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노심초사하는 자리?
“감독이란 자리는 그저 노심초사하는 것이다.”
야구 전문기자 출신 레너드 코페드의 명저 [야구란 무엇인가?]에 담긴 명언입니다. 오늘은 야구감독에 대해 짧은 생각을 끄적여 봅니다.
일본 스포츠 소설 [야구감독(에비사와 야스히사)]은 야구를 조금 아는 사람들에겐 빠져들 정도로 생생한 리얼리티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소설 속 엔젤스 구단은 감독인 히로오까 타쓰로가 오기 전까지는 오합지졸에 더해 패배주의까지 흠뻑 젖어있었습니다. 그런 구단이 히로오까 감독의 부임 이후 엔젤스는 달라집니다. 그리고 그들은 마법처럼 승승장구를 합니다. 하지만 다시 이유조차 알 수 없는 부진에 빠지면서 다시 예전의 늘 지는 것이 습관인 구단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그러던 중 어떤 계기였는지 알 수 없지만 위기를 벗어나 다시 반등을 하게 됩니다. 감독이 신묘한 작전과 남다른 선수기용을 해서 그랬을까요? 아니었습니다. 그 위기를 벗어난 것은 결국 선수들의 몫이었습니다. 야구에서 감독이 전반적인 경기력을 책임지는 것이 맞지만 궁극의 플레이는 온전히 필드에서 뛰고 있는 선수의 몫이 됩니다. 선수들이 자각을 하지 않는 이상 목표한 것을 이룰 수는 없는 것입니다.
감독이 모든 경기의 흐름을 좌우한다는 것은 정말이지 바뀌어야 할 인식 중 하나가 아닐까 합니다. 기본적으로 야구는 감독이 하는 것이 아니라 플레이하는 선수가 하는 것이기 때문이지요. 오늘날 한국 야구에서는 야신(野神)이니. 국민 감독이니 호칭을 하며 선수가 받아야 마땅할 스포트라이트를 감독이 받는 기현상이 벌어지곤 했습니다. 감독이 전력의 절반 이상을 좌지 우지 하게 되면 일시적인 효과는 있겠지만 장기적 관점에서 선수 개개인의 역량은 제자리걸음일 때가 많았습니다. 일례로 야구에 대한 열정과 헌신은 인정하지만 팀 운용방식은 전혀 동의할 수 없는 김성근 감독이 그러합니다. 그가 맡은 팀은 반짝 우승과 반등이 가능했지만 선수들은 깊은 상처를 남긴 경우가 많았습니다. 삼성 라이온즈도 선동렬 감독 때 강력한 카리스마로 선수단을 휘어 잡기는 했지만, 선수 개개인의 역량을 담보해 주진 않았습니다.
이는 장기적 관점에서 팀 운영에 전혀 옳지 않은 일이 되어 버리기 십상입니다. 감독의 모든 작전이 설령 뛰어나다고 하더라도 그 모든 것을 실행에 옮기는 것은 선수의 몫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야기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많을 것입니다. 그럼 감독이 왜 필요하냐고 이야기하고, 전략과 전술은 감독의 몫이라고 강변들 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이야기라고 말해 주고 싶습니다. 선수 개인의 행위가 30%의 성공확률을 가진 종목은 야구가 유일하지 않나 싶습니다. 축구도 좋은 게임은 패스 성공률이 75%를 상회합니다. 좋은 배구의 공격 성공은 70%에 육박하지요. 농구도 필드골은 60%, 그 어렵다는 3점 슛도 40%에 수렴해야 승리를 담보할 수 있다 합니다. 그에 반해 야구 감독의 공격 전략과 전술의 성공 확률은 30%면 성공적이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것도 선수들이 각자의 역량을 다한다는 가정에 있어서 그러합니다.
그래서 현대 야구에서 감독은 코치(coach)라는 지도자의 역할보다는 매니저(manager)라는 운영관리자의 역할이 더 부각되는 이유일지도 모릅니다. 많은 영역에서 매니저의 생명은 지도편달(direction)이 아니라 조율(coordination)에 있습니다. 많은 인원과 많은 경기를 치르면서 좋은 성적을 내려면, 기술과 전술적인 부분 못지않게 구성원들 사이의 화합과 선의의 경쟁, 목표의식과 승부욕의 공유 같은 것들이 중요해집니다. 그 관리와 운영 역시 감독의 몫이 됩니다.
야구감독은 흔히 극한의 직업이라 이야기합니다. 자의로 선택한 직업에 극한의 의미가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만큼 힘들다는 표현이 아닐까 싶습니다. 5강의 기준은 5할 승률이기에 감독은 늘 50%의 실패에 대해 복기하고 리뷰하는 직업입니다. 말은 쉽지만 실패를 되돌아본다는 것은 늘 어려운 일임에 틀림없습니다. 어찌 되었든 분명한 것은 세상살이가 그러하듯, 야구 감독 역시 ‘잘하는 티’를 내기는 어려운 반면 ‘잘못한 흔적’은 크게 남는 위태 위태한 자리라는 것입니다. 거의 모든 영역에 개입해야 하는 책임을 가진 동시에 그 모든 것을 좌우할 수 있는 결정력은 가지지 못한 어설픈 반신반인의 신세, 그것이 바로 야구 감독일지도 모릅니다.
감독이란 자리가 책임을 지는 자리인 것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위와 같은 현실을 보면 무턱대고 경질과 퇴진, 또는 너무 이른 평가를 이야기할 때는 아닙니다. 재작년 삼성에서 퇴임한 김한수 감독을 선수 때부터 응원했었습니다. ‘조용한 강자’ 답게 화려하지 않지만 팀에게 꼭 필요한 존재였던 역대 최고의 삼성 3루수라 아직도 생각합니다. TV로 비추어지는 지난 3년 그의 모습은 고독해 보이기까지 했습니다. 카메라 앵글을 피한 듯 구석에 자리 잡는 모습은 짠하기까지 했습니다. 한 때 수염도 기르고 앞으로 나와 적극적인 제스처로 달라지는 듯했으나 꺼실어진 모습에 답답함을 감추는 쓴 미소는 여전해 보였답니다. 생각만큼 안 풀리는 경기력에 그의 퇴진과 경질을 아우성치는 사람들도 있었겠지만, 필자는 없어진 살림에 팀의 뎁스를 이만큼 살려낸 그에게 계속 응원하였습니다. 물론 필자도 중계를 보면서 답답하고 야속한 적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래도 선수들에게 권위만으로 입지를 다지는 지방 어느 팀의 감독들이나 승리를 위해 4년 만의 선발승을 앞둔 선수를 5점 차 이상 이기고 있는 경기에서 가차 없이 내리는 수도권 감독과는 다르다고 믿곤 했었습니다. 야구는 ‘장기적 관리’의 경기이지 ‘단타 승부’의 종목은 아니라고 믿기 때문이었습니다.
재작년 시즌이 마감되자마자 삼성 라이온즈는 30년 동안 프런트로 일하던 허삼영 전 전략 분석팀장을 신임 감독으로 임명하였습니다. 환영보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많은 것은 사실이었습니다. 경험이 없는 초자 감독에 여전히 남아 있는 프런트의 핵심들 때문에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올해 꼴찌 후보로 폄하하는 가짜 팬들도 득실거렸습니다.
하지만 말입니다. 감독이란 자리가 야구장 밖에서 보는 그런 일들만 관리하는 자리가 아닌 이상 진심 가득한 팬이라면 이면의 모습까지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팬이라 자처하는 이들도 사실 야구단이 어찌 운영되고 팀이 어찌 돌아 가는지 그저 '감'으로만 알고, 편입견 가득한 댓글만 쏟아 놓기 마련입니다. 특히 최근 언론 플레이 열심히 하는 모구단의 검증되지 않은 이력의 단장 때문에 반사적으로 더욱 초라해 보이는 팀 매니지먼트가 눈에 거슬리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프로야구는 산업이며 기업의 운영으로 유지되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철저하게 기업 운영 논리에서 책정되는 연봉과 선수 영입의 과정을 무턱대고 감독이나 프런트의 무능과 잘못으로 판단하는 것은 어설픈 판단입니다. 예를 들어 연봉의 최종 결정은 야구단인 프런트가 아니라 구단주 기업의 재무기획 팀에서 최종 관여한다는 것을 잘 모르는 사람들도 많으니 말입니다.
이렇듯 감독이라는 자리는 자칫 프로야구단의 모든 경영행태에 대한 비난을 최전선에서 감당하는 고충 어린 자리이기도 합니다. 그런 면에서 허삼영 감독의 선임은 기대되는 측면이 많았습니다. 야구단과 운영기업의 중간자에서 합리적인 선택을 내릴 수 있는 진정한 매니저로 역할을 할 수 있다면 말입니다.
(나중에 미국과 일본의 야구단 운영에 대하여 기술할 기회가 있겠지만, 이제 한국 프로야구도 미국식의 분리경영으로의 '단장 중심의 운영'을 할지, 일본식의 감독이 단장의 역할을 대표하는 '운영 총감독'의 운영을 할지 선택할 시점이 된 것 같습니다.)
말이 길어졌지만, 결론은 하나 올해 초부터 반등의 날들 기대하며 삼성 라이온즈와 허삼영 감독을 응원하였습니다. 지낸 주 마감한 정규시즌 결과는 1등 같은 2등! 아쉬움도 잠시 방역 위반으로 엉망이 된 리그 일정 중에 중립구장이 아닌 라이온즈 파크에서 포스트시즌을 할 수 있고, 코리안시리즈 전에 플레이오프로 경기 감을 살릴 수 있어 코리안시리즈 우승을 기대할 수 있는 최대의 시나리오가 쓰여지고 있습니다. 감독의 "덕"이란 소리는 못 들어도 "탓"은 면하게 되었으니 이 또한 의미 있어 보입니다.
팬이란 무얼까요?
가끔 쓴소리는 하지만
결국 응원해 주는 것이 내 ‘편’이고 ‘팬’ 일 테니까요!
인내심 많은 모든 야구팬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