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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 스테파노 Jul 29. 2016

500일의 썸머(2009)

인연보다 강한 신의 사랑, 신의 사랑보다 강한 운명, 바로 '우연'

건축가가 되고 싶었으나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카드(신용카드 말고 생일 축하카드, 크리스마스 카드) 제작 회사에서 축하 문구를 만드는 톰(조셉 고든 레빗)은 연애에 있어서 운명론자이다. 운명이 정해진 인연이 나타나면 사랑을 하게 되고, 그 사랑은 영원할 것이라는 막연한 믿음이 있다. 그런 톰에게 어느 날 운명 같은 여인 썸머(주이 디샤넬)가 나타난다. 사장의 새로운 비서로 오게 된 썸머에게 말 그대로 첫눈에 가버린 톰은 그녀와의 사랑을 절실히 바라고 바란다. 하지만 썸머는 진지한 관계보다는 느슨한 관계에서 톰을 원한다. 어릴 적 부모님의 이혼이라는 이유로 자유로운 만남과 쉬운 헤어짐이 편하기 때문이다. 한 남자와 한 여자의 이야기가 사랑의 이야기로 발전될 수 있을까? 톰은 운명적인 여인을 얻고, 썸머는 진지한 관계로 진행할 전환점을 만나게 될까? 그들의 사랑이야기 500일의 이야기가 영화에서 펼쳐진다.


이것은 남자가 여자를 만나는 이야기다.
하지만 먼저 알아 둘 것은, 이것은 사랑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재개봉되는 영화가 기대 이상의 호응을 얻는 경우가 있었다. <이터널 선샤인>이 그러하였고, <인생은 아름다워>도 그러한 영화였다. 이 영화들의 특징은 “작은 영화” 그리고, 스크린을 점유하기 힘든 “외화”라는 것이다. 이러한 영화들 틈에서 비교적 짧은 쉼표를 찍고 재개봉한 것이 마크 웹 감독의 <500일의 썸머>라는 ‘사랑’을 보는 관점에 대한 영화이다.


2009년에 만들고 2010년에 개봉한 이 영화를 지켜본 기억이 없었다. 아마 그 무렵에는 나 스스로 사랑의 총량이 소진하여 다시는 ‘사랑’에 대하여 논 할 이유가 없으리라 속단하고 사랑이야기들은 모두 밀어내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다시 꺼내본 이 작은 소품 같은 사랑이야기는 신선하다. 시간을 앞 뒤로 오고 가는 편집이나 구성이 새롭게 느껴지는 이 작품에서 결국 남는 것은 오래된 ‘사랑’ 그리고 ‘인연’에 대한 화두이다. ‘사랑’은 운명일까 아니면 그 순간의 우연일까.


사랑에 빠지면 마치 운명의 그 순간이라 여기어 지기 십상이다. 그녀의 어긋난 작은 치아는 귀엽기만 하고, 자다 일어난 부스스한 부은 눈도 귀엽기만 하다. 하다 못해 툭 튀어나온 무릎 살마저 예쁘게 보인다. 나와 다른 취향이 나 견해도 쉽게 포용할 수 있을 것만 같다. 비틀스 멤버 중에 링고 스타를 좋아라 하고 나와 다른 식성에 습관과 취향마저 저마다 다르기 일쑤이지만, 그마저도 내가 포용하고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다.


10가지 중에 한두 가지 비슷한 구석만 있어도 우리는 하늘이 내린 운명이기 때문이다. 톰은 썸머를 만나는 순간부터 운명의 상대라 생각했다. 그래서 그녀와의 공통점이 열중 한두 개라도 대단한 공통점이라 생각했다. 엘리베이터에서 처음 말을 섞었던 공통 관심사만으로 충분하였다. 사랑은 이처럼 불현듯 한눈에 찾아오곤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썸머의 입장에서 톰이 운명이라 할 수는 없었다. 호감은 가지만 운명의 상대라 할 수 없는 만남이었고, 톰이 좋기는 하지만 애인이라 부를 수는 없었다. 톰의 어느 하나 구석이라도 그녀가 경험한 남자들보다 우위에 있다고 말하기 어렵기 때문이기도 하였다. 더욱이 운명 같은 만남으로 연예를 하고 결혼을 한다는 생각은 조금도 해보지 않았다. 그런 운명의 순간이라는 것이 내가 인지하기도 전에 부지불식간에 찾아온다면 불편하기만 할 뿐이기 때문이다. 사랑은 함께 하는 상대마저도 다 제각 기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그냥 좋은 점만 기억하고 있는 것이야.


영화는 썸머의 500일을 보여 준다 하지만, 사실 썸머에 대한 톰의 마음을 500일 간 보여 준다. 그중 절반을 썸머와 사랑에 빠지고, 그 사랑에 대한 본격 고백을 하지 못한 채 그녀에게 젖어드는 날들을 그린다. 그리고 나머지 절반은 그녀와 헤어지고 못 잊어하는 마음에 괴로워하고, 그녀를 떨쳐 보려 몸부림치다가도 우연히 만난 그녀에게 작은 희망이라도 품는 그런 날들을 그리고 있다. 썸머의 부재가 시작된 날부터 톰의 일상은 사는 게 사는 것이 아니었다. 그녀가 자신을 떠나간 이유를 상세히 찾지 못해 괴로워하다가도, 그녀의 아름다운 모습 자신에게 주었던 사랑의 영감들을 떠 올리자면 밤샘도 모자랄 판이다.


걱정하는 친구의 권유로 소개팅을 해도 결국은 ‘그녀 이야기’로 시간을 보내고, 여전히 떠나간 그녀의 그림자에서 허우적거릴 뿐이다. 그럴 때 어리지만 애늙은이 같은 여동생 레이첼(크레이 모레츠)이 한마디 던진다. 오빠가 썸머를 특별한 사람으로 여기는 것은 알겠는데, 제삼자 입장에서 아니라는 것이다. 그냥 그 좋아했던 점들만 기억한다는 것이다. 그녀의 좋은 점이 아니라, 그것들을 좋아했던 톰 자신의 모습을 간직하고 싶었던 것이다.


극 중반에 톰은 썸머와 좋은 날들을 보내고 출근하는 길에 세상 모든 것이 마치 뮤지컬 같이 보이게 되었다. 모두들 자신에게 친절한 인사를 건네고 아침 출근길이 신나는 공연으로 탈바꿈하게 된 것이다. 이렇듯 사랑을 하면 사랑하는 대상보다 그 사랑을 하는 본인의 모습을 놓치기 싫어하는 것이다. 시간이 흘러 그녀가 내게로 온다고 해도, 그때 그 시간의 내 감정이 돌아오지 않으면 부질없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누구도 위대한 우주의 이치를 거역할 수 없다는 것이다. 우연! 그것은 우주의 이치다.


옛날 유행가 가사에 “우연, 우연보다 강한 인연, 인연보다 강한 신의 사랑으로 만나~”하는 노래가 어렴풋이 떠오른다. ‘운명’과 ‘우연’은 마치 이 편과 저 편의 끝에 위치한 절대 마주할 수 없는 대치적인 개념으로 생각되기 쉽다. 하지만, ‘우연’만큼 우주의 이치이든 신의 섭리이든 우리가 마주할 수 없는 절대적인 기운으로 밖에 설명될 수 있는 것이 있을까? 썸머가 남편감을 만난 식당에 가지 않고 영화를 보거나, 빌미가 된그 책을 읽지 않기라도 했으면 결혼을 하였을까?


그런 이야기를 하면서 썸머는 톰의 운명론에 대해 공감을 표한다. 이제는 알겠다며, 사랑과 만남에는 필연적인 섭리와 기운이 있을 거라고. 하지만 톰은 반대로 그 시점에서 자신의 운명론을 철회하고만 싶어 진다. 이게 운명이라면 나의 운명은 슬픈 이야기로 남을 것이니까 말이다.


하지만, 톰도 결국 마지막 500일째에 면접을 보러 간 건축사무소에서 면접 경쟁자를 만나게 되고, 그녀에게 호감이 들고 마침내 데이트를 신청한다. 우주의 이치와 신의 섭리가 있다면 사람이 거역하거나 물리 칠 수 있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유추 가능한 필연의 과정으로 설명된다 하더라도 그것을 우리는 ‘운명’이라 부를 수 없을 것이다. 가장 강력한 ‘운명’은 바로 ‘우연’으로 설명되기 때문이다. 그 찰나에 마주하는 모든 현상들이 운명 같은 우연일 텐데 우리는 그 우연을 그저 ‘그럴 수도 있는’ 개연성으로 설명하기에 운명과 마주할 수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난 엉망이에요. 한편으로 그녀를 잊으라 하고, 한편으로는 전 우주를 통틀어 나를 행복하게 할 수 있는 건 그녀뿐이라는 것을 알아요.


누군가 잊기 위해 참 힘든 시간을 보낼 때가 있다. 날마다 숨 쉬는 한순간 순간마다 잊히기는커녕 지난 시간과 기억들이 습격하기 일쑤이다. 그 누군가가 아니라면 잊는 것이 맞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세상의 훈수는 잊으라 이야기한다. 하지만, 전 우주를 통틀어 나를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는 것은 그녀라는 생각이 손상되기는 시간이 여전히 필요하다. 아마도 그녀와 나의 관계에 대한 미련이라기보다, 그녀를 운명으로 마주하였던 수만은 우연의 시간들이 겹겹이 소중하게 쌓여 있어 그것들을 물리치기 힘들어 그러할지도 모른다.


톰이 건축사무소에서 경쟁자로 만난 그녀(이름이 오톰(가을)인 그녀는 이야기한다.


‘그때 그 주변은 별로 살피지 않으셨나 봐요.’


운명 같은 우연의 시간은 진정 운명의 시간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순간에 상대가 ‘그녀’가 아닌 다른 사람일 수도 있다는 생각은 미처 하지 못했다. 나에게는 여전히 뜨겁고 버거운 ‘여름’ 같은 사랑만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을 것이다. 아마도 그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온다는 것을 미처 알지 못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 뜨거운 ‘여름’이 지나면 선한 바람이 부는 ‘가을’이 올 것이고, 그 가을에 운명 같은 우연을 마주하리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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