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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 스테파노 Apr 02. 2022

PTG(외상 후 성장), 그리고 회복 탄력성

흰 수염 고래

선거, 시험, 경쟁 그리고, 하다 못해 스포츠 게임 응원에서의 '실패'는 후유증을 남기게 마련입니다. 개인의 차이가 있을 뿐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일은 다반사가 되곤 합니다. 외상 후 스트레스에 빗대어 '선거 후 스트레스'를 이야기하는 기사가 눈에 띄더니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경험하고 있는 심리적 공동ㆍ공명 현상이 된 듯합니다.


외상 후 성장(外傷後成長, 영어: post-traumatic growth, PTG 혹은 benefit finding)이라는 용어가 있습니다. 신체적인 손상 또는 생명에 대한 불안 등 정신적 충격을 수반하는 사고를 겪은 후 심적 외상을 받은 뒤, 회복력을 통해 이루어지는 회복(recovery) 상태뿐만 아니라 이를 통한 긍정적 변형(transformation)을 가리킵니다. 심리학적인 연구뿐 아니라 생물의 생장, 그리고 인체의 생리에도 연구가 되었습니다.

외상 후

제가 일전에 "보상심리"에 대해 이야기하며, 반대급부로 인한 능력의 향상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나무도 생채기가 나면 그 부분이 더 단단해집니다. 사람도 신체의 일부가 훼손되면 다른 부분의 운동 기능이 발달해 그 부분을 보완하려는 '보생'의 기재가 본능으로 발현된다고 합니다. 사고로 팔다리를 잃은 분들이 재활 후 다른 부분을 강화하게 되는 경우지요. 일상에서도 여러 번 물집이 잡혀 살갗이 떨어져 나가면 이내 더 딱딱한 살들이 모여 굳은 살을 이루곤 하지요.

https://alook.so/posts/M9t2W7



정신분석학에서는 결함을 극복하고 보충하려는 생체(生體)의 노력이라는 뜻으로 "보상(補償)"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고 합니다. "보상심리"라고 말하는 것은 앞선 "칭찬의 대가" 의미가 아니라 "기워서 메움"의 의미가 작용하는 것입니다. 오른손 절단으로 왼 손의 능력이 증대하거나 맹인이 청력이 발달하는 것도 "기관의 보상 작용"이라고 합니다. 보상으로 인해서 오히려 보통 이상의 능력을 갖게 되는 경우를 과보상(過補償)이라고도 합니다. (영화 <데어데블> 등). -본문 중-


물론 그 "성장"으로 가기까지 현재의 스트레스 상태를 딛고 일어날 기초적인 힘이 필요합니다. 그런 힘을 흔히 "회복 탄력성"이라고 이야기들 합니다. '탄력성(resilience, 彈力性)'이라고 줄여서 부르곤 하는데, Resilience의 번역 명칭으로 실패했을 때 좌절하지 않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능력을 말합니다. 회복탄력성이 낮으면 학습된 무기력이 오기 쉽다고 합니다. 앞서 언급된 '탈력화', '무력화'가 오는 것이지요. 반대로, 회복 탄성력이 매우 높은 사람은 단순히 외상 후 스트레스(PTSD)를 회복하는 것이 아닌, 이를 기회삼아 성장하는 외상 후 성장(PTG)을 겪기도 한다고 합니다.


늘 강조당하던 '정신력'의 실제 의미는 이 회복탄력성, 혹은 심리적 강인성에 가까울지도 모릅니다. 회복탄력성과 심리적 강인성은 단순한 의지 문제가 아닙니다. 사실 현실적인 체력과 능력의 형태에 더 가깝다고 합니다. '안되면 되게 하라'는 공수부대 구호이지 일상의 '정신력'은 회복 탄력이 되는 신체적, 심리적 체력이 됩니다. 쉽게 살펴보자면 자신의 허벅지를 세게 누르면 금방 원상태로 근육ㆍ피부조직이 회복되는데, 이것이 "회복 탄력성"의 기본이 됩니다. 즉, 탄력성은 타고나기도 하지만, 길러 낼 수 있는 '이성'의 영역이지, '의지'만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실패는 다음이라는 뜻


탄력성 관련 초기 연구를 진행한 연구자들 중 한 명인 에밀리 워너(Emily Werner)는 1995년에 탄력성이란 '환경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예외적으로 잘 적응하는 것'으로 정의하면서, "선천성"을 이야기합니다. 반면, 발달심리학자인 매스턴(Masten)은 2001년에 탄력성이란 '적응이나 발달의 심각한 위협에도 불구하고 좋은 결과를 이끌어 내는 것'이라 정의합니다.


그런데, 선천적이든 후천적이든 회복 탄력성의 측정과 진단은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실제 위기가 닥쳐야 실질적 판단이 되는 영역이니까요, 그러나 심각한 위협의 상태를 부러 만들 수 없는 노릇입니다. 그래서 탄력성의 유무에 대해 말하기 전 우선 긍정적인 결과가 도출되었는지 살펴봐야 한다. 그래서 일상이나 경험에서 위협의 상태가 있었는지를 회고하고 그 당시의 결과적 긍정을 측정하곤 합니다. 긍정적인 결과는 개인의 연령과 상황에 대한 통상적인 사회적 기대에 따라 판단할 수 있으며, 일부 연구자들은 문제 행동이나 병리학적 증상의 부재 자체를 탄력성에서 요구하는 긍정적인 결과로 보기도 합니다.

https://alook.so/posts/54tlGB

'Fail이 무슨 뜻인지 알아?'

'응, 아빤 그것도 몰라?'

'뭔데?'

'다시 시작하라는 거잖아!'

-본문 중-


절망은 희망을 위한 단계이며, 불행은 희망을 준비하는 시간이다. -배철현 교수 <심연>-


개인적으로 회복 탄력성이 매우 좋은 편입니다. 주위의 평가도 그렇지만 스스로도 느끼곤 합니다. 이유를 생각해 보건대, 제 성장기와 청년기는 고난과 위협의 연속이었고, 그런 사건과 사고가 서프라이즈가 되기에는 많은 것을 경험치로 알게 된 것 같습니다. 그리고, 불행 중 다행인지, 뭣도 모를 시절의 위기 극복은 감당할 "체력"이 "정신력"을 담보해 준 것 같기도 합니다. 그냥 헤치고 나왔더니 마음에 근육과 굳은살이 박힌 운 좋은 인생이었습니다.


최근 선거의 결과는 제 지지와 반대였습니다. 특히 자격이 되지 않는 자들의 창궐이 뻔해 보여 분노심도 올랐습니다. 그런데, 제게 납득하기 어려운 패배는 잦았습니다. 생각보다 일상에서 실패는 다반사일지도 모릅니다. 특히 야구 경기를 참 좋아하는데, 강타자의 기준인 3할 타율은 10번 중 7번을 실패한다니, 위로가 되기도 했습니다. 인생에서 성공했다는 사람의 성공의 순간은 그 "딱 한번"일 수도 있습니다. 무수한 실패의 일상이 성공이라는 인생을 지탱하는지도 모르니까요.


저는 극복과 회복을 생각할 때마다 구약 성경의 '요나'를 떠 올립니다. 자세히 살핀다면 이 요나만큼 독특한 인물도 없는데, 무슨 배짱인지 늘 신에게 대듭니다. 그러다가 고래인지 백상아리인지 모를 큰 물고기 뱃속에 갇혀 사흘을 보내고 구사일생으로 생환하게 되지요. 한 도시의 멸망의 예언을 전하면서도 소돔과 고모라 같은 스펙터클을 내심 기대하는 살짝 똘끼가 있는 인물입니다.

요나

이 요나는 제게 "탄력 회복성"을 일깨워 줍니다. 무심하라는 것이 아닌, 스스로의 힘으로 불가항력인 "신의 섭리"의 영역에 일희일비 말자는 이야기입니다. 선거처럼 이미 지나간 일, 다음 선거처럼 시간의 기다림이 필요한 일에 발을 동동 구르고 탈진해서 스스로 우울의 터널에 침잠할 필요는 없습니다. 지금 우울한 분들께 조언 따위는 않으려 합니다. 다만, 생각보다 체력, 몸의 기력은 회복 탄력성에 중요합니다. 잘 먹고, 잘 쉬고, 잘 자는 것부터가 회복의 시작이 됩니다. 밤하늘의 별은 서두르는 법이 없습니다. 깊은 어둠에 맞추어 빛을 내기 마련이니까요.


저만의 회복 송 <흰 수염 고래>로 마무리해 봅니다.

https://youtu.be/JDZuA9Drj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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