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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 스테파노 Mar 25. 2022

소주 한 잔, 그리고 세금

알코올 의존증과 주세법의 묵찌빠

0.

관련 글을 접한 뒤 소주 생각이 나지 않았습니다. 개인적으로 신기한 경험입니다. 저는 "의존증"이 의심되는 음주 생활자였기 때문입니다. 불과 5년 전까지 말이죠. 그간 불가피한 자리에서 소주 한 잔, 맥주 두 어 잔이 "어쩔 수 없는 음주량"이고, 최근 2년은 한 방울도 마시지 않았으니, 자의든 타의든 절제와 인내의 결과에 좀 뿌듯함이 있습니다.


1.

절제하지 않는 음주의 폐해는 잘 알기에 언급하신 약사님의 칼럼의 전반 내용과 결말에 동의가 됩니다. 특히 '고위험군 통계'는 참 중요 지표인데, 최근 음주 인구가 전반적으로 준다 해도 고위험군은 여전하며, 특히 청소년과 여성의 편입이 늘어난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합니다. 여성의 경우 알코올 중독자 성비에서 점유가 높아진 것은 여성 음주 비율이 자체 상승했으니, 자연 증가분이라고 볼 수 있으나, "고위험"군이 그 수치보다 상회한다면, 유심히 지켜볼 필요가 있을 듯합니다. (물론 설문, 먼접 조사의 한계는 있겠지만)

늘어나는 "고위험군"

2.

2018년 국민건강 영양조사에 참여한 만 19세 이상 성인 여성 3,619명을 비(非) 음주ㆍ일반 음주(최근 1년간 한 잔 이상 음주한 경험 1회 이상)ㆍ고위험 음주(음주 횟수 주 2회 이상, 1회당 음주량 5잔 이상)로 분류해 분석한 결과, 일반 음주 여성의 비율은 55.2%(1,997명)였습니다. 그중 고위험 음주 여성은 전체 성인 여성의 8.8%(319명)였습니다. 여성의 연령대가 낮을수록 고위험 음주 비율이 높았다. 20대 여성에서는 동일 연령대 전체 음주 여성의 21.8%가 고위험 음주 상태였다고 합니다. 전체 음주 여성 중 고위험 음주 여성의 비율은 30대 18.6%, 40대 15.1%, 50대 12.8%, 60세 이상 5.5%로, 나이가 많을수록 낮았습니다.

https://m.hankookilbo.com/News/Read/A2021061420030002096


3.

 2030대 젊은 여성의 고위험 음주 비율이 높은 것은 경제ㆍ사회활동을 본격화하면서 회식 등 음주 기회가 많이 증가한 연령대이기 때문이라고도 합니다. 여기에 더해 1인 가구의 증가 상대적인 우울감, 불안감이 높은 정서의 불안 요소가 많은 사회 구조 때문이기도 합니다. 사회적, 심리적인 "불안"의 요소가 잠시의 망상의 세계인 "취중 도원"으로 이끄는 경향이 있다는 것은 부정하기 어렵습니다. 특히 "알코올 의존성"의 전조 증상 중 하나가 잦은 "혼술"에 있다고 합니다. 구조적, 통념적 사유로 폭음과 과음이 "혼술"일 때 비롯되면 위험해지는데, 젊은 단독 가구의 여성이 젖어들기 쉬운 습관이 될 수 있습니다.


4.

문제의 근원은 "개인"에게 일차적으로 있습니다. 그러나, 술을 마시게 하는 사회, 술을 권하는 사회라는 더 근본적인 이유의 제공은 사회에 있습니다. 그래서 칼럼처럼 "소주 도수"에 대한 상술ㆍ마케팅과 소비자 물가를 핑계로 적극 과세하는 주세법 조정에 주저하는 행정은 비판받아야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 "세금"의 문제로 접어들면 관점과 판단이 조금 복잡해집니다. 그 이유는 대한민국의 법제 중 가장 개선이 안 되는 "주세법" 때문입니다.


5.

주세(酒稅)는 주류를 과세물건으로 하는 국세의 하나입니다. 주세법에 따라 주류를 제조장에서 출고, 보세구역으로부터 취득ㆍ인수할 때에 그 수량 또는 가격을 과세표준으로 하여 제조자나 인수인에게 부과하는 소비세입니다. 2016년 기준 3조 3천 억의 세수가 있습니다. 문제는 "주류"에 대한 근원 법이 이 "세법"이라는 점입니다. 주세법은 취득 시의 "과세규정" 뿐 아니라, "술"이 무엇인지 규정(3조, 알코올 1도 이상의 음료)하고, 술의 종류를 4가지로 규정(4조, 주정ㆍ발효 주류ㆍ증류 주류ㆍ기타 주류)하고 세분 까지 합니다(주세법 상 한국의 "청주"는 일본의 "사케"에 밀려 청주가 아닌 "약주") '술의 모든 것'을 정한다 해도 과언이 아닌 게 됩니다. 그래서 '술'과 '유관산업'의 주무부처가 국세청이 되어 버렸습니다.(2010년 까지)

<피키 블라인더스>

6.

100여 년 전까지 주세의 흔적은 없습니다. 즉 술에 대한 세금을 받았다는 기록을 옛 문헌에서 찾아보기는 어렵습니다. 보통 "전매사업"의 기준으로 술ㆍ담배ㆍ인삼 등을 통제한 것은 중국, 일본, 한국의 관용 사업 기준이지 과세의 기준은 아니었습니다. 미국 등에서 밀주와 금주, 그리고 마피아 같은 주류 산업에 대한 통제로 세법이 발생하고 고도화되었다고 보고 있습니다(넷플릭스 드라마 <피키 블라인더스>등 참조). 그래서, 어울리지 않게도 지금까지 주류에 관한 업무, 안전관리 업무부터 전통주 진흥 업무까지, 관련 기관은 대부분 국세청 소속(산하)였습니다. 2010년이 돼서야 관련 기관에 업무를 이관(위생 : 식품의약품 안전처, 진흥 : 농림축산 식품부)할 때까지 국세청 직원도 그저 관성으로 담당해 왔습니다.


http://naver.me/FbumuGCp


7.

그런데, 여전히 "세법"이 이슈의 몸통입니다. 주세는 '종량세'와 '종가세'로 나누어지는데, 한국의 주세는 '종가세', 즉 알코올 음료 원가에 따라 세금이 부과되는 방식입니다. 1949년 주세법 제정 당시에는 "종량세"를 적용했습니다. 그런데 1965년 '주류 소비 억제' 및 '세수 증대'를 목적으로 해서 종가세 체계로 전환되었던 것입니다. (주정은 종량세를 유지했는데 탁주와 약주는 1971년 종가세로 전환) 2020년 1월 1일부터 맥주와 탁주 부과 기준이 가격을 기준으로 하는 종가세에서 출고량을 기준으로 하는 종량세로 전환됩니다. 52년 만이지요. 다시 말해 "음주 억제"를 위한 "세금 정책"은 있어 왔고, 지금도 있습니다. 다만, 효과는 "글쎄"가 됩니다.


8.

종가세의 경우는 제조업자가 제품을 출고할 때, 수입업자가 수입신고를 할 때 주류 가격에 주종별 세율로 부과합니다. 종가세를 적용하게 되면 주류의 종류가 동일하더라도 제품 가격이 낮으면 적게 납부하고 가격이 높은 경우에는 많이 납부하는 것입니다. 소주의 품질이 하향 평준화하는 이유가 됩니다. 반대로 종량세는 출고되는 주류의 양에 주종별 세율로 부과하는 방식인데요. 종량세를 적용하면 주류의 가격이 다르다 해도 주종이 동일하고 동일한 양을 출고하면 주세도 동일하게 부과됩니다. 주세가 "종가세"로 유지된 이유는 '독점 대기업'의 로비와 입법ㆍ과세 당국과의 꿍짝이 있었습니다. 생산원가에 따라 일정 비율로 부과하는 구조라서 원가가 쌀수록 세금이 적게 붙는 것입니다. 따라서 규모의 경제를 통한 원가절감이 가능한 대기업보다 규모의 경제를 아직 실현하지 못한 중소기업이 세금을 더 많이 내는 결과가 벌어집니다. 국회나 정부는 "내수산업 보호", 그리고, "중소기업 경쟁력 강화"를 이유로 법 개정을 차일피일 미루었지요. 뭐 개가 풀 뜯는 소리이지요.

http://naver.me/FWvRERr5


9.

한국의 주세는 상당히 높은 편입니다. 간접세인 수입 관세도 연동됩니다. 한국 맥주의 맛의 이유(맛없다는) 주세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으며, 증류주의 주세는 더욱 높아 위스키가 부자들이나 마시는 술이라는 인식을 만드는데 크게 한 몫했습니다(수입양주=사치품). 대개의 나라에서는 독한 술일수록 주세가 많이 붙는데 우리나라는 소득 수준이 올라간 지금도 소주와 맥주가 거의 같습니다. 이유는 국민 정서, 쉽게 말해 표 때문이랍니다. 알코올 의존성 관련 문제는 주세 인상이 먼저 40도 이상이 넘는 주류부터 올리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과음, 폭음이 고도수 증류주 때문이라기보다는 희석식 소주의 과음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말도 안 되는 소리가 됩니다.

한국의 "주세"

10.

한편, 2005년에 KOTRA는 재미있는 일본의 연구를 공개합니다. <일본, 주세인상후 주량 87.4% ‘변함없다>라는 제목의 논문입니다. '주세법이 개정될 경우 자택에서의 음주 주량이 변하는가?’에 대한 응답으로 일본인 87.4%가 ‘변함없을 것이다’라고 답변했다는 연구 결과입니다. 음주량은 금액이 아니라, 스트레스 및 건강 고려에 의존된다는 결론과 함께 말입니다. 또한 대부분의 응답자가 ‘본인이 좋아하는 술을 마시고 있기 때문에 10~30엔 정도 상승해도 마시는 횟수는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라고 답변했습니다. 반면, ‘줄어든다’라고 답변한 경우는 11.5%였습니다. (일본의 주세율은 항목별로 상이한 것이 한국과 같지만 개략적으로 2배 이상에 세율을 부과)


11.

주세로 음주의 횟수와 폭주를 효과적으로 견제하려면 주세를 에탄올 종량세, 즉 술에 포함된 에탄올 1g당 얼마 하는 식으로 바꾸는 방법이 효과적이라는 주장이 대두되고 있습니다. 희석식 소주 같은 에탄올 함량만 높은 싸구려 술의 값을 올리면 된다는 것이지요. 이유는 '알코올 섭취량-주량'에 따른 음주가 아닌 '경제-지불능력, 예산'에 따른 음주 통제가 효과적이라는 것이지요. 비교적 저품질의 저가의 술보다, 고가의 고품질 술을 적당히, 능력껏 즐기는 문화로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주장입니다. 그래서 그 중간 과정인 "종량세"가 효과가 있다는 것이지요. 고가의 술은 가격이 상대적으로 유입 요인이 되고, 저가의 술은 높아진 부담에 꺼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2022년 1월 현재 맥주와 막걸리는 종량제가 시행 중이지만 위스키, 브랜디 마시는 사람들은 여전히 소수인지라 신나게 세금으로 맞고, 각종 바와 주점에서 눈퉁이 맞는 중이지요.


12.

人飮酒 酒飮酒 酒飮人(인음주 주음주 주음인)

:사람은 술을 마시고,, 술도 술을 마시, 술이 사람을 마신다

'소주 한 잔'에 대한 생각이 꼬리의 꼬리를 물어 '주세법'까지 이어졌습니다. 30년 가까이 애주가를 넘어 "의존증" 직전의 경험적인 주관평은 "술은 비싸게 마셔라"입니다. 제가 소주를 처음 접했을 때가 25도였습니다. 당시 2병이 넘어가는 주량을 "세다"라고 평가했습니다. 그런데 요즘 소주는 15도 정도까지 내려와  12~17도 와인의 경지에 와 있습니다. 이 상술의 추세에 이미 저는 고위험 음주자가 늘 것이고, 아마 여성들이 늘 것이라고 어렴풋이 예상했습니다. 이미 십 수년 전입니다. 이유는 러시아, 영국의 심각한 알코올 의존증ㆍ고위험 음주 문화를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주종"은 의외로 독주가 아니라 "맥주ㆍ와인"입니다. 적당한 알코올 도수의 저렴한(500~6,000원) 맥주와 와인은 거부감 없는 한도 초과를 유발합니다. 지금 우리의 소주가 그 영역에 와 있습니다.


http://naver.me/xS8BZOt8


* 전체적인 맥락 "세금"으로 "음주문화"에 변화를 줄 수 있다는 것에는 동의합니다. 단, 주세는 업계가 요청하나 소비자들, 서민들이 반발하는 것이 아니고, "서민 반발"이라는 근거 부족 주장을 하며, 업계와 정치권ㆍ행정 관료들이 '방어'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주세가 조정되면, 고가였던 고급 주종의 소비와 고품질의 소규모 양조장이 기본 시장을 갉아먹을 것은 뻔하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여전히 이 사회는 술을 "강권"하는지도 모릅니다. 다들 취해있기를 원하는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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