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토콜'은 그렇다 치고, '실리'는 챙겼을까?
*뉴-썰: 요즘 뉴스가 어려워, 썰어 보기로 합니다.
https://n.news.naver.com/article/052/0001793093?sid=100
윤석열 대통령은 비행기만 다섯 차례, 41시간 가까이 타는 강행군 끝에, 5박 7일의 순방 일정을 마무리했습니다.하지만 기대했던 한미·한일 정상회담은 내용과 형식에서 모두 기대를 밑돌았고, 윤 대통령의 비속어 발언이 포착되는 등 외교의 민낯을 보였습니다. 외교팀의 반성과 쇄신, 나아가 대수술이 불가피하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기사 본문 중-
언론에서 그냥 밑도 끝도 없이 "외교 프로토콜의 문제'라고 이야기합니다. 프로토콜? 이건 또 뭔 소리인가 싶습니다. 윤석열 정부의 가장 큰 공은 국민을 공부하게 만든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ICT 분야에서는 쉽게 접하는 프로토콜(protocol)이라는 단어는 컴퓨터들 간의 원활한 통신을 위해 지키기로 약속한 규약을 말합니다. 프로토콜에는 신호 처리법, 오류처리, 암호, 인증, 주소 등을 포함하지요. 원활한 통신을 위해선 반드시 프로토콜을 통일시켜야 합니다. 그래서 전 세계에서 쓰이는 프로토콜을 통합시킨 국제 표준 통신규약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이 표준 프로토콜은 UN 산하의 ITU라는 기관에서 국제통신규약을 만들어 사용하니까요. 프로토콜의 어원은 '문서의 맨앞장'을 의미합니다.
이런 문한정보 분류 용어가 비즈니스 일반과 외교 행정에 통신기술의 영역보다 먼저 스며들었습니다. 흔히 '외교 프로토콜'이라 함은 의전으로 대표되는 전례, 의식, 양식, 상징과 표현의 기준은 물론 당사자와 실무자의 언어, 비언어적 의사소통과 사전 사후의 보도와 미디어 관계까지 넓게 이르는 소양의 기본을 뜻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유불문 여왕 조문에서 viewing이 빠진 점, 한일 정상 회담에 언론 통지가 없는 점, 국기와 기타 배석 세팅이 없는 사진만 있고 발표문조차 없는 점, '풀어사이드(full aside)조차도 없는 조우를 환담이라고 과장하는 점, 그리고 기본적인 언사에 대한 점은 분명 '실패'가 맞습니다. 비판을 겸허히 수용하고 두고두고 반면교사로 삼아야겠지요.
일부에서는 '예송논쟁'이다, 형식보다는 '실리 우선'이다 하며 어설픈 지도자를 두둔하기 바쁩니다. 작은 계약관계의 비즈니스에도 매너와 무드가 있는 법이지요. 하물며 국가 간의 외교 무대에서 '프로토콜'은 시작이자 끝이 됩니다. 그럼 백번 양보해서 "실리"는 챙겼을까요? 현대 국제사회에서의 외교 성과는 안보와 통상으로 귀결됩니다. 이번 순방에 실리적 목표가 있었다면(있었겠지요?), 통상에 그 무게 중심이 있었을 것입니다. 당장 무역수지 개선이 필요 없는 한일회담에 힘을 빼느라 정작 중요한 대미 무역 통상 관계 정립이 되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번 순방에서 미국과의 정상회담을 갈구한 이유가 지난 8월에 통과된 IRA(Inflation Reduction Act) 법안에 대한 한국의 우려와 입장을 관철시키기 위함이라고 대대적인 홍보를 했습니다. 그럼 IRA가 도대체 무엇일까요? 대형 매체 논설위원이라는 사람은 물론 국회의원조차 그 내용을 이해는 둘째치고 제대로 들여다보았을까요? 아닐 것 같다는 걱정이 확신이 됩니다. Act라는 용어 때문에 '시행령'이라 우기는 패널도 있습니다만, 미국 법제상 '법'이 되는 '인플레이션 감축법'은 어떤 내용일까요? 좀 더 쉬운 설명 이전에 '인플레이션'이라는 단어에 너무 속아 들면 안 됩니다.
마치 최근 팬데믹과 우크라이나 전 등으로 발생한 불확실한 경제로 인한 극심한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한 법으로 오해되는데 실제 중요한 요점은 다른 곳에 있답니다. 이 법안의 본류는 오바마 정부 때 세운 '기후변화 대응 예산'입니다. '앵? 기후변화?'라는 생각이 들지요. 네 맞습니다. '인플레이션'이라는 단어에 낚이신 것이지요. 너무 낙담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미국인들도 다 낚여서 바이든 지지율이 상승 변동하였으니까요. 입법취지는 법인세를 늘려 마련한 재원을 에너지 안보와 기후 위기, 서민 의료 지원 등에 집중 투자하여 치솟는 에너지 비용과 의료 서비스 가격을 잡을 수 있다(물가 억제)는 것이 IRA의 기본 구상입니다. 오바마 정부 때보다 4배를 키운 규모(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기후변화 대응에 3690억 달러(약 484조 원))의 '예산안'을 실제화하는 실행법안이 IRA입니다.
모양새는 인플레이션을 그린사업 지원을 통해 잡겠다는 뜬금없는 목표를 내세웁니다. 그러나 속내는 다른 곳에 있습니다. 인플레이션을 무력화하기 위해 금융당국의 통화정책으로 한계가 있으니 시장 재편을 통한 수지 구조를 개선해야 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네 바로 예상 가능한 '중국 대 무역 수지 구조 개선'이 그 중심에 있습니다. 이 법안이 최종 통과되면 태양광·풍력·수소 등 친환경 에너지와 전기차·배터리 산업에 대해 세액공제·보조금 등이 지원되면서, '그린산업' 시장이 크게 확대된다는 전망입니다. 하지만 이 법안의 행간을 잘 봐야 합니다.
미국이 반도체에 이어 배터리, 그리고 바이오산업까지 중국을 글로벌 공급망에서 배제하겠다는 의지로 보인다는 시각이 우세합니다. 전기차 완성품 생산지에 따른 차별적인 세제 보조금 정책(대당 7,500달러)은 단지 완성차 업계를 겨냥한 법안은 아니었습니다. ‘2024년부터 중국에서 배터리 소재와 부품을 조달한 전기차를 구매한 소비자는 보조금(대당 최대 7500달러)을 받을 수 없다’는 강력한 조건이 포함되었듯이, 중국이 70~80%를 장악한 배터리 공급망에서 벗어나, 독자 공급망을 구축하겠다는 의미가 더 강했으니까요.
언론이 설명 잘 안 해 준 부분인데, 미국에서 세액공제 형태로 제공되는 전기차 보조금 7500달러를 받을 수 있는 조건은 3가지입니다. 첫째, 7500달러의 절반을 받으려면 배터리의 핵심 자재(리튬·니켈·코발트 등)를 미국 또는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은 국가에서 공급받아야 합니다 (이 비율은 2024년 40%부터 시작해 2026년에는 80%까지 늘어남). 두 번째, 나머지 절반의 보조금은 북미에서 제조되는 배터리의 주요 부품(양극재·음극재·전해액·분리막) 비율이 50% 이상이어야 받을 수 있습니다 (이 비율은 2028년 100%까지 확대). 셋째, 내년부터는 북미에서 최종 조립된 전기차에만 보조금을 지급한다는 조건도 달았습니다. 미국 자동차 시장을 선점해야 하는 완성차·배터리 업계는 소재·부품 공급망 구조를 전면 재조정해야 할 상황에 놓인 셈이 된 것이지요.
심야 시사 토론 프로그램에 나온 여당 패널이 뇌피셜로 이야기합니다. "현대차 그룹도 모르는 체 극비로 진행된 입법 반전이라 몰랐습니다. 그러니 외교 공무원도 화들작 놀란 것 아닐까요?" 진짜일까요? 막역한 지인이 현대차 그룹 홍보파트에 있어 물어보았더니 돌아오는 대답은 '그럴 리가'였습니다. 이미 작년부터 입법 예고가 되어 모니터링이 되었고 주미대사관 경제과에도 리포트가 수차례 전해졌다지요. 현대차는 이미 법안 개정을 예측하고 대비하고 있었던 것이지요. 그리고 선업계에서는 완성차업체인 현대차에게 IRA는 미미한 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조망이 대세입니다.
https://www.sedaily.com/NewsView/269WQIKCTA
현대차는 앞서 조지아주에 첫 전기차 전용공장을 설립하기로 하고 2025년 완공을 목표로 내년 상반기 착공에 들어갈 예정이었다. 하지만 최근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이 인플레이션 감축법에 서명하며 현대차는 이러한 계획을 앞당기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인플레이션 감축법에 따르면 북미에서 최종 조립되는 전기차만 보조금을 받을 수 있다. 아이오닉 5, EV6 등 주요 전기차를 모두 국내에서 생산하는 현대차로선 이 혜택에서 제외돼 현지 생산을 서두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현대차는 조지아주 공장의 조기 착공을 연내 추진할 것으로 전망된다. 통상적으로 전기차 전용 공장 설립에 2년 정도 소요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2024년 하반기께 완공될 가능성이 크다. 이번 윌슨 장관의 방한을 계기로 이 같은 대안을 논의했을 것이란 게 업계의 분석이다. -기사 본문 중-
우선 현대차는 미국 조지아 주에 전기차 완성 공장을 보다 빠르게 완공할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2년 간의 시차가 발생합니다. 단기적인 영업 위기가 닥치고 영업이익이 감소할 수 있으나 장기적으로는 이 법안 호재가 됩니다. 일단 친환경 법제로 전기차(EV)가 시장의 성장이 촉진될 것입니다. 그리고 중저가로 밀려오던 중국 업체와의 경쟁이 원천 해소됩니다. 이 법안의 본디 모습이 '중국 견제'이니까요. 테슬라는 가격을 점점 올리니, 중저가의 전기차 시장의 중장기 조망은 청신호라 해도 무방합니다.
지금 현대 아이오닉이 어떤 형세로 미국에서 판매되는지도 보아야 합니다. 대리점 위주의 한국과 달리 미국은 딜러, 딜러쉽 에이전트가 소매를 책임집니다. 생산업체의 소매판매 영향은 최소화됩니다. 현대 아이오닉은 대기 수요가 많아 프리미엄이 상당 금액(5,000~10,000달러)이 발생하고 있답니다. 딜러가 프리미엄 제약조건 판매하거나 Markup비용(통상 3,000~7,000달러)이라는 권장 소비가 이외의 이윤을 조절하면 7,500달러의 세제 혜택을 상쇄하고도 남습니다. 그리고 이 법안은 '세제 감면'에 해당하는 세법입니다. 다시 말해 IRA보조금은 7,500달러 이상의 소득세(소득 상한은 연 과세소득 개인 15만 달러, 부부 30만 달러 이하)를 내지 않으면 그 혜택도 줄어들고 당장 들어오는 '리베이트'가 아닙니다. 배터리 업체에서 손절하는 외국인들은 현대차 주식을 매집하고 있다는 점도 주목해야 합니다.
마치 전기차 완성품 '북미 한정'이 갑자기 밀실 결정된 것처럼 말하는 변명은 궁색하기 그지없습니다. 사실 '미국 내 한정'이 통과되기 직전 캐나다와 멕시코는 입법로비를 통해 '북미 내 한정'으로 돌려놓았으니까요. 갑작스러운 변수가 아니라는 것이지요. 시간표를 보면 지난 5월 윤석열 정부가 한미 정상회담 성과로 내건 '경제안보동맹'의 캐치프레이즈 뒤에서 미국은 늘 그러듯이 자국의 이익과 자신들의 정치적 입지를 위해 뒤통수를 치고 있었습니다.
미국 상무부의 러몬도 장관은 현재 '스타 장관'이 되어 있습니다. 대중국 견제, 미국 제조산업 부활이라는 ‘바이든 책략’의 실제 주체가 되었으니까요. 중국 기업 100개 이상을 수출입 통제 리스트에 추가하고,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 창설을 주도했습니다. 대중국 견제 조항이 담긴 반도체 지원법의 의회 통과를 위해 정적인 트럼프 행정부 고위 관리들을 설득했다고도 합니다. 거기에 더해 한국 투자를 검토하던 대만 반도체 기업 글로벌웨이퍼스를 중간에 가로채 버립니다. 경제안보동맹의 축인 'CCB-Car, Chip, Bio'를 천명한 5월 직후의 일이었습니다.
러몬도 장관은 올해 6월 글로벌웨이 대표와 1시간 동안 전화통화를 통해 투자처를 미국으로 돌렸다고 합니다. <월스트리트 저널>에서 인터뷰 기사로 대서특필 하기도 하였습니다. 한국 언론은 주목을 안 한 것인지 못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말이지요. 로드아일랜드 주지사 출신으로 대권 야망도 갖고 있다는 러몬도 장관은 바이든의 지난 5월 방한 때 동행해 삼성 반도체 공장을 방문한 바 있습니다. 그리고 나서 뒤통수 제대로 날린 것입니다. 그간 '자유무역주의'가 중심이었던 미국 상무부에서 '미국 우선주의'의 진짜 '스타 장관'의 탄생은 한국에 큰 부담이 되었습니다. 한국의 자칭 스타 장관은 기승전'수사'에 몰두하며 대한민국의 시계를 뒤로 돌리는 것과 사뭇 비교되는 지점입니다.
그렇다면 정말 외교 통상 당국의 직무태만이 문제였을까요? 아닐 것입니다. 미국 대사관의 조직에는 '의회과'와 '경제과'가 따로 있을 만큼, 정보 수집과 네트워크 확립은 오랜 시간 잘 다져 왔습니다. 또한 주미 대사관은 외교부의 꽃이고 파견 또한 최고의 평가를 받아야 가능하다고 합니다. 그들이 정권이 바뀌었다고 갑자기 사보타주를 하고 업무 능력이 신묘하게 줄어들었을 리가 있을까요? 전언에 따르면 대사관에서는 이런 징후와 조망을 여러 차례 본국에 보고했다고 합니다. 그 보고서를 깔고 앉은 주체가 외교부인지, 미국통 가득한 안보실인지, 대통령실인지는 역사가 증명할 도리밖에 없지만 말입니다.
분명해 보이는 것은 갑작스러운 일도 아니고, 예측하지 못했던 것도 아니며, 시간이 없었던 것도 아닌데, 정부의 외교 통상 라인은 물론 산업 재정 당국도 대처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는 '외교 참사'가 아니라 '컨트롤 타워의 무능'이라 비판받아야 되는 지점입니다. 온통 미국 추앙자들만 채운 외교 안보라인에 산업과 기업이라고는 알지도 경험하지도 못한 경제 관료와 검사 출신들이 이 나라 경제의 컨트롤 타워에 앉아 있는 것부터가 점검의 대상입니다.
전문가들의 다수 의견으로는 IRA를 뒤집기는 불가능합니다. 미국 중간선거 이후에 달라질 수 있다는 말은 그야말로 판타지 웹소설의 뇌피셜에 불과해 보입니다. 우선 자국 이해 중심의 입법으로 반등이 된 바이든 정부는 이런 추이를 바꿀 이유가 하나도 없습니다. 더욱이 중간 선거 이후 입법부의 구성이 완전히 바뀔 텐데, '동맹국의 우려'가 새로운 구성원들의 우선순위가 될 일은 희박해 보이고, 서로의 헤게모니 다툼으로 일단 상당 시간이 소요될 것입니다. 바이든은 이런 상황을 핑계로 한국에게 그저 '익스큐즈'하면 될 일이 되어 버렸습니다.
이제 수습은 다른 시각에서 접근하였으면 합니다. 우선 IRA로 가장 타격을 받을 산업은 부품ㆍ소재, 그중에서도 배터리 산업입니다. 이 사안에는 양면이 있습니다. 긍정적인 면에서는 중국에 주도권을 빼앗긴 배터리 시장을 다시 찾아올 수 있는 터닝포인트가 될 수 있습니다. 가격은 물론 품질로도 경쟁 우위를 점하지 못해 도태된 배터리, 2차 전지, 디스플레이 시장에 변화가 가능합니다. 반면 부정적인 면이 당장은 더 커 보입니다. 배터리의 핵심소재인 광물을 중국에 의존하고 있어 이럴 경우 미국 수출이 어렵습니다. 공급망의 변환은 조속하고 필수적인 것이 되었습니다. 이런 시각에서 어쩌면 이 번 순방에서 가장 중요한 일정은 '캐나다 정상회동'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언론은 물론 대통령실조차도 그 중요도를 간과하고 있는 모양새입니다.
반면 새로운 기회를 모색할 수도 있습니다. 보통 대전환의 국면에서는 위기를 지렛대로 삼을 지혜와 능력이 필요합니다. '기후대응 법안'인 만큼 탄소배출 비용 감소와 미래 먹거리를 조기에 발굴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폐배터리 재활용은 IRA의 새로운 돌파구라는 평가가 나옵니다. 북미산 전기차를 우대하는 내용을 담은 IRA를 살펴보면, 폐배터리에서 추출한 광물을 미국 혹은 한국 등 자유무역협정(FTA) 체결국에서 재가공할 경우 북미에서 생산한 것으로 인정한다는 조항이 있습니다.
그리고, 돌파구의 한축은 신재생에너지 산업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IRA는 '친환경 산업 장려법'이라 불러도 부족함이 없습니다. 탄소배출 억제 기업과 산업에 방대한 지원금이 배정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에너지 효율과 친황경적 에너지 산업을 장려하고 있습니다. 태양광, 풍력, 수소 등에 대한 투자 확대 기대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예를 들어 미국 내 제조설비를 보유한 기업(한화솔루션)의 경우는 세액공제 및 우선 사용 등 혜택이 집중되면서 외형성장 속도가 가팔라질 것이라는 해외 투자기관이 전망하기도 합니다. 또한 친환경 에너지 설비의 확충으로 미국 내 파이프라인, 액화 저장ㆍ배송설비, 건설의 확대로 에너지용 강관의 수요가 증대되기에 철강 산업의 호재가 될 수도 있습니다.
문제는 우리 정부 컨트롤 타워의 위기 돌파 의지와 기민하고 다양한 변화 대응 능력에 있습니다. 솔직한 심정으로 말씀드리자면, 지금의 윤석열 정부가 이 위기를 극복할 것이라는 기대는 매우 어렵습니다. 두 가지의 측면에서 우려스럽기 때문입니다. 하나는 이미 정부가 뱉어 버린 말들을 주어 담아야 수습하는데, 이 정부는 반성 성찰 사과가 매우 어려운 특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또 한 가지는 변화에 기민한 대응을 위해서는 provisioning이라는 예측에 능한 조직을 구성해야 하는데, 지금 정부 조직은 inspection, 즉 사정에만 능한 인원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변화관리에 취약한 구성과 구조입니다. 이들의 시계는 미래를 조망하지 못하고, 과거로 회귀하기만 하니까요.
윤석열 정부는 보수정치권의 묘한 '자격지심'으로 태동한 권력입니다. 특히 외교 무대에서의 위상이 더 그러합니다. 이전 정권보다 '유능함'을 내세워 비교 우위를 지니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유능이 보수 정치집단의 특장점이라 믿었던 지지자들마저 혀끝을 차는 일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남은 방법이라고는 이전 정권의 정책을 부정하고 폄훼ㆍ폄하하는 일만 남았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그런지 악수를 두고 맙니다. 그중 하나가 '미국ㆍ일본 중심 일색의 편향적 외교 관계'이고 또 다른 하나는 '친원전', '탈재생' 기조입니다. 이 모두가 지금 모색할 수 있는 돌파구를 닫아 버립니다. 이미 '경제안보동맹'이라는 애매하고 일방적인 미국과 일본에 대한 짝사랑 외교는 수동적으로 한 수 접고 들어가는 스탠스만 가능합니다. 뒤통수를 맞아도 따질 수 없습니다. 그리고 지금에 와서 신재생 에너지가 돌파구라면서 태양광, 풍력 솔루션 셀링을 할 수도 없으니까요. 이미 적폐로 규정하고 검사들의 먹잇감으로 던져 주고 말았으니까요.
반도체에 이어, 전기차까지 미국은 동맹이라는 단어가 무색하게 뒤통수를 세차게 내려치고 있습니다. 윤정부가 강조한 'CCB동맹'에서 이제 바이오(Bio) 하나가 남았으나, IRA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 또한 한국에게 불리한 형세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노령화 인구를 위한 신약의 R&A를 미국 내에서 하지 않으면 시장 진입이 어려워집니다.
문재인 정부 때 개인적으로 산업과 통상의 영역에서는 낙제점에 가깝다 혹평과 비판을 하곤 했었습니다. 반기업 정서로 산업 전문가는 찾아볼 수도 없고, 통상도 경제의 영역 보다는 정치의 헤아림 수로 해석하는 진영논리의 잔재 때문이었습니다. 다시 정권을 잡은 보수 정부는 이 영역만큼은 만회할 것이라 예측한 적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보기 좋게 빗나가고 말았습니다. 이리도 무지하고 무능할지 어찌 알았을까요.
“안보 면에서는 미국이 중요하고, 경제는 양쪽 다 중요합니다. 우리는 지정학적으로 도랑에 든 송아지와 마찬가지입니다. 양쪽 언덕의 풀을 뜯어먹거든요. 주변에 있는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를 경제적으로 다 활용해야 해요.” -김대중 대통령-
그 유명한 김대중 대통령의 '논두렁론'입니다. 한계가 있는 주장이라는 비판도 있지만, 지금 같은 강대국 간 대립 시기에는 다시 한번 생각해 볼 문제입니다. 48초 환담과 비속어 논란이 남은 장소를 다시 생각해 봅니다.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 보건, 의료 격차 해소를 위한 기금 '글로벌 펀드'의 이니셔티브를 하는 자리였습니다. 한국은 약 1천만 달러 기여를 약속합니다. 미국, 일본의 1/20, 1/10 수준입니다. 윤 대통령이 애초에 초청받지 못한 이유이고, 냉정한 의미에서 한국 국가 위상의 현주소입니다. 우리가 간과하는 가장 중요한 것은 이 냉엄한 현실뿐일지도 모릅니다.
한국의 산업이 도약한 1990년대의 시발은 80년대 후반의 미일 산업 패권전쟁에서 미국이 일본을 주저앉히기 위한 반대급부였음을 다시 상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플라자 합의, 미일 반도체협정에 일본 내의 내수 호황과 맞물려 일본의 전기 전자 산업의 국제 경쟁력에 금이 가기 시작했고, 그 틈에서 한국은 중국이라는 시장을 선점하기 시작했습니다. 지금의 미-중 대립은 그때의 기시감을 줍니다. 중국의 사다리를 걷어 차는 미국의 여러 행보는 혼란스럽지만 분명 기회가 잠재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혼란에서 눈을 돌려 보면, 새로운 시장으로 떠 오르는 동남아, 중동지역, 아프리카 그리고 중앙아시아와 동남부 유럽 등, 중국이 공들인 시장에 새로운 기회가 열릴 테니까요.
IRA는 언론이 크게 이야기하듯이 '전기차 산업'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는 한국과 미국의 동맹 신뢰의 문제입니다. 미-중의 무역 통상 전쟁은 이제 시작입니다. 시작부터 어느 한 진영의 볼모가 되어서는 곤란합니다. 규칙을 만들거나 페이스를 조정하는 변화관리자로서의 준비와 역량이 필요합니다. 어쩔 수 없는 외변적 요소 때문이라고 이 위기를 관망하다가는 역사에서 가장 큰 오점을 남기는 정부가 될 수도 있습니다. 각성하고 반성하고 다시 정립하는 기민함이 필요합니다. 참 중요한 시간입니다. 그런데, 컨트롤 타워의 정점인 대통령이 윤석열 씨라는 게 문제입니다. 에휴.