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naver.me/xvE4eyjq
오후 3시 10분, 토론회가 시작되자 박 대표는 시민들에게 사과의 말을 전했다. 그는 "이 토론회 자리를 빌려 시민들에게 먼저 진심으로 사과 말씀을 드리고 싶다. 시민 여러분, 장애인들이 출근길에 지하철을 타서 많은 불편을 끼쳐서 죄송하다. 너그러운 마음으로 이해 부탁드린다"라며 "전장연은 감히 공기처럼 자연스러운 서민들의 일상의 바쁜 출근길을 방해했다. 전장연은 혐오적인 욕설도 감수하면서 장애인 이동권은 문명사회에서 생존권이자 기본적인 시민의 권리라고 21년을 외치고 있다"라고 운을 뗐다. -기사 본문 중-
'박경석'씨를 얼마나 아십니까?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의 박경석 씨를 처음 만난 것은 2011년 깊은 가을날이었습니다. 혜화동에 노들장애인야학에서 만난 꽁지머리 백발의 그의 외모에, 그다음은 거친 그의 이야기에, 그리고 그의 인생과 신념에 놀란 기억이 있습니다.
박경석 씨는 스물다섯 살 때 행글라이더 사고를 당했다고 합니다. 의식을 되찾았을 때 다리가 말을 듣지 않았지만 장애인으로 살 거라곤, 더구나 장애인 운동가로 살 거라곤 상상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1980년대 초에 대학을 다니면서 데모 한번 안 했다며, 자칭 ‘제법 놀 줄 아는 날라리’였다고 회고했습니다. 그러던 그는 철로에 쇠사슬로 몸을 묶고, 청와대 행사에서 대통령과 언쟁을 벌이다 들려 나오고, 국회의원 자리마저 고사하는 비타협적인 말 그대로 '투사'의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번 토론회의 계기가 된 '장애인 이동권 시위'의 문제는 이곳 얼룩소에서도 심심치 않게 토의된 바 있습니다. 그때에도 잠시 '전장연'의 입장을 전해 드린 적이 있었고, 왜 그들은 '싸울 수밖에 없는가'에 대한 고민들이 함께 있었습니다.
https://alook.so/posts/3wt5aM
법적으로 시시비비를 떠나 개인의 "생존"의 문제에서 "정당성"은 어디에 부여를 하면 좋을까요? 그냥 수단도 적법하고 사회적으로 납득되고, 타인을 배려하는 선에서 고려할 수 있을까요? 장애인들에게 "이동권"은 "생명권"입니다. 그들은 수단의 "정당"이 고려되지 않을 만큼 소외되고 몰려 있습니다. 선거 때마다 "보장"하겠다고, 사진만 찍고 묵묵부답인 것이 30년 째라면 어떤 느낌일까요. 장애인 재활 병원을 인허가받으려면 보건복지부에서 "보건"의 영역이다, "복지"의 영역이다 하며 칸막이 싸움만 하다 정권이 바뀝니다. 그러다 우여곡절 인허가받고 삽이라도 뜨려면, 아파트값 떨어진다 쌍욕을 곁든 반대가 밀려옵니다. "수단의 정당"을 찾을 수 있을까요. -본문 중-
사실 '박경석-이준석의 토론'은 제대로 정주행하지 못했습니다. 아니 안 했다고 말하는 것이 솔직해 보입니다. 마음이 참 무거웠습니다. 박경석 씨의 모습은 갑옷과 무기를 내려놓은 무장 해제된 검투사가 떠 올랐습니다. 스스로 가라 앉히려는 생각과 주변의 우려와 당부에 잔뜩 움츠린 굽은 등이 마음을 힘겹게 했습니다. 마음속으로 지난 시간 동안 괜한 말을 건네었나 싶었습니다. 마음속으로는 편파 가득한 응원이 앞섰습니다.
'그냥 싸우지, 그냥 들이받지'
잘한 '일'이 아니라 잘한 '선택'
박경석 씨에 대한 생각을 하다 보니, 지난 어느 매체(비마이너 beminor.com)와의 인터뷰가 떠 올라, 클라우드 구석에 있던 메모들을 열어 보았습니다. 그에게 살면서 제일 잘한 선택 세 가지를 꼽아보라고 하자 경석은 노들야학을 선택한 것, 현장 투쟁의 노선을 버린 조직(전장협)과 단절한 것, 그리고 정치의 기회를 포기한 것이라고 대답한 인터뷰였습니다.
당연히 지금의 이동권 투쟁을 시작한 일이나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를 조직한 것이 들어갈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 ‘정치를 하지 않은 것’이 들어간 것이 제가 메모에 남겨둔 이유였습니다. 박경석 씨는 어느 자리에서 “나도 정치하고 싶었어”라고 말했을 때 뒤통수를 호되게 맞은 듯 멍한 느낌이 다시 스며들었기 때문입니다.
인터뷰의 질문이 ‘잘한 일’이 아니라 ‘잘한 선택’이었음을 나중에 인지했었습니다. 선택이라는 것은 하나를 고르는 일이기도 하지만, 하나를 버리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잘한 선택이란 버리기 아까운, 정말 고심 가득한 무언가를 버렸다는 의미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가 버리고 손에 꼽은 것에 '야학'이 첫 번째였다는 것, 그리고 '정치'를 마지막에 버렸다는 것은 저의 잘난 식자의 자의식을 호되게 후려치고 있었습니다.
TV와 유튜브에 중계되는 인터뷰를 위해, 뻔히 조롱과 모욕이 돌아올 것을 알았으면서, 그의 선택을 생각해 봅니다. 꾹꾹 눌러 담은 성질머리 마냥 그가 버렸던 것, 아니 버리기 힘들었던 그건 무엇이었을까요. 그가 살아오면서 버리기로 한 것들, 그의 인생에서 중요한 일들일 거라고 짐작했던 것들은 모두 그 포기와 연결된 것이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그는 마지막까지 고심 끝에 그의 본질인 '싸움'을 버렸던 것, 포기했던 것입니다.
토론 후에 그의 주장과 언변, 논리, 토론 기술에 평들이 늘어졌습니다. 마치 스포츠 중계 같이 말이지요. 마음이 참 무거웠습니다. 그의 이 문제에 관련한 수십 년의 고민이, 식견이, 탐구와 연구가 그렇게 한마디로 평가받는 것이 너무 슬펐습니다.
저는 그가 주장하는 '자본주의가 구원할 수 있는 일'이 좀 더 귀 기울여 지기를 바랍니다. '공공일자리 1만 개'로 장애인들의 자유와 자립을 도와줄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비장애인들은 연민과 안쓰러움으로 시작해 더 나아간 인식에 공존과 차별 철폐를 이야기하지만, 그들의 담론엔 방구석에 갇힌 장애인들의 '포기하는 선택'은 없습니다. 그들의 선택이 더 이상 버리고 포기하는 것이 아닌, 취하고 얻는 것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동권의 문제는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그 사람의 삶을 살펴보아 주세요.
https://www.beminor.com/news/articleView.html?idxno=22408
장애인과 함께 살아본 경험이 없는 평범하고 선량한 비장애인들은 늘 이렇게 묻는다.
그런 일의 기쁨이 무엇인가요?
자주 받는 질문임에도 이것은 마치 100미터 달리기의 시작을 알리는 총소리처럼 나를 긴장시킨다. 정말 잘 말하고 싶어서 아주 애를 쓴다. 짧은 시간 안에 어떻게든 함께 사는 일의 고단함을 피해 이 세계의 오롯한 기쁨을 증명해야 한다. 장애인에 대한 편견이 무너졌다거나 세상에 대한 이해가 바뀌었다거나 다르게 관계 맺고 서로를 돕는 공동체적 삶의 기쁨에 대해 온갖 아름답고 추상적인 말들을 늘어놓는다. 그런데 참 이상하지. 분명 기쁨에 대해 말하고 있는데 왜 내 입에서 줄줄 나오는 말들은 모두 차별과 슬픔, 분노와 싸움에 관한 것인지. 나는 신나는 것에 대해 말하고 있는데 왜 사람들은 한껏 엄숙한 표정으로 미간에 잔뜩 힘을 주고 자꾸 필기를 하는 것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