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가 아프고 나면, 배가 고파지듯

이번 선거는 진짜 '최악'이었는가

by 박 스테파노

http://naver.me/G2HfyVN8

20대 대통령 선거를 하루 앞둔 8일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 힘은 여전히 안갯속에 쌓여 있는 민심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막판 유세 총력전에 나섰다. 각종 이슈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수도권 중도층과 막판 단일화를 이룬 안철수 국민의 당 대표의 지지자들, 어느 후보에도 선뜻 손을 들어주지 않은 2030 세대 여성들의 표심이 어디로 흐르냐에 따라 이번 대선의 승패가 갈릴 것으로 보인다. -기사 본문 중-


1.

선거를 스포츠 경기나 전투에 비유하는 일은 흔한 일상이 되었습니다. 승부를 예측하고 승리를 외치고, 패배를 두려워하는 표현과 마음은 '관전 욕구'를 불러일으킵니다. 선거 당일 유권자들의 한 표를 모아 모아서 단판으로 승부를 내는 매치업 같은 생각이 듭니다. 그렇다면, 선거 기간 동안의 캠페인과 시민들의 호응, 그리고 언론들의 나름대로의 방향 몰기는 그저 위밍업과 시범경기였을까요. 승부라는 것이 있다면, 이미 이 단계에서 결정된 것이 아니었을까요.


2.

승부에서 승리의 조건이 있다면, 충분히 준비된 기량, 너끈히 버티어 낼 체력과 지구력, 그리고 지피지기의 전략과 한수가 되는 비기 등이 꼽히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선거는 결국 더 간절하게 원하는 쪽이 이긴다니요. 더 간절하고, 절박하고, 절체절명의 위기의식을 지닌 쪽으로 승리가 돌아간다고 합니다. 진정 '절박함'이 어느 스포츠 경기보다 중요한 이 승부의 절대 요인이 되는 것일까요. 절박함은 이쪽이나 저쪽이나 다름없어 보이는데도 정치권과 언론은 선거 마지막 논평에 늘 '절박ㆍ절실' 타령만 넘칩니다.

오늘이 승부의 날?

3.

조선일보는 보수의 단일화를 극찬합니다. 20년 전 노무현-정몽준 후보 단일화를 '16대 대선 코미디 대상'이라고 폄하했던 조선일보는 이번에는 '尹 결단과 安 용단으로 단일화, 정권교체 여론 따른 순리다'는 제목의 사설을 실어 극찬했습니다. 20년이라는 시간 때문이라 할 수 있지만, 거대 언론사의 '표변'은 조선일보로 대변되는 기득, 보수 세력도 무척 간절하고 절박한 몸부림에는 틀림없습니다. 더 이상 진보 정권이 나라를 운영하는 것을 볼 수 없다는 절절한 간절함으로 읽힙니다. 어쩌면 간절함을 넘어 '악착같음'이라는 단어가 떠 올리는 것이 쉬운 일입니다.


4.

더불어 민주당은 드러 낼 수 없는 편두통을 움켜쥐고 선거에 임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게 내부 비판에도 꿈적하지 않던 586 정치 기득권들은 마지못해 내려놓기를 선언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정치적 이벤트가 과연 나라의 미래에 대한 진정한 걱정과 희망에서 나오는 것인지는 물음표 가득입니다. 미완성의 민주주의 완결, 경제적 양극화 해소, 평화와 안보, 사회적 통합, 약자와 소수와의 상생과 환경을 최우선으로 하는 정책 전환 등 우리가 마주한 시대적 과제에 대한 '정책'은 여전히 도서관 '책'속에 머물러 있습니다. 후보를 포함한 정치인들의 인식과 능력, 그리고 과제를 실현하기 위한 정책의 효율성과 적실성은 찾아보기가 힘든 지경입니다. 그저 '절박함'에 호소하며 진영의 정권 연장의 깃발만 흔들어 댑니다.


5.

그렇다면 이 번 선거는 언론이 그렇게 떠들어 대던 '최악의 선거'일까요? 기득의 정치세력들이 말하듯, 구정물만 더 혼탁해져서 혐오해야 되는 존재로 정치가 자리 잡힌 것일까요? 여태껏 언론과 미디어가 쏟아 내는 양태는 실망만을 줄지 모릅니다. 그러나 정치 무리배들이 선거의 양상을 혐오와 비호감으로 몰아넣는다고 해서, 시민들이 정치를 혐오하면 세상은 잘해 보아야 제자리걸음 밖에 할 수밖에 없습니다. "정치는 여전히 창의적인 타협이자 진지한 게임이고 유일하게 대화로 귀결되는 갈등"이라는 영국의 정치학자 버나드 크릭이 저서 <정치를 옹호함>에서 한 말로 풀뿌리 정치의 소중함을 일깨워 줍니다.

https://youtu.be/ltYX92kSMzw


6.

이 번 선거 과정을 통해 얻은 소득도 꽤 있어 보입니다. 바로 정치로 조망하는 세상과 의제가 '재설정', '재정립'되었다 봅니다. 우선 '개인'이 부각되는 선거였습니다. 계층과 계급으로 아무리 갈라 치기 해도 한 표의 주인이 되는 개인은 파편화되어 있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어설픈 '마이크로 타게팅'의 이야기는 아닙니다. 식탁 위의 가족 구성원의 정치적 지향이 각양각색이 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개인, 개인의 실질적 '이득'이 중요한 시대가 되었습니다. 더 이상 용공 좌익, 수구꼴통이라는 구시대의 선 긋기는 유효하지 않았습니다. 동과 서의 지리적 정치 지형은 그들의 삶의 이익으로 소신 하여 결집한다는 것을 서로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이렇듯 정치인ㆍ언론은 여전히 후지고 구려도 시민과 민중, 그리고 그 안의 개인은 진화하고 발전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7.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은 생각보다 쉬운 일입니다. 어찌 보면 동등한 기회와 동등한 위험을 안고 있기에 무수한 개연성과 가능성을 따져 보지 않고 선택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달리 보면,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만큼 어렵고 두려운 일은 없습니다. 선택해야 하는 두 가지의 제시가 모두 내 것이 아니라고 생각될 때는 더욱이 그렇습니다. 내편과 네 편, 성공 아니면 실패, 선과 악.. 우리는 살면서 너무나도 많은 양자택일을 강요받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늘 이 중차대한 결정에 선택지가 이 것 아니면, 저 것 밖에 없다는 사실은 아쉽기만 합니다.


8.

최근 정치 견해를 접었던 시간이 제법 되었습니다. 아니 재설정하였다는 말이 맞을지도 모릅니다. 나이가 들어서인지, 성찰이 작동한 것인지는 모를 일이지만, 엄청나게 기울어 치우친 진영에서 또 선을 그어 대는 사람들 틈이 불편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세상은 여전히 시끄럽습니다. 대선 국면이 그러하고 쉽게 체감될 수도 없는 세상사의 사건 사고들이 증폭시키고 맙니다. 선거일로 주어진 덤 같은 휴식의 시간이 짐 같이 느껴지는 이유입니다.


9.

작던 크던 타인의 사건에도 의견들은 날아다닙니다. 찬성과 반대의 논쟁은 죽은 패가 되었습니다. 그다음이 문제인데... 아는 체 난 체 하는 떠벌이들은 다시 양자택일의 기로라 호들갑 떨 것이 분명합니다. 기업이냐 노동자냐, 친중이냐 친미냐, 복지냐 성장이냐, 공정이냐 확장이냐 하며 말이지요. 하지만, 양자택일은 정치의 영역이 아닐 것입니다. 복잡한 세상에서의 결정이 세상의 양면 같다면,

정치의 작용이란 결국 동전의 양면이 피카소의 입체주의 해석처럼 한 번에 보이게 하는 것이 아닐까요? 피카소처럼 다면의 해석을 제공하는 정치를 기대해 봅니다.


10.

다시 '승부'로 돌아가 볼까요. 선거가 스포츠 같은 승부라는 비유는 개인적으로 탐탁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쉬이 이해가 되는 개념적 표현이라 받아들이면, 선거라는 승부는 늘 무승부가 됩니다. 정치인과 정치세력에게는 승자와 패자가 있겠지만, 결국 정치의 주인공인 국민과 민중에게는 늘 무승부입니다. 지지한 세력의 승패가 나고, 국정 운영의 기조가 내가 지향하는 것과 다소 다르겠지만, 삶은 계속되고 다시 버텨 내야 하는 일상 속으로 들어가야 하니까요.

무관심이야말로


배가 아프고 나면, 배가 고프곤 합니다. 서로 대립해서 결정 난 승패로 배앓이가 심하게 올 수도 있지요. 하지만, 아픈 배는 나아질 것이고, 다시 허기는 찾아올 것입니다. 다시 서로를 이해하고 보듬으면서 고픈 배를 채울 일상을 함께 살아가야 합니다. 그래서 더욱, 정치꾼 말고 정치가가 절실한 요즘입니다. 정치는 꾼들만의 전유물은 아닙니다. 그 시작이 되는 선거가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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