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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 스테파노 Apr 02. 2022

[이야기 News]우크라이나, 패럴림픽 그리고 체르노빌

비극이 낳은 희망의 역설

[이야기 NEWS #2]

이야기 같은 뉴스, 뉴스를 이야기합니다


애국심 만이 아니라 시스템이 일군 결실

패럴림픽 강국

우크라이나는 지난 하계 베이징올림픽(비장애인)에서는 은메달 1개를 거두었지만, 이번 2022 베이징 패럴림픽에서는 그 성적이 다른 양상으로 시작합니다. 6일 차인 11일까지 우크라이나는 바이애슬론과 크로스컨트리에서 총 19개의 메달(금 6·은 8·동 5)을 따냈습니다. 메달 총개수로는 중국, 캐나다에 이어 3위, 메달 색을 기준으로 개최국 중국에 이어 46개 참가국 가운데 2위 성적입니다.


https://n.news.naver.com/sports/general/article/144/0000798082

우크라이나는 러시아 침공을 받은 상황 속에서 참가한 패럴림픽에서 선전을 이어가고 있다. (중략) 패럴림픽은 오는 13일 끝난다. 베이징으로 오는 건 많은 게 미리 확정된 상태였지만 전쟁 중인 고국으로 돌아가는 건 또 다른 문제다. 그렇다고 계속 베이징에 머물 수도 없다. 우크라이나 선수단은 패럴림픽이 끝나도 집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생각에 속만 더 타들어가고 있다. -기사 본문 중 -


사람들이나 일부 언론들은 '전쟁 속의 고국에 대한 애국심'의 발로라고 합니다. 아주 틀린 말은 아닐 수도 있으나, 그것이 전부라는 것은 짐작에 국한됩니다. 우크라이나는 패럴림픽 등 장애인 스포츠 강국으로 우뚝 선지 꽤 오래되었습니다.  2020 도쿄 패럴림픽 6위(금 24·은 47·동 27), 2018 평창 겨울 패럴림픽 6위(금 7·은 7·동 8) 등 2004년 아테네 대회 이후 17년간 여름, 겨울 패럴림픽에서 6위 밖으로 밀려난 적이 없었습니다.


소비에트 연방, 소련 해체 후 독립해 1996년 애틀랜타 대회부터 출전하기 시작한 우크라이나가 그간 획득한 패럴림픽 메달은 584개로 전 세계 통산 16번째로 높은 성적이며 러시아보다 83개(징계로 인한 러시아패럴림픽위원회 메달은 제외)가 많습니다. 물론 패럴림픽의 철학과 장애 등급의 다양성 등으로 비장애인들의 올림픽보다 메달이 많습니다.


흔히 "장애인"하면 복지 시스템이 잘 갖추어진 북유럽이나, 캐나다, 그리고 미국 등이 선진국이라 여기어지니까요. 그런데, 사실은 통념을 살짝 빗나갑니다. 차후 국가별 장애인 정책에 대해서는 역사와 사회 철학 등을 비교하여, 통념에서 벗어난 이야기도 다음 기회에 해 볼까 합니다.


그럼 우크라이나의 패럴림픽 강국은 어떻게 가능했을까요? 정치인들의 정책으로? 공산주의가 아니라 자본주의를 받아들인 효과로? 아닙니다. 몸부림 같은 시스템 구축과 장애인 인식 개선, 정책 활동 등의 시민들의 노력이 있었습니다. 그 힘으로 장애인들 스스로가 일군 성과라 할 수 있습니다.

슈스케비치 위원장



시스템은 '시민운동'이라는 항거부터


우크라이나 패럴림픽의 성취에 대해서는 두 가지 이름이 거론됩니다. 하나는 발레리 수쉬케비치(68) 현 우크라이나 패럴림픽위원회 위원장입니다. 소아마비로 장애를 가진 그는 구 소련의 장애인 수영선수였습니다. 공산주의나 전체주의는 "완결성"을 강조해서 길거리에 장애인이 눈에 띄는 것을 싫어했습니다. 물론 전쟁 상의 영웅은 예외가 되고, 일본 같은 왕정 기반 국가는 좀 다르지만, "장애인은 집이나 병원에"를 강조하는 소련 당 공무원 들은 '장애인 스포츠'자체가 탐탁지 않음을 대놓고 드러 냈습니다.


흔히 한국에서 볼 수 있었던 모습으로, 운동하는 장애인들을 막아설 정도로 차별이 심해지자 수쉬케비치는 학내 장애인 수영 모임을 조직해 항거하면서 길고 긴 개혁가의 길로 들어섰습니다. 이내 그는 1990년 체제 저항가로 정치운동과 장애인 인권운동을 함께 했지요. 그리고 소련 붕괴 후 뜻밖의 기회가 찾아옵니다. 바로 1980년 대 말부터 시작된 '인바스포트(Inva Sport)'라는 쟁애인 인권 운동 NGO였습니다.


우크라이나가 독립한 1991년, 그는 패럴림픽위원회를 창립해 초대 위원장이 됩니다. 이후 1990년대 내내 정치인 신분으로 ‘인바스포트(Inva Sport)’라고 불리는 장애인 스포츠 정책의 토대를 닦는 데 매진했습니다. 인바스포트는 우크라이나 24개 주 전역에 장애인 스포츠센터와 장애 아동을 위한 학교를 설립하는 프로젝트입니다. 비영리단체(NGO) 연합을 중심으로 진행되던 사업은 2003년부터 국가 예산을 지원받으며 공공제도로 정착하게 됩니다. 이듬해 우크라이나는 아테네 패럴림픽에서 금메달 24개를 따내며 6위를 기록, 빛나는 역사를 쓰기 시작했다.


소질을 보이면 곧바로 재활과 운동을 거쳐 체계적인 선수로 양성하는 체계적인 프로그램이 전 세계의 벤치마크 사례가 되었습니다. 우크라이나는 패럴림픽 금메달리스트에게 12만 5000달러(약 1억 3000만 원)의 포상금을 줍니다(2018 평창 기준). 우크라이나 패럴림픽 선수들에게 장애인이 직업을 갖기 힘든 우크라이나에서 올림픽 메달은 인생을 바꿀 수 있는 힘이 되는 것이 '스포츠'가 된 것이지요.

스포츠가 장애인의 "직업"이 되는

'인바스포르트(Inva sport·장애인 스포츠)'는 전쟁 직전까지 현재 키예프 등 전국 25개 대도시와 80개의 중소 도시에 인바스포르트 관장 기구를 운영 중입니다. 아동·청소년 장애인체육학교도 24곳, 장애인을 위한 체육 재활 시설도 148곳이나 됩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것은 인바스포르트의 시작이 1986년 4월 세계를 충격에 빠뜨린 체르노빌 원전 사고라는 것이지요.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에서 불과 140㎞ 떨어진 곳에서 생긴 사고로, 직·간접적 피해를 입은 사람이 300만 명이 넘었고, 총피해액만 1300억 달러(약 139조 원)에 달한 20세기 손에 꼽히는 대참사였습니다.



"검은 잎사귀"에서 피어난 푸른 희망


초르노빌(우크라이나어: Чорнобиль) 또는 체르노빌(러시아어: Чернобыль)은 우크라이나 북부의 옛 도시이다. 체르노는 '검은'이라는 뜻이고 빌은 '잎사귀', 즉 '검은 잎사귀'라는 뜻입니다. 키예프주에 속하며 벨라루스 국경 근처에 자리 잡고 있는 마을이었습니다. 이 지역은 1759년 폴란드 왕국으로 넘어갔다가 나중에 1793년 러시아 제국에 합병되었다.


우크라이나 지역별 언어

우크라이나의 역사는 주변을 둘러싼 강대국들의 '주변'으로 늘 고통받고, 원하지 않은 다양성을 지니게 되었습니다. 언어도 센서스로 70% 가까이 우크라이나어를 쓴다고 하지만, 우크라이나어와 러시아어의 혼합이 되는 "수르크지"라는 방언을 많이 씁니다. 그리고 키릴 문자로 대변되는 슬라브어는 뿌리가 같아 통용이 쉽습니다. 우크라이나어는 사실 폴란드어와 러시아어를 차용한 복합 언어입니다. 이처럼, 우크라이나의 역사는 늘 '수동적'인 약자의 그늘에 있었습니다. 그중 체르노빌에 '원전'이라는 기피 시설이 지어진 이유는 변방이라는 의미의 우크라이나에서도 가장 변방이기 때문이지요.


1986년 4월 체르노빌 원전 폭발사고는 그야말로 '인재'의 극치였습니다. 완전 무결성을 강조하는 공산주의 독재체제에서 참사는 숨기고 싶었겠지만, 손으로 가릴 수 없는 비극은 세상에 모습을 드러 내게 됩니다. HBO 드라마 <체르노빌>에서 그 자세한 것을 살펴볼 수 있으니 꼭 보시기를 추천드립니다. 한국에서 <판도라>라는 영화에 대해 '탈원전 주의자'들의 선동이라는 보수계의 지적도 있었지만, 원전은 "환경" 이전에 "안전"에 대한 심도 있는 고려는 필요해 보입니다.


https://youtu.be/w5w9m-NTYVk


인간의 역사는 아이러니와 역설의 연쇄작용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체르노빌 사고로 인한 국제 구호와 관심이 우크라이나 패럴림픽 강국의 사실 "인바스포트"를 만들었으니까요. 결국, 세상은 재앙과 치유라는 승부 끝나지 않는 묵찌빠를 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체르노빌은 우크라이나뿐 아니라 패럴림픽에서 또 다른 감동 스토리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직접 피폭되지 않았지만, 피폭의 후유증으로 사고 후 3년이 지난 시점에 태어난 선천적 장애인이 미국으로 입양되어 패럴림픽 스타가 된 일은 현재 진행형입니다.


http://naver.me/xXPHmQUo

마스터스는 1989년 우크라이나 크멜니츠키에서 태어났다. 약 400㎞ 떨어진 체르노빌에서 원자력발전소가 폭발한 지 불과 3년 된 시점이다. 어린 마스터스는 건강했지만 팔다리와 장기 일부에 선천적 결함이 있었다. 자신의 이야기를 정리해둔 누리집에서 그는 체르노빌의 방사선 누출이 생모에 영향을 줬고 이것이 기형으로 이어졌다고 설명했다. 우크라이나에서 보육원만 세 곳을 전전하던 그는 8살에 미국으로 입양됐다. 이후 그는 5년에 걸쳐 두 다리를 모두 절단했고, 몇 차례 손가락 재건 수술을 받았다. -기사 본문 중-


여성분들이 좋아하는 테라피(therapy)라는 치료가 가미된 관리가 성행하고 방법이 본격 연구된 것은 1,2차 세계대전의 후유증 때문이었습니다. 전쟁 중 부상, 상해를 입은 상이군인과 민간인들을 위한 치료 요법의 개발이 그 시작이 된 것입니다. 특히 온천, 아쿠아 치료, 마사지 등은 그 당시 재활의 목적이었고, 피부 관리, 오일 요법은 화상 환자를 위한 관리의 이유였다는 것이지요. 미용, 웰니스 영역만도 아니지요, 패션ㆍ자동차ㆍ가전ㆍITㆍ우주항공 등 산업 전반이 전쟁을 기점으로 도약한다니, 참 기가 막히는 인간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사실관계와 역사적 고찰을 떠나 전쟁은 참사, 재앙


인바스포트는 전 세계 스포츠인들이 찾아와 배워가는 모범 사례가 되었지만, 권력자들의 욕심, 전쟁은 이런 전통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2014년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강제 병합 시에 유럽 최고의 장애인 운동시설로 평가받던 예프파토리야 훈련센터가 러시아에 넘어갔습니다. 6년이 흘렀고 전쟁은 다시 우크라이나를 덮치게 되었습니다. 수쉬케비치 위원장은 우크라이나 선수단 54명을 이끌고 전쟁터가 된 조국을 빠져나와 베이징에 도착했습니다. 그는 “이동하는 데 나흘이 걸렸다는 그는 '기적'이라 이야기합니다.

전쟁 반대

개인적으로 전쟁 같은 참사를 "관전"하듯 응원하는 것은 반대합니다. 결국 전쟁의 끝은 '죽은 자'들만 본다 하지요. 무엇이 되었는 "좋은 전쟁"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침략으로 시작한 자나 방관하고 부추긴 모두가 비난받아 마땅합니다. 특히 전쟁으로 국익과 권력 유지와 하등의 상관이 없는 민간 생계에 대한 위협, 스포츠와 예술에 대한 숭고한 정신에 대한 침해는 용납되어서는 안 됩니다. 어느 쪽이든 말이지요. 우크라이나는 하나의 국가로 굳건하기를 바랍니다. 아울러 기득권 국가들은 스포츠와 예술을 함부로 이용하지 않았으면 또 바랍니다.


https://n.news.naver.com/article/366/0000797710


그러나 올해 국내 프로배구 리그에서 러시아 국적 선수는 찾아보기 어려울 전망이다. 국내 여자배구 드래프트는 매년 4~6월쯤 열리는데, 올해 러시아 국적 외국인 선수는 사실상 드래프트에 참여할 길이 막혔다. 국제배구연맹(FIVB)이 오는 8월 러시아에서 치러질 예정이었던 세계선수권대회를 취소할 정도로 강도 높게 ‘러시아 보이콧’에 나섰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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