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이 수능이라면] 언어(국어) 편- 주어를 보라

主語, Subject

by 박 스테파노

흔히 '주어가 뮈냐'라는 말 트집과 말씨름이 일어나곤 합니다. 그리고 '한국말은 끝까지 들어야 한다'라는 이야기로 우리말의 다양한 쓰임새가 자칫 본의의 왜곡과 함의의 누락을 불러일으키는 이유에서 나온 말일 듯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선거 전날, 마지막 [대선이 수능이라면]은 국어, 그중에서 "주어"에 대하여 이야기해 볼까 합니다.

주어가 뭐길래

주어 (主語, Subject)

문장 성분의 하나로, 술어가 나타내는 동작이나 상태의 주체가 되는 말을 뜻한다.


품사, 격과 문장 성분은 모든 언어에서 중요한 의미 분석의 기준이 됩니다. 대부분의 언어에서 문장은 아무리 간단해도 주어 하나, 서술어 하나를 갖추는 것이 원칙이 됩니다. 그리고, 무장이 아무리 복잡해도 주어와 서술어로 이루어진 틀을 기본으로 확대되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주어는 서술어와 함께 문장의 가장 기본이 되는 성분이 됩니다.


단어가 주어의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주어임을 나타내는 꼬리표가 따릅니다. 꼬리표는 한국어나 일본어처럼 조사로도, 프랑스어나 스페인어처럼 곡용(체언의 굴절; 명사(대명사·형용사 포함)가 성(性)·수(數)·격에 따라 형태가 바뀌는 것)으로도, 영어나 중국어처럼 어순으로도 표시할 수 있습니다.


많은 언어에서 주어가 문장의 맨 앞을 차지하지만, 아랍어와 타갈로그어 등 동사가 문장의 맨 앞에 오는 VSO형 언어, VOS형 언어도 의외로 많으며, 드물지만 목적어가 문장에 맨 앞에 위치하는 OVS형 언어, OSV형 언어도 있습니다.


한국어는 주어를 굉장히 자주 생략하는 언어 중 하나입니다. 한국어의 주어 생략은 구어와 문어를 가리지 않고 매우 빈번하게 일어나며, 주어를 꼬박꼬박 쓰면 오히려 더 어색해 보일 때가 많습니다. 특히 구어의 경우에는 아예 주어를 쓰지 않고 술어 만으로 길게 대화를 이어나가는 것도 가능하지요.


https://n.news.naver.com/article/025/0003144361

14년 전 대선 정국의 ‘주어(主語) 논란’이 재연되는 걸까. 경기도 성남시 대장동 개발 사업의 ‘초과이익 환수’ 조항에 대한 의문이 ‘주어 공방’으로 이어지고 있다. 18일과 20일 열린 경기도 국정감사에서 여야가 공방을 벌인 초과이익 환수 조항에 대한 시각차가 해소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초과이익 환수 조항이 없게 된 결과에 이르는 과정에서 ‘동작의 주체가 되는’ 주어가 이번 사건의 배임 혐의와도 연결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그만큼 예민한 포인트라는 것이다. -기사 본문 중-


나경원 의원의 '주어'논란

"그러나, 주어는 없었습니다."


2007년 12월, 제17대 대통령 선거 중에 나경원 당시 한나라당의 대변인이 내어 놓은 논평입니다. 이 논평은 정치사에서도 오랫동안 회자되는 유명 일화가 되었습니다. 위기를 넘기기 위해 문법을 소환한 비유가 사람들의 머리에 오랫동안 남게 되었습니다.


당시 대선 국면에서 BBK 주가조작 사건과 관련하여 이명박 후보는 그 회사가 자신과 무관하다고 줄곧 주장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대선 직전에 결정적인 증거, 그가 "BBK라는 금융 자문회사를 설립"했다고 발언한 동영상이 공개되었고, 문제적 논평은 이를 변호하기 위한 것이었지요.


"요즘 제가 다시 한국에 돌아와서 인터넷 금융 회사를 창립을 했습니다. 금년 1월에 BBK라는 금융 자문회사를 설립을 하고..." -이명박, 2000년 10월 17일 광운대 강연에서


이명박 씨가 한 발언을 살펴보면, 앞 문장은 주어 '제가'를 썼고, 뒤 문장에서는 생략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맥락상 문장의 주어가 무엇인지를 파악하기는 전혀 어렵지 않습니다. 이런 이유에서 '주어가 없으니까 책임도 없다'라고 주장하는 논평이 대중의 비난을 받은 이유가 된 것입니다.

주어의 부당한 생략

앞서 이야기했듯이 영어와 달리 우리말에는 주어를 생략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대화나 담화 등 구어 사용의 상황에서는 흔히 주어 없이 대화를 해도 큰 무리가 없습니다. 친구나 동료의 사적 대화나 가족이나 연인 사이의 서로의 감정을 나타내는 대화에서는 뻔히 알 수 있는 문장 성분은 얼마든지 생략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대체로 문어, 문장에서 주어는 함부로 생략할 수 없습니다. 주어는 서술어, 목적어, 보어와 함께 문장에서 반드시 갖추어야 하는 성분, 즉 '필수 성분'입니다. 그러나 문맥 속에서 주어가 분명하게 파악이 되고 충분히 예측 가능한 때에는 주어도 생략하곤 합니다.


국어의 문법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지만, 한국어가 문어와 구어로 사용될 경우 문장 성분에 대한 생략의 관용의 범위가 달라집니다. 그럼에도 주어와 서술어는 문장을 이루는 가장 핵심 요소가 됩니다. 어느 하나라도 빠지면 호응(呼應, 앞에 어떤 말이 오면 거기에 응하는 말이 따라옴. 또는 그런 일.)에 문제가 생겨서 비문(非文, 문법에 어긋난 문장)이 되기 쉽습니다.


'주어'를 보자

선거 기간에 후보자와 측근, 캠프의 '말'은 참 중요한 정보가 됩니다. 그 말에 들어 있는 의미와 사실, 그리고 주장이 곧 선거운동의 방향과 양상으로 표상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말속에는 후보자 한 사람의 가치관, 세계관, 그리고 철학과 신념이 들어 있기 마련이기에, 한 나라의 지도자가 될 사람의 말은 참 중요합니다.


유권자가 판단할 기준과 근거가 이 나라의 선거 문화는 '말'뿐이라는 것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허술한 공약에 구태의 정치 세력, 그리고 뻔한 선거운동과 캠페인에서 변별력을 찾아내기란 팔만대장경에서 예수를 찾는 일처럼 느껴지니까요. 그래서, 후보자들의 말은 참 중요한 '결정'의 요소가 됩니다. 연설과 토론, 인터뷰에서의 담화ㆍ대화는 물론 각종 SNS와 정견 발표 등의 문장은 중요한 참고자료가 되고 있습니다. 달변인지 눌변인지, 명문인지 비문인지 '구사 능력'도 중요하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주어'의 쓰임새라고 생각합니다.


https://news.v.daum.net/v/20220308105110672?x_trkm=t


일단 민주당 이재명 후보랑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 발언만 모아봤는데요. 공식 선거 운동이 시작된 2월 15일부터 2주간 두 사람이 유세현장에서 쏟아낸 말을 합하니까 10만 단어 정도가 되더라고요. 이걸 다 모아다가 형태소 단위로 끊어서 컴퓨터에 입력했습니다. 그리고 텍스트 데이터 전문 분석업체랑 같이 살핀 결과를 이제 전해 드리겠습니다. -기사 본문 중-


보통 대선과 기타 선거와의 가장 큰 차이점은 '시제'에 있습니다. 과거를 회고하여 심판하고 중간 평가하는 것은 총선이나 기타 의회의 구성을 위한 선거가 됩니다. 하지만, 대선은 달라야 합니다. 바로 미래를 조망하고 계획하는 선거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행위와 그 결과인 상태를 나타내는 '서술어'는 '미래 시제'여야 타당합니다. 그렇다면 그와 호응하는 '주어'는 무엇이 되어야 할까요? '나', 즉 1인칭이 주어가 되어야 마땅합니다.


유창함과 지식의 정도와는 별개로 대통령 후보자 말의 시제와 인칭은 매우 중요할 수 있습니다. 미래에 무언가를 약속함에 있어서 말하는 주체가 주어로 사용되기는 어려운 법입니다. 반대로, 상대나 제삼자가 주어가 되는 호응의 서술어는 보통 비판과 험담의 내러티브가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과거로 회기 하는 화법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번 선거에서 후보들은 어떠했을까요?


그 사람의 미래를 보려면 그 사람이 살아온 과거를 보면 됩니다. 그가 약속을 지킬 지는 그가 과거에 약속을 지켰는지 보면 됩니다. 그가 실력이 있는지는 그가 과연 과거에 실력을 실적으로 증명했는지를 보면 됩니다. 이재명, 성남시장 경기도지사 하면서 확실하게 실력을 실적으로 보여주지 않았습니까? -<이재명(2월 23일 충남 천안 유세)>-


이번 선거는 5년에 한 번씩 오는 이런 선거 아닙니다. 국민의 힘과 민주당의 대결이라고 보셔도 안 됩니다. 이번 선거는 우리 위대한 대한민국 국민의 상식과, 부패하고 썩은 이재명 민주당 세력들과의 싸움입니다, 여러분. -<윤석열(2월 28일 강원 동해 유세)>-


위의 예시된 연설의 내용은 표징적인 양태를 나타냅니다. 바로 위에 링크한 기사를 참조하면, 실제 후보의 2주간 '말'에 대한 분석이 있습니다. 참조하여 보시면 됩니다. 축약하자면 인물 거론은 양 후보 모두 '이재명'이었다는 것을 관심 두고 볼 필요가 있습니다.

각 후보의 말; 단어 사용 빈도

한 가지 더 첨언할 내용은 어떤 사람의 말이 때와 장소를 달리 한다면, 문제가 많다고 보아야 합니다. 거리 유세에서의 주장과 단어 사용이 토론이나 언론 인터뷰의 그것과 달리 느껴진다면, 이 사람은 아주 위험한 사람이 됩니다. 그때 그때 환경에 따라 말이 다른 사람은 둘 중 하나입니다. 자기의 생각이 아닌 다른 의견을 말로 옮기는 사람이거나, 거짓말쟁이이거나.


짧은 말들의 분석들은 실망만을 줄지 모릅니다. 그러나 정치 무리배들이 선거의 양상을 혐오와 비호감으로 몰아넣는다고 해서, 시민들이 정치를 혐오하면 세상은 잘해 보아야 제자리걸음 밖에 할 수밖에 없습니다. "정치는 여전히 창의적인 타협이자 진지한 게임이고 유일하게 대화로 귀결되는 갈등"이라는 영국의 정치학자 버나드 크릭이 저서 <정치를 옹호함>에서 한 말로 마무리 합니다.


마지막 선거 유세일입니다. 우리에겐 아직 숙고할 시간과 자유와 권리와 의무가 있습니다. 그리고, 선택합시다. 투표합시다.


사족) 말. 말. 말.

* 이재명 후보의 말

이미지 입니다


* 윤석열 후보의 말

이미지 입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