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얽히고설킨 칡나무와 등나무, 갈등의 대한민국

대선 그 후

by 박 스테파노
갈등

갈등(葛藤)이란 '칡나무와 등나무'를 이르는 한자어입니다. 일이나 사정(事情)이 서로 복잡하게 뒤얽혀 화합하지 못함의 비유하는 말입니다. 한국에서 일상 중에 빈번히 듣게 되고 말하게 되는 단어가 아닐까 합니다. 그리고, 늘 그 처지에 놓여, 서로 상충되는 견해ㆍ처지ㆍ이해 따위의 차이로 생기는 충돌이 생깁니다. 이를 해소하는 방법은 법과 양심이라는 '도덕'과 화합과 절충이라는 '정치'가 있을 것입니다.


https://n.news.naver.com/article/028/0002560523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 데는 물론 이유가 있다. 이 사회가 너무도 공정하지 못하기 때문이고, 불공정과 특권에 대한 국민의 분노가 폭발 직전에 와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대선 후보들이 모두 공정을 핵심 공약으로 내세우는 현상은 참으로 기이한 것이다. 나는 모두가 공정을 외치는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 공정은 기득권 세력을 견제하는 논리처럼 보이지만, 깊은 의미에서 보면 그들의 특권을 지켜주는 담론이다. 대선 후보들이 너나없이 공정을 외쳐대는 것은 그들이 한국 사회의 근본적인 변화를 원치 않기 때문이다. -2021. 9. 14 칼럼 본문 중-


6개월 전의 칼럼을 집어 든 이유는 '선거 후유증'이 맞습니다. 당선의 반대 진영과 지지자들에게는 속이 쓰리고 힘든 시간이지만, 반대로 철저한 회고와 반성으로 거듭날 수 있는 시간이 바로 이 '아픈'순간 이겠지요. 그러나, 세상은 온통 "집무실"과 "우크라이나", 그리고 "오미크론" 이야기뿐입니다. 생뚱맞은 '대통령의 이사' 의제 설정이 묘수로 작용하는 것 아닌가 생각이 드는 요즘입니다.


그런데, 1년 전, 2년 전을 회고해 보아야 합니다. 한국의 모든 뉴스는 연일 '공정'으로 도배되다 싶을 정도였습니다. 그 이슈는 논쟁을 양산하고 논쟁은 갈등이 되고, 그 갈등은 끊기지 않는 싸움, 전선을 형성했습니다. 그 표현이 위에 첨부한 칼럼의 '문화전쟁'의 지표에 거론되어 있습니다. 한국이 새로운 문화전쟁의 '수도'로 부상했다는 것이지요.


한국은 갈등의 충돌, '문화전쟁' 중

문화전쟁 지수 1위


문화전쟁은 한 국가 내에서 정치적 입장이나 사회적 계층, 소득이나 자산, 연령, 성, 종교, 인종, 지역 등이 서로 다른 집단 사이의 충돌을 가리키는 개념입니다. 스태티스타가 보도한 입소스와 킹스칼리지 런던의 사회의 다른 집단들 간 갈등의 강도에 대한 28개국 조사에 따르면, 한국인은 12개의 갈등 항목 중 6개의 항목에서 가장 높은 긴장감을 보였습니다. 여기에는 진보적인 그룹과 보수적인 그룹의 갈등이 가장 핵심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는 바로 직전 사회 갈등의 홍역을 겪은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보였던 미국보다 높은 결과입니다.


같은 조사에 의하면, 한국에서 대학 졸업자와 대학을 졸업하지 않은 사람들 사이, 다른 정당과 다른 종교를 지지하는 사람들 사이, 젊은 층과 노년층 사이, 그리고 남성과 여성 사이의 긴장감이 가장 높았다고 합니다. 이번 선거에서 드러나고 주장된 양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예상되듯 미국은 인종간 긴장감에서 1위를 차지합니다. 이민자들과 원주민들 사이의 가장 큰 긴장감은 남아프리카 국가들로 나타났습니다. 부자와 빈곤층, 사회계층, 엘리트와 노동자의 갈등이 가장 큰 곳도 남미 국가 칠레로 인식되었습니다. 유심 깊게 본 부분은, 한국이 이 세 가지 질문 모두에서 2, 3위를 차지했다는 것입니다. 농촌과 도시 인구 사이에 가장 높은 긴장은 페루였고, 그 뒤를 인도와 다시 한국이 이었습니다. 한국은 거의 모든 지표에서 상위를 나타냈습니다. 한국인들이 심각하게 느끼지 못한 유일한 긴장 지점은, 이민자들과 다른 인종 갈등뿐입니다.



늘상 ‘정치’와 ‘도덕’은 갈등합니다.


개인의 도덕률이 이전보다 우선시되는 작금에는 이러한 긴장감이 의미 없게 느껴집니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선거와 공천만 보아도 그러하지요. 다수의 결정에 개개인이 다 동의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정치적 작용은 동의하기 어려운 개개인이 순응해야 할 도덕적 동기를 제공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고귀한 목적을 위해 비도덕적 방법이 필요할 때,

정치인의 선택은 어떠할지’


‘기만과 협잡을 거리낌 없이 사용하는 부류에게,

도덕적 고결함으로 항변할 수 있는지’


이런 질문은 소크라테스 이래 정치 철학사의 가장 중요한 문제이자 가장 난해한 물음표입니다. 도덕적으로 훌륭한 사람일지라도 ‘현실감’이 부족하다는 비난을 받기 마련이지만, 한 명의 절대자가 통치하던 원시 왕족 국가에서도 정치적 능력만큼이나 도덕적 자질이 주요하였습니다. 그만큼 도덕과 정치의 상관관계는 간단한 방정식은 아닐 것입니다.

정치와 도덕

일반적인 도덕률이 정치행위에도 반드시 적용되어야 하는 것일까요? 아니면 정치행위에는 ‘공공선’ 또는 ‘정치적 이유’에서 도덕성을 넘어서는 나름의 기준이 있는 것일까요?


도덕만이 완전한 기준이라고 여긴다면, 정치적으로 ‘필요’한 행동들 모두가 이기적 욕망이라는 편견에 지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반대로 도덕적 완전함이라는 요구를 단지 ‘비정치적’이라는 이유에서 무시하는 것은 권력의 아집만 강화시킬 수도 있습니다.


정치를 앞세워도 그 행위가 ‘보편적 가치의 부재’나 ‘세렝게티의 법칙’으로 귀결되지 않을 수 있는 방식을 찾아가는 과정이 정치의 진보라 생각됩니다. ‘정치’와 ‘도덕’의 화해는 우리의 정치적 상상력이 이념적 경계와 이론적 편견을 넘어설 때 가능할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선거 결과의 방아쇠가 된 장관 후보자의 가족 관련 일은 이런 논의에서 벗겨 나 있습니다. 과연 그와 가족의 행위가 ‘정치적’인 행위인가요? 그의 자리가 정치적인 성격을 지닌 임명ㆍ선출직이라 하지만, ‘정치적’ 행위 보단 ‘행정 공무적’ 행위를 하는 행정부의 고위직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인이라고 쳐 봅니다. 그의 일련의 행위에 대한 비판에 대한 옹호가 공공의 이익을 위한 불가피한 ‘공공선을 위한 어쩔 수 없는 정치 행동’에 기인한 것인가요?


그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정치가 도덕의 덫에 걸렸다 이야기합니다. 이것은 ‘도덕’과 ‘정치’의 근본적인 갈등의 문제처럼 이야기합니다. 그가 정권의 공정과 평등 정책 기조를 저해하는 개인적 이익을 도모한 것이 어떤 면에서 공공선을 위한 정치적 행위인가요? 모두 궤변입니다.


나는 이유가 있고 상대는 변명만 있다는 기준은 어처구니없습니다. 모든 잘못은 내가 아닌 상대방의 과도함에 있다는 해명은 한편 구질 구질합니다.



광장은 늘 유효합니다


https://news.v.daum.net/v/20220330052849984


윤석열 정부 출범을 앞두고 진보 성향 시민단체들의 시위와 집회가 점점 늘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특히 대통령 집무실이 지금의 청와대에서 용산 국방부 청사로 이전되면 용산이 새로운 시위의 장이 될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정권교체기에는 새 정부에 자신들의 이익과 요구를 관철시키고 내부 결속을 다지기 위해 시민단체들의 시위와 집회가 잦다며, 새 정부와 기존의 시민단체들 간 새로운 관계 설정이 필요한 때라고 강조했다. -기사 본문 중-


다시 언론은 보수 기득의 나팔수가 되어 갈등을 조장합니다. 인터넷 검색만으로 뻔히 드러날 거짓말의 속살 따위는 무섭거나 부끄러운 것이 아닙니다. 세상이 갈라져 충돌할수록 떨어질 떡고물은 점점 많아지는 법이니까요. 반대 진영도 마찬가지이지요. 이념이 되었든 철학이 되었든, 천박한 셈수가 되었든 자신의 목소리만 선명하게 내려할 것이니까요. 그래야 자신이 설 자리가 생긴다 믿는 사람들 아니었습니까.


그러나 세상은 면과 면이 맞대어 만든 선처럼 진영 위에 모든 사람이 서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선 위에 위태 위태하게 하루 일상을 버티는 사람들이 더 많을지도 모릅니다. 어느 진영이 되었든 잘못된 것은 잘못된 것이지요. 얄팍한 정치 이해로 어줍지 않은 궤변들은 집어치워야 합니다. 이런 처절한 반성이 없다면 세상은 그저 롤러코스터처럼 요동치는 궤도 순한만 반복할 것이니까요.

87항쟁과 촛불

'공정'으로 싸움을 붙인 정치인들은 다음 선거만 바라볼 것입니다. 새로운 정권은 당분간 좌충우돌할 가능성만 보여 줍니다. 어느 진영에서 반성에 이은 통합이나 갈등 해소 같은 말들은 찾아보기 힘듭니다. 그래서, 광장은 유효한 것입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