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로 나뉜 세상에서.. 경계에 서다
면과 면은 서로 맞대어 선을 만든다. 그 면적도 없는 선에 기대어 면들의 팽팽한 긴장은 서로 균형을 만든다. 경계가 있다는 것은 균형을 이루고 있다는 명징이기도 한 것이다. 경계에서 서서 대치하고 있는 면과 면을 넘나드는 한 사내의 이야기가 있다. 이쪽도 저쪽도 아닌 사내이다. 그래서 그는 경계에 서있다. 어쩌면 그는 면과 면의 유일한 소통이었을지도 모른다.
남과 북을 오가며 흥정만 맞으면 무엇이든 배달하는 정체불명의 사나이가 있다. 그에게 특별한 거래가 제안된다. 북에서 망명한 고위층 간부의 애인인 인옥의 배달이다. 세 시간 동안의 평양에서 서울로의 탈북 과정에서 사내와 인옥은 미묘한 감정을 품게 된다. 이를 눈치챈 망명 간부는 사내를 경계하게 되고, 결국 ‘남한 요원들’에게 넘기게 된다. ‘남한 요원들’은 그의 출중한 실력을 탐하여 신의 없는 거래를 제안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망명 간부를 제거하기 위해 남파한 ‘북한 공작원들’도 사내와 맞닥뜨리게 된다. 남쪽인지 북쪽인지 알 수 없는 사내는 인옥을 지키기 위한 마지막 임무를 수행하게 되는데.
영화는 모든 시선을 둘로 나누어 놓는다. 초등학교 시절 치기 어린 짝과의 영토 전쟁으로 그어 놓은 책상 줄처럼 인물과 공간과 시간을 둘로 나누어 이야기한다. 공간은 남과 북으로, 서울과 평양으로 나누어 있고, 인물은 ‘남한 요원’, ‘북한 공작원’ 그리고 망명한 북한 고위간부는 평면적인 전형으로 인옥과 사내는 입체적이고 변화하는 인물로 설정된다. 시간도 밤과 낮, 그리고 만남 이전과 그 후의 시간으로 양분된다. 소소한 영화적 장치마저 마치 공평함이라도 보여 주듯이 둘로 쪼개어 놓고 있다. ‘남한 사람들’과 ‘북한 사람들’의 사용하는 언어가 그렇고 그들이 입는 복식이 그러하며, 하다 못해 남한의 요원들과 북한의 공작원들이 상대한 술집 작부들도 대비되게 설정되었다. 의도적이고 고집스럽게 이 세상을 둘로 갈라놓는 모습에서 전재홍 감독의 스승인 김기덕 감독의 ‘경계’에 대한 자세를 발견하게 된다.
김기덕 감독의 영화 세계에서 이분법은 어렵지 않게 발견하게 된다. 정상과 비상이 표현되며(해안선, 수취인 불명), 현실과 비현실이 나누어져 있고(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 주류와 비주류가 분류되며 선과 악이 대치된다 (나쁜 남자). <풍산개>에서는 그 이분법에 대하여 더욱 직설적으로 설명하고 가치 관계를 이야기하고 있다. 현실적으로 대치하고 있는 남북의 관계가 이야기되고 있고, 천안함 사건 등 일련의 사건들에 대한, 진실과 거짓의 경계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영화는 둘로 나누어지고 대치되는 현상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거의 모든 이분법적 사고에서 무시되고 간과되기 쉬운 경계선에 머문 자들을 이야기하고 있다. 면과 면이 만난 곳에 선이 만들어지고, 그 선위에 서있는 것은 매우 위태로운 일인 것이다. 하지만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면과 면에 존재하기보다 그 위태로운 선위에 서있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경계라는 것이 대치적 상황에 대한 균형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고, 이도 저도 아닌 주변적 존재의 소외감을 이야기하는 것일 수 있다. 그래서 사내는 말 한마디 하지 않은 채 – 김기덕 감독의 <나쁜 남자>의 주인공인 ‘한기’의 오마쥬처럼 보이기도 한다 - 이쪽도 저쪽도 아닌 묘한 균형감을 표현하고, 남도 북도 결국 자본과 물질에 대한 욕망에 허물어지는 사람들의 집단이라는 동질적 가치관도 이야기하고 있다. 술 한잔 걸치며 작부의 허벅지를 만지고 싶어 하는 욕망이나, 물질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다이아몬드 목걸이에 대한 미련, 그리고 허기에 채우는 배달 자장면에 대한 식탐은 논리도 사상도 당위성도 개입할 수 없는 문제인 것이다. 결국 인간은 대의보다 기본적 감성에 충실하기 마련인 것이다.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은 생각보다 쉬운 일이다. 어찌 보면 동등한 기회와 동등한 위험을 안고 있기에 무수한 개연성과 가능성을 따져 보지 않고 선택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달리 보면,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만큼 어렵고 두려운 일은 없다. 선택해야 하는 두 가지의 제시가 모두 내 것이 아니라고 생각될 때는 더욱이 그렇다. 내편과 네 편, 성공 아니면 실패, 선과 악.. 우리는 살면서 너무나도 많은 양자택일을 강요받고 있다.
요즘 세상은 선 긋기가 유행이다. 사용자와 노동자, 정규직과 비정규직, 부유층과 서민, 남자와 여자, 왼쪽과 오른쪽, 왼쪽 중에서도 민중이니 민족이니 나누고, 오른쪽에 있는 자들도 친이니 친박이니 나누어 선 긋기 일색이다. 책상에 그어 놓은 선처럼 둘로 나눌 수 있는 게 이 세상에 과연 얼마나 될 것인가. 경계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 박쥐, 회색분자라 손가락질하기보다 자신이 서 있는 마음속의 경계가 있는지 되짚어 보는 이야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