄하고 있는 가운데 다가온 이번 사순절은 전 세계 그리스도인들이 우크라이나와 평화를 위해 간절히 기도하는 절기가 되고 있다. -기사 본문 중-


코로나 이전 이맘 때면 외신 동정에 유럽권의 ‘카니발(Carnival)’의 모습이 다양하게 소개되고 있습니다. 사순시기가 다가옴을 느낄 수 있는 지점이지요. 카니발은 그리스도교 국가에서 금욕과 참회의 기간인 '사순 시기' 직전 3~7일에 걸쳐 행하는 축제기간을 이르는데, 흔히 사육제(謝肉祭)라고도 부릅니다.

카니발, 축제, 사육제

재미있는 것은 카니발을 번역한 '사육제'는 고기를 사양한다, 즉 고기와 굿바이 한다는 뜻이라는 점입니다. 고난과 극기가 40일 동안 시작되면 금욕, 그중에서 금식ㆍ금육은 표징적인 자기 수양의 행위이고 종교적 약속이 됩니다. 고기와 작별하기 전에 실컷 고기를 먹어치우는 축제가 카니발인 것입니다. 이별 전 뜨거운 포옹이랄까요.


Carnival이라는 단어도 본래 '고기'를 뜻하는 "Carne"와 '안녕, bye'를 뜻하는 "Vale"를 합친 말이라고 합니다. 예수가 광야에서 40일(사순) 간 단식한 것을 기려 부활절 전 40일(주일 제외) 간 금욕하였는데, 이를 기리는 사순시기에 일상생활 속에서 속죄와 회개를 실천하면서 금욕, 금육, 단식(절식) 생활을 하게 되기 때문에, 사순 시기에 돌입하기 직전 며칠간 방탕하게 즐기는 축제를 연 것이 카니발, 사육제라는 집단적 '치팅 데이'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Carne Vale, 즉 고기여, 안녕!이라는 이름을 붙이게 된 것이 유래라는 것이지요.


이런 연유에서 서양에서 카니발은 연례적으로 예수의 고난을 기념하는 사순절 직전에 치러집니다. 기독교인이라면 사순절에는 금식, 회개, 경건, 자기반성 등에 힘써야 합니다. 카니발은 사순절을 견디기 위해, 겨울잠 준비하는 곰처럼, 지방질을 비축하고, 울기 전에 실컷 웃어두자는 축제가 되는 것입니다. 내일은 없다는 식이지요.


고기 살은 참 좋은데, 그 좋은 것과 잠깐이지만 작별을 고하는 아쉬움이 카니발의 정서랄까요. 금연을 결심하고 마지막 빨아보는 담배 맛? 금주를 맹세하고 마지막으로 따라 마시는 소주 한 잔? 좋은데 좋다고 못하고, 싫은데 싫다고 못하는 이 애매모호함, '카니발 이론'으로 유명한 러시아의 인문학자 미하일 바흐친은 카니발은 기본적으로 양가적이라고 합니다. 아이러니는 고기 소비량에서도 발견됩니다. 고기를 사절하는 축제에 일 년 중 가장 많은 고기가 소비됩니다.

미하일 바흐친

그렇더라도, 카니발은 고기를 찬양하고, 고깃살에 코를 박는, 그래서 금욕주의를 조롱하는 것은 아닙니다. 카니발은 먹고 마시고 노는 것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민중의 흐드러진 축제는 기존의 질서를 뒤집고 권위를 조롱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바흐친에 의하면 그런 것은 카니발에 대한 "천박한 보헤미아적인 이해"일뿐인 것 입니다.


정교 일체의 중세 기독교 국가에서 농노와 소작 민들에게 귀해서도 못 먹지만 영양분이 되는 단백질 고기와 노동 윤활유의 주류 섭취는 중요한 에너지의 근원이 되었을 것입니다. 이것들에 대한 금기는 참기 어려운 스트레스를 유발하였을 것입니다. 아마 이런 응축된 스트레스의 폭주를 막기 위해 일종의 ‘금기 해방의 날’을 만들었을지도 모릅니다. 영화 <더 퍼지>처럼, 유신시절 크리스마스 통행금지 유예처럼.

통행금지, 퍼지 데이

바흐친은 요란스럽고 무질서한 카니발에서 상생과 공존의 원리를 이야기합니다. 거꾸로 된 세상은 극적으로 대립하는 것들의 공존을 말해준다는 것입니다. 사실 카니발은 교회력에서 시간적으로 연중 가장 무거운 고난의 시기인 사순절과 이어져 있습니다. 카니발이 보여주는 무질서의 극담에는 곧이어 지는 사순절의 참회와 극기가 내포되어 있어 보입니다. 같은 원리에서 모든 부정적인 의미는 긍정적인 의미와 경계를 마주하기 마련입니다. 카니발은 긍정하기 위해 부정하고,존중하기 위해 조롱하며, 올라오기 위해 내려가는지도 모릅니다.


카니발 속에서 삶은 죽음을 내보이고 죽음은 또 삶을 밀어냅니다. 그래서 바흐친은 카니발적인 세계관의 핵심을 '교체와 변화,죽음과 갱생의 파토스'라 부르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카니발은 모든 사람이 참여하는 부활과 갱생의 축제라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대한민국은 늘 카니발 중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코로나 팬데믹, 경제의 불황이라면서도 백화점, 호텔, 복합 쇼핑몰, 사이버 샵들에서는 연중 카니발 중이고, 언론은 일어나지 않을 기득권들의 위기에 대해 말잔치로 덮어쓰고 있으며, 성찰보다 만족이 앞장서는 일상은 늘 고된 축제 중입니다.


선거의 기간, 요즘 ‘등가의 법칙’이란 말이 유행입니다.

축제라며

받은 만큼 내어 놓게 되어 있다나요? 40일간의 고행에 등가를 주려 7일간의 축제에 금기의 해제를 허용한 것일까요? 등가의 법칙의 내면에는 ‘가치의 교환’이라는 무시무시한 이면의 계약이 있습니다. 등가의 계산을 위해 가끔 우리는 구간 구간에서 자기만의 계산기로 두드려 적자 만회하려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세상은 등가로 교환되는 가치만이 존재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어찌 보면 양가성(兩價性:ambivalence)이 용인되기 힘든 양자택일의 선택만을 강요받으며 살아온 것 아닐까요?


Carnival(사육제)이 Cannibal(식인 문화)이 되지 않기를 바라며 사순을 기다립니다. 사족으로 Carnival과 Cannibalization, Cannibalism과 혼동하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되는데, '사육제의 carnival'과 동종식이나 '식인을 뜻하는 cannibal'은 전혀 다른 말입니다. 예전 누군가 용감하게 시장 잠식과 적대적 인수합병의 cannibalization을 이야기하면서 카니발 축제의 무질서와 소란에서 유래했다 용감하게 설명하는 이야기를 듣고 웃지 못해 슬펐던 기억이 났습니다. 무려 대학교수의 이야기였습니다. 식인 문화-Cannibal은 carib에서 유래한 어원임을 인지 못했다는 것이 웃펐습니다. (cannibalization: 기능이나 디자인이 탁월한 후속 제품이 해당 기업이 먼저 내놓은 비슷한 제품의 시장을 깎아먹는 경우나, 해외의 값싼 노동력으로 제작한 저가 상품이 국내의 고가 제품을 밀어내는 상황을 의미)

caannibalization

어찌 되었든 무식과 다식은 양가적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똑똑한 사람이든 하나도 모르는 사람이든 '위험성'은 내포합니다. 지난 선거 운동 기간에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서로가 서로 늘 물어뜯는 cannibalization이 넘쳐 났을지도 모릅니다. '가치의 교환'이라 우기며 양가의 가치를 단순한 의미로 이합집산하기도 했습니다.


지난 기간이 인류 최대의 사건이 되는 '부활'처럼 환희의 결과로 어어지는 인고와 참회의 시간이었을지, 아니면 닥쳐 올 고난의 시기를 본능적으로 대비한 '사육제'의 시간이었을지는 이제 곧 드러나겠지요. 최대의 '치팅 데이'에 혹시 '치팅'만 당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고심할 시간입니다. 책임은 늘 민중의 몫이 되니까요. 전쟁, 독재, 억압, 부패, 부정 무엇이 되었든 말이죠.


무엇이 되었든, 카니발 다음의 정제된 회개와 고뇌의 시간이 오듯, 소란스럽고 무질서한 이 시대의 접경에 보다 반성과 성찰의 의미된 날들을 기다려 봅니다.

인류 최대의 사건, 수난, 부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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