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과 희망은 교차하는 것이 아니라, 공존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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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당선자는 높은 정권교체 여론에도 불구하고 이재명 후보에게 신승을 했고,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와 단일화를 했는데도 과반 득표에 실패한 것은 깊이 새겨봐야 할 대목이 아닐 수 없다. 국민은 ’정권교체의 상징’으로 윤 당선자를 선택했지만, 과연 국정을 이끌 준비가 돼 있는가에 대해선 전면적 신뢰를 보내지 않았다고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윤 당선자는 선거운동 기간 내내 미래 비전과 정책 공약으로 승부하기보다는 문재인 정부에 대한 강성 보수층의 증오심에 의존하는 전략을 썼다. 특히 2030 남녀를 갈라치기해서 표를 얻으려는 ’분열의 정치’는 마지막 순간 여성들의 집단 반발로 돌아왔음을 뼈아프게 받아들여야 한다. -사설 본문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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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아,
어제 예상보다 긴 밤을 보내고 더디오는 아침을 기다리며 이런저런 생각들을 주어 담아 본다.
어느덧 스스로 자라 선거에서 한 표를 행사할 나이가 되었다는 것이 가장 뿌듯함으로 오는 선거였다. 결과에 대한 희비와 걱정을 떠나 각자의 목소리가 조금 더 도드라진 선거에 의미를 두고 싶구나.
0.78% 차이, 25만 표가 되지 않는 결과로 승자는 모든 것을 가지고, 패자는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듯 떠들어 대는 어른들의 흰소리는 패스해도 무방할 듯 하구나. 다들 이해득실과 논공행상과 성과와 보상이라는 주판알이 작동할 시기니까 말이다.
그래서 말인데, 아들아. 너는 어떤 승부의 순간에 승자가 되더라도 얻은 것보다 우선 얻지 못한 것을 헤아리는 어른이 되었으면 하고 바란다. 승자가 모든 것을 가진다는 이야기는 할아버지가 좋아하시던 ABBA의 노래 "Winner takes All"에나 나오는 말이란다. 절 반이 성공했다면 절 반은 도달하지 못한 것이라는 뜻이고, 스포츠와 달리 반 쪽만의 승리로만 살아갈 수 없기 때문이란다. 나머지 절반의 이해와 도움은 옵션이 아니니까.
나 같은 꼰대들이 이번 선거를 너희들 같이 젊은 친구들 때문에 망쳤다고도 하더라. 솔직히 고백하건대 나도 아주, 아주 잠깐 그런 생각이 들기도 했단다. 그러나 그것은 얼마나 시건방진 어른의 자의식인지 금방 깨닫게 되었어. 비밀투표라고 죽어도 가르쳐 주지 않아 잘 모르겠다만, 너희 또래의 선택은 너희들의 정치와 사회적인 시뮬레이션으로 신중히 선택한 것이라 존중하련다. 다만, 그 선택이라는 것에는 늘 '책임'이 따른다는 것만 잊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 금기하는 세 가지 이야기가 있다고들 해. 하나는 정치, 그리고 군대, 나머지는 군대에서 축구한 이야기가 그것이다. 그러나 아빠는 좀 다른 생각이야. 친구들과 정치 이야기를 서슴없이 하는 아들이 되었으면 한다. 단 싸우지 말고, 말한 만큼 들어주고, 방향과 결론이 다르다고 쌩까지 말고. 정치는 사회에서 가장 건강한 대화가 되어야 하니까. 우리가 못한 대화 너희들은 꼭 해 내기를. 그런데, 군대 이야기, 특히 군대에서 축구한 이야기는 늘 금지다.
아빠는 첫 투표를 기권했다. 무관심해서? 아니 오히려 너무 강한 정치적 신념으로 뽑을 사람이 없다면 투표율 0%를 만들자는 피터팬 같은 운동에 빠져 있었단다. 무모하고 어이없고 철없었지만, 그때의 내 모습을 부끄럽게만 생각하지는 않는단다. 어렵게 공부하고 생활했어도, 세상과 사회, 나보다 소외받는 약자를 생각하게 해 준 나의 세계와 신앙이 있었기 때문에, 어찌 보면 남는 장사라 시작하고 있단다.
아들, 너에게 그런 무모한 반항과 저항을 강조하지 않으련다. 너의 시각으로 너의 주관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살아 보렴. 단, 가끔은 헷갈리고 혼란스러울 때가 있을 것인데, 그때는 주저하지 않고 도움과 물음을 청하기를 바란다. 묻는 것을 주저하다간 아빠처럼 고집만 센 사람이 되기 십상이다. 그것은 너도 바라는 바가 아닐 것이잖니?
아직 아리송하지만, 여자 친구가 생긴다면 그 친구와도 세상의 이야기를 공유하며 지내기를 바란다. 아빠는 엄마라는 인생 반려자이자 정치 동지가 있어 늘 외롭지 않았단다. 우리가 알 수 없는 여성들의 세상도 탐구해 보고, 사랑하는 사람이 이 사회에서 태성적으로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는지를 헤아려 보기를 바란다. 그 사람은 너의 짝이지 적이 아니니까. 하지만, ~ism, ~ist 같은 것을 내 세우는 사람은 늘 경계하기를, 생각의 알맹이보다 비추어지는 반향이 중요한 관심종자일 가능성이 매우 높으니까.
언제고 정치와 사회에 대한 선택과 판단의 기로에 있다면 두 가지만 기억해 주기를 바란다. 하나는 세상엔 '대부분'은 존재하지만 '모두'는 사실상 없다. "모든", "모두"라는 말을 늘 경계해야 한다. 그런 말은 자칫 위험한 사회를 만들 불쏘시개가 되곤 했단다. 생각해 보렴. "대부분의 아이들"은 거짓말을 하지 않지만, "모든 아이들"이 그렇다고 할 수는 없는 것과 같단다.
https://alook.so/posts/WLtalo
작금의 현실을 보면 어쩌면 우리는 다시 그러한 집단적 사고의 오류를 경험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른쪽은 오른 족대로, 왼쪽은 왼 족대로 둘 다 위험한 상황입니다. 51%의 사람들도 그러하지만 49%의 사람들도 스스로 늘 경계해야 합니다. 선동가 보다 ‘고의적 비판자’가 시대의 지성으로 요구되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리뷰 본문 중-
나머지 하나는, 연결된 의미인데, '다름'은 당연하다는 것을 늘 인지하기를 바란다. 사람들 뿐 아니라 모든 피조물은 다 다르단다. 동식물들도 똑같은 개체는 존재하지 않단다. 지문과 홍채가 다르듯, 잎사귀 문양과 개의 코 끝의 비문도 모두 다르단다. 그리고 네가 엔지니어링을 하니 알게 되겠지만, 같은 용광로에서 나온 철판도 조금씩 다르고, 공장에서 찍어 내는 볼펜도 어느 라인에서 찍어 내었는지 알 수 있을 정도로 다르단다. 우리는, 유식한 말로, 그것을 고유한 식별의 개체라고 부르곤 한단다. 이렇듯 공산품도 저마다인데, 고귀한 사람과 그 인생, 인격은 어떻겠니? 그것을 알면 "함께"가 가능해진다.
투표 결과의 씁쓸함으로 길어졌네. 아마 당분간 의기소침하고 멍 때리는 아빠를 보아도 잠시 이해해 주렴. 알잖니. 언제 그랬냐는 듯이 어설픈 개그로 분위기 썰렁대기 시작할 테니까. 나이가 들어 그런지, "망해봐라, 이놈들"하는 생각보다. 만에 하나의 기적이 강림해서 개과천선하는 정치인들이 나오기를 꿈꾸어 보련다. 그래야지, 저 광장에서 학원 민주화를 위해, 탄핵 반대와 찬성을 위해, 그리고 절망하는 이웃을 위해 외치던 목청과 주먹 구호가 헛된 일은 아니었을 테니까.
아들아, 잊지 마렴. 너희에게도 그 광장은 늘 열려 있단다.
-586과 MZ에 낀 X세대 아빠, 엄마가-
https://youtu.be/tOWxvB73Hn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