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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문 외교'와 '웨스턴민스터 홀'

무지와 무식 그 사이 어딘가의 이 정부

by 박 스테파노

https://v.daum.net/v/20220920200605742

국회에서 윤석열 정부의 외교가 도마에 올랐습니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을 조문하러 간 윤 대통령이 정작 조문을 하지 못한 것에 대해 대통령실은 EU 집행위원장과 그리스 대통령 등도 참배를 못했다고 추가로 해명했습니다. 하지만 오늘(20일) 대정부질문에서 공개된 사진을 보면 이들은 모두 참배를 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외교참사에 거짓해명까지 했다며 민주당은 집중 추궁했습니다. -가사 본문 중-


윤석열 대통령은 이번 해외 일정을 '조문 외교'라고 강조하였습니다. 출국 직전 마치 전장에 나가는 장수의 출사표 같은 사전 보도자료를 배피하고 영국 런던으로 향했습니다. 늦게 출발해 일정이 꼬이고 매우 드문 전례(Liturgia)인 여왕의 장례에 익숙지 않은 실수는 차후라도 점검해야 될 문제임은 분명해 보입니다. 그러나, 웨스턴민스터 홀에 안치된 여왕의 빈소 격인 장소에 조문하지 않은 것에 대해 설왕설래의 의견이 교차합니다.


조문 없이 리셉션에 간 것은 마치 향도 안 올리고 육개장만 먹고 온 것이다라는 조소에 가까운 비판이 있습니다. 반면, 이미 고인이 된 시체 앞에 가서 목례를 올리는 것이 뭐 그렇게 중요한 일이냐, 장례식 미사가 메인이니 거거에 참석하면 되는 것이라는 옹호의 의견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서양 유럽의 장례문화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된 구차한 변명이 될 수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짚고 넘어갈 지점을 이야기해 봅니다.


1. Viewing: 망자와의 조우

서구의 장례 문화, 특히 기독교 문화권에서 관에 안치된 망자에게 인사를 전하는 것을 뷰잉(Viewing)이라고 합니다. 떠나는 고인과 인연들의 마지막 인사인데, 장례절차 중 가장 중요한 부분이 됩니다. 장례식이 성당이나 교회에서 진행되기도 하여 하이라이트처럼 보이지만, 사실 저마다의 사정으로 반드시 참석이 어려운 경우가 많기에 2~3일 동안의 viewing은 일반적이고 필수적인 절차입니다.

viewing

한국에서는 이미 죽은 망자와의 직접 접촉(염습)은 아주 가까운 혈족, 가족들이 제한적으로 참석하는 것과 사뭇 다릅니다. 하지만,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는 법. 서구의 장례 문화는 '죽은 자 중심'의 의식이 자리 잡습니다. 이는 천국행을 하거나 메시아의 재림 때에 부활할 것이라는 기독교의 내세관과 맞닿아 있지요. 망자가 생시에 가장 멋있는 모습으로 치장하고 그 사진을 걸어 두고, 죽은 자의 이별을 도와줍니다. 그러나, 불교의 영향과 유교의 영향으로 한국의 장제는 '남은 자 중심'의 전례가 중요합니다. 상주와의 인사가 중요하고 조의금이 필수인 이유가 됩니다.


이번 장례의 장소는 영국이고, 국교로 성공회라는 기독교가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어떤 정치 패널이 윤 대통령을 옹호하며 '상주를 만나는 것이 더 중요하다'라는 말은 무지와 무식의 경계를 넘나드는 허언이 아닐 수 없습니다.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굳이 운동화를 신고 viewing을 하러 간 것이 그저 '쇼'라고 치부하는 서구권 사람들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분명한 것은 윤석열 대통령실에는 역사나 문화에 대해 깊이 담론을 나눌 사람은 없다는 것이지요. 법전에 나오지 않는 것들은 아주 작은 시민인 제 머릿속에서는 나오는 것이 세상만사이니까요. 패션쇼가 목적이 아닌 이상 '베일'의 의미도 잘 알고 쓰면 좋겠습니다. 마치 독신의 상징인 '로만 칼라'를 삼 남매 아빠인 목사가 하고 다니는 꼴이니까요.



2. Westminster Hall: 권력 이양의 역사

이번 조문 불참의 이유가 웨스트 민스터 지역의 교통 통제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리고선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열리는 장례미사가 메인이니 그곳에 가면 된다고 스스로 위안하는 대통령실입니다. 그러나 여왕의 시채가 안치되어 viewing을 하는 곳이 어디인지, 그 장소의 의미가 무엇인지 알고는 있을까 하는 우려 깊은 질문을 던지고만 싶습니다.


웨스트민스터 홀은 우리로 치면 '여의도'에 해당하는 '웨스트민스터 지역'의 중심 장소인 웨스트민스터 궁전에 있습니다. 빅벤이 있고 국회의사당이 있는 그 건물 한가운데 문을 열고 들어가면 바로 만나는 장소가 이곳입니다. 그냥 텅 빈 공간 같은 이곳은 사실은 웨스트민스터 궁에서 가장 오래된 곳으로 1834년 대화재 때에도,, 1941년 제2차 세계대전 때 떨어진 폭탄들 속에서도 살아남은 유서 깊은 공간입니다. 1170년 헨리 왕자의 대관식 연회부터 엘리자베스 여왕의 실버 주빌리 만찬까지 왕실의 굵직한 행사를 치러 내었습니다.


그보다 이곳은 더 깊은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곳은 더 오랜 세월 동안 법정의 역할을 담당하던 곳이었습니다. 영화 <브레이브 하트>의 주인공인 윌리엄 월러스의 재판이 이루어진 곳입니다. 국회를 폭죽으로 날려버릴 음모를 꾸미던 가이 폭스, 왕권 신수 사상을 고집한 찰스 1세의 사형 선고도 다 이곳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그리고, 그 유명한 토마스 모어가 사형을 선고받은 곳입니다.


왕권이 신이 부여한 절대 권력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움트기 시작한 것이 이 토마스 모어의 재판이라고 평가되기도 합니다. 한 국가와 공동체의 권력은 구성원 모두의 것이 되어야 한다는 민주주의의 원류가 바로 이곳이고, 그 원류를 위해 통치자의 의중이 아닌 법률에 의해 통치되어야 한다는 법치주의의 성지가 이곳입니다. 그리고, 어쩌면 마지막 영국의 군주가 될지 모르는 여왕이 안치되어 이 세상과 작별하는 웨스터민스터 홀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윤 대통령은 주뼛대며 어색한 리셉션 장소에 늦더라도, 20분 걷더라도, 한두 시간 줄을 서더라도 웨스트 민스터 홀에서 '조문'을 했어야 더 좋았을 것입니다.

웨스트민스터 홀

부끄러움은 국민의 몫이 되는 최고 권력자들의 무지, 무식, 그리고 무능은 매우 위태롭습니다. 실수가 거듭되면 그것이 능력이 됩니다. 대통령은 스페셜리스트가 아닌 고도로 훈련된 제너럴리스트가 수행해야 합니다. 지금은 법기술이 아니라 폭넓은 상식과 시대에 대한 의식이 필요한 때입니다. 부족하다면 배우거나 채우거나 하기를 바라고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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