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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 스테파노 Nov 16. 2022

'포르노'에 묻힌 '빈곤'의 문제

기부의 온도 #1

https://v.daum.net/v/20221116160901266

윤석열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가 캄보디아에서 심장질환 아동을 만나 격려한 것과 관련해 장경태 민주당 최고위원이 '빈곤 포르노'라고 발언한 후 역풍이 거세다. 국민의힘 여성의원들이 공동성명을 통해 장 최고위원의 의원직 사퇴를 촉구하고 나섰다. 국민의 힘은 이날 오후 장 최고위원을 국회의원 품위 유지 위반과 모욕을 이유로 국회 윤리특별위원회에 제소했다. -기사 본문 중-



'빈곤 포르노' 논란


최근 순방 일정에서 비공개인데 공개되어 버린 김건희 여사의 사진이 논란입니다. '빈곤 포르노'라는 세간과 야당 의원의 발언에 여당과 지지자들은 발끈합니다. 연출이 아니라 선의인데 곡해하고 있다는 다소 상식적이고 일반적인 반론부터, 이 나라 '국모'에게 '포르노'라니, 인신모독이고 성폭력적 희롱이고 망언이라는 이유에서 그러합니다.


그런데, 진짜 그런 의미일까요? '영어 사전'에만 나오는 말일까요? 우리보다 영어권 문화에 능숙한 외신을 살펴보고, 사전적 의미를 '상식 사전'에서 살펴봅니다.


캡쳐=기레기 추적자


빈곤 포르노 (시사 상식 사전)

모금 유도를 위해 가난을 자극적으로 묘사하여 동정심을 불러일으키는 영상이나 사진 등을 말한다.
외국어 표기: Poverty Pornography(영어)

 


'빈곤 포르노'란, 모금이나 세간의 관심을 유도하기 위해 가난하고 병약한, 곤경에 처한 이들의 영상이나 사진을 자극적으로 극화, 연출시키는 것을 말합니다. 통용되는 '시사 상식 용어'입니다. 1980년대 국제 자선 단체들이 모금 캠패인의 활성화를 위해 시작한 아프리카 기아상태의 어린이의 모습을 여과 없이 사용하면서 시작됩니다. 그 효용은 즉각적이어서 캠페인 목표를 초과달성하게 되자, 다른 기부, 모금 단체에서 따라 하며 오늘날의 TV광고에 만연한 모습이 되었습니다.


이에 대한 평가는 갈려 있습니다. 아주 단순하게, 이렇게라도 참상을 알려야 모금이 된다는 불가피론과 그럼에도 불구 의도된 연출과 상황의 몰이해, 인격 초상권의 침해라는 불필요론이 대립합니다. 제 개인적인 입장은 '절대 불가론'입니다. 우선 '빈곤'의 핵심인 구조적 문제, 원초적인 솔루션의 이야기는 좀처럼 전달되기 어렵습니다. 또한 가난하고 곤경에 처한 이들과 피후원자(국)에 대한 편견과 고정관념을 생산하고, 목적한 의미(얼마나 불쌍한가) 전달의 극대화하기 위해 '연출의 작위성'이 도를 넘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자칫 모든 것이 거짓으로 치부되는 위험성이 늘 있습니다.

출처: 게티이미지 코리아


과거 한 방송사가 에티오피아의 식수난을 촬영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사례가 대표적이지요. 해당 지역의 식수난은 '부족'인데도 극적 효과를 위해 부러 썩은 물을 마시도록 하는 등 비윤리적이고 거짓의 연출로 비난을 받은 바 있습니다. 그리고, 혹자가 이번 김건희 여사의 사진에 대한 비판에 대한 반대 논거로 정우성, 김혜자 등의 셀럽도 '빈곤 포르노'에 출연한 거냐는 이야기를 합니다. 제 개인적인 대답은 '네 그렇습니다'입니다. [기부의 온도]에서 차차 이야기하겠지만, 셀럽들이 참여하는 대부분의 캠페인은 절대 '무료 봉사'가 아니며, 치밀한 연출과 기획이 가미된다는 것을 일반인들은 잘 모를 뿐이지요. (전부 다는 아닙니다. 대부분)


대표적으로 '불행 포르노'를 이야기하곤 합니다.

https://alook.so/posts/Djt6ZlV

불행 포르노(Misery Porn)라는 MSG

오은영 박사의 솔루션은 각 개인과 가정이 안고 있는 '불행'의 단편을 각론으로 규정하고 솔루셔닝 합니다. 행복은 고만 고만하고 불행은 저마다의 나름 나름이라고 하지만, 세대와 세대가 겪고 있는 문제들은 사랑하는 아이들이 갑자기 괴물화가 되거나 자랑스러운 부모가 뜬금없는 폭압을 행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서로 사랑하기에도 바쁠 가정의 식탁에서 서로 괴물과 원수로 만들고 있는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문제들은 '불행 포르노'라는 각론의 솔루션에 은근슬쩍 감추어집니다. 고도의 능력주의, 그로 인한 승자만의 세상, 학력 중시 주의, 부에 따른 교육 접근의 양극화, 무너진 공교육의 가치들은 혀를 끌끌 차게 만드는 자극적인 '불행한 이야기'들의 틈 속에 숨어 버립니다. 나의 이야기는 아니니 패널들에게 함께 동조하며 불행에 삿대질하고 노여워하며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있는지도 모르지요. '불행 포르노'의 전생 시대라 해도 지나침이 없어 보입니다.

불행 포르노라는 말은 극작 법, 영화, 연극, 소설, 게임 등에서 비판적으로 사용되는 용어입니다. 캐릭터에게 비현실적이거나 작위적인 불행들을 지속 주입하며, 그러한 불행을 과다하게 전시하는 작품을 경멸적으로 가리키는 용어입니다. 새드엔딩, 비극이라는 일반적 소재와 달리 서사 자체가 캐릭터의 '불행'에 포커싱 되어 극한 상황 속에서의 피해를 받는 주인공에 대한 불행만 묘사가 거듭, 반복되는 작품들을 이릅니다. 북유럽의 도그마 선언에 따른 <어둠 속의 탠스>, <님포매니악>, <도그빌> 그리고 최근 <가버나움>이나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 같이 평론가들의 주목을 받는 작품들도 있고, 한국에서도 <인간실격>, <나의 아저씨> 같은 주목받은 드라마와 김기덕의 영화 등에서 발견할 수 있는 작화 기법입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불행 포르노는 단순한 평면구조에 반복되는 자극 점층으로 작품의 질보다는 관심과 어뷰징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최근 영화 <호흡> 논란) -본문 중-


? '포르노'라고??!


포르노의 정의가 성적 '자극을 불러일으키는 것'에서 유래하기에 듣는 이들에게 거부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사실입니다. 어원을 보면, 그리스어 포르노그라피아(Πορνογραφία)입니다. 이는 그리스어의 "πόρνη (포르네- '매춘부')"라는 단어와 "γράφειν (그라페인- '기록하다, 그리다')"라는 단어를 합쳐 만들어진 합성어입니다. 초기 성적 포르노가 '매춘부에 대한 기록'이라고 에둘러 시작한 이유에서 연유합니다.


그러나, 단어라는 것은 세상의 변화에 따라 변화하고 확장하기 나름입니다. '포르노'라는 단어는 영상 콘텐츠 영역에서 생각보다 빈번하게 쓰이는 말이 되어 있습니다. 콘텐츠를 보는 이들에게 목적한 특정 자극을 주고자 하는 것을 '~ 포르노'라고 부르는 것이지요. 광고도, 다큐멘터리도, 드라마도, 유튜브도, 예능도 자극을 통해 목적을 일으키는 것이 목적이지만, '~ 포르노'라고 비판적 대상이 되는 콘텐츠는 구분이 됩니다. 특정한 목적 자극을 유도하기 위해 악마의 편집이나, 작위적 편집, 인격의 무시 등을 주저하지 않습니다. 사건이나 인물을 가감 없이 객관적인 모습을 드러내어 맥락을 만드는 일반 다큐멘터리와 그분이 되는 것이지요.


세간에서 지칭하는 종류도 다양합니다. 먹방을 이용한 자극적인 푸드 포르노, 장애인이나 소외계층의 난감한 이야기를 부각하여 무능력자로 그려내는 감동 포르노, 아이의 인격권은 무시하고 문제아라 낙인찍어 버리고 솔루션이라고 떠드는 아동 불행 포르노, 힘내, 괜찮아, 할 수 있어만 남발하는 공허한 감성 포르노, 그리고 앞서 말한 빈곤 포르노 등이 이야기됩니다.


셀럽들이 나오는 빈곤 포르노 모금 광고는 비용도 만만치 않습니다. 모델료라고 특정하지 않지만 '거마비'라는 실제 비용은 대부분 치러집니다. 물론 이를 다시 기부하는 선한 인간들도 많아지고 있습니다만, 이 '기부 캠페인'이 직업이 된 사람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리고, 촬영ㆍ편집ㆍ후작업 등의 제작비, 그리고 각 매체에 편성하기 위한 편성비(방송국이 공짜로 해 줄리가 없지요)까지 최소 억 단위가 넘어가는 비용이 발생합니다. 그 비용은 전부 여러분들의 '선한 마음'에서 나온 기부금으로 충당됩니다. 어떤 단체는 배보다 배꼽, 실제 배분 사업비보다 모금 사업비가 훌쩍 뛰어넘기도 합니다. 직원 수십 명 급여에 현지의 종교 시설 건립이나 선교 비용을 빼면 가난한 아이들이나 불쌍한 북극곰에게 돌아가는 몫은 점점 줄어듭니다.


그러다 보니, 최소 비용의 최대 효과의 단골 메뉴 '자극의 극대화'는 전가의 보도가 된 지 오래입니다. 악회가 양화를 구축한다든지 흑묘, 백묘 같은 철학적 사고가 아니더라도 '사업'이라는 측면에서도 비효율적입니다. 기부와 모금 행위 뒤에는 '사업'이라는 이름이 붙는 이유는 단순합니다. 남기라는 것이지요. 남겨야 쓰니까요. 하지만 빈곤, 불행 포르노의 가성비는 생각보다 좋지 않습니다. 그저 생색을 포장하기 좋은 홍보의 수단일 뿐입니다. 사람들의 선한 본성을 이용하는 것. 그 이상의 의미는 없어 보입니다.

사진=중대신문사, 국가인권위원회

가장 적절한 도움은 아파하는 사람의 아픈 곳을 직접 치유하는 것이라 생각됩니다. 이번 순방에서도 주치의를 대신 보내 진료하고 수술 지원을 한 후, 모두가 김 여사의 뜻이라고 전했다면 어땠을까요. 식수가 부족한 곳에 식수를, 북극곰을 위해서는 환경 정책을, 기아와 가난에 처한 이들에게는 현금과 현물을, 그리고 빈곤에 대해서는 그 빈곤의 이유 규명부터가 필요한 것이지요. 찬송가나 성경 말씀, 교회가 당장 필요한 것이 아니지요.


캄보디아 심장병 어린이가 얼마나 아픈지, 어떤 상태인지, 당장 의료구호가 필요한지, 남아시아의 의료격차 해소를 위해 어떤 외교의 노력이 후속되는지는 사라져 버렸습니다. '원초적인 말 뜻으로 포르노'는 영혼까지 갉아먹는 유해한 성적 자극 콘텐츠입니다. 그 '자극' 말고 남는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이번 해프닝은 '빈곤 포르노'가 맞다고 생각합니다. '포르노'라는 자극적 후일담 마저 '빈곤'이라는 실체를 덮어 버렸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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