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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 스테파노 Mar 28. 2022

'우범소년'이라고 아시나요?

처벌은 소년이 받아도, '벌'은 어른들의 몫

넷플릭스 드라마로 시작된 소년 범죄에 대한 의견들이 뜨겁습니다. 뜨겁기는 하지만, 의견이 한쪽으로 쏠리는 부분에 대해서는 조금 놀라웠습니다. 생각보다 '엄벌주의'에 입각한 보다 강한 처벌이 요구된다고 느끼신 모양입니다. 정답은 없지만 가장 현실적으로 간구할 수 있는 방법인 것은 틀림없다 공감이 되는 것 같습니다.


저도 개인적으로 처벌과 처분(교화)이라는 양단의 방법에 대해 고민은 깊지만, 감정적으로는 처벌주의에 가까웠습니다. 그 생각의 기저에는 단 한 가지가 무의식적으로 전제되어 있습니다. "나와는 무관한 남의 일이야."라는 근거는 없는 믿음 같은 확신 때문이지요. 이와 관련하여 거울에 나누었던 영화 <언포기버블>로 이야기를 나누어 봅니다.


https://alook.so/posts/w9t61M


영화를 보고, 책을 읽다 보면 감정이입이 됩니다. 약자의 편이 되고 "권선징악"의 장르에선 "선"의 편에서 통쾌한 판결을 기대합니다. 실제 일상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뉴스에 나오는 사건, 사고의 피해자의 입장을 동조하여 미디어가 기정사실화 설정한 "나쁜 놈"에게 욕을 퍼붓거나, 적어도 혀를 끌어 차곤 합니다. 왜냐하면 "나는 저런 사건에 용의자, 피의자, 피고인이 될 리가 없다"라는 아주 막연한 믿음 때문입니다. -영화 <언포기버블> 리뷰 중-


우밤소년?


'우범소년'이라고 아시나요?


청소년ㆍ아동복지시설에서 생활하던 10대 청소년 A군은 어느 날 느닷없이 소년 분류심사원에 끌려갑니다. 소년 분류심사원은 만 19세 미만 아동이 소년부 재판에 넘겨지기 전 조사와 심리를 위해 머무는 곳이지요. 성인으로 치면 일종의 ‘구치소’ 역할을 하는 시설이라고 이해하면 됩니다. A군이 소년 분류심사원에 간 사유는 무엇일까요. 놀라지 마세요. 이유는 소년이 머물던 복지시설 원장이 '통고'했다는 것 하나입니다. 통고의 상세 내용은 '우범소년 통고'입니다.


소년이 생활하던 복지시설은 생활규칙이 엄격했답니다. 외출이 철저히 통제되었고, 작은 실수에도 벌점이 늘어났답니다. 벌점 때문에 학수고대하던 외출이 금지됩니다. 외출이라고 해 보았자, 겨우 일주일에 한두 번, 그것도 담당 교사와 동행하는 것이지만, 아이들에겐 손꼽아 기다리는 날이 됩니다. A군은 벌점 때문에 외출을 못 나가게 되자 화가 나 유리창을 주먹으로 깨트렸답니다. 이것이 소년이 '우범소년'으로 통고되어 구치소 같은 소년 분류 심사원으로 끌려 온 사유입니다. 소년들은 '통고'제도를 잘 압니다. 그래서 통고가 되자 보호시설에서 가출해 잡혀 온 것입니다. 가출까지 분류심사 우범 사유에 당연 포함된 체로 말이지요.


http://naver.me/Gc4DEznI

형법을 어긴 죄를 짓지는 않았지만 ‘우범소년’에 해당돼 통고됐다. 통고는 소년 보호사건의 대상이 되는 범죄·촉법·우범 소년을 ‘보호자 또는 학교·사회복리시설·보호관찰소의 장이 관할 소년부에 통고할 수 있다’는 법 조항을 근거로 이뤄진다. 소년법 제4조는 만 19세 미만 아동 중 죄를 범한 소년(범죄소년), 형법에 저촉되는 행위를 한 10~14세 미만의 소년(촉법소년), ‘앞으로 형법에 저촉되는 행위를 할 우려가 있는 10세 이상 소년’인 우범소년이 소년 보호사건의 대상이 된다고 정의한다. 수사기관 수사로 적발된 범죄·촉법소년은 대부분 법원으로 ‘송치’하는 방식으로 소년재판을 받는다. 우범소년은 실제로 위법한 행동을 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보호자 등의 통고로 재판을 받는다 -기사 본문 중-

안 씨는 무지하다고 치더라도


형사미성년자인 '촉법소년'은 세간의 관심이 되어 단어가 생소하지 않은 지경이 되었습니다. 양대 대선 주자들도 모두 촉법소년 연령을 낮추고, 보다 엄격한 처벌과 처분이 내려지도록 소년법을 강화하겠다고 이구동성으로 공약했습니다. 두 분 다 율사, 법률인이신데 참 궁금합니다. '소년법'을 제대로 아시는지, '촉법소년'말고 '우범소년'이라고 아시는지, 그리고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하고 말이지요.


제삼자 관찰자 시점이 아닌 일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전환이 필요합니다. 소년이 되어 봅시다. 엄마는 경제적 곤란으로 집을 나간 지 오래고, 아빠라는 사람은 술만 먹으면 욕지거리에 주먹이 날라 오기 일쑤입니다. 그 집안이 싫어  선배들을 따라 거리로 나서서 주취자의 지갑을 슬쩍합니다. 재수 없게 경비원에게 걸려 소년보호 처분 6호를 받고, 청소년 보호 쉼터로 위탁 수용됩니다. 시설은 열악하고 규칙은 엄격한데, 실수가 늘어납니다. 갑자기 외출금지를 통보받습니다. 벌점이 쌓였다는 이유입니다. 납득도 어렵지만, 원장 아빠가 '우범소년'으로 통고까지 합니다. 이제 구치소 같은 분류심사원으로 가던지 다시 거리로 도망치던지 소년에겐 선택지가 많지 않습니다. 어떡해야 하나요?


법의 목적이 '처벌'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법률용어는 늘 '그지 같지요'. 어려운 한자 단어에 의미도 일반적인 단어 의미보다 복잡하고 난해하기 때문입니다. 법제의 생성과 보안, 폐지라는 일종의 라이프 사이클을 보더라도 참 어렵습니다.


법은 행위와 현상이 일어나지 않은 것을 규명하지 않습니다. 현재하고 발생한 것들에 대한 '사회적 합의'의 가장 딱딱하고 무거운 영역입니다. 법은 사회적 행위를 처음부터 규제하거나 단속하지는 않습니다. 갈등이 유발되거나, 헌법이 정한 대원칙에 위배될 우려가 있거나, 공공의 안녕과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기준을 제시할 뿐입니다. 이론적으로 철학적으로 말이죠.


형법(刑法)은 범죄와 형벌을 규정한 법입니다. 형법은 범죄와 형벌의 두 가지 요소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어떤 행위가 범죄이고 이에 대한 법적 효과로서 어떤 형벌이 부과되는가를 규정하는 것이지요. 오늘날에 가장 넓은 의미에서의 형법은 범죄와 형벌 및 보안처분에 관한 법령의 전부를 지칭하는 것이 됩니다.


위와 같은 의미에서의 법을 독일에서는 대한민국과 같이 ‘형법’(Strafrecht)이라 하고 있으나 영국이나 미국에서는 주로 ‘범죄법’(Criminal law)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오늘날에 있어서 형벌을 과할 수 있는 주체는 국가뿐이며 형벌을 받는 주체는 죄를 범한 자뿐입니다.

형법의 목적이 "처벌"이 될 수는 없다


형법에는 그 보는 관점에 따라서 여러 가지 기능이 있습니다. 형벌에 의하여 사회의 질서와 평화를 보호하는 '사회 방위 기능'이 있고, 형벌에 의하여 죄를 범하지 않도록 예방한다는 면에서 본다면 '예방적 기능'이 있습니다. 이와는 다른 관점에서 국민 개개인에 대한 면을 볼 때 형법은 다음과 같은 기능을 가진다고 합니다.


첫째로 형법은 국민 각자에 대하여 일정한 행위가 범죄로서 무가치한 것이라는 것을 인지 이해하는 ‘규범적 기능'이 있습니다. 둘째로 국가는 형법을 제정하여 국민의 법익(法益)을 보호하고 만약 그에 대한 침해가 있을 때에는 형벌이라는 유력한 보호수단을 발동하는 ‘보호적 기능'이 있습니다. 셋째로 형법은 범죄의 범위와 개개의 범죄에 대한 형벌의 내용을 정의합니다. 이로써 국가의 형벌권을 제한하여 부당한 처벌로부터 국민을 수호하는 기능도 갖습니다. 이것을 보장적 기능 또는 마그나카르타적 기능이라고 하며 '죄형법정주의'는 바로 이것을 뒷받침합니다.



"나에겐 안 일어나겠지"라는 설마가 멱살 잡는 소년 인생


"국민정서법"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흔히 "법감정"이라고도 바꾸어 표현하는, "국민정서(國民情緖)"법이란 한 나라의 국민이 특정 사건에 대해서 집단적으로 드러내 보이는 감정이나 정서를 뜻한다고 합니다. 흔히 표현하면 여론이라고 읽히기도 하는데, 소위 '국민정서'가 헌법이나 실정법보다 중히 여겨지는 상황을 비꼬는 말으로 보통 "떼법"이라 칭하기도 합니다. 최근 음주운전 가중처벌과 양형 강화를 삼아 입법 발의되었다가,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이 난 "도로교통법 개정안(일명 윤창호 법)"을 대표적인 사례로 삼기도 합니다.


찬반이 팽팽한 것처럼 보입니다(여론조사는 믿을게 못되어서, 논란이 되는 것만으로). 윤창호 법 같이 언론의 스포트 라인을 받는 사안뿐 아니라, 여성ㆍ아동 관련 성법죄나 스토킹ㆍ묻지 마 살인 등, 인간성을 논할 수 있는 여러 사안들에 "처분이 가볍다.", "범죄자에게 인권이 마뜩한 일이냐."등의 불만 가득한 여론들은 늘 옳기만 해 보입니다. 그리고 이 여론에 동조하지 않으면, 손가락질도 받고 "동종"으로 여기어지기도 합니다. 다수의 판단과 그 분노는 항상 마땅하고 당연한 것일까요? 그럼 수사와 재판은 왜 필요할까요? 이런 비판만으로 동종 전과자나 그 가족, 그리고 잠재적 범죄자와 공범자로 손가락질받는 것은 "사회적 정의"라고 여기어집니다.


http://naver.me/xSccv58z

촉법소년 범죄 양상은 통계가 없어서 확인이 어렵습니다. 대검찰청에서 나오는 범죄분석은 촉법소년인 14세 미만 범죄는 ‘0’으로 잡고 있어요. 검찰에서 2018년부터 촉법소년 통계의 부정확함을 해소하기 위해서 아예 모든 촉법소년을 다 빼버린 거죠. 촉법소년은 경찰이 검찰로 송치하지 않고 바로 법원으로 송치하는데요. 그래서 검찰이 통계를 잡기가 어렵습니다. 문제는 경찰이 법원에 송치하는 소년범 가운데 촉법소년 외에 우범소년도 포함돼 경찰 통계도 정확하지 않다는 겁니다. 비공식 통계로 우범소년이 600~700명 정도여서, 마냥 무시하고 촉법소년 통계를 잡을 수 없죠. -기사 본문 중-


법률은 최소한의 도덕'이라는 말은 있습니다. 말만 있지요. 입법자들의 고지식함은 법이 그 자체로 '이상적인 사회를 그리고 있는 규범'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법률이 실제로 작동하기 어렵다는 반론을 받으면 '상징적으로 남겨져야 한다'는 말을 하는 사례가 많아 지지요. 입법자들의 생각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아서 법률이 사회에 그대로 적용되리라고는 기대하지 않으며 법률을 만듭니다.


사회 구성원과 시대적인 일반 관념과 유리된 법률은 국민들의 법감정이라는 반발을 부르게 됩니다. 당사자는 정작 "나한테만 그래"라는 억울함을 가지게 됩니다. 이러한 감정이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반복이 되고 쌓이다 보면 국가 체계와 입법 사법 행정에게 불신을 갖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와 달리 법은 감정이 없는데, 법을 관찰하는 제삼자는 늘 자기 기준의 감정이입 중입니다. 행복은 고만 고만하지만, 불행은 늘 나름 나름이니까요.

법감정은 내로남불

그런데, 사람들의 기준은 저마다의 기분에 따릅니다. 중대적 사회재해의 피해자의 구제와 책임자의 엄벌애 대해서는 관대합니다. 아니 관심 없어 보입니다. 확률적으로 기업의 실수와 안일한 위법으로 피해를 입을 확률이 자극적인 형사사건의 희생이 되는 것보다 훨씬 높은데 말이죠. 그러면서, 소년들의 범죄는 부르르 떨며 분노하기 십상입니다. 고얀 녀석들 혼내 주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피해자는 몰라도 가해자가 될 일은 없으니까요. 중대 재해 기업은 나의 일자리와 관련 있어 보이니까요.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감 놔라 배 놔라


http://naver.me/FJFxd7h1

 지난해 법무연수원이 발간한 ‘범죄백서’를 보면, 범죄소년과 촉법소년을 가리키는 소년범은 2008년 12만 6213명에서 2017년 7만 2759명으로 10년간 42.4% 감소했다. 소년원 송치 처분을 받은 10~19세 미만 아동 중 새로 수용된 인원은 2008년 1732명에서 2012년 3429명으로 증가한 뒤 감소해 2017년 2450명으로 낮아졌다. 전체적인 소년범죄는 감소 추세다. 반면 한 번 잘못을 저지른 뒤 또다시 보호처분을 받는 재범 수치는 나빠졌다. 2013년 출소자 중 1년 이내 소년원에 재입소한 비율은 10.1%(289명)였다. 2014년 9.5%(228명)로 약간 감소한 뒤 2015년 12.0%(245명)로 다시 증가했고 2016년 14.0%(287명)까지 늘었다. 2년 이내 재입소율은 2015년 출소자의 19.8%(403명)에 달했다. -기사 본문 중-


소년법

어른들이 말합니다. "기회를 줘도 저 모양이야"라고 소년의 비행을 꾸짖습니다. 그런데, 정말 기회를 주긴 했나요? 정말 주었나요?


촉법소년은 대검찰청 범죄분석 보고서에 "0"입니다. 자신들이 담당하지 않고 법원으로 보내니 그런답니다. 말인지 방귀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수장이 대통령이 되었으니 달라지기를 바랍니다. 소년 보호관찰관은 한 명이 평균 110명, 실질 170여 명을 관리합니다. 가능한 업무가 될 수가 없습니다. 소년범 수용시설은 포화도가 110%가 넘어 선지 오래입니다.


곰곰이 생각해 봅시다 소년법으로 유리한 법 판정을 받은 이는 누구일까요. 국회의원 아들, 법조인 자녀, 기업가의 자제, 대형 로펌과 전관을 쓸 수 있는 기득의 아이들이겠지요. 아니면, 다소 빠듯해도 우리 아이들의 완전무결을 주장하는 빅마우스나 적어도 국선이 아닌 보조인을 쓸 수 있는 보통의 가정일 경우입니다.


앞선 예로 든 A군의 경우는 어떨까요? 가정이나 시설이 책임을 지지 않기 위해 '우범소년'으로 통고했다면 어떤가요? 그 소년이 분류원과 소년 감호를 전전하며 진짜 범죄 학습을 해서 흉악범이 된다면, 그것은 누구의 책임인가요? 온 마을의 책임이 되는 문제일 수 있습니다. 통계하나 제대로 없고, 교화와 교육 프로그램은 20세기에 머물러 있고, 공무 여력은 턱도 없습니다. 그러면서 "세금 아깝다"며 인권 따위는 소년범에게 수치라고 합니다. 부끄러워야 어른입니다.


어른과 사회라는 유기체가 책임을 지는 방법은 다양하게 연구되어야 합니다. 여유 있고 능력 있는 가정에게는 부모에게 무한 책임을 요구해야 합니다. 아이들의 처분과 구속이 아닌 보호자에게 가장 현실적인 책임을 강한 배상ㆍ보상으로 물어야 합니다. 그러하지 못한 환경에서 탈출하지 못해 궁지에 몰린 아이들에게는 실질적인 기회를 주어야 합니다. 탈출구와 자립, 그리고 진정한 보호가 필요한 지점입니다.


앞선 링크 <언포기버블> 리뷰의 말로 마무리합니다.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

-요한복음 8장 7절-

억울함은 어디서??


세상 사람들은 나보고 죽일 놈이라 하지만, 정작 진실 속의 난 억울하기만 합니다. 그럴 리 없다고요? 세상모를 일 아닙니까. "삼례 슈퍼 살인사건", "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 그리고 불기소, 무죄로 결론난 그 많던 "미투"들.


그런 불행이 나에게도 닥칠 수 있는 세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불행은 늘 "나름 나름"하다는 것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도 죄입니다. 언론과 사법기관의 정제된 역할이 중요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사건"은 생각보다 복잡한 인과관계가 얽힌 버거운 일상의 일탈일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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